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삭(走索), 답삭희(踏索戱), 이승(履繩), 보삭(步索), 주승(走繩), 승희(繩戱), 사연삭(躧輭索), 무환(舞絙), 승삭(乘索), 주질(注叱)
줄광대가 줄 아래에 어릿광대와 삼현육각(三絃六角) 악사를 대동하고 음악 반주에 맞추어 줄 위에서 기예, 재담, 가요를 펼치는 전통연희
줄타기는 연희 장면에 적합한 가요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재담이 다양한 기예와 어우러져 관중의 흥미와 탄성을 자아내는 고난도의 곡예종목이다. 기예, 재담, 음악의 유기적 결합은 공중에 설치된 줄이라는 협소한 단선 무대를 폭넓은 극적 공간으로 확장시켜, 줄타기를 단순한 기예를 넘어 주제 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공연예술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줄타기는 무예를 단련하고 하천이나 계곡 같은 자연 장애물을 극복하며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예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자생적 연희이다. 자생적 줄타기는 삼국시대에 전래된 새롭고 수준 높은 산악(散樂)ㆍ백희(百戲)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 우리의 줄타기는 기예 중심의 줄타기를 벗어나서 줄 아래 어릿광대와 재담을 서로 주고받고 삼현육각의 탄탄한 음악 반주에 맞추어 기예의 다양성과 유연함, 장면에 알맞은 설득력 있는 가요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재담을 연행하는 판줄로 발전하였다.
○ 역사적 변천 과정
한국에서 줄타기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는 직접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행사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 《잡희(雜戱)》 등이 연행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줄타기의 연행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줄타기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오세문(吳世文)의 〈삼백운시(三百韻詩)〉에 화답한 시다. 여기서는 민간에서 “은하수에 닿을 정도로 줄을 높이 매달고(戱索高連漢)” 고난도의 줄타기를 연행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사신 영접행사와 일본 통신사 파견 행사, 지방관과 관련된 각종 행사 등의 공식 공연에서 다양한 연희가 펼쳐졌고 이때 줄타기도 공연되었다. 성현(成俔, 1439-1504)은 〈관괴뢰잡희시(觀傀儡雜戱詩)〉에서 중국 사신 영접행사에서 연행된 조선 줄타기의 연희 수준을 “중국 사신 휘둥그레 깔보지는 못하리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중국 사신 영접행사에서 줄타기가 연행되었음을 보여주는 도상자료에는 청나라 사신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이 1725년 완성한 《봉사도(奉使圖)》가 있다. 이 작품 제7폭에는 모화관(慕華館) 마당에서 공연한 〈대접돌리기〉, 〈땅재주〉, 〈탈춤〉 등의 연희들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주도의 공식적 행사뿐만 아니라, 과거급제 후 벌이는 유가(遊街)와 문희연(聞喜宴) 등과 같은 민간의 각종 연회와 유랑예인들의 공연에서 줄타기가 연행되었다. 문희연에서 펼쳐진 전통연희의 연행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자료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 50수 중 26수에서 35수에는 줄타기의 도입과정, 줄타기의 연행시간, 연행 공간, 관객, 기예, 〈중놀이〉, 〈살판〉에 대한 내용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서양식 극장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마당 공연 방식에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극장 공연 방식으로 연행 조건이 급격하게 변모했다. 이러한 공연 환경의 변화는 줄타기가 독립된 종목으로 장시간 공연되는 판줄에서, 짧은 형태로 축소되어 기예 중심으로 공연되는 도막줄로 바뀌는 계기를 제공했다.
○ 연행 시기와 장소
삼국 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줄타기가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행 공간은 가무백희, 잡희 등이 연행되었던 한가위,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 수륙재(水陸齋), 우란분재(于蘭盆齋) 등이다. 이후 고려 중기에 들어와서 대표적 곡예 종목인 줄타기의 연행 공간에 대한 직접적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례(儺禮), 중국 사신 영접행사, 지방관 환영행사 등의 공식적 행사와 사대부가의 잔치, 상업적인 목적의 행사 또는 과거급제 후 벌이는 유가와 문희연 등의 민간 행사에서도 광범위하게 곡예 종목이 연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줄타기는 통상 〈줄고사〉로 시작해서 〈전반기예〉, 〈중놀이〉, 〈왈짜놀이〉, 〈후반기예〉, 마무리의 순으로 연행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줄고사〉: 줄광대는 먼저 줄판을 정화하고 줄타기 스승과 선배에게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줄을 타게 해달라고 빌고, 관중들에게는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줄고사〉를 지낸다. 줄광대는 〈줄고사〉를 통해 관중과 함께 음복하고 소원을 빌면서 신명나는 줄판을 만들고자 한다.
