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악(宗廟樂)
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제례를 봉행할 때 연주하던 제례 악무이다. 〈영신희문(迎神熙文〉, 〈전폐희문(奠幣熙文)〉, 〈풍안지악(豊安之樂)〉,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 〈옹안지악(雍安之樂)〉, 〈흥안지악(興安之樂)〉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제례 절차에 따라 등가(登歌)와 헌가(軒架) 중 정해진 악대가 연주하고, 일무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가 수반된다.
○ 역사 변천 과정 조선조의 종묘제례악은 역사적으로 크게 네 번의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려 시대로부터 전승되던 음악에 악장(樂章)만 고쳐 연주하던 단계이고, 두 번째는 임우(林宇, ?~?)의 『대성악보(大成樂譜)』에 근거하여 새로이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단계이다. 이 때까지는 종묘제례악에 아악을 썼다. 세 번째는 1463(세조 9)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단계이고, 네 번째는 1626년(인조 4)에 〈중광(重光)〉장을 새로 첨가한 단계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은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연주하기 위해 만든 음악으로, 《보태평》 열한 곡, 《정대업》 열다섯 곡으로 구성되었다. 1463년(세조 9)에 《보태평》은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歸仁)〉, 〈형가(亨嘉)〉,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龍光)〉, 〈정명(貞明)〉, 〈대유(大猷)〉, 〈역성(繹成)〉 열한 곡으로, 《정대업》은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분웅(奮雄)〉, 〈순응(順應)〉, 〈총유(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永觀)〉의 열한 곡으로 보정하여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였다. 1625년(인조 3년)에는 〈용광〉과 〈정명〉을 하나로 합쳐 <용광정명>으로 만들고 〈중광〉을 추가하였고, 이 음악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후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964년).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에서 종묘제례보존회(전주이씨 대동종약원)가 제례를 봉행할 때 종묘제례악보존회가 악무를 담당하여 연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연주 시기 종묘제례악은 제례에 수반되는 악무이므로, 종묘제례 봉행일에 연주된다. 조선 시대에 종묘제례는 대사(大祀)에 속했으며, 1월, 4월, 7월, 10월 상순의 길한 날과 12월에 지냈는데, 1939년부터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네 절기에 시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1971년 이후로 5월 첫째 일요일에만 낮에 거행하고 있다.
○ 연주 장소 종묘제례악은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에서 제례를 봉행할 때 연주된다.
○ 제례 절차에 따른 악무 종묘제례의 절차와 행례는 취위(就位)의 영신(迎神), 신관례(晨祼禮)의 전폐(奠幣), 천조례(薦俎禮)의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의 헌작, 아헌례(亞獻禮)의 헌작, 종헌례(終獻禮)의 헌작, 음복례(飮福禮)의 수작(受爵)․수조(受俎), 철변두(撤籩豆), 송신(送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제례악은 《보태평》 계열, 《정대업》, 《진찬악》 계열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제례 절차에 따라 정해진 음악과 노래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취위는 제관들이 제례를 봉행하기 위해 정해진 자리에 나아가는 절차이며, 영신의 의미로 제관들이 국궁사배 함으로써 신을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때 헌가에서 <영신희문>을 연주하고, 일무는 〈보태평지무〉를 춘다. 