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음족파(梵音族派)
1748년 대휘가 편찬한 조선시대 호남지역에 전승된 범패 어산의 족보
범패는 불교에서 법회 등을 봉행할 때 경전ㆍ가사 등을 염송하는 독특한 음조 소리[범음]로, 높은 경지에 오른 이를 어산(魚山)이라 하며, 어산의 전승 족보를 범음종보라 한다. 이 범음종보는 18세기 중반 장흥 보림사에서 어산 대휘(大輝)가 정리한 판본으로, 인도ㆍ중국의 범패가 호남지역에 전승된 조선 초기 이래 당대까지 어산 계보와 그 제자를 기록한 내용이다.
범패는 중국의 진사왕 조식이 어산(魚山)에서 노닐 때 하늘에서 울리는 특이한 맑고 높이 올라가며 애잔한 소리를 듣고 그것을 본받아 만들었다고 『불조통재(佛祖通載)』에서 언급하였으며, 우리나라에는 9세기 초반 진감 국사(眞鑑國師)가 당나라에서 배워와서 지리산 옥천사(지금의 쌍계사)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널리 퍼졌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이어져 왔으나 구체적인 전승 내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18세기 초반 장흥 보림사의 어산 대휘가 예전과 오늘날의 잃어버린 것을 수습해서 소목(昭穆)의 본분을 밝혀 범음족파라 하며 1747년 용암 증숙의 서를 받고, 또 다음 해인 1748년 범음종보라는 이름으로 연담 유일의 서문을 거듭 실어 발행한 범패 어산의 족보와 당시 어산들의 제자와 그 활동 지역을 밝혀놓은 보책(譜冊)인데 그 원본은 실전(失傳)된 것으로 보인다.
범음종보는 1748년 장흥 보림사 어산 대휘가 보림사에서 편찬한 어산의 족보인데 그 원본이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내용은 원본을 옮겨 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8)의 하편 「금마인아선범패성(金馬人雅善梵唄聲)」에 거의 전부가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고, 타까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이조불교(李朝佛敎)』(1929)의 제3편 제6장 범패원류에도 그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두 역사서에 실린 것을 토대로 『범음종보』의 구성과 내용은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금마인아선범패성(金馬人雅善梵唄聲)」에 의하면 호남의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에 판본이 있으며, 조선 근세 범패의 원류가 다 여기에 있다고 하며 일목요연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맨 앞에는 용암 증숙(龍巖增肅)의 「범음족파서」가 있고, 이어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범음종보중서」, 「입규(立規)」 네 조문에 이어 곧바로 제1세 사조 모범국융(模梵國融)을 필두로 제2세 응준(應俊), 제3세 혜운(惠雲), 제4세 천휘(天輝), 제5세 연청(演淸), 제6세 상황(尙還), 제7세 설호(雪湖), 제8세 법민(法敏), 제9세 혜감(慧鑑)까지의 족보를 밝히고 있다. 이어 근대 그 활동 업적이 남겨진 대휘의 노사(老師) 격인 8세 운계당 법민(法敏)은 서산의 선법까지도 이었음을 밝혀놓았다. 9세 혜감의 법제자, 곧 10세라고 할 수 있는 징광사 순영(狥暎)과 그의 제자 유민(有敏)과 유평(有平)이 있다고 하며, 제9세 혜감의 제자 대휘 등 14인의 사찰과 이름을 적고 있다. 『범음종보』에 의하면 어산 족보로 10세에 해당하는 혜감의 제자에는 법제자 순영 포함 대휘(大輝), 채청(采淸), 찬호(贊浩), 성각(性覺), 축찰(竺察), 이진(怡眞), 풍식(豊湜), 시명(始明), 체운(體雲), 융학(融學), 재방(再芳), 연기(演機), 각선(覺禪), 도인(道認) 등 15인이 보인다. 또 그들의 제자, 곧 11세의 어산(魚山)으로 대휘의 제자 20인, 각선(覺禪)의 제자 16인, 시명과 연기의 제자 각 1인을 포함하여 38인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조선불교통사』에는 옮기면서 당대와 연결하기 위해 12세 어산 반열이라고 볼 수 있는 화엄사 각선의 제자 영관의 후세인 덕홍→취봉오환→급암정오→긍암장로→포월영신(抱月永信)까지의 종보를 원문처럼 삽입해놓고 있는데 이는 당대에까지 알려진 어산 포월영신이 가장 멀리 범패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조선불교통사』에는 혜감의 제자 대휘와 각선의 제자질과 시명과 연기의 제자를 밝히고 있으나 『이조불교』에는 징광사 이진과 풍식, 대광사 도인의 제자 등 혜감의 제자 7인이 활동하는 사찰과 그 소재지를 밝혀놓았다. 