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가(劇歌), 창극조, 타령, 잡가
소리꾼이 긴 이야기를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연행하는 우리 전통공연예술
판소리는 조선 후기 숙종-영조 무렵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연행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공연예술이다. 소리꾼 한 명과 고수 한 명이 긴 이야기를 엮어 부르는 형식으로 현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바탕이 전통 판소리로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창작 판소리도 꾸준히 창작되고 있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긴 역사 동안 이야기와 창법, 장단, 선율, 유파 등의 변화를 통해 예술적 발전을 이루어 오고 있다.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 중 ‘서사무가 기원설’, ‘강창 기원설’, ‘광대소학지희 기원설’, ‘창우집단 광대소리 기원설’ 등이 대표적이다. 서사무가 기원설은 남도지역의 서사무가에 나타나는 창과 아니리의 교체·반복과 육자배기토리의 음악 등이 판소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강창(講唱) 기원설은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는 강창사, 강독사 같은 전문인들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 기원설은 연희를 담당하던 광대들의 놀음 중에 재담을 중심으로 한 희극적인 공연이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창우(倡優)집단 광대소리 기원설은 광대 중에서도 특히 소리를 위주로 하는 전문적인 광대집단에 의해 판소리가 발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판소리의 개념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연행하는 우리의 전통공연예술이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에 ‘소리’가 더해진 말로 ‘판’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자리’를 뜻한다. 따라서 판소리는 ‘어떠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성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판소리는 특정 음악 장르로 발전하면서 《춘향가》나 《심청가》 등 긴 이야기를 독창적인 창법으로 구사하되, 창과 아니리를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공연양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판소리는 이야기 속의 희노애락과 장면, 때로는 사물의 모습과 변화까지도 모두 소리를 통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소리꾼의 노력과 경험인 ‘공력’이 필요하다. 또한 공력이 쌓여 목소리로 구사하는 최고의 경지를 ‘득음’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예술적 기량을 요구한다. 따라서 판소리는 전문 가창자에 의해 오랜 기간의 공력과 득음을 바탕으로 불려진 공연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판소리는 사설과 음악, 극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종합예술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 판소리의 구성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 청중이 판에서 벌이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소리꾼은 긴 이야기를 아니리와 창을 통해 청중들에게 전달한다. 초기 판소리에서는 재담 즉 아니리 부분이 비중있게 다루어져,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거나 청중들과 즉흥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음악적인 부분이 다듬어지고 고도의 음악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판소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의 판소리는 음악적인 짜임이나 목의 기교 등이 매우 정교하게 발달하였고, 이에 따른 유파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판소리는 음악적인 면에서 ‘이면’을 그리는 미학을 중시하는데, 이는 사실에 부합하는 음악적 운용을 의미한다.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일곱 개의 장단을 운용하며 그 위에 선율을 만들어 간다. 장단은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가 사용된다. 악조로는 우조, 평조, 계면조 등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악조와 선법, 선율, 장단, 사설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소리꾼은 판소리의 이면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고수는 기본적으로 반주의 기능을 담당한다. 즉흥적이고 때로는 유동적인 판소리를 반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리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고수의 반주 기량에 따라 소리꾼은 힘을 얻기도 하고, 소리를 그르치기도 한다. 한편 고수는 때로는 극중 인물이 되어 상대역이 되거나, 청중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화의 장면에서 소리꾼은 고수를 바라보거나 가리키며 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때 고수는 상대역으로서 응수하기도 하는 것이다. 청중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추임새를 통해 ‘잘한다’라거나 ‘그렇지’ 등 응원과 공감을 보내며 소리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판소리의 청중은 소리꾼과 고수의 공연을 감상하는 역할이지만 판소리의 공연을 완성시키는 주체자로 참여한다고 할 수 있다. 청중은 판소리가 연행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소리할 대목을 요구하거나, 직설적인 공감을 추임새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판소리 공연의 수준이나 내용에 대해 비평적 표현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리판에서는 청중의 호응과 추임새의 여하에 따라 판의 완성도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 판소리의 역사 판소리는 17~18세기 중반까지 영산이나 잡가, 타령 등으로 불리던 단순한 수준에서 18세기 후반, 새로운 장단과 성음, 창법, 기교, 더늠의 개발을 통해 예술성을 획득하면서 전 계층의 호응을 얻었고, 명창을 배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명창은 하한담(?~?)과 최선달(崔禮雲, 1726~1805)로부터 시작되어 권삼득(權三得, 1771~1841)대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이 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고수관(高壽寬, ?~?) 명창도 기록에 등장하였는데, 고수관은 당대 문인이었던 신위(申偉)와의 깊은 교유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권삼득의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이나 고수관의 〈자진사랑가〉 등은 이들로부터 비롯된 가장 오래된 더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18세기 중반은 판소리가 예술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이렇게 명창의 등장과 활약 그리고 양반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을 넘어 점차 전국화 되었다. 그리고 판소리는 당대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흡수하면서 향유층을 넓혀 나갔다.
