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背心), 등거리[背巨里]
깃, 소매, 길이 등의 형태가 다양한 남녀노소 공용의 상의(上衣)
중국 수(隋)나라에서 발생한 옷의 명칭이고, 송(宋)에서 유행하였다. 송의 주자(朱子)가 쓴 『가례(家禮)』에 여자 예복으로 수록되었고, 송대의 관직자가 관복(官服)의 받침옷으로 사용한 옷의 명칭이기도 했다. 고려말기 가례(家禮)가 유입된 이후 조선시대까지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옷에 이 명칭이 적용되었으며, 착장자도 남녀노소로 확대되었다.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착용된 배자는 민소매나 반소매, 맞길(對襟), 겨드랑이 아래의 옆선을 꿰매지 않거나 조금만 꿰매어 옆트임을 깊게 주는 등의 형태가 특징적이다.
‘배자(褙子)’라는 명칭을 갖는 옷의 사용에 관해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것은 중국 수나라이다. 오대(五代)의 마호(馬縞, ?~936)가 쓴『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의 「삼자(衫子)‧배자(褙子)」에 “수 대업(大業, 605-618) 말에 양제(煬帝)가 궁인(宮人), 관원의 어머니나 처 등이 조복(朝服)으로 입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송대에 이르러 배자는 부녀의 평상복이자 예복으로 널리 입혀졌다. 주자는 가정에서 행하는 유교식 의례를 정리해 가례를 편찬했고, 의례를 거행할 때 입을 남녀 성복(盛服)을 기록했는데, ‘여재실자(女在室者)’ 즉 혼례를 올린 여자가 입는 성복으로 배자를 제시하였다. 또 송 정대창(程大昌, 1123-1195)의 연번로(演繁露) 「배자(褙子)‧중단(中襌)」에서는 남자의 관복 착용시 겉옷 안에 받쳐입는 중단과 같은 역할로서 배자를 언급하였다. 즉 수대에 ‘배자’라는 명칭이 탄생한 이후, 송대에 이르러 남자의 받침옷 명칭에도 적용되고, 부녀의 옷에서는 평상복과 예복으로 두루 입는 보편적인 옷이 되었다. 명대에는 궁중 여자 예복의 일습(一襲: set)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 유래
조선에서 착용한 배자는 명칭의 전래와 형태의 발생 등 방면에서 보면,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송 주자의 『가례(家禮)』가 유입된 이후 이 책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는 유형이다. 둘째, 명에서 조선 왕비에게 사여한 예복의 일습에 포함된 유형이다. 셋째,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발행한 형태에 ‘배자’라는 명칭을 차용한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고려말기에 유입된 이후, 유교(儒敎)를 국가이념으로 한 조선이 개국되면서 유교식 가정의례를 수록한 『가례(家禮)』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그 안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 명칭에 대한 고민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 유학자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을 조선의 ‘몽두의(蒙頭衣)’에 해당하는 옷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조선의 ‘몽두의’라는 옷은 아직 명확한 형태가 밝혀지지 않아 추후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궁중 무희나 무녀(巫女)가 입었던 ‘황초삼’과 연관되는 옷이기도 하지만,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명에서 조선 왕비에게 사여한 예복으로 ‘대삼제 적의’가 있는데, 이 예복의 일습에 포함된 옷이다. 붉은색의 무늬가 없는 대삼(大衫)을 겉에 입고, 그 안에 입는 받침옷으로 적계문(翟雞紋)이 있는 청색 배자를 입었다. 이 여자 예복에 일습으로 포함된 배자는 ‘사규오자(四䙆襖子)’라고도 하였다.
세 번째 유형은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발행한 남녀노소 공용의 평상복 상의(上衣)에 ‘배자’라는 명칭을 차용하였다. 이 옷은 다른 옷의 위에 덧입는 웃옷이고, 상체에 입는 윗도리이다.
○ 쓰임 및 용도
위에 설명한 세 유형에 따라 예복과 평상복으로 두루 사용되었다.
○ 형태와 재료
첫 번째 유형인 송대의 배자를 조선의 몽두의로 이해한 형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재(李縡, 1680-1746)의 사례편람(四禮便覽)의 계례(笄禮)에 관한 설명에서 “색이 있는 주(紬)나 견(絹)으로 만들고, 길이는 치마와 나란하며, 깃을 마주보게 하고[對衿], 옆은 트이고, 소매배래는 둥글며, 반소매나 민소매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유형인 대삼제 적의 일습인 배자의 형태는 곧은깃 즉 직령(直領)을 오른쪽으로 여며입는 우임(右衽)이다. 깃이 따로 달려있지 않고, 도련까지 연장된 가선이 있다. 가선의 색도 길과 같은 청색이다. 옷 전체에 적계문을 원문(圓紋)으로 표현한다.
세 번째 유형인 조선의 평상복 배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주로 민소매나 반소매의 짧은 옷이다. 깃은 일반 직령(直領: 곧은 깃), 칼깃(깃 끝이 칼처럼 뾰족한 형태)의 직령, 방령(方領: 모난 깃)이 있는데, 방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방령은 깃을 모나게 한 형태이다. 일반 직령의 사례는 경기도 일영에 있던 〈양천허씨(陽川許氏, 1566~1626)묘〉에서 출토된 민소매 배자에서 확인되고, 칼깃 직령의 사례는 경기도 고양에 있던 〈정응두(丁應斗, 1508~1572)와 부인 은진송씨(恩津宋氏) 합장묘〉에서 출토된 민소매 배자에서 확인된다. 방령 배자는 그 외 대부분의 옷에서 확인된다.
여름용은 모시나 사(紗) 등 얇은 직물로 하고, 겨울용은 단(緞)이나 모직물로 겉감을 하고 안에 융(絨)을 대거나 모피를 댄 털배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털배자를 ‘털등거리’라고도 불렀다.
앞뒤 길이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앞이 뒤보다 길거나 뒤가 앞보다 긴 경우도 있다. 입을 때는 앞의 양쪽 길을 마주보게 하는 대금(對襟)인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왼쪽 길을 오른쪽 길 위에 덮어서 우임(右衽)으로 입는 경우도 있다.
우임으로 입는 경우, 양쪽 길을 깊게 여미지 않고 앞중심에서 약간만 겹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뒤 길은 펼치면 일자 형태이고, 겨드랑이 아래에 끈을 달아 앞길과 뒷길을 연결하기도 하였다. 겨드랑이 아래의 옆선은 아예 꿰매지 않고 작은 끈으로만 연결한 경우도 있고, 약간만 꿰매어 깊게 트임을 준 경우 등이 있다.
배자는 중국에서 탄생한 옷 명칭이지만, 조선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옷에 적용되어 풍부한 복식문화를 창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재(李縡), 『사례편람』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명선(名選)』중(中), 200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명선(名選)』하(下), 2005. 北京市文物局圖書資料中心,明宮冠服儀仗圖,北京燕山出版社, 2015. 마호(馬縞),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최연우(崔然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