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명양수륙재의산보집, 지환집, 범음집, 어산집
각종 재의식을 위한 지문(指文)과 창송의문을 집성한 의식집
지환이 집성한 수륙 및 각종 불교의식집.
고려조에 중국에서 들어온 수륙의문에서 유래.
① 구성과 내용 『범음산보집』의 원 제목은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으로, 1721년(경종 1)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개간한 것, 1739년(영조 15) 6월 곡성 도림사(道林寺)에서 개간한 것 외에 여러 이본이 있다. 이 의식집은 조선 초에 설행된 국행수륙재와 중기 이후 민간 주도로 행해져온 다종의 수륙의문들을 종합하여 2권 1책으로 간행되었고 각 권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두: 서문에서는 출간 연유, 모본으로 삼은 문헌 등을 밝힌데 이어, 지반3주야17단배설도(志磐三晝夜十七壇排設圖), 예수2주야10단배설도(豫修二晝夜十壇排設圖), 상ㆍ중ㆍ하 3단 시련위의도(上中下三壇侍輦威儀圖), 중하단 봉송 위의 순회도(中下壇 奉送威儀巡廻圖). 권상: 대령, 향례, 각종 이운(사리ㆍ가사ㆍ전패ㆍ금은전ㆍ괘불ㆍ법사), 재전(齋前)ㆍ재후(齋後) 절차.
권중: 예수재, 성도재, 불상 점안, 설선(設禪) 작법, 신년 세배ㆍ시련ㆍ별식당 작법, 시식(총림4명일(叢林四明日)의 혼령 맞이ㆍ대령), 축원(상단ㆍ육색장(六色掌), 다비문 등.
권하: 각종 단 작법(풍백우사단(風伯雨師壇), 가람단, 천왕산, 용왕단, 예적단(穢跡壇), 범왕단, 제석단, 사천왕단, 성황단, 예수작법, 자기초권(仔夔初卷), 가등(加燈), 별삼보(別三寶) 및 3주야로 행할 각종 단의 작법 절차와 규례(規例). 권말: 화주(化主), 판각, 출간에 참여한 인적 사항, 시주자와 간기(刊記).
② 편저자의 생애와 범음성의 경지
지환(智還)은 17~18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승려로, 신해 대사의 먼 법손(法孫) 중 한 사람이었으며 법호는 용악(龍岳)이었다. 『동사열전(東師列傳)』 제2권 「신해보합전(信海普淨合傳)」에 따르면, 용악지환 스님은 만흥산(萬興山) 법풍이 쇠퇴하자 만덕산으로 이주하여 지내다 59세 무렵 대둔사(大芚寺)에 주석하였다.
1723년 계파성능(桂坡聖能)이 쓴 의문 편찬 발문에는 “범패를 익힌 사람이 대부분 그 바른 법을 잃어버렸는데, 지환스님이 홀로 그 종지를 터득하여 명성을 떨쳤음”을 칭송하고 있다. 월주자수(月州子秀)가 쓴 발문에 의하면 “지환스님은 진실로 공문(空門)의 거벽이요 범음으로써 세상에 명성이 자자한 분이었다. 고금에 남겨 준 책들을 섭렵하여 두루 따다가 범패를 하는 높은 스님(高錐)과 강원의 기애(耆艾)께 두루 논의하여 요지를 가려 뽑았다”라고 하며 “17~18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지환의 의례 식견과 그 성음(聲音)에 대한 명성이 대단했다”고 적고 있다. 이상의 문헌을 통해 지환스님은 의궤의 교의적 근거와 이치에 밝았고, 범패 창화에도 유려한 성음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③ 출간 배경 및 의의
한국의 수륙재는 고려 광종 21년(970) 갈양사(葛陽寺)에서 설행된 것을 시작으로, 고려 선종 연간(1083~1094)에 최사겸이 송나라에서 수륙의문을 구해왔고, 일연스님의 제자 혼구(混丘 1251~1322)가 『신편수륙의문』을 찬술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 말기인 1342년 죽암유공(竹菴猷公)이 남송 자기(子夔)의 『천지명양수륙재의문(天地冥陽水陸齋儀文)』을 간소화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일명 『중례문』이 전해져 왔다. 고려조에는 수륙재 설행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다가 조선조 개국 과정에 희생된 고려 왕씨들의 고혼과 민심을 달래기 위한 국행수륙재로 인하여 널리 확산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에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를 발간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 수륙재의 국행이 폐지되고 민간 주도로 행해지면서 다종의 수륙의궤가 발간되어 왔다. 17세기 무렵에는 의식 절차와 진행 방식이 지방과 사찰마다 다르고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이에 지환스님이 본 궤도를 벗어나 있는 의식과 범패에 대하여 개탄하며, 소례문ㆍ대례문ㆍ예수문ㆍ지반문(志磐文)ㆍ자기문(仔夔文)ㆍ오종범음집을 참고해서 간추리고(折中) 보충하여(刪補)여 다방면으로 자문을 구하여 발간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산보집’이라 하였다.
