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북, 벅구, 두레북
모내기 등 논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풍장굿을 칠 때 사용하던 북
흔히 ‘못북’이라 한다. 모내기할 때나 만도리 등의 풍장굿을 할 때 사용된 북을 말한다. 못방구의 크기는 오늘날 사물놀이 북과 소고의 중간쯤에 해당하지만, 남도들노래에서 보듯이 삿갓을 쓰고 북을 치는 큰북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논농사 관련해서는 보편적으로 이 북을 사용하였고, 근대이후 농악이 재구성되면서 분화 발전하여 ‘버꾸놀이’ 등 독립적인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악기 이름에서 ‘못’과 ‘방구’의 두 측면을 주목할 수 있다. ‘못’은 모판, 못소리, 모내기, 모뜨기, 못짐, 못줄, 못밥, 모지기, 못일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벼농사의 ‘모’와 관련되어 있다. ‘방구’는 예컨대 전라도지역에서는 반고, 방고, 방구, 벅구, 버꾸, 법고 등으로 불렀다. 물론 ‘방귀 뀌다’의 ‘방구〔放氣〕’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못방구’라 함은, 모내기할 때 사용하던 중간 크기 형태의 북이라 할 수 있고, 논일이나 두레 관련 일을 하면서 활용되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발음명칭이 유사하여 물방구, 활방구혹은 사장구 등과 등가의 악기로 생각하기 쉬운데, 물방구나 활방구 등이 생활 용구를 활용한 준(準) 악기인데 비해 못방구는 모내기와 관련된 북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못방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방구’의 내력을 불교의 ‘법고’나 북의 형태로서의 ‘반고’, 혹은 민속신앙으로서의 ‘벅구’ 등의 사례로 확장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못’이라는 접두어가 있어 ‘모내기’에 한정해야 하므로, 대개 이앙법(移秧法)이 도입되거나 실시되었던 시기로 추정할 수 있을 듯하다. 직파 중심의 벼농사가 이앙법으로 바뀐 것은 고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전반적으로 확대된 것은 숙종 재위 17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주목할 것은 모내기라는 용어에 담긴 속뜻이다. 모판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운 후 본판에 모를 옮기는 것을, ‘옮긴다’고 하지 않고, ‘낸다’고 한다. ‘북소리를 내다’ 등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내는’ 일은 안에 깃들어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특히 ‘낳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두레농악과 모내기 노래, 나아가 못방구라는 악기의 내력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못방구의 방구는 오늘날 벅구, 버꾸, 법고 등으로 혼용하여 호명되는 타악기다. 일본의 남부에서부터 오키나와를 포함하여 대만까지, 한반도 전 해안 및 동아시아 해안지역을 관통하는 이 악기는 나라별로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나 용처가 다르다. 하지만 모내기 등의 벼농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의 크기는 오늘날 사물놀이 큰북과 소고의 중간쯤이다. 가죽을 매서 가죽끈이나 노끈 등으로 얽어매 만드는 방식은 유사하다. 북통을 만들 때, 큰 나무의 속을 파서 통으로 쓴다든지 나무 조각들을 덧대어 원통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다 사용한 얼멍치(어레미의 전라도 말) 테두리를 활용한다든지 하는 재료 사용과 제작방식의 차이는 있다. 어떤 북통이든 대개의 경우는 가죽을 잡아매서 만든다는 점에서 큰북 만들기와 차이가 없다. 다만, 창호지를 수십 겹 덧대고 생콩을 찧어 바르거나, 들기름 등으로 기름을 칠해 종이가 탄탄하게 만들기도 하고, 각종 무명천을 잡아당겨 매고 기름 등을 발라 가죽 대용으로 사용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북통에 손잡이를 붙인 못방구는 지금의 소고처럼 한 손에 들어 다른 한 손으로는 채를 쥐고 치며, 손잡이가 없는 경우에는 북에 달린 끈으로 한 손을 잡아매고 다른 한 손에 채를 쥐고 치면서 연행을 한다. 이토 아비토(伊藤亞人)가 1970년대 초에 찍은 남도들노래 사진을 보면, 논두렁 바깥에서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모두 벅구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의 세계적인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모내기를 하면서 벅구 형태의 북을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비교적 우리나라를 비롯한 못방구의 오래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못방구 대신 못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논물에 잠길 듯한 긴 삿갓을 쓰고 오늘날 농악이나 사물놀이에서 사용하는 큰북을 매고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치는 형태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해안 지역에서 ‘버꾸놀이’로 불리는 이른바 벅구북도 오늘날 농악의 큰북 크기임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어느 시기에 못방구에서 못북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추정해볼 수 있다.
고려시대 이앙법 전래 이후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못방구 혹은 못북은, 모내기와 북을 치는 연행이 습합된 일종의 의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남도들노래의 경우, 중간 크기쯤의 북이었던 못방구가 삿갓을 동반한 큰북으로 변했지만, 모내기가 갖는 민속의례와 신앙의 함의, 나아가 북을 두드린다는 원시적 의미들이 내밀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용식, 『민속, 문화, 그리고 음악』, 집문당, 2006. 이윤선, 『무안만에서 처음 시작한 것들』, 다할미디어, 2022. 이윤선, 『남도를 품은 이야기』, 다할미디어, 2021. 이윤선,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덤벙분청」, 『전남일보』, 2022. 2. 25.
이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