2) 〈전반기예〉: 〈전반기예〉는 줄타기의 전반부에서 행하는 기예를 말한다. 줄광대는 〈줄고사〉를 마친 후 느린 염불 장단에 맞춰 줄에 오른다. 작수목에 위치한 줄광대는 객기를 부리며 줄 위로 나아가지만, 줄 위에서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다시 작수목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관중에게 웃음과 긴장을 유발한다. 그리고 〈외홍잽이〉, 〈코차기〉, 〈외무릎풍치기〉, 〈양다리외홍잽이〉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기예를 선보인다.
3) 〈중놀이〉: 〈중놀이〉는 전반 기예를 통해 발생한 극적 긴장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줄광대는 이 대목에서 흥겨운 줄타기 가요와 재담을 구사하여 관중의 여유를 회복시킨다. 줄광대는 근엄한 중의 파계를 통해 고답적(高踏的) 윤리의 위선을 풍자하고, 욕망을 긍정하는 민중적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4) 〈왈짜놀이〉: 〈왈짜놀이〉는 〈중놀이〉에서 조성된 줄판의 흥겨움을 더욱 강화시킨다. 줄광대는 이 대목에서 여러 개성 있는 인물들을 흉내 내서 관중의 흥미와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양반에 대한 흉내는 상류층을 희화화시키고 그 권위를 추락시킨다. 줄광대와 어릿광대는 특정 인물의 동작을 흉내 내거나 우습게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줄타기는 우희(優戱)의 일종인 유희의 영향 아래, 양반의 비정상적인 동작을 흉내 내고 음담이나 비속어를 사용하여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5) 〈후반기예〉: 줄광대는 전반부에 형성된 관중의 극적 긴장감을 〈중놀이〉와 〈왈짜놀이〉를 통해 이완시킨다. 후반부의 기예는 〈칠보 달어치기〉, 〈허공잽이〉 등 난도가 매우 높은 연결 및 결합 동작이 주로 연행된다. 이러한 고난도의 기예로 인해 압박되는 관중과 줄광대의 극적 긴장감은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주고받는 재담과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모방 동작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완됨으로써, 더 큰 극적 긴장을 준비해 나간다. 이후 어려운 기예를 통해 극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고 〈살판〉(줄 위에서 공중제비 돌기)을 통해 이를 해소한다.
6) 마무리: 줄광대는 관중의 성원에 감사 인사를 하고 관중의 건강과 행운을 축원한 후에 얼음을 지치듯 줄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줄 아래에서 어릿광대와 함께 관중석과 악사석에 인사를 마치고 퇴장한다.
줄소리는 소리의 목구성이 판소리의 목과 아주 비슷하다. 대표적인 줄소리인 〈새타령〉은 사설 자체의 의미보다는 줄타기 현장의 흥겨운 분위기를 강화하고, 오랜 시간 동안 줄만 탈 수는 없으므로 여러 종류의 노래와 재담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수용된 것이다. 줄소리들은 상황의 전개와 관련지어 극적인 성격을 지닌 채 불린다는 특징이 있다.
줄타기는 음악에서 기예의 수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장단이라 할 수 있다. 줄타기 장단은 통상 염불장단과 타령장단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현행 한국 줄타기의 기예와 가요는 18세기 이후 발생한 빠른 장단에 맞춰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줄타기는 줄광대가 개방적인 연행구조 속에서 순간순간 변형과 생성을 통해 개성적인 창조가 가능한 전통연희 종목이다. 줄광대는 줄 아래에 어릿광대, 삼현육각 악사들을 대동하고 가요와 재담을 함께 연행하며 고난도의 기예를 펼친다. 고도의 기예를 중심으로 음악, 재담을 함께 연행하는 줄타기의 공연 원리에는 첫째, 고난도의 기예가 재담, 음악과 통합적으로 결합하는 연행 요소의 유기적 결합의 원리. 둘째, 고도의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를 해소하는 극적 긴장의 압박과 이완의 원리. 셋째, 허공에 설치된 줄이라는 협소한 단선 무대를 폭넓은 극적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연행 공간의 입체적 확장의 원리 등이 있다.
줄타기는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고, 2011년 전통음악과 민첩한 동작의 결합, 상징적인 표현이 어우러진 복합성, 인간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이호승, 『전통연희 곡예 종목과 양수도립 연구』, 월인, 2011. 이호승, 『전통연희 남사당패 어름양수도립 연구』, 월인, 2019.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 학고재, 2020. 이호승, 「전통연희 곡예와 묘기 종목 연구의 현황과 전망」, 『동아시아 고대학』 66, 동아시아 고대학회, 2022.
이호승(李鎬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