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法器), 법구(法具), 불구(佛具), 대사물(大四物)
불교 총림(叢林)의 법구로,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 법고(法鼓)의 총칭
총림에서 새벽과 저녁에 연주하는 네 가지 큰 악기를 말한다. 사물은 악기를 연주해 음악을 전하는 차원을 넘어, 십법계(十法界) 모든 중생을 청하는 종교적 믿음을 드러내는 법기(法器)ㆍ법구(法具)ㆍ불구(佛具)로 여겨진다. 사찰의 종풍(宗風)에 따라 연주 순서와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조석(朝夕) 예불(禮佛) 전에 행하는 게 보편적이다.
불교의 사물은 불교가 유입되면서, 이후 토착화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자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유례없는 종(鍾)으로 평가받는 ‘상원사동종(725년, 국보 제36호)’과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771년, 국보 제29호)’이 불교가 자리하고 성행하던 시점에 제작되었음에 비춰보면 사물의 역사는 불교의 유입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사물은 법계의 중생을 청해 공양을 베풀기 위한 용도로 쓰였는데 1882년, 추담정행(秋淡井幸)이 찬술한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僧家日用食時黙言作法)』, 「식시사물연기(食時四物緣記)」에서는 “사물이란 곧 총림의 법기(法器)이다. 대체로 아침에 죽을 먹고 점심때에 이르러 밥을 먹을 때 사물을 울린다. 운판은 허공계(虛空界)의 무리를 청하고, 종은 명부계(冥府界)의 무리를 청한다. 목어는 수부(水府)의 무리를 청하고, 북은 세간(世間)의 무리를 청하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사물을 치는 것은 사부(四府)의 무리를 불러 청(請)하는 것이니, 누구나 함께 공양한다는 것이다.”라고 전한다.
현재 사찰에서 진행하는 사물의 연주는 아침과 저녁에 행하는 예불(禮佛: 기도), 20~30분 전부터 대중을 운집시킬 목적으로 진행한다. 불교에서의 사물은 승가(僧伽)에서 이뤄지는 모든 공양(供養) 시점에 일체중생을 불러 모아 함께 하도록 청하는 법구(法具)로 여겨 그 자체를,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성물(聖物)로 인식해 왔다. 보편적으로 ‘공양’이란 ‘끼니를 때우며 식사하는 것’ 정도의 불교식 표현이지만, 불교에서의 공양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마음이 혼탁하며 두려움에 떠는 중생에게 재시(財施)와 법시(法施) 그리고 무외시(無畏施)를 베풀어 다 함께 성불(成佛)하려는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사물을 공양의 시간에 맞춰 연주해 온 것도 한량없는 공양을 베풀어 나와 남을 이롭게 해 성불하고자 하는 종교적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 구조와 형태 - 운판: 쇠로 제작한 운판은 금강(부처님의 지혜)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그 모양이 구름을 닮아 운판이라 명했다. - 범종: 쇠로 제작한 종은 그 몸체가 금륜(金輪)이고, 그 아래에 지부(地府, 冥府, 저승)를 양각(陽刻)해 법계(法界)를 상징하는 모습을 취한다. - 목어: 몸체가 통나무로 된 목어는 중생을 상징하는 물고기의 몸과 성불을 상징하는 용의 머리로 구성된다. - 법고: 북은 그 몸통이 나무로 되어있고 가운데의 울림통 양쪽 면을 소가죽으로 싼다. ○ 연주방법과 기법 사찰에서 연주하는 사물은 보편적으로 새벽과 저녁 예불 전에 울린다. 범종을 시작으로 법고와 목어, 운판의 순서로 연주하기는 하나, 종단과 사찰에 따라 순서가 유동적이고 연주법도 다르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연주하는 사물의 특성상 특화된 방법이 따로 존재하기보다, 전임자의 연주법을 후임자가 따라 하는 수준이어서 전문적인 연주법이나 표기법이 전해지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소임자가 바뀌는 실정이라 수준 높은 연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다만,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연주 방법과 기교가 조금 차이 날 수 있다. - 운판: 운판은 혼자 한 손에 채를 쥐고 점점 빠르고 작게 마무리하는, 아첼레란도(accelerando)와 같은 형식의 연주를 약 5분 정도 반복하거나 소리와 속도를 조절하며 세 번 올리고 내려 진행하기도 한다. 때론 양손에 채를 쥐고 일명 ‘동당쇠’로 알려진 금구(金口)ㆍ반자(飯子)의 중앙과 모서리를 자진모리장단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식시사물연기(食時四物緣記)」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3통(三統)과 3퇴(三槌)하는 것은 거듭 청하고자 함이니, 범음(梵音)으로써 시방(十方)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 현성(賢聖) 및 천선(天仙)의 대중을 받들어 청하기 위함이다.”라고 전하고 있어 세 번 올리고 내림을 반복한 후 끝에 세 번 치며 마무리하는 기법이 자연스럽다.
