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활
향토민요를 노래할 때 창호살이나 물방구에 대고 퉁기면서 소리를 내게 하던 목화솜 타는 활과 활실
〈베틀노래〉나 〈둥당애타령〉 등 토속민요를 노래할 때, 타악기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베틀에서 베를 짜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하고 또 일련의 작업순서가 있다. 이 중에서 목화씨를 발라낸 솜에 활실을 대고 손가락으로 퉁겨내며 부풀리게 하는 작업을 ‘목화 탄다’고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며 장단을 맞추는 활과 노래 연행을 통칭해 활방구라고 한다. 여기서의 ‘방구’는 반고, 반구, 벅구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사물놀이 북과 소고의 중간 크기쯤 되는 타악기의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활실을 창호살에 대고 퉁기게 되면 마치 생콩을 짓이겨 발라 만든 소고 소리와 비슷한 타악기 소리가 난다. 또 물방구를 대나무 활의 휘어진 부분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타악기가 부족하여 북으로 장구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지방에서는, 물방구 등과 더불어 노래에 맞춰 장단을 짚는 악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활방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활의 역사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활방구 역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활방구라는 용어나 개념이 베 짜기 작업 즉, 목화솜 타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목화재배 시점부터 활방구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 씨앗을 들여왔다고 하므로, 활방구의 역사 추정도 최소한 고려말까지는 소급해 볼 수 있다.
삼남(충청, 전라, 경상)이남에서는 지역에 따라 목화를 미영 혹은 명이라고 했다. ‘무명’이나 ‘면화’의 방언이다. 그래서 목화솜을 면화, 미영솜, 무명솜, 명솜 등으로 부른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활방구는 화살을 쏘는 활이 아니라 목화솜을 타는 도구로서의 활을 말한다. 활방구의 내력을 알기 위해서는 목화를 타는 단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체 과정은 목화재배와 수확, 씨 앗기, 솜 타기, 고치 말기, 실 잣기, 무명 날기, 베매기, 무명 짜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안에는 또 크고 작은 순서들이 들어있다. 대개 〈베틀노래〉라고 호명되는 토속민요의 사설에 이 순서는 물론 작업을 담당하던 여성층의 애환들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활방구는 이 중 솜 타기 부분에서 주로 연행되는 노래와 장단, 악기 등의 통칭이다. 물론 이외에도 〈둥덩애타령〉, 〈베틀노래〉 등의 토속민요를 연행하는 데서 활용되기도 한다. 씨앗기, 씨아틀기 혹은 물레잣기는 밭에서 목화를 따다가 씨앗이라는 물레에 넣고 씨를 발라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활을 이용하여 씨를 감싸고 있던 솜을 부풀리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말아서 실을 만들어야 베를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활실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작업을 하며 부르는 노래가 유희요 혹은 유흥요로 분류되는 토속민요들이다. 미영활은 쏘는 활과 같이 구조가 매우 간단하다. 직경 2cm 정도의 대나무를 활 모양으로 휘고 대나무의 양 끝에 삼실을 묶어 만든다. 화살을 쏘는 화살과 구분하기 위해 이를 ‘솜활’이라고도 한다. 씨앗을 발라낸 솜에 솜활의 활실을 대고 하나, 둘, 셋, 리듬을 맞추기도 하면서 튕기면 솜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장단을 맞추기도 하고 선율을 실어 노래하기도 한다. 이를 창호에 대고 튕기면 창호지가 악기가 되고, 물방구 그릇에 대고 튕기면 물그릇에 엎어둔 바가지가 악기가 된다.
활방구는 활과 같이 생겼고 매우 간단하기에 악기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나, 여성들의 베틀작업과 베짜기 일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시적이고 인간적인 전통 악기라 아니할 수 없다. 강춘기 시인은 〈어머니와 무명활〉을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을 만큼, 활방구는 서민들의 삶에 깊숙하게 침윤되어있는 풍경이다.
『한국민속종합보고서 17-의생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6. 이윤선, 『무안만에서 처음 시작한 것들』, 다할미디어, 2022. 이윤선, 『남도를 품은 이야기』, 다할미디어, 2021. 이윤선,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덤벙분청」, 『전남일보』, 2022. 2. 25.
이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