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음악(王室音樂), 궁정악(宮廷樂)
궁중에서 연주되던 모든 의식(儀式)음악을 일컫는 명칭
궁중음악(宮中音樂)은 조정(朝廷)과 왕실(王室)이 행한 제례(祭禮), 연례(宴禮) 등 의례에서 연주된 음악을 통칭한다. 넓은 의미로는 노래와 연주뿐만 아니라 거기 수반하는 춤까지 아우른다. 궁중음악은 의례에 수반되므로, 단순히 감상을 목적으로 연주되기보다 의례의 성격과 절차에 맞추어 쓰였다. 종묘(宗廟)나 사직(社稷)과 같은 제례, 그리고 연례에서는 춤을 반주하는 데에도 쓰였다. 그 외에 국왕의 출궁(出宮) 때나 사신을 영접할 때 이동식 악대가 연주한 음악도 궁중음악에 속한다. 현재 연주되는 궁중음악은 대부분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전승되었거나, 조선 시대에 새로 만든 음악이다. 한민족(韓民族) 고유의 음악 외에도 고려 시대에 중국 송(宋)에서 들여온 사악(詞樂)과 정재(呈才), 그리고 고려 시대에 처음 들여와 조선 초에 대대적으로 정비한 아악(雅樂)까지 포함한다.
궁중음악은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의 황실음악뿐 아니라 더 앞선 고려, 통일신라, 삼국 각국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악곡 갈래명으로 사용하는 궁중음악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까지의 궁중음악을 가리킨다. 궁중음악은 조선 전기의 분류방법에 따른다면 고려때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중국 고대의 음악양식을 따르는 의식음악인 아악, 중국 당·송대의 연향음악을 수용한 당악,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궁중음악인 향악으로 구분한다.
○역사 변천 과정
고려 시대 궁중음악에는 고려의 향악(鄕樂) 외에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대성아악, 大盛晟雅樂)과 사악도 있었고, 이들 음악은 오례의(五禮儀)에 속한 의례에 수반되었다. 연례에서는 정재가 연행되었고 그 반주음악으로 향악 또는 당악이 쓰였다. 대성아악은 주로 제례에 쓰였다.
고려 시대 궁중음악 즉, 고려 속요, 중국의 아악과 당악(사악) 중 일부 악곡은 조선조에 전승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변화가 생겼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음악의 선율에 악장(樂章)을 새로 지어 부르는 등 부분적으로 고려 음악을 차용(借用)하다가, 세종(世宗)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세종은 고려시대 이래 존재한 아악을 개정하여 한국식 아악으로 새롭게 정비하였고, 〈여민락(與民樂)〉,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 등 새로운 악곡을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등의 의례서 규범을 따라, 의례의 성격과 격(格)에 맞게 음악을 사용하였다. 음악을 사용하는[用樂] 상세한 절차와 악기, 의물(儀物), 무구(舞具), 관복(冠服) 등에 관한 내용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집대성되었다.
조선 후기 궁중음악에서는 악곡 수 감소, 악곡의 선율과 리듬 변화, 악대(樂隊)의 악기편성 변화, 성악곡의 기악곡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궁중음악 창작이 부진했던 조선후기에 궁중음악 악곡 수가 줄어든 것은 이 시기 궁중음악 전반의 축소를 더욱 심화시켰다. 또한 조선 전기까지 궁중음악 악기 편성은 관현합주(管絃合奏)가 기본이었고 관악합주 형태가 없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관악합주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 세종 때 새로 만든 〈정대업〉과 〈보태평〉은 세조(世祖) 때 정비한 《종묘제례악》 악곡으로 전승되었고, 《봉래의》정재의 한 곡이었던 〈여민락〉이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음악은 대한제국 시기에도 전승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왕실 의례가 폐지되면서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및 일부 연례악이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를 통해 명맥을 이었다. 