소령(小令)
사(詞)는 당나라의 초ㆍ중엽에 형성되었고, 사(詞)는 바로 가사이며, 원래 악부가사(樂府歌辭)의 “사(辭)”자와 같은 글자로,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모든 시체(詩體)를 말한다. 사(詞)는 영(令)ㆍ근(近)ㆍ만(慢)의 세 가지로 분류되며, 영(令)은 일반적으로 근(近)과 만(慢)에 비해 글자가 적으며, 리듬이 빠르다.
사(詞)는 사패(詞牌)라고도 하며, 장단구(長短句)ㆍ악부(樂府)ㆍ시여(詩餘)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당나라 때는 단지 소령(小令, 즉: 令)의 형식만 존재하였으나, 오대(五代)를 거치면서 간단하고 길이가 짧은 소령(小令)은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사를 연장시키고 악곡의 악절을 증가시켜 근(近)의 형식을 만들었다. 또한 북송(北宋) 후기 인종(仁宗: 1010~1063) 때의 유영(柳永: 약 990~1050)은 만사(慢詞)를 많이 창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만사(慢詞)라는 사(詞)의 형식도 매우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1) 사(詞)의 분류 당ㆍ송 때에는 영(令)ㆍ근(近)ㆍ만(慢)의 형식이 나타났지만 사(詞)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는 강기(姜夔: 1155 추정~1221 추정)의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과 장염(張炎: 1248~1317 추정)의 『사원(詞源)』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강기(姜夔)의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에서는 사(詞)를 영(令)과 만(慢)으로 분류하였으며,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에서는 사(詞)를 영(令)ㆍ근(近)ㆍ만(慢)과 소사(小詞)ㆍ대사(大詞)로 분류하였다. 명나라 때에 와서 고종경(顧從敬: ?~?)의 『초당시여(草堂詩餘)』에는 사(詞)를 소령(小令)ㆍ중조(中調)ㆍ장조(長調)로 분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령(小令)의 글자 수는 58자 이하, 장조(長調)의 글자 수는 91자 이상, 중조(中調)의 글자 수는 59자에서부터 90자까지로 각각 규정하였다. 고종경(顧從敬)의 『초당시여(草堂詩餘)』가 출간되고 나서 이러한 방법을 따라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으나, 청나라 만수(萬樹: 1630∼1688)의 『사율(詞律)』 “발범(發凡)”항에서 글자 수만 고려해서 사(詞)를 구분하는 방법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고종경(顧從敬)의 글자 수에 따라 사(詞)를 분류하는 방법과 맞지 않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였으나, 글자 수는 사(詞)를 분류할 때의 참조 사항이지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그 후의 저작들은 사(詞)에 대한 별다른 구분이 없이, 단지 글자 수만을 고려하여 글자 수가 가장 적은 사(詞)에서부터 시작하여 글자 수가 가장 많은 사(詞)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기록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예는 만수(萬樹)의 『사율(詞律)』과 청나라의 가장 유명한 『흠정사보(欽定詞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 사(詞)에 대한 분류는 기본적으로 영(令)ㆍ근(近)ㆍ만(慢)의 분류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영(令)ㆍ근(近)ㆍ만(慢)에 대한 구분은 모두 글자 수와 압운 등을 가지고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위 압운은 구절의 마지막 글자에 같은 운모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영(令)ㆍ근(近)ㆍ만(慢)의 구체적인 구분에 대하여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여러 가지 학설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令)ㆍ근(近)ㆍ만(慢)의 글자 수 구분에 대하여 고종경(顧從敬)과 왕력(王力: 1900~1986) 등이 관점을 제시한 적이 있고, 압운에 있어서 낙지(洛地: 1930~2015)는 영(令)이 대체적으로 네 개의 운(韻)을 가지고 있으며, 근(近)과 만(慢)은 일반적으로 여섯 개와 여덟 개의 운(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令)ㆍ근(近)ㆍ만(慢)에 대한 구분은 모두 일반적인 규칙이며,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다. 요컨대, 사(詞)의 분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송나라 강기(姜夔)의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과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에서 볼 수 있고, 강기(姜夔)는 사(詞)를 영(令)과 만(慢)으로 분류하였다는 반면에 장염(張炎)은 사(詞)를 영(令)ㆍ근(近)ㆍ만(慢)과 소사(小詞)ㆍ대사(大詞)의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명나라 고종경(顧從敬)의 『초당시여(草堂詩餘)』에는 글자수에 따라 사(詞)를 소령(小令)ㆍ중조(中調)ㆍ장조(長調)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 여러 가지 사(詞)에 대한 분류는 다음의 표와 같다.