영신 때 〈영신희문〉을 아홉 번 연주하고, 〈보태평지무〉를 아홉 번 춰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다 연주하지 않는다. 신관례는 새벽에 신을 불러 오는 의식인데, 하늘에 계시는 신을 불러오기 위해 술(울창주)을 땅에 붓고, 예물인 비단으로 폐백을 올린다. 이 폐백 올리는 절차가 전폐이다. 전폐 때 등가에서 <전폐희문>을 연주하고 〈보태평지무〉를 춘다. 천조례는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조(俎)에 담아 올리는 절차이다. 조(俎)가 처음 문으로 들어올 때 헌가에서 <풍안지악>을 연주하고,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올리기를 마치면 음악을 그친다. 일무는 없다. 초헌은 첫 번째 술을 올리는 절차이다. 초헌 때 등가에서 《보태평》의 음악을 연주하고 <보태평지무>를 춘다. 초헌의 악작(樂作; 음악을 시작함)에서는 박을 치고, 축과 절고를 세 번씩 친[鼓柷三聲] 후 다시 박을 친다. 술을 바치는 각 실마다 대축(大祝; 대제에서 축관을 이르는 말)이 축을 읽는 독축(讀祝)이 있고, 이 사이에 악지(樂止; 음악을 그침)가 빈번한데, 독축 후 음악을 다시 시작할 때는 고축삼성(鼓柷三聲) 없이 절고를 세 번 친다. 오늘날에는 각 실마다 제관이 정해져 있어 한 번의 악지만으로 독축 절차가 마무리된다. 현재의 종묘제례 초헌례에서는《보태평》의 열한 곡을 다 연주하지 않고 〈인입희문〉<희문>을 연주한 후 〈기명〉이하 몇 곡을 제례 절차 소요 시간에 맞추어 반복 연주하다가 제례가 끝나면 〈인출역성〉<역성>으로 넘어간다. 초헌의 악지에서는 박, 절고, 어를 세 번씩 친다. 아헌은 두 번째 술을 올리는 절차이다. 헌가에서 《정대업》의 음악을 연주하고, 일무는<정대업지무>를 춘다. 아헌의 악작에서는 진고를 열 번 치고[晉鼓十通], 축과 진고를 세 번씩 친[鼓柷三聲] 후 박을 쳐 음악을 시작한다. 음악이 끝날 때는 박, 진고, 어를 세 번씩 쳐서 마친다. 종헌은 세 번째 술 즉 마지막 술을 올리는 절차이다. 종헌은 아헌과 의식이 같고, 음악과 춤도 아헌에서와 같이 헌가에서 《정대업》 열한 곡을 연주하고, 일무는 〈정대업지무〉를 춘다. 종헌의 악작에서는 진고를 세 번 친[晉鼓三通]후 고축삼성(鼓柷三聲) 없이 박을 한 번 치며, 악지에서는 박, 진고, 어를 세 번씩 치면서 대금을 열 번 쳐[大金十次] 음악과 일무를 그치게 한다. 철변두는 왕이 음복위로 나아가서 술을 마시고(음복) 위차(位次; 신주를 모신 자리)로 돌아가 사배(四拜)하면 변(籩)과 두(豆)를 철수하는 절차이다. 철변두에서는 등가에서 <옹안지악>을 연주하고, 일무는 없다. <옹안지악>은 진찬의 〈풍안지악〉과 음악이 같으나 가사가 다르며, 〈풍안지악〉은 헌가에서 연주하는데 비해 〈옹안지악〉은 등가에서 연주한다. 〈옹안지악〉의 악작과 악지는 영신희문과 같다. 송신은 제례를 모두 마치고 신을 돌려보내는 절차이다. 송신에는 헌가에서 <흥안지악>을 연주하고, 일무는 없다. 〈흥안지악〉은 진찬에서 연주하는 〈풍안지악〉과 선율은 같고 가사는 다르며, 악작과 악지는 〈영신희문〉과 같다. 오늘날에는 송신 후 축문을 불사르는 망료례(望燎禮)가 뒤따른다.
<종묘제례 절차에 따른 악대와 악무>절차 | 행례 | 악대 | 악곡 | 일무 |
취위 | 영신 | 헌가 | 영신희문 | 보태평지무 |
신관례 | 전폐 | 등가 | 전폐희문 | 보태평지무 |
천조례 | 진찬 | 헌가 | 풍안지악 | - |
초헌례 | 헌작 | 등가 | 보태평지악 | 보태평지무 |
아헌례 | 헌작 | 헌가 | 정대업지악 | 정대업지무 |
종헌례 | 헌작 | 헌가 | 정대업지악 | 정대업지무 |
음복례 | 수작/수조 | - | - | - |
철변두 | 철변두 | 등가 | 옹안지악 | - |
송신사배 | 송신 | 헌가 | 흥안지악 | - |
○ 악장 초헌에 부르는 악장인 《보태평》은 조상들의 덕으로 민심을 복속시키고 밝은 문화를 고루 펴서 나라를 안정시킨 문덕(文德)에 관한 내용이고, 아헌과 종헌에 부르는《정대업》은 왕업의 터전을 닦는 과정에서 원나라와 홍건적을 물리친 일, 왜구의 소탕, 고려 유신과의 갈등을 해결한 조상들의 무공(武功)을 찬양한 내용이다. 이외에 영신, 전폐, 진찬, 철변두, 송신의 악장은 절차와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있다. ○ 일무 종묘제례 일무는 종묘제례악을 연주할 때 추는 춤이며,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가 있다. 영신, 전폐, 초헌에 〈보태평지무〉를 추고, 아헌, 종헌에 〈정대업지무〉를 춘다. 〈보태평지무〉를 출 때는 왼손에 약(籥)과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고, 〈정대업지무〉를 출 때는 본래 창, 칼, 활ㆍ화살을 들고 췄으나, 현재는 목창과 목검만 사용한다. 조선 시대 종묘제례 일무는 총 6열 6행의 36명으로 구성된 육일무였으나, 현재는 8열 8행의 64명으로 구성된 팔일무로 춘다.