이 시기 궁중음악은 의례에 수반되는 기능성을 거의 상실하고, 이왕직 이왕직아악부원들의 기량 향상용 내부 음악회인 이습회(肄習會) 같은 자리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초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궁중음악 악보, 노랫말, 절차 등은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 『세조실록악보(世祖實錄樂譜)』, 『악학궤범』,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악장가사(樂章歌詞)』, 『대악후보(大樂後譜)』, 『시용무보(時用舞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속악원보(俗樂源譜)』, 『이왕직아악부악보(李王職雅樂部樂譜)』 등의 관찬(官撰) 악보․무보․가사집․악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궁중음악은 현재 국립국악원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악대와 악기 편성 조선시대 궁중 의례에서 연주를 담당한 궁중 악대는 크게 제례에 쓰이는 악대와 연례에 쓰이는 악대로 구분된다. 제례의 악대는 당상(堂上)에 배치하는 악대와, 당하(堂下)에 배치하는 두 악대가 담당하였다. 현재는 제례악에만 당상과 당하 악대의 구분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제례뿐 아니라 연례에서도 이 두 악대를 사용했다. 연례에서 정재를 출 때에는 당상의 악대가 반주음악을 연주하였는데, 현재 정재 반주음악 악기편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연례악을 연주하는 가장 규모가 큰 악대는 전정헌가(殿庭軒架)이며, 등가와 전정헌가 외에 전정고취(殿庭鼓吹)와 전후고취(殿後鼓吹), 이동식 악대들인 전부고취(前部鼓吹)와 후부고취(後部鼓吹) 등이 있었다. 이들 악대의 편성은 『국조오례의』와『악학궤범』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관현맹인(管絃盲人)과 여기(女妓) 등도 음악 연주에 동원되었고, 필요에 따라 궐 밖의 군영(軍營) 악대들인 취고수(吹鼓手)와 세악수(細樂手)의 음악도 사용하였다. 현재 궁중 군례악(軍禮樂)으로 소개되는 대취타(大吹打)는 취고수와 관련있다.
○음악 형식, 선법 및 음계, 장단 궁중음악의 형식은 악곡에 따라 차이가 있다. 송 사악은 환두환입(換頭還入)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향악은 특정한 형식이 없다. 궁중음악의 음계와 선법은 음악의 계통 및 갈래에 따라 다르다. 아악 계통의 음악인 《사직제례악(文廟祭禮樂)》은 궁(宮:C), 상(商:D), 각(角:E), 변치(變徵:F#), 치(徵:G), 우(羽:A), 변궁(變宮:B)의 중국식 7음음계이며, 궁조(宮調)·상조(商調)·각조(角調)·치조(徵調)·우조(羽調)의 다섯 가지 선법이 있다. 중국계 속악인 당악은 7음 또는 6음 음계이나 조선 후기를 거치며 많이 향악화하였다. 향악 계통의 음악인 종묘제례악에는 평조(平調)와 계면조(界面調)의 두 선법이 쓰인다. 두 선법 모두 본래는 5음음계였으나, 계면조에 조선 후기 무렵 4음음계로 변하였다. 현행 종묘제례악 중 계면조 11곡에는 변화형 4음음계로 된 것, 계면조 본래의 선법 구성음이 아닌 음이 쓰이면서 불분명한 형태로 변한 것도 있다. 궁중음악의 장단은 크게 일정한 장단 형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오늘날 연주되는 악곡의 일정한 장단 형태로는 20박 장단, 12박 장단, 10박 장단 등이 있다. 그러나 《종묘제례악》의 〈보태평〉․〈정대업〉, 〈여민락〉 계통 음악 중 〈여민락만(與民樂慢)〉․〈여민락령(與民樂令)〉․〈해령(解令〉등은 일정한 장단이 없는 악곡이다.
개별 악곡의 ‘노랫말’ 항목 참조
궁중음악은 감상용 음악이 아니라 주로 의례에 수반된 음악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의례의 성격과 격에 따라 음악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러한 기능을 잃고 감상용 음악으로 변화하였다. 현재 전승되는 궁중음악에는 고려시대부터 전래하거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악곡이 주류를 이루며,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외에 중국에서 전래한 아악이나 송 사악까지 포함된다. 중국에서 전래한 음악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 음악의 요소가 점차 엷어지고 향악화되었다.
종묘제례악: 국가무형문화재(1964) 종묘제례: 국가무형문화재(1975)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2001)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2008) 석전대제(문묘제례악 포함): 국가무형문화재(1986)
『대악후보』 『세조실록악보』 『세종실록악보』 『속악원보』 『시용무보』 『시용향악보』 『악장가사』 『악학궤범』 『이왕직아악부악보』 『정재무도홀기』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1. 남상숙, 『궁중음악의 음악학적 연구』, 전통예술원, 2007. 송지원,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추수밭, 2010. 이재숙 외,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임미선,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의 사적 전개』, 민속원, 2011.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