순서 | 문 헌 명 | 분 류 방 식 | |||
(1) | 『사원(詞源)』 | 영(令) | 근(近) | (인(引)) | 만(慢) |
(2) | 『사원(詞源)』 | 소사(小詞) | 대사(大詞) | ||
(3) |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 | 영(令) | 만(慢) | ||
(4) | 『초당시여(草堂詩餘)』 | 소령(小令) | 중조(中調) | 장조(長調) |
위 (1), (2), (3)의 분류방법은 송나라 사람들이 사를 분류할 때 사용한 분류방법이고, (4)의 분류방법은 명나라 사람들이 사용한 사의 분류방법이다. 이중에 (3)의 분류방법은 (1)의 분류방법을 간략하게 분류한 방법이지만 (3)의 분류방법의 영(令)은 (1)의 분류방법의 영(令)과 범위가 서로 다르다. 즉 (3)의 분류방법중의 영(令)은 영(令)과 근(近(인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2)와 (3)의 분류방법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명칭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4)의 분류방법은 명나라 사람들이 사용한 사에 대한 분류방법인데, 실제적으로 소령(小令) 즉 영(令), 중조(中調) 즉 근(近), 장조(長調) 즉 만(慢)이다. 게다가 인(引)과 근(近)은 악곡 중에서 출연순서만 서로 다르고 기능은 모두 같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를 영(令)ㆍ근(近)ㆍ만(慢)으로 분류하였다.
『고려사』 「악지」 당악 사(詞)의 분류방법은 (3)번의 분류방법, 즉 『백석도인가곡집(白石道人歌曲集)』의 분류방법과 같다. 다시 말하면 『고려사』 「악지」 당악의 사는 영(令)과 만(慢), 두 가지만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영(令)은 『사원(詞源)』에서의 영(令)과 근(近)을 포함하고 있다.
『고려사』 「악지」의 당악에는 영(令)의 기록이 표기되어 있는 사(詞)가 모두 스물두 개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헌천수령(獻天壽令)〉, 〈금잔자령(金盞子令)〉, 〈중강령(中腔令)〉, 〈파자령(破字令)〉, 〈보허자령(步虛子令)〉, 〈절화령(折花令)〉, 〈수룡음령(水龍吟令)〉, 〈소포구락령(小抛毬樂令)〉, 〈청평령(淸平令)〉, 〈전화지령(轉花枝令)〉, 〈감황은령(感皇恩令)〉, 〈천추세령(千秋歲令)〉, 〈풍중류령(風中柳令)〉, 〈영춘악령(迎春樂令)〉, 〈낭도사령(浪淘沙令)〉, 〈어가행령(御街行令)〉, 〈유월궁령(遊月宮令)〉, 〈경금지령(慶金枝令)〉, 〈만조환령(滿朝歡令)〉, 〈천하락령(天下樂令)〉, 〈감은다령(感恩多令)〉, 〈해패령(解佩令)〉이다.
『고려사』 「악지」의 기록에는 영(令)을 따로 표시하였으나, 실제로 더 많은 송사(宋詞)에는 영(令)의 표시가 없거나 아예 사의 이름에 영(令)자를 포함한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낙양춘〉은 영(令)의 범위에 속하지만 영(令)의 표시가 따로 없으며, 〈청평령(淸平令)〉의 영(令)은 아예 이름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영(令)자의 기록방식도 매우 다양하며, “영(令)”자가 사(詞)의 제목과 같은 크기의 글씨로 기록한 경우와 사(詞)의 형식을 중요히 여겨 제목보다 작은 글씨로 구분하여 기록한 경우도 있다.