④ 『범음산보집』 의 원류와 변화
중국의 고문헌인 『불조통기』에 의하면, 양 무제(464~549)가 꿈속에서 “육도의 중생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니 수륙무차대법회를 열어 그들을 구제하라”는 신승(神僧)의 말을 듣고, 보지(寶誌)선사와 함께 3년간 대장경에 근거하여 의문을 만들었다. 이때 자비양황보참(慈悲梁皇寶懺)과 아난우면연귀왕일사(阿難遇面然鬼王一事) 등을 종합하여, 차별 없이 베푸는 의미에서 수륙무차대법회 의궤를 만들어 금산사(金山寺)에서 최초로 수륙법회를 열었다. 이후 교의적 보충과 변화를 수용하며 정밀한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송나라 신종(神宗, 1068~1077) 대에는 동천양악(東川楊鍔)이 양무제 의문을 근거로 하여 「수륙의」 3권을 재편집하였고, 원우(元祐) 8년(1093)에 북송의 미산(현 사천성 미산시(四川省 眉山市)) 사람이었던 소식(蘇軾, 1037~1101)이 죽은 아내를 위해 수륙도량을 세워 「수륙법상찬(水陸法像讚)」16편을 편찬하였는데, 이를 ‘미산수륙(眉山水陸)’이라 한다. 이후 북송의 사호(史浩)가 저술한 「의문(儀文)」 4권을 북수륙, 남송 말기에 지반(志盤)이 사호의 의문을 근거로 하여 『신의(新儀)』 6권을 지은 것을 ‘남수륙’이라 한다. 명나라 주굉(祩宏)은 ‘남수륙’을 바탕으로 『수륙의궤』 6권을 만들었고, 청나라의 지관(咫觀)이 저술한 『법계성범수륙대제보리도장성상통론(法界圣凡水陆大斋普提道场性相通论)』 9권, 『법계성범수륙대제법윤보천(法界圣凡水陆大斋法轮宝忏)』 10권이 편찬되었고,1 현재 중국과 대만에서는 주굉(祩宏 1535~1615)이 청대에 새로이 제정한 『수륙의궤』를 쓰고 있다.2
1) 원정방(袁静芳), 『중국한전불교음악문화(中國漢傳佛敎音樂文化)』, 북경(北京):북경민족대학출판사(北京民族大學出版社), 2003,“현재통행적시청도광문론회회집주굉정정적 수륙의궤(现在通行的是淸道光问論汇匯集祩宏订正的 水陆仪轨)”, p. 42~44.
2) 윤소희, 『한ㆍ중 불교의례와 범패』, 서울:민속원, 2023, p. 91~124.
⑤ 특징
한국 불가에서 3대 의문으로 꼽히는 『작법귀감』, 『범음산보집』, 『석문의범』 중 『작법귀감』과 『석문의범』은 조석예불과 일상 의례를 포함한 종합 의식집이다. 이에 비해 『범음산보집』은 수륙의문에 포함되는 각종 재의문을 편취하여 펴낸 점에서 오늘날 행해지는 수륙ㆍ영산ㆍ예수재의 모본이고, 17~18세기에 쓰여진 점에서 19세기의 『작법귀감』, 20세기의 『석문의범』의 전거이자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윤소희,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경제ㆍ영제ㆍ완저 어떻게 다른가?』, 민속원, 2016. 윤소희, 『한ㆍ중 불교의례과 범패』, 민속원, 2023. 지환 편, 김두재 역, 『천지명양수륙재의 범음산보집』,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2. 지환 편, 김순미 역, 『천지명양수륙재의 범음산보집』, 도서출판 양사재, 2011. 원정방(袁静芳), 『중국한전불교음악문화(中國漢傳佛敎音樂文化)』, 북경민족대학출판사(北京民族大學出版社), 2003.
윤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