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한삼(唐汗衫), 당저고리(唐赤古里), 장유(長襦), 당고의(唐古衣), 삼자(衫子), 협수장의(夾袖長衣), 단당의
조선시대 왕비, 왕세자비의 소례복으로 착용했고, 반가 부녀자는 대례복으로 착용한 예복이다. 형태는 소매가 좁고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옆선이 트인 긴 저고리이다.
당의는 궁중의 예복이나 평상복이었을 뿐만 아니라 궁녀들의 직무복 그리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널리 퍼져서 일반인들의 가례복 또는 혼례복 그리고 예복으로까지 사용하였다. 당의의 형태는 저고리와 비슷하며 깃, 섶, 고름, 소매, 거들지로 되어 있고, 앞뒤 길이가 저고리 길이의 약 3배(80cm 정도)이며 겨드랑이 아래에서부터 양옆이 트이고 아래도련 양끝의 코가 당코처럼 올라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길이는 저고리보다는 길이가 길고 도련이 둥글며, 소매 끝 양쪽에는 흰색 거들지가 있다. 당의는 예복으로 착용하였는데 신분에 따라 색상과 장식이 다르다. 깃의 형태도 목판깃, 반목판깃, 당코깃, 둥글래깃으로 저고리 깃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비슷하게 변화되었다. 제작방법에 따라 겹당의, 홑당의, 깎은 당한삼으로 구분된다. 왕실에서는 문안 인사나 규모가 작은 예식에 착용했다. 궁 안에서 직임을 맡은 상궁들이 업무를 볼 때 예복으로 착용했고, 관직이 있는 남편을 둔 부인이 격식을 갖추어 궁에 들어갈 때 착용하였다.
당의는 예복용으로 긴저고리에서 연유되었다. 당의는『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광해군 2년(1610년) 당의 차림으로 들어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당의는 궁중 가례 때 내명부나 외명부의 여인들이 입은 예복으로 모든 형식을 갖추어야 할 상황에 시간이 부족 할 때 급하게 입은 예복으로 착용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때부터 당의가 소례복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을 보면 당고의보다는 당저고리라는 말이 가장 많으며 주로 삼자나 협수장의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어져 왔는데 당의라고 직접적으로 사용되어진 것은 없고 주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당의의 유래는 장배자를 인용하여 장수를 만들되 양군(兩裙)은 서로 가려지고 양액(兩腋)은 꿰매지 않는 것이 장유와 대략 동일하되 그보다 조금 짧다고 했다. 역대『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단자(單子)에 당의라고 기록하지 않고 모두 저고리(赤古里)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의는 속칭이었고, 삼자 혹은 저고리가 일반적인 명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의는 삼자나 저고리에서 나온 이름으로 당의는 저고리에서 당저고리, 당고의로 변화하였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당의로 명칭이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상복으로 삼자(衫子)를 입는데 이는 당의라고 하며 길이는 무릎까지 닿고 소매는 좁아 민가 중에서도 양반가에서 당의를 입었다.
또한 조선시대의「관혼상제(冠婚喪祭)」를 보면 주부의 자리는 주인의 자리와 같고, 비녀를 꽂을 사람은 쌍계(雙紒)를 하고 삼자를 입고라고 하여 가례를 할 때에도 여자들이 당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곡선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복식중의 하나로 특히 왕실에서 많이 활용되어졌는데 초반에는 신분에 따라 색상이 나뉜 것으로 보이고 금박을 하거나, 보나 흉배를 달아 신분을 구별하였다. 당의의 의미를 보면 당이라는 글자는 저고리의 양귀가 뾰족한 데서 당코라는 의미로 당코 저고리라 하는 것도 저고리 깃의 귀가 곡선으로 뾰족하게 구성되어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당의는 한복의 곡선미를 강조한 대표적인 옷이다.『규합총서(閨閤叢書)』를 보면 당의를 만드는 법에 대하여 나와 있는데 당의 길이는 1척 5촌이지만, 신부 당의는 1척 3촌으로 재료는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하여 만들었다.
일 년을 통해서 계속 착용되는 옷으로 비빈이 입는 직금 당의나 금박을 찍는 당의에서부터 민가의 예복으로 입는 민당의가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부의 당의가 따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아 민가에서 민당의를 혼례 시 신부가 입는 것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예복으로 입기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의는 왕실 및 양반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혼례복으로 입을 수 있었다. 민가에서 착용한 당의는 왕실의 당의와는 달리 소박한 형식을 지닌 것으로 민 당의를 입었으며 색상도 다양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당의는 화려한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을 구하여 입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혼례복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의는 예복으로 입었지만, 형태는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당의는 신분에 따라 색과 장식이 달랐으며, 소례복으로 궁중에서 여러 행사에 착용했으므로 형태뿐만 아니라 제작방법에도 다양하였다. 제작방법에 따라 겹당의, 홑당의가 있었다. 겹당의는 겨울철이나 봄과 가을에 착용하였으며, 초록길에 안감을 홍색으로 하고 자주색 고름을 단다. 홑당의는 여름철에 착용하였으며, 당의의 곡선을 살려서 가늘게 깨끼바느질로 제작하였다. 현재에도 연희복식으로 착용되고 있는데, 부채춤을 출 때 무용복으로, 굿에서는 무복으로 착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전통축제에서도 행사복식으로 착용한다.
『조선왕조실록』 『가례도감의궤』 『규합총서』 『사례편람』 김영숙, 『조선조말기왕조복식(朝鮮朝末期王室服飾)』, 민족문화문고간행회(民俗文化文庫刊行會), 1987.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국립민속박물관,『한국민속예술사전』, 디자인인트로, 2017. 안명숙, 『우리옷 이야기』, 예학사, 2007. 이지영, 「덕혜옹주 당의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정양숙, 「당의를 활용한 웨딩드레스 디자인」, 한양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김은정(金垠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