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낮은 무인 등이 사용한 전립을 속칭하여 이르는 말 또는 농악패의 잽이들이 쓰는 모자
전립은 원래 호족계통의 쓰개로 짐승의 털을 다져 만들었으며 벙거지는 벙테기라고도 했는데 이러한 용어는 북방 호족으로부터 온 외래어로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형태가 원(元)대와 유사하여 고려때 원과 교류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전립에 대한 기록은『고려사(高麗史)』1387년(우왕 13)에 동서반(東西班) 7품 이하는 전모에 사대를 착용하도록 한다고 언급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기록인『연려실기술별집(燃藜室記述別集)』에 의하면 1618년(광해군 10)에 명나라 요청으로 요동으로 들어가 청나라와 전쟁한 후로부터 나라 안에 모전립(毛氈笠)의 착용이 유행하게 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후에는 사대부도 썼으며, 무인들은 대관(大官)이라도 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는 옛날에는 군사들이 썼기에 이를 전립이라 했으며 일반 백성은 평량자를 썼는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사대부까지 착용하여 군민(君民) 통용의 입모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벙거지는 조잡한 털을 모아 다져서 거칠게 만든 전립으로 검은색 짐승의 털을 다져서 담을 만들고 그것을 골에 넣어서 복발형(覆鉢形)의 둥근 모옥(帽屋)에 양태를 달고 있는 형태로 패랭이(평량자)와 비슷하다. 제주도에서는 털벌립, 털벙것이라고도 하였으며 조선조 궁중 또는 반가의 군노(軍奴), 전령, 사대부가의 하인 등이 착용하였다. 모정은 높고 둥글며 장식이 없고 정자에 상모만 달거나 상모 없이 끈을 매달았다.
이에 반해 전립 중에서 고급 무관이 쓰는 것은 ‘안올림벙거지’라 하고, 품질이 좋은 모(毛)로 만든 것으로 양태 안쪽에는 남색 운문단(藍色 雲紋緞)으로 안을 올린 형태이다. 둥근 모자집 꼭대기에 도금한 것, 금·은·말총·나무 같은 직급에 따라 다른 재료를 사용한 정자를 장식하고, 여기에 공작미(孔雀尾), 상모(象毛), 말총(槊毛)를 달았다. 끈으로 밀화영(蜜花纓)을 사용하였으나 점차 신분 상징용 장식으로 변화하였고 속끈을 따로 달았다.
농악패의 잽이들이 쓰는 모자도 벙거지 또는 상모, 돌모라고 하였다. 돌모는 상모가 돌아가는 기능을 뜻하며 농악에서는 무관과 달리 공작미를 달지 않고, 종이나 깃털로 상모를 길게 만들어 달고 끈은 무명을 사용하였다.
벙거지는 벙테기라고도 했는데 이러한 용어는 북방 호족으로부터 온 외래어이다. 본래 군사들이 썼기에 이를 전립이라 하였고 일반 백성은 평량자를 썼는데, 병자·정묘 호란 이후로 사대부까지 착용하여 군민(君民) 통용의 입모가 되었다. 신분에 따라 전립의 소재, 장식과 명칭이 달랐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의생활 편 ㄱ~ㅂ』, 국립민속박물관, 2017. 강순제 외,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도감 : 의생활』, 민속원, 2005. 김성혜, 「갖춰 입는 군복, 구군복」, 『육군박물관 소장 군사복식』, 2012. 李輔亨, 「(氈笠), (農樂), (象毛)」,『韓國民俗學』29/1, 1997.
장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