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식인형연(足式人形演), 발작난, 족탈(足탈), 족가면(足假面), 족무용(足舞踊), 발탈춤
발탈은 발에다 가면을 씌워 꾸민 인형이 등장한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인형이 역할을 맡는 ‘탈’과 인간이 역할을 맡는 ‘어릿광대’(생선도가 주인)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시종일관 재담을 나누고 다양한 팔도의 소리를 노래한다. 발탈 연행은 발과 손으로 인형을 조종하고 목소리 연기까지 하며 등장인물 탈을 형상화하는 ‘발탈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인형과 함께 등장하여 그의 이야기와 소리를 끌어내는 연희자인 어릿광대 역시 발탈 연행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발탈의 유래와 형성에 대해서는 ‘신라 진중(陣中)놀이 기원설’, ‘고려 나례잡희 기원설’, ‘남사당패 기원설’ 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기원설들은 모두 근거가 취약하고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은 일방적 추정이다. 발탈과 관련하여 자세한 기록이 확인되는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박춘재(朴春載, 1883~1950)를 중심으로 하는 발탈 연행 기록이 확인된다. 이를 바탕으로 1910년대 전후해서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노래하고 재담도 하는 형태의 연행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탈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1910년대 전후 박춘재에 의해 현전하는 발탈의 형태가 마련된 것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현재의 발탈 형태는 1910년대를 전후로 해서 성립되었다. 이는 나름의 실험과 모색 과정을 거쳐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움직이며 재담과 소리를 하는 형태가 형성되었다. 발에다 가면을 씌우고 노는 연행 방식은 우리의 전통연희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이 서로 재담 경연을 하며 연행을 전개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우희(優戲)나 재담 연행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발탈은 조선시대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을 바탕으로, 발에다 탈을 씌우고 노는 등의 독특한 인형 조종 방식을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희나 재담 연행 전통의 바탕 위에 발로 조종하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의 재담 경연이라는 새로운 연행의 창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박춘재이다. 그는 현전 발탈의 형성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가 형성한 발탈의 시작은 연행자 한 사람이 발로 인형을 조종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점차 2인 연행, 나아가 2인 이상의 연행자가 등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춘재가 가지고 있던 전통 재담과 소리 능력이 적절하게 발휘되었다. 특히 박춘재의 전통 재담 능력과 초기 발탈의 결합은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공존하며 재담을 겨루는 발탈의 특징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의 발탈은 한 가지 계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박춘재 외에도 남사당패 등의 여러 광대패에서 주요 연행 종목의 하나로서 다양한 발탈이 연행되었다. 발에다 탈을 씌우고 움직이며 재담과 소리를 하는 기본적 연행 방식은 동일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존재했다. 박춘재의 발탈과 남사당패로 대표되는 떠돌이 광대패 발탈 간의 영향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당대 반응이나 이후의 전승 양상으로 보아, 박춘재에 의해 형성된 발탈이 남사당패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남사당패 계열의 발탈은 그 전승이 끊어졌다. 박춘재 계열의 발탈은 이동안(李東安, 1906~1995)에 의해 전승되다가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이동안과 박해일(朴海一, 1923~2007)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현 발탈 예능보유자는 박정임(朴貞任, 1939~)과 조영숙(曺英淑, 1934~)이다.
○ 연행 시기와 장소
발탈은 특별한 시기나 장소에서 이루어진 연희가 아니다. 시기는 물론이고 낮과 밤, 실내와 실외를 가리지 않고 연행했다. 신라시대에 진중에서 벌어졌다거나 고려시대 나례에서 벌어졌다고 하지만 관련 기록이나 근거가 희박하다. 그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낸 20세기 초반에는 주로 극장 무대에서 오락이나 여흥의 하나로서 소규모로 행해졌다. 이러한 발탈의 특성에 주목하여 심우성은 발탈을 ‘살롱 드라마’라 칭하기도 했다. 구리시 아천동 우미내마을에서는 남사당패 발탈의 영향을 받아 정월 대보름 전날 밤에 마을 부녀자들이 발탈과 유사한 연희를 하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에 맞추어 벌어지는 세시 오락의 하나로 발탈을 놀았던 것이지만, 이는 이 마을에만 한정된 것이다.
○ 절차 및 주요 내용 발탈에는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 인형 배우는 탈이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유람객 역할을 한다.
인간 배우는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어릿광대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어물도가 주인 역할을 한다.
다른 한 명의 인간 배우는 여자라 불리며 연행 속에서 생선 장수 아낙네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선 장수 아낙네는 일부 대목에만 잠깐 등장할 뿐이고, 발탈 연행의 핵심 등장인물은 탈(유람객)과 어릿광대(생선도가 주인)이다. 두 인물은 재담과 소리를 통해서 연행 내내 다툼을 벌인다. 얼굴 생김새, 《시조창》, 〈허튼타령춤〉, 〈팔도유람〉, 《잡가》, 먹는 것, 조기 세는 흉내, 조기 장사 등의 일화(逸話; episode)를 활용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을 벌이는 것이 발탈의 내용이다. 발탈의 내용 전개는 그동안 채록된 연희본에 따라 그리고 연행을 주도하는 연희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탈과 어릿광대의 만남’, ‘탈의 팔도유람 내력과 소리’, ‘탈의 먹고 산 것 시비’, ‘탈과 생선장수 아낙네의 만남’, ‘고사와 마무리’의 다섯 대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악곡 구성
발탈 연행에는 흔히 삼현육각 편성의 반주가 따른다. 반주는 발탈 연희자의 재담과 소리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음악 반주는 처음 연행을 시작할 때 〈길군악〉을 연주하는 것 외에는 주로 연희자들의 소리에 따른다. 판소리 《단가》를 할 때면 중머리장단을, 〈고사소리〉에는 자진모리장단, 〈육자배기〉에는 진양과 세마치 등 그 소리에 해당하는 장단을 받쳐준다. 발탈에서 부르는 소리는 《시조창》, 《잡가》, 《민요》, 판소리 《단가》, 《무가》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청산리 벽계수야〉, 〈파연곡〉, 〈만고강산〉, 〈운담풍경〉, 〈호남가〉, 〈쑥대머리〉, 〈개성난봉가(박연폭포)〉, 〈신난봉가〉, 〈몽금포타령〉, 〈산염불소리〉, 〈배따라기〉, 〈봉죽타령(잦은배따라기)〉, 〈양산도〉, 〈흥타령〉, 〈사발가〉, 〈닐리리야〉, 〈자진방아타령〉, 〈한오백년〉, 〈충청잡가〉, 〈전라도육자백이〉,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성주풀이〉, 〈세간벌기〉, 〈도액막기〉, 〈고사소리〉, 〈국태민안〉, 〈액막이〉 등의 소리가 불린다. 인형을 조종하고 목소리 연기를 하는 발탈꾼이 주로 소리를 부른다. 함께 등장하는 어릿광대 역시 함께 소리를 하기도 하며, 〈고사소리〉나 〈국태민안〉 등은 어릿광대가 주도하여 부른다.
발탈은 가면을 이용하면서도 가면극과 다르고, 인형 배우가 등장하면서도 다른 인형극과 변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이 다투는 전통적인 재담 연행의 전개 방식과 유사한 듯하면서도,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의 대결이라는 특이함을 가지기도 한다.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하는 특이한 구조의 인형 배우와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는 인간 배우가 함께 공존하며 극을 진행하는 독특한 양상의 연희이다.
국가무형문화재(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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