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의(僧衣), 승려복(僧侶服), 법의(法衣), 법복(法服), 불복(佛服)
승려가 일습으로 갖춰 입는 의복
승복은 가사(袈裟), 장삼(長衫)으로 구성된다. 가사는 불교가 시작된 인도의 복식으로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가사는 크고 작은 직사각형 천을 연결하여 긴 장방형을 이룬 형태이며 천 조각의 수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가사의 종류와 구성이 달라진다. 착의법은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가사의 종류는 첩상가사(貼相袈裟), 금란가사(金襴袈裟), 납가사(衲袈裟), 홍가사(紅袈裟), 황가사(黃袈裟) 등이 있었고, 자색, 홍색, 녹색, 황색, 아청색 등의 색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홍가사가 대표적인 승복 가사가 되었다. 가사의 소재는 문직(紋織) 비단을 비롯해 주(紬), 라(羅), 세마포(細麻布), 세저포(細苧布) 등의 소재가 쓰였다. 문양으로 일월(日月), 삼족오(三足烏), 천(天), 왕(王) 등 그림과 한자를 수놓아 장식하였다. 가사는 영자(纓子)로 여며 묶는다.
장삼은 가사만으로 신체를 가릴 수도, 추위를 견딜 수도 없어 자연스럽게 생겨난 밑받침 승복이다. 불교 전래 초기에는 간편한 상의인 편삼(偏衫)과 치마인 니원승(泥洹僧)을 입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중기까지 편삼과 니원승을 연결한 포(袍) 형태의 직철(直綴)을 입었다. 승복 장삼은 흑색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점차 흑색 장삼은 사라지고 청색, 회색, 갈색, 녹색 등으로 색상이 다양해졌다. 조선후기 승복 장삼은 청색이 많았다. 임진왜란 이후 직철 형태의 장삼은 중치막(中致莫), 도포(道袍), 두루마기[周衣] 등 전통복식과 혼용되었다.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는 가사를 승복의 기본으로 삼았다. 가사의 유래는 네 가지 견해가 전한다. 첫째,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할 당시 사냥꾼과 바꿔 입은 낡은 옷 가사야(Kasaya)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갈색이라는 뜻을 지닌 가사야는 세속의 욕망과 집착을 끊고 가장 간편한 옷차림으로 불교에 정진한다는 의미이다. 둘째, 가사는 인도의 다양한 종교에서 불교를 구별하기 위한 복식 규정으로 출현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인도의 사리(Sari)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넷쩨, 승려들은 민중에게 교화하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는 자로 많은 옷을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가사를 만들었다. 『사분율(四分律)』에 의하면, 초저녁에 노지에 앉아 있을 때 옷을 하나 입고, 한밤중에 한기를 느껴 두 번째 옷을 입고, 새벽에 찬기를 느껴 세 번째 옷을 입었다. 승려들은 세 벌의 가사 즉 삼의(三衣)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중국에 전래 된 가사는 상체를 가릴 수 없었고 기후와 예법에 맞지 않아 직철이라는 옷을 승복으로 입게 되었다. 직철은 상의 편삼과 하의 니원승을 연결하여 만든 포이다. 편삼은 원래 인도에서도 가사를 착용하였을 때 가슴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속옷으로 승기지(僧祇支)라는 것을 착용하였다. 승기지는 왼쪽 어깨를 덮고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여미는데, 이를 중국에 가져와 오른쪽 어깨도 덮고 꿰매면서 편삼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니원승은 치마 형태로 장방형의 천을 허리에 둘러 입거나 허리띠로 고정하는 인도의 하의였다. 중국에서 상의 편삼과 하의 니원승을 연결하여 상의하상식(上衣下裳式)의 옷 직철이 되었다. 불교가 한국에 유입된 이후 직철은 오랜 시간을 걸쳐 고유복식 장삼으로 국속화 되었다.