2) 사(詞)의 음악적 특징
사는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의 창작 방법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의 창작방법은 바로 “의성전사(倚聲塡詞)”로서, 즉 먼저 음악이 있고, 그 음악에 맞추어 사를 짓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의 사는 모두 노래로 부를 수 있고, 사와 결합된 음악들은 대체적으로 연악의 범위에 속한다. 또한 사는 영ㆍ근ㆍ만의 세 가지 서로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사와 음악의 관계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영ㆍ근ㆍ만의 음악적인 특징에 대해서 지금까지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바로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이며, 그는 “구곡지요(謳曲旨要)”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가곡과 영곡은 사긍균으로 되어 있고, 파와 근은 육균, 만은 팔균으로 되어 있다.
관박과 염박은 경, 중을 구분하고 있으며, 일곱 번 두드리고, 여덟 번 억누르며, 삽부분에는 맑다.
(謌曲令曲四掯勻, 破近六均慢八均.
官拍艶拍分輕重, 七敲八掯靸中淸.)”
여기에서 말한 긍(掯)은 ‘억누르다’라는 뜻이다. 장염(張炎)의 기록을 통해서 영(令)은 4균(均), 파(破)ㆍ근(近)은 6균(均), 만(慢)은 8균(均)으로 각각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 근, 만의 음악적인 특징을 분석할 때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균(均)에 대한 해석이다. 균(均)의 발음은 ‘yun’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균(均)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논점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 논점들은 균(均)의 문학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고려해서 각각 얻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균(均)이 박자라고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한 학자는 이혜구(1909~2010)인데, 영곡은 4박자, 근곡은 6박자, 만곡은 8박자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낙지(洛地)는 균(均)을 ‘운(韻)’으로 보아 사에서 반드시 압운해야하는 ‘대운(大韻)’이라는 위치로 해석하고 있다. 즉 영곡은 미전사와 미후사로 구분되어 있고, 미전사와 미후사는 각각 두 개의 대운(大韻)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근곡과 만곡의 미전사와 미후사는 각각 세 개 혹은 네 개의 대운(大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의 문학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며, 균(均)을 문학적으로 보면 반드시 압운해야하는 곳이지만 음악적으로 보면 역시 박을 쳐야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사는 바로 가사이고, 노래로 부를 수 있으므로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ㆍ근ㆍ만의 음악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영의 음악은 비교적 빠르고, 만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느리며, 근은 그 중간의 리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장염(張炎)의 『사원(詞源)』에서 말한 영곡(令曲)의 사균박(四均拍)은 가사가 미전사와 미후사로 구분되어 있으며, 미전사와 미후사는 각각 네 마디로 구성되어 각각 네 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근곡(近曲)은 미전사와 미후사에서 각각 여섯 마디의 가사로 여섯 박을 차지하고 있으며, 만곡(慢曲)은 미전사와 미후사에서 각각 여덟 마디의 가사로 여덟 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詞)는 당나라의 초ㆍ중엽에 형성되었고, 사(詞)는 바로 가사이다. 사(詞)는 음악과 어울리고 또 연창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이 사(詞)보다 먼저 형성되었고 사(詞)는 음악의 장단과 리듬에 따라 창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詞)를 창작하는 것을 “의성전사(倚聲塡詞)”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생략한 명칭으로 “전사(塡詞)”라 부르기도 한다. 사(詞)는 영(令)ㆍ근(近)ㆍ만(慢)의 세 가지 서로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사(詞)와 음악의 관계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같은 사(詞)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詞)의 형식(영ㆍ근ㆍ만)이 서로 다르면 사(詞)간의 음악 역시 거의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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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옥(朴恩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