그러나 어산 족보상 11세에 해당하는 어산의 이름은 밝혀놓지 않았다. 두 권의 역사서에서 전하는 어산의 이름 자의 차이가 있는데 『조선불교통사』에는 어산 4세를 대휘(大輝)라고 하고 있으나 『이조불교』에는 천휘(天輝)라고 하고 있다. 『조선불교통사』에는 각선을 각휘(覺輝)와 각선(覺禪)이라고 하고 있고, 정림사(定林寺) 대휘라고 하고 있는데, 제4세는 천휘, 10세는 각선이라고 이해해야 하고 정림사는 보림사(寶林寺)의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또 두 편의 서문을 ‘범음족파서’, ‘범음종보서’라고 하고 있는데, 두 번째 연담 유일의 서문에 의하면 1747년 대휘가 시작한 이 간행 사업은 그의 제자 법천사 치한(致翰)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서문은 범패가 세상을 교화하는 역할을 하며 천년이 넘도록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그 분파가 많으나 근원은 하나라는 사실 때문에 종보를 지었다면서, 범패를 익힌 8세 어산 법민은 심학(心學)을 닦아 선교의 일방종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또 족보 명단 앞에 네 조목의 「입규」를 붙이고 있는데, “첫째, 은사의 종지를 받들어 섬김은 효성과 공경을 다해야 한다. 둘째 같은 종파는 우애가 화창해야 한다. 셋째 같은 바람이 멀리서 불고 가까이서 부는 것은 지극히 관대하고 후덕해야 한다. 넷째 몸과 마음을 재계함을 자비로써 작법해야 한다.”이다. 이것은 범음족파서에서 밝히고 있는 “조사와 법손이 서로 전하는 원류를 모르고” 서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스승 아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나타난 이후에 남북으로 세력이 나누어져 서로 나그네 보듯이 한다”라고 하는데 그 한 사람은 알 수 없으나 당대의 실제 어산계의 양상으로 보인다. 범음종보에 등장하는 어산들은 주로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것은 남북으로 나눠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북쪽의 어산들이 달리 활동하게 되었다고 읽히나 이곳에서는 그 내막을 확인할 수 없다. 『조선불교통사』나 『이조불교』는 단순히 범음종보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범패의 원류를 밝히거나 현재 범패의 양상을 증명하기 위해서일 것이나 현재로서는 『범음종보』본문의 정확한 모습을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범음종보』의 판각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현실이지만 『조선불교통사』나 『이조불교』에 옮겨진 것을 놓고 볼 때 대략 1천 백여 자에서 1천 300자가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일반적인 고서 판각 기준으로 보면 40면 20장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음종보는 원본이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 초기부터 대략 3백여 년간 한국범패의 발상지 쌍계사를 위시해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범패 어산의 족보를 밝히고 있어, 다른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한 한국불교 범패 어산의 계통을 다룬 가장 의미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향후 원본이 발견되면 더 자세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나, 『조선불교통사』나 『이조불교』에서 전하는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寶蓮閣』, 1929/1971.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下編』, 『國書刊行會』, 1918.
이성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