승복은 승려가 입는 복식으로 승의, 승려복이라고도 하며, 불법(佛法)의 복식이라는 뜻에서 법의, 법복, 불복 등으로 불린다. 승복은 크게 가사, 장삼으로 구분된다. 불교의 전래와 함께 홍가사와 흑색 장삼을 받아들여 착용하였다. 승복 가사는 크고 작은 직사각형 천을 연결한 장방형 양식이다. 가사의 규모는 장(長), 단(短), 조(短)로 표현하는데, 길고 짧은 직사각형 천 조각을 일정하게 세로로 이어 긴 사각형을 만들고 1조로 삼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1조를 똑같이 반복하여 여러 개 만들고 옆으로 이어 하나의 큰 직사각형 가사가 완성된다. 착의법은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가사의 종류는 첩상가사, 금란가사, 납가사, 홍가사, 황가사 등이 있다. 첩상가사는 장과 단이 이어지는 사이의 옷감 제(堤), 조와 조 사이, 제와 제 사이를 잇는 옷감 엽(葉), 가사의 가장자리에 덧붙이는 옷감 란(欄), 가사에 수놓아 덧붙이는 장식물 첩(貼)을 바탕과 다른 색 천으로 만든 가사이다. 금란가사는 란에 수를 놓아 장식하거나 금직(金織) 천으로 가사의 가장자리를 두른 것을 말하며 후대 금직물로 만든 비단 가사를 모두 포함한다. 납가사는 조각천을 이어 만든 가사라는 의미이며, 홍가사, 황가사는 가사의 바탕색을 가리킨 명칭이다. 가사의 색상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등 화려한 오정색(五正色)을 피하고 색을 파괴한 괴색(壞色) 가사를 입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 불교가 번성하고 승과를 두어 승려의 법계를 분류함에 따라 첩상가사, 금란가사, 화려한 색상의 가사가 착용되었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대홍가사(大紅袈裟), 홍가사(紅袈裟), 자황첩상가사(紫黃貼相袈裟), 홍록첩상가사(紅綠貼相袈裟)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사의 소재는 원래 소용없게 된 옷, 버려진 옷 등 최소한의 재료로 기워 만들었다. 그러나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가사의 소재로 여러 종류의 비단, 세마포, 세저포 등 다양한 소재가 언급된다.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서 확인되는 가사는 홍색 바탕에 청색으로 만들어진 첩상가사이며, 신라시대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가사는 운문(雲紋)이 있는 비단 소재이다. 1700년대에 재현한 고려시대 대각국사(大覺國師, 1055~1101) 금란가사는 4장 1단 25조 대가사로 가장자리에 고급스럽게 란을 둘렀다. 가사의 문양은 조선시대 가사에서 보다 다양해졌는데 포도송서문(葡萄松鼠紋), 보문(寶紋), 팔보문(八寶紋), 모란문(牡丹紋), 운문(雲紋)이 있었다. 또한 일월, 삼족오, 천, 왕 등의 그림과 한자를 수놓아 장식하였다. 가사의 착장은 영자로 묶어 여미는 방식이다. 영자는 장식적인 측면도 고려하여 두 가지 이상의 색끈을 배치하였다. 승복 장삼은 가사 아래 입는 포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진흥왕(眞興王, 534~576)은 세상을 떠날 때 머리를 깎고 법의(法衣)를 입고 돌아갔다고 하였고, 차득공(車得公, 생몰미상)은 치의(緇衣)를 입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치의는 검은 물을 들인 승복이다. 장삼은 흑색을 기본으로 하였다.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서 첩상가사 아래 흑색 포가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흑색 장삼은 점차 사라지고 승려의 등급에 따라 청색, 회색, 갈색, 녹색 등 여러 색으로 구분하여 착용하였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국사(國師)와 삼중화상대사(三重和尙大師)는 긴 소매 편삼과 자색 치마를 착용하였고, 아사리대덕(阿闍梨大德)은 짧은 소매의 편삼과 황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 장삼은 진영(眞影)과 유물로 전하는데 백색과 녹색 두 점으로 곧은 깃, 넓은 소매의 편삼과 맞주름 치마를 연결한 직철 구조이다. 조선시대『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면주(綿紬)로 만든 장삼과 남색 비단 장삼[藍羅長衫]이 언급되어 있고 승려의 흑색 세마포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현존하는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 장삼은 곧은 깃, 넓은 소매의 직철이며, 넓은 소매 안쪽 아래에 트임이 있다. 허리선 아래에는 넓은 맞주름이 여러 개 잡혀 있다. 직철 형태가 고유복식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는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는 승복이라고 하였다. 승복 장삼은 조선시대 남자 포인 중치막, 도포, 두루마기 등으로 혼용되었다.
승복 가사와 장삼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외래문물로 전해졌지만 한국의 기후와 복식제도에 맞게 국속화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나아가 독자적인 불교적 상징과 토속적 의미를 더해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 승복은 내의로 장삼을 착용하였고, 가사를 위에 덧입는 구조이다. 가사는 승려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의복으로 가사의 규모, 색상, 소재, 문양 등에 따라 절 안에서 작업을 할 때, 예불, 독경, 청강 등 의식에 참여할 때, 궁중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나 탁발할 때 등을 구분하여 착용하였다. 또한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으로 승려의 법계가 체계화되었고 승복의 체계에 따라 가사와 장삼을 구별하였다. 조선후기에는 홍가사와 청색 장삼이 승복을 대표하게 되었다. 청색 장삼은 한국 편복포(便服袍)의 대표적인 색상과 연관되어 고유한 장삼 색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동정이 없던 직철에 흰색 동정이 달리고 칼깃, 둥근깃 등 전통복식 깃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전통복식 포의 차림새처럼 장삼에 띠를 매었다. 조선후기에 직철 형태의 장삼이 중치막, 도포, 두루마기 등 일반복식 포로 대체되었으며 현대 승복 장삼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토속신앙인 무속과 전통연희에서 불교 및 승려를 상징하는 복식으로 가사와 장삼은 고유한 양식으로 변용되고 있다.
『고종실록』 『사분율』 『삼국유사』 『선화봉사고려도경』 『세종실록』 강선정, 「조선중기 이후 가사(袈裟)의 유형과 변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김광순, 「한국불교 가사 조성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 김경숙, 안명숙, 「불교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본 가사」, 『복식』 46, 1999. 김은정, 「승복과 무복으로 착용되는 (長衫)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42/2, 2004. 박춘화, 「한국 승려 장삼에 관한 연구-근현대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임린(任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