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괘(馬褂), 마괘자(馬褂子), 마구자, 마괄, 동배자, 괘배(掛背), 반배(半褙), 덧저고리, 팔배, 덮배
마고자는 남녀노소 착용하였지만 일반적으로 남자 한복의 일습을 이루는 겉옷으로 방한용ㆍ장식용으로 착용하였다. 마고자의 형태는 깃이 없는 대금형에 단추로 여며 입으며,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착용가능한 일상용 겉옷이다.
마고자의 기원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이 1885년(고종 22) 청(淸)에서 돌아올 때 입은 마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의 『조선의 복장(朝鮮の服裝)』에서 마고자는 마괘라고도 하는데, 원래 만주인의 옷이었으나 약 40년 전 대원군이 만주 보정부에서 유거생활을 하다 귀국할 때, 이것을 착용하고 온 이래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전한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의복 중에는 깃이 여며지지 않고 맞닿는 형태의 대금형(對襟形)이 일반적이지 않아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러한 기록을 인용하며 현재에는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중국의 문헌에서 조선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대금형의 상의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출토복식에서 다양한 구성을 보이는 대금형 상의들이 발견되었다는 점, 마고자의 옛 이름으로 생각되는 괘배, 반배라는 명칭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마고자가 우리 고유의 의복 변천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지만, 현재까지도 마고자의 유래를 청의 마괘가 유입되어 변형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단 한 건의 마고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1900년(고종 37) 효종(孝宗, 1619~1659)이 심양(瀋陽)에 가 있을 때 붉은 행전[紅纏], 마고자와 여러 왕대 임금들이 쓴 고적(古跡)들이 모두 불타버리는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 중의 효종 마고자는 우리 마고자의 형태라기보다 효종이 청에서 돌아올 때 착용하고 있던 마괘로 볼 수 있으며, 당시 착용하고 왔던 청의 마괘가 고종 때까지 보관되어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마고자는 개화기 이래 근래에 이르기까지 남자 한복차림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형적인 남자 한복차림은 바지ㆍ저고리ㆍ 조끼ㆍ마고자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착용하여 일습을 이룬다. 후에 남자용 마고자를 본 따 여자도 마고자를 만들어 입게 되었으며, 방한용뿐만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착용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두루마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져, 마고자가 한복차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마고자는 저고리와 조끼 위에 덧입는 겉옷이므로 저고리보다 품ㆍ길이ㆍ화장ㆍ진동을 약간씩 크게 만든다. 저고리와 달리 V형의 목둘레에 깃과 고름이 없고, 섶은 좌우 대칭형의 합임(合袵)을 이루며, 옆솔기에 짧은 트임이 있다. 앞에 은단추나 은칠보단추, 호박단추 등을 두 개 달아 여미는데 남자는 오른쪽에 단추를 달고 여자는 왼쪽에 단추를 달아 여민다. 여자 마고자의 형태는 남자 마고자와 같으나 저고리와 같이 길이가 짧고, 섶이 없는 것도 있고 배자깃이 달린 것도 있다.
마고자의 소재는 봄ㆍ가을에는 숙고사, 국사, 자미사, 갑사 등의 얇은 견직물을 사용하고, 겨울에는 양단, 모본단 등과 같은 두꺼운 견직물을 사용한다. 보온을 위하여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기도 하고 안감으로 털을 대기도 한다.
현대의 마고자 제작방법은 보통 겉감과 안감 사이에 심지를 넣어 겹으로 만들며, 전통적인 저고리 제작방법과 동일하게 두 겹 박기 후, 네 겹 박기 과정으로 제작한다. 앞중심선에 두 개의 섶을 대칭형으로 달고 옆트임을 준다. 단추는 사슬고리를 만들어 3~4cm의 길이가 되도록 달고, 단춧고리는 안감 원단으로 만들어 안감 쪽에 부착한다.
마고자는 남자 한복 일습 중 저고리와 조끼 위에 덧입는 필수적인 옷으로, 방한용뿐만 아니라 멋을 위해서도 착용하였다. 왕ㆍ양반ㆍ서민이 착용했던 전래유물 마고자를 살펴보면 착용하는 신분은 다르지만 옷의 구성과 형태상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으며, 고종의 의복개혁을 통해 신분의 상하(上下)에 관계없이 의복이 같아졌음을 보여준다.
개항기의 사진자료에서 여자들의 마고자 착용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치마ㆍ저고리 위에 꼭 끼게 입어 장식적인 덧옷으로 착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아나 여아도 돌복이나 성장용으로 마고자를 착용하였는데 마고자에 사용하는 색은 자주색이나 연두색으로 하고 색동으로 소매를 달아 준 것을 ‘색동마고자’ 또는 ‘색동등걸이’라고 하였다.
『한국민속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마고자의 명칭이 지역에 따라 ‘덧저고리’, ‘팔배’, ‘덮배’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윤오영(尹五榮, 1907~1976)의 수필 「마고자」에 마고자의 특징, 재단법, 유래 등의 내용이 나타나 있다.
『조선왕조실록』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86. 한글 표기 (村山智順), 『한글표기(朝鮮の服裝)』, 한글표기(朝鮮總督府), 1927. 김향미, 「마고자와 한글표기(對襟形) 한글표기(上衣類)의 한글표기(相關性)에 관한 한글표기(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홍나영, 「마고자의 착용법 및 기원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41/5, 2003.
마유리(馬兪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