○ 음계 《보태평》은 세종 때 임종 평조였으나, 세조 때 황종 평조로 바뀌었다. 《정대업》은 세종 때 남려 계면조였으나, 세조 때 청황종 계면조 악곡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보태평》은 여전히 청황조 평조로 변함없으나, 《정대업》에서는 음계의 최저음 황종(黃:C4)을 모두 무역(㒇:B♭3)으로, 일부 임종(林:G4)을 중려(仲:F4)로 내려 연주한다. 진찬ㆍ철변두ㆍ송신의 음악은 황(黃:C4)·태(太:D4)·고(姑:E4)·중(仲:F4)·임(林:G4)·남(南:A4)·응(應:B4)의 7음 음계로 되어있다.
○ 박법과 장구가락
『세조실록』소재 《보태평》의 〈희문〉, 〈현미〉, 〈대유〉와 《정대업》의 〈소무〉는 다섯 글자마다 박을 한 번 치는 5자(字) 1박(拍)이었고, 《정대업》의 〈탁정〉, 〈신정〉, 〈정세〉는 3자 1박, 나머지는 4자 1박이었으며, 한 곡을 이루는 박 수에 따라 4박 1성, 5박 1성, 6박 1성, 8박 1성, 12박 1성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는 6박 1성으로 된 〈선위〉를 제외한 모든 악곡이 4박 1성으로 변화되었다.
종묘제례악의 장구가락은 본래 규칙성이 없고, 악곡별로 연주규칙이 달랐는데, 이러한 특징은 『대악후보(大樂後譜)』(1795)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속악원보(俗樂源譜)』인편(仁篇)에서는 악장가사의 배자법(配字法)과 박법이 달라짐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생겼고, 이왕직아악부 시절에는 종묘제례악의 장구 가락이 전승되지 않아 적당히 음악에 맞춰서 쳤다고 한다.
국립국악원 개원 후에는 김기수(金琪洙, 1917~1986) 원장이 『세조실록』 악보의 장구 가락을 현행 리듬에 맞추어 넣어 연주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조실록』 악보의 정간보는 한 각(한 행)이 모두 열여섯 정간이고, 이 열여섯 정간이 3ㆍ2ㆍ3ㆍ3ㆍ2ㆍ3정간으로 구분되는 6대강 형태이나, 현재 종묘제례악 정간보는 한 각이 스무 정간이고, 한 각의 대강 수는 악곡마다 다르다. 따라서 비록 『세조실록』 악보의 장구가락을 현행 리듬에 맞추어 넣었다 하더라도 서로 같다고 할 수는 없다.
○ 악대와 악기편성
종묘제례악은 등가와 헌가 두 악대로 연주하며, 『악학궤범』에는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그리고 노래가 모두 편성되어 있었다. 등가에는 현악기에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아쟁, 대쟁, 해금, 당비파,
월금, 관악기에 대금, 당적, 퉁소, 피리, 생, 지, 화, 훈, 타악기에 특종, 특경, 편종, 편경, 방향, 박, 축, 어, 장구, 절고가 편성되었다. 헌가에는 현악기에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당비파, 월금, 해금, 관악기에 대금, 중금, 소금, 당적, 퉁소, 피리, 태평소, 생, 우, 화, 관, 훈, 지, 타악기에 방향, 편경, 편종, 노고, 노도, 교방고, 박, 장구, 진고, 어, 축으로 편성되었다. 조선 후기부터 악기편성이 변하여 현재는 등가의 악기편성은 박, 장구, 절고, 편종, 편경, 방향, 축, 대금, 당피리, 아쟁 등의 악기와 악장을 부르는 도창으로 구성되고, 헌가의 악기편성은 박, 장구, 진고, 편종, 편경, 방향, 축, 대금, 당피리, 해금, 태평소, 징[大金] 등의 악기와 도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징은 본래 〈정대업지무〉에 속해 있던 악기였으나, 현재는 헌가에 편입되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64)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2001)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2008)
『국조오례의』 『대악후보』 『대한예전』 『세종실록』 『세조실록』 『시용무보』 『속악원보』 『악학궤범』 『악원고사』 『악장요람』 『조선악개요』 『종묘의궤』 『춘관통고』
『국악전집 제18집: 종묘제례악』, 국립국악원, 2006. 김영숙ㆍ이숙희ㆍ송지원, 『종묘제례악』, 민속원, 2008. 성경린, 『국악감상』, 삼호출판사, 1977.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장사훈, 『국악논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최순권ㆍ임승범, 『종묘제례』, 민속원, 2008. 황병기, 「한국 전통음악의 미적 특색 8」 『공간』 112, 1976.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