- 범종: 범종의 크기가 작은 경우 혼자, 클 경우엔 두세 명이 함께 추를 움직이며 연주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찰에서는 새벽 예불 전에 서른세 번, 저녁 예불 전에 스물여덟 번 치는 법식을 따른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렸던 타종의 횟수와 일치하는 것으로,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창립한 다수의 종단(宗團), 재정비 과정에서 불교의 우주관, 온 하늘을 상징하는 33천(天)과 밤하늘 상징하는 28수(宿)가 더해져 자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예불 전에 연주하는 전통적인 타종의 횟수는 지금의 것과 달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826년, 백파긍선(白坡亘璇)의 『작법귀감(作法龜鑑)』, 「격금규(擊金規)」에는 “종을 새벽에 스물여덟 번 치고 저녁에 서른여섯 번 친다.”라고 언급하고 ‘28’의 의미에 대해서는 “동쪽에 있는 ‘3’과 ‘8’은 목(木)이며, 3×8=24가 되고, 여기에 사유(四維)의 개벽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28’이 된다고 전한다. 또한 ‘36’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쪽에 있는 ‘4’와 ‘9’는 금(金)으로써 4×9=36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1935년, 안진호의 『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는 아침에 “대종을 스물여덟 번 치는 것은,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이 스물여덟 가지 대인(大人: 성인)의 상호(相好)를 갖추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하고 저녁에 “대종을 서른여섯 번 치는 것은, 사생(四生)과 구류(九類)의 모든 중생이 수행하고 참회(懺悔)한 공덕으로 함께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어 현재의 타종 횟수와 차이를 보인다. 「식시사물연기」에서는 “식사할 때 당종(堂鐘: 종을 치는 소임자)이 종을 열여덟 번 치는 것은 시방(十方)의 한량없는, 고통받는 중생들과 아귀(餓鬼)의 무리를 불러 청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한다.
- 목어: 현재의 목어 연주는 혼자 혹은, 두세 명이 돌아가며 양손에 채를 들고 몸체, 배 안쪽에 채를 넣어 좌우로 이동하며 ‘따다다다ㆍ따다다다’, 일정하게 통을 울리는 기법을 보인다. 이와 같은 연주법을 고려해 최근에는 목어의 배 안쪽 부분을 좌우로 넓혀 제작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 연주법이 정석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전해진 완주 화엄사, 서울 화계사, 정읍 내장사, 파주 보광사의 목어를 살피면 배 부분은 울림통의 역할에 충실하고 안쪽 면 역시 손상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바깥 몸통이 닳아 없어진 게 확인됨에 따라 과거엔 배 안쪽이 아니라, 바깥 몸통을 쳐서 소리 냈을 가능성이 크다. 전통 의례인 “식당작법(食堂作法)”에서도 바깥에서 목어의 몸통을 치며 연주하고 있어 이와 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연주법 역시, 세 번 올리고 내림을 반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목어를 3통(三統) 하는 것은 여러 비구가 오래 머물러 시주물(施主物)을 탐착하지 않으며, 살생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고, 용왕의 권속(眷屬: 가족)과 물과 육지에 사는 무리를 불러 청하기 위함이다.”라는 대목에 기인한다.
- 법고: 현재 법고 연주는 마치 기차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칙칙폭폭’하고 출발하듯 북 모서리와 가죽을 번갈아 치며 시작한다. 마치 서양의 드럼 연주와 흡사하지만, 가죽의 울림이 전하는 음색은 드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국 어느 사찰에서나 연주하는 모습이 통일되어 있고 리듬 역시 2박과 4박의 혼박으로 이루어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반주 형식을 보인다. 3박으로 구성된 한국불교 전통 장단과의 연계성을 찾기 어렵지만 사물 연주 중 유일하게 다수의 인원이 돌아가며, 각자의 방식대로 5~10분, 반복 연주하는 특징을 보인다. 「식시사물연기」에선 “먼저 3통을 치는 것은 들짐승이나 날짐승, 물고기나 조개의 무리를 불러 청하는 것이고 나중에 5통을 치는 것은 여러 비구가 굶주리거나 과식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라고 전하여 과거엔 세 번 올리고 내림을 반복한 다음, 끝에 다섯 번 치며 마쳐 현재의 연주법과 차이가 난다.
새벽을 깨우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하루를 마감할 때를 알리는 사물은, 그 목적과 연주 방법이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르다고 해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악기임은 틀림없다. 일체중생을 청해 다함께 공양을 베풀어 성불에 이르려는 본래의 목적과 더불어, 사물이 지닌 종교적 사상이 더해지면 더욱 다채로운 연주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중생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울려온 사물은, 한국불교의 소중한 유산이다.
불교에서 연주하는 사물은 크기가 거대해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누각(樓閣)을 만들어 운영한다. 총림이나 사찰 입구에 범종각(梵鐘閣) 혹은 종루(鐘樓)가 자리하는 데 비록 이름은 종을 달아놓은 곳이라 해도 북과 운판, 그리고 목어를 함께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 제작해 자리한 사물은 종교적인 상징성이 더해져 함부로 훼손하거나 이동시키는 걸 금기시한다. 수십, 수백 년 된 사물이 현존하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경원, 「범종」, 『불찬의례자료집』 5, 불찬범음의례연구소, 2022. 백파긍선, 『작법귀감(作法龜鑑)』,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법준, 「목어」, 『불찬의례자료집』 5, 불찬범음의례연구소, 2022. 성능, 「식시사물연기」, 『불찬의례자료집』 5, 불찬범음의례연구소, 2022. 안진호, 『석문의범(釋門儀範)』, 만상회, 1935. 지원, 「법고」, 『불찬의례자료집』 5, 불찬범음의례연구소, 2022. 추담정행,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僧家日用食時黙言作法)』, 1882. 혜일명조, 『법고』, ㈜에세이퍼블리싱, 2011. 혜일명조, 『수륙재』, 도서출판 일성, 2013. 혜일명조, 『시련』, 민속원, 2016.
혜일명조(慧日明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