조선 후기에는 궁중의 나례희나 산대희 등이 있어서 전국의 광대들이 상경하여 실력을 겨루었으며, 과거 급제자 행사인 은영연, 영친의, 문희연 등 여러 행사에 판소리 광대가 동원되면서 명창의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명창인 최선달이 ‘가선대부’ 벼슬을 받은 바처럼, 어전에서 판소리를 부른 명창들이 명예직이나마 벼슬을 받는 사례도 늘어갔다. 판소리 명창들은 대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서 많이 배출되었는데, 19세기 전기에는 경기ㆍ충청 출신 명창들이 많이 활약했다.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정춘풍, 김제철, 황해천 등이 그들이다. 19세기 전기 송흥록은 전라로 이주하여 판소리의 통합을 이루며 유파를 발전시켜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받았다. 19세기 후반에는 박만순, 이날치, 송우룡, 정창업, 김세종, 장재백, 김창록, 김찬업 등 많은 명창들이 호남에서 등장하면서 판소리는 큰 전승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 초 근대에 이르면 경부선 철도 개통과 맞물려 경상도 지역의 명창들이 대거 서울로 상경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근대까지 경상도나 이북에서도 판소리의 향유층이 많았으며, 일제강점기까지 많은 명창들이 전국적인 포장공연을 지속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이후에 판소리는 점차 신식 공연에 밀려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때 권번을 중심으로 여성 명창들이 대거 배출되었으며, 대구나 선산, 김해, 진주 등에서도 많은 명창들이 탄생하였다. 유성기음반이 보급되던 20세기 전반기에는 명창들이 음반을 취입하여 감상할 수 있게 되면서 점차 현장성보다는 음악성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 5명창인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이 타계한 이후 판소리는 여성 국극과 창극의 길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1964년 무형문화유산 제도가 생김으로써 1세대 무형문화유산의 보유자가 지정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판소리 전승의 통로가 확보되었다. 현대의 판소리는 다섯 바탕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위주로 전승되며, 한편으로 창극과 창작판소리 등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 판소리의 작품과 내용 판소리의 레파토리는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1843)에 따르면 다섯 바탕 외에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왈짜타령〉, 〈가짜신선타령〉, 의 열두 바탕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중 일곱 바탕은 창을 잃고 기록물로만 남아있으며, 〈가짜신선타령〉은 기록본도 아직 찾을 수 없다. 1940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열두 바탕 중 〈가짜신선타령〉 대신 〈숙영낭자전〉으로 바뀌어 있다. 현재 전승되는 다섯 바탕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춘향가》는 기생 딸 춘향이가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사랑하다가 이별하게 되는데,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부하며 절개를 지키다 어사로 내려온 이몽룡과 재회하고 결연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청가》는 아버지 눈을 띄우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간 심청이가, 용궁에서 다시 살아나와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고, 결국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궁가》는 병든 남해 용왕이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별주부를 세상에 보내 토끼를 유인하여 오게 되지만, 토끼는 거짓말로 용왕을 속이고 다시 살아 나간다는 내용이다. 《흥보가》는 악한 형 놀보에게 쫓겨난 동생 흥보가 가난으로 고생을 하다가 제비다리를 고쳐 준 대가로 박씨를 받고, 그 박 속에서 나온 쌀과 비단, 집으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놀보가 이를 따라 하다가 결국 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적벽가》는 소설 『삼국지연의』 중 〈삼고초려〉와 〈박망파 전투〉,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하되, 군사들의 설움과 원망, 애환을 새롭게 담고, 조조가 관우로부터 살아 도망하게 되는 내용까지를 담았다. 이러한 판소리 작품들은 표면적으로는 충(忠), 효(孝), 열(烈), 우애(友愛) 등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조선 후기 비판적인 서민정신을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판소리의 유파와 명창 현재 판소리 유파는 크게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로 구분할 수 있다. 유파는 지역적, 음악적 특성과 사승관계를 중심으로 구별된다. 중고제는 초기 판소리가 경기, 충청지역에서 발달되었던 바, 고제 소리를 이어받은 유파라 할 수 있으며 염계달(廉季達, ?~?)과 김성옥(金成玉, 1795~1830 추정)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음악적으로는 평우조를 중심으로 하여 담백하고 꿋꿋하며 독서성이나 정가적 발성을 특징으로 한다. 동편제는 송흥록(宋興祿, 1800년 경~1863 추정)으로부터 이어진 소리를 일컬으며, 우조를 중심으로 남성적인 창법으로 웅장하고 호방하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서편제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으로부터 시작되어 후대에 강산제의 개발로 이어졌다. 음악적으로는 기교가 세밀하게 발달하고 계면조가 중심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후대로 오면서 판소리 명창들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개화기 이후에는 서울로 명창들이 다수 상경하기도 하였다. 많은 명창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유파를 가리지 않고 여러 스승들에게 두루 배우기도 하였다. 근대 5명창인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김창환, 정정렬 등은 조선성악연구회 등을 창립하여 많은 제자들을 육성하였고, 창극 활동을 하며 여러 유파를 넘나드는 교류를 하였다. 근대 이후로는 지역적 구분보다는 가문이나 명창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전승 계보가 확립되었다. 현대 판소리에서는 정응민제(보성소리), 김연수제(동초제), 김소희제(만정제), 박록주제, 박초월제(미산제), 박봉술제, 박동진제 등 근대 명창을 중심으로 새롭게 확립한 유파의 분파가 이루어졌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긴 이야기를 북 장단에 맞추어 연창하는 구비전승 예술이다. 소리꾼은 고도로 발달된 음악적 기량을 바탕으로 짧게는 3시간부터 길게는 8시간 이상의 완창 판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학습이 요구되는 공연예술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판소리는 변화하는 시대상과 근대적 정신을 메시지로 담아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즐기며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판소리는 3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다듬어지고 불리어 오면서 생생한 언어적 자산과 다양한 음악적 기량을 전승하고 있다. 따라서 판소리는 우리 민족이 어떠한 방식으로 공연예술을 즐기고 만들어 나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판소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서와 태도, 음악적 자질을 파악할 수 있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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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