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삼(團杉), 원령삼(圓領衫), 단령삼(團領衫)
조선시대 여성의 예복으로 왕실에서 민가에 이르기까지 착용하였다. 형태는 맞깃으로 앞자락이 겹치지 않으며, 두리소매에 색동과 한삼이 달린 포이다
원삼은 조선시대 여자용 예복이나 민가의 혼례복으로 착용했던 포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수의의 품목이며, 연희복식에도 착용한다. 왕비의 원삼은 용이나 봉황문양을 찍었고, 공주나 민가에서 혼례복은 문자무늬나 꽃으로 문양을 하였다. 색상은 신분에 따라 구분이 있었는데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공주와 옹주는 녹원삼을 입었다. 소재는 대부분 견직물을 소재로 하였으며, 직금이나 금박을 하였다.
원삼은 조선시대 초기 단삼에서 유래된 것으로, 왕비의 상복이었던 단삼이 원삼과 명칭이 혼용되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착용되어 원삼이 되었다. 원삼은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의복제도를 수용할 즈음에 들어왔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연산군11) 비단 가격이 너무 올라 가난한 문무백관은 여자의 원삼으로 단령을 지어 입고 왕에게 문안을 드리는 행사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초기 원삼의 형태는 조선시대 후기와 달리 단령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1627년(인조 5)『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昭顯世子嘉禮都監儀軌)』에 옷감의 종류와 소요량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원삼과 단삼은 동일한 복식이며, 17세기 이후 원삼과 단삼의 명칭이 혼용되다가 원삼으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성지『눌재집(訥齋集)』에 보면 양반 부녀자들이 원삼이라는 것을 지어 입고 흉배를 달았으며 백주 대도를 활보하여도 괴이하다 여기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완성된 것은 깃이 단령이 아닌 맞깃으로 변형된다. 소매는 두리소매로 넓고 소매 끝에는 색동이 달렸다. 도련과 옆선도 곡선화 형태가 나타나며, 바느질도 둥근 맞깃을 겹치는 양식이다. 길의 안쪽 둘레에 청색의 선(線)을 둘렀는데 민가에서는 집안에 따라 홍색 선을 겉으로 두른 경우도 있다.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로 되어있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帶)를 둘러 착용하였다.
조선시대 19세기 이후에는 원삼의 길이는 무릎을 덮을 정도로 되고, 옆선에 무가 달리지 않는 대신 트임이 있다. 소매는 넓어지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 한삼(汗衫)이 있다. 옷길이는 뒷길이가 앞길이 보다 대략 30㎝ 정도 긴 것이 일반적이다. 왕비가 착용한 홍원삼은 황색 길에 소매 끝에 황색과 다홍색이나 남색으로 색동이 있고 한삼이 붙어있다.
원삼에는 대를 두르는데 대에도 황후는 용문, 비빈은 봉황문, 공주나 옹주는 화문으로 직분에 따라 구분을 두었다. 하지만 민가에서 혼례복으로 착용했던 원삼을 앞길이와 뒷길이가 같고 금박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왕실에서 착용한 궁중용 원삼은 직금이 된 견직물로 직분에 따라 화려한 금박장식과 보를 부착했다. 원삼에는 모두 홍단대를 하였고, 홍단대의 길이는 7척 정도로 앞에서 뒤로 둘러매고, 나머지는 아래로 드리웠다. 안감은 홍색을 대고 황색 안감에 가선으로 남색으로 바느질했다. 여밈은 파란 매듭단추나 보석으로 만든 단추를 달아주었다. 형태도 길이가 길고 소매가 크고 넓으며, 소매 끝에는 색동으로 너비를 좁게 하여 금직이 있는 백색한삼이 있다. 민가에서 혼례복으로 착용했던 원삼은 조선시대 공주가 착용했던 예복으로 서민들에게도 착용이 허용되어 신부의 예복이 되었다. 궁중용 원삼과 달리 형태는 유사하나 금박이나 화려한 직물을 대신하여 홑겹으로 제작하였다. 옷길이도 짧고 소매 끝에는 색동을 넓게 여러 가지 색을 넣어 화려함을 나타냈다. 현재 여자 수의의 품목으로 원삼은 수의로도 사용한다. 궁중에서 궁중 예복이나 서민의 혼례복으로뿐만 아니라 무당이 굿을 할 때 무복으로 착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후기 무복으로 착용했던 원삼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원삼의 형태는 뒷길이가 앞길이 보다 30㎝ 정도 길다. 소매 끝에는 홍색, 청색, 황색의 끝동과 한삼이 있다. 깃은 좌우 대칭으로 구성되었다. 여밈은 합임으로 옆선은 진동선 이하가 트여있어 전통복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무복으로 착용한 원삼은 현재 굿거리에서 가옥을 관장하는 가정을 지키는 주신을 상징하고 있다. 원삼에는 수식으로 족두리를 착용하나, 현재는 무당이 원삼에 화관을 착용하여 일습을 갖추고 굿을 연행한다. 현재 무복으로 착용하는 원삼은 무당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앞길과 뒷길의 길이가 같거나 많은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장식기법이 화려하게 변화되었다. 장식기법으로 앞길과 뒷길에 자수문양을 새겨 화려하다. 여기(女妓)들이 무용복으로 원삼을 착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원삼은 현재에도 연희복식으로 다양하게 착용한다.
『무당내력』 『조선왕조실록』 『눌재집』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 김은정, 『한국의 무복』, 민속원, 2004.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디자인인트로, 2017. 임현주, 「조선시대 원삼의 유래와 변천과정 연구」, 목원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김은정(金垠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