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고위층 사대부가 편복 위에 착용하던 말총을 엮어 만든 관모
조선시대 사대부와 유생들이 집안에서 착용하던 관모 중 하나로 산(山)자 모양의 뿔이 단층 또는 2단, 3단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으며, 단에 따라 2층관, 3층관이라 한다. 조선 후기까지 애용되었던 학자다운 관모라 할 수 있다.
정자관은 문헌에서 주로 조선 말엽의 기록 중에 보이며 착용 모습도 조선 말기 초상화와 개화기 때의 사진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다른 관모들에 비해 비교적 후대에 착용하기 시작한 관모이다.
정자(程子)란 북송(北宋)의 유학자인 명도 정호(明道 程顥, 1032~1085)와 이천 정이(伊川 程頤, 1033~1107) 형제를 가리키는데, 정자관이라는 관모명은 정자가 쓴 관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삼재도회(三才圖會)』 「인물 7권」에 등장하는 정호와 정이 도상(圖像)에는 동파건을 착용하고 있으며 그 형태가 정자관과는 다르다. 조선에서 통용되는 정자관과 동파건은 그 형태가 유사하여 서로 비교되었는데 문헌 기록 중에는 도상을 모방하여 정자관을 제작하였다는 내용들을 볼 수 있다.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우담집(愚潭集)』 10권에는 정시한이 「군신도상(君臣圖像)」에 따라 정자관을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유희문(柳徽文, 1773-1827)의 『호고와집(好古窩集)』에 따르면 정자관은 도상을 통해 그 모양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모방하고 있는데, 전해지는 이름은 정자관이지만 이는 송나라 때의 야복건(野服巾)으로 정자가 평상시에 쓴 관은 아니지만, 이를 정자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로 미루어 정자관은 조선 후기에 군신도상, 삼재도회 등에 그려진 정자가 쓰고 있는 관모의 모방으로 시작하였다가 이후 변화과정에서 생긴 조선 특유의 관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이채는 네모진 이중 관모를 착용한 모습으로 그 위에는 ‘관은 정자관을 쓰고 옷은 문공(주자)의 심의를 입고 있다’라고 씌워있다. 이를 통해 18세기 말까지는 정자관과 동파관이 동일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각종 초상화나 흑백 사진 및 현존하는 유물의 정자관은 네모진 정자관과는 달리 산처럼 뾰족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지금 형태의 정자관은 19세기 말에 고위층 관료를 중심으로 유행하여 신분과 계층을 상징하며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895년에 내려진 단발령으로 인해 정자관의 수요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자관을 제작하는 기술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1980년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7호 탕건장을 지정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와 유생들이 집 안에서 착용하던 관모 중 하나이다. 말총을 엮어 만든 관의 아랫부분에는 검은 면포(綿布)로 3mm 정도의 선을 두르고, 관의 앞뒤, 중심 및 층의 가장자리는 말총을 여러 줄 대어 징금수로 고정했다. 산(山)자 모양으로 단층 또는 높이와 크기를 다르게 한 여러 단을 겹쳐 2단, 3단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으며 단에 따라 2층관, 3층관이라고 하였다. 윗부분은 터져 있어 착용하지 않을 때는 납작하게 접을 수 있다. 외장은 내장보다 낮으나 좌우로 더 벌어진 모양새로 크게 벌어진 모양으로 착용자의 위용을 나타내며, 2층관은 높이가 약 20cm, 3층관은 약 25cm 정도로 그 높이에 따라 착용자의 위상을 표현하였다. 정자관은 조선 후기까지 널리 애용되던 학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관이라 할 수 있다.
정자관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집안에서 편복 차림 위에 착용하던 관모 중 하나이다. 조선의 고위층 관료들이 자신들의 신분과 계층을 상징하기 위해 봉우리가 뾰족한 삼산관(三山冠) 형태로 만들었다. 정자관은 북송의 유학자 이정 형제가 착용하던 모자에서 유래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애호하던 관모이다. 비록 시작은 중국에서 유래하였지만, 말총의 투명한 성질을 활용해 탕건을 만들어 쓰고 그 위에 정자관을 겹쳐 쓴 것은 조선의 독자적인 방법이었다. 또한 단층의 정자관보다 상하 2층으로 중첩된 정자관을 애용한 것도 조선만의 특징으로, 이처럼 정자관은 조선의 뛰어난 미감과 조선 장인의 창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다. 오늘날 말총으로 정자관을 만드는 기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67호 탕건장에 의해 전승되고 있으며 그 기술을 지닌 김공춘을 보유자로 인정하고 2009년에는 그의 딸인 김혜정도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삼재도회』 『우담집』 『호고와집』 강순제 외, 『한국 복식 사전』, 민속원, 2015.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의생활』, 2017.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도감 의생활』, 2005.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관모와 수식』, 단국대학교출판부, 1993. 조효순, 『한국복식풍속사연구』, 일지사, 1989. 이주영, 「조선후기 정자관의 용도와 형태」, 『한국복식학회』 68/5, 2018
장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