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가락오광대(金海駕洛五廣大), 가락오광대(駕洛五廣大)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면에 전해 내려온 탈놀이
경상남도의 가락면에서 음력 정월대보름날 밤에 연행되던 탈놀이다. 합천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의 영향 아래 189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김해오광대는 독자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탈놀이다. 김해오광대는 정월대보름에 세시놀이로 연행되었는데, 1930년대 조사된 탈이 보존되어 있으며, 1930년대 말 이후 중단된 탈놀이가 여러 연희자와 연구자들에 의해 복원되어서 연행하고 있다. 김해오광대는 〈중 과장〉, 〈노름꾼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ㆍ영감 과장〉, 〈사자무 과장〉 등의 과장으로 구성된다. 연행 내용적으로는 일반적인 오광대와 공통된 부분도 있으며, 부산, 마산, 진주 지역의 야류ㆍ오광대와 유사한 면모도 확인된다.
1890년대 경에 부산지역의 《동래야류(東萊野遊)》와 합천 지역의 초계(草溪) 밤마리 대광대패의 탈놀이에 영향받아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1930년대에 민속학자 송석하가 가락면 죽림마을에 방문하여 수집한 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1984년 최상수가 연행자들을 만나서 채록한 대본도 전해진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송석하가 1930년대에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1890년대에 《동래야류》를 참고해서 시작한 김해오광대는 김해 가락면 죽림리(竹林里)에 전승되던 것이다. 죽림마을은 포구로 수운이 발달된 지역에서 탈놀이가 발달한 것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중일전쟁 이전까지 마을주민들에 의해서 오광대놀이가 연행되었으나, 이후 마을이 쇠퇴하고 그 연기와 춤 등을 계승하는 이가 없어 전승이 중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김해가락오광대》로도 불렸는데, 1984년 전 김해문화원장인 류필현의 주도로 복원하면서 ‘《김해탈놀이》’로 부르게 되었다. 최상수가 채록한 대본을 바탕으로 복원되어 2015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김해오광대의 연희자들은 대부분 농민들이며, 놀기 좋아하고 춤에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 현재는 예능보유자 이명식(李明植), 정용근(鄭龍根), 이수자 천승호를 비롯하여 20명, 그리고 전수생 등 35명이 활동하고 있다.
죽림리는 198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편입되면서 부산지역에 속하면서, 현재 김해오광대와는 다른 별도의 가락오광대를 구성하여 전승하고 있다.
○ 연행시기와 장소
김해오광대는 정월대보름에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연행되었다. 죽림마을에서는 정월초사흘부터 걸립을 시작해서 대보름 즈음까지 이어가면서 공동경비를 마련하였다. 마을주민들은 함께 가면을 만들어 연습을 진행하였으며, 정월대보름달 낮에는 줄다리기를 하고 밤에는 오광대를 놀았다고 한다.
○ 음악적 특징
무대 가장자리에 악사들이 배치하여 공연하는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한다. 춤 반주에 주로 사용하는 덧배기가락은 김해에서 쇠가락이라고 부르며, 주로 〈풍물놀이〉에 쓰인다. 김해평야에서 농사짓는 모양을 모방한 〈농사짓기굿〉과 덧배기가락 등을 장쾌하고 웅장하게 보여주는 〈김해농악〉이 전승되고 있다. 덧배기는 경상도 지역의 전통적인 가락으로 3소박 4박자 장단이며, 제3박의 3소박을 강조하는 리듬형태로 되어있다.
김해오광대에서는 춤이 주가 되지만 경우에 따라 노래가 가창되기도 한다. 이 중 〈중과장〉에서는 〈중타령〉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상좌나 노장이 부르지 않고 놀이꾼 중에서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무대 가에 나와서 중들이 춤을 출 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 절차 및 주요 내용
김해 오광대는 〈중 과장〉, 〈노름꾼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ㆍ영감 과장〉, 〈사자무 과장〉의 총 여섯 과장으로 구성된다. 연행내용은 파계승의 풍자, 양반에 대한 조롱, 일부(一夫) 대 처첩간의 삼각관계, 축사연상(逐邪延祥)의 주원(呪願) 등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중 과장〉은 노장과 상좌가 등장하여 승려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다. 노장은 중생을 제도하는 인물이 아니라 상좌를 유혹하는 인물로 나온다. 남성들 사이의 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오광대와 차별된다.
두 번째 〈노름꾼 과장〉에서는 노름꾼들의 노름놀이와 어딩이가 도둑질하는 내용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희화화해서 보여준다. 여기서는 노름꾼 4인이 나와 굿거리장단에 춤을 추다가 투전놀음을 벌이는데, 반신불수의 어딩이가 천연두를 앓는 아들 무시르미를 업고 나온다. 어딩이가 무시르미를 내려놓고 춤을 추다가 노름판에 가서 개평을 청한다. 노름꾼들이 돈이 없다며 주지 않자 어딩이가 판돈을 가지고 달아난다. 돈을 놓고 노름꾼들과 어딩이간의 실랑이가 진행되다가 포졸이 와서 어딩이를 포승을 질러 잡아간다.
세 번째는 〈양반 과장〉으로 종가(宗家)양반ㆍ모(毛)양반ㆍ애기양반과 말뚝이가 등장해서 본분을 지키지 않는 양반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종가양반이 말뚝이를 부르자고 하며 말뚝이를 몇 차례 불러내면 느지막이 말뚝이가 나타난다. 양반들이 과거 시험을 언급하며 함부로 쏘다니는 말뚝이를 나무라지만, 오히려 말뚝이는 양반을 희롱하는 말로 야유한다. 말뚝이의 고발에 양반들은 “망했네. 망했네. 양반의 집이 망했네.”라고 하면서 퇴장한다.
네 번째 〈영노 과장〉은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양반에 대한 풍자가 더욱 거세진다. 영노가 “비∼비∼” 소리를 내면서 등장하여 대국에서 양반 아흔아홉 명 잡아먹고 조선 양반을 잡아먹으려고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양반이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며 ‘개, 똥, 오줌, 소, 돼지, 갈치, 멸치’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양반의 체면을 나타내는 부채를 떨어트리는 등 온갖 망신을 당하다가 부채를 간신히 집어 들고 춤추며 퇴장한다.
다섯 번째 〈할미ㆍ영감 과장〉은 잘 알려진 할미 마당의 내용으로, 영감이 죽는 결말로 이루어진다. 큰이(본처, 할미)와 영감은 서로 헤어져서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찾다가 만나게 된다. 둘은 만나서 안부를 묻고, 영감이 제물포에서 작은이(첩)를 얻었다고 전한다. 할미가 작은이를 보자고 하자 영감은 작은이를 불러들여서 논다. 할미는 질투를 하고, 영감은 두 아들의 행방을 할미에게 물으니 모두 죽었다고 한다. 자식 둘이 죽었다는 소식에 기가 막힌 영감이 졸도하고, 작은이는 나가버린다. 놀란 할미가 영감을 살리기 위해 의원을 부르고, 봉사를 불러 독경도 하고, 무당을 불러 굿도 해보지만 결국 살려내지 못한다. 상두꾼이 죽은 영감을 메고 나가면서 〈상여소리〉를 부르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여섯 번째 〈사자무 과장〉은 담비라는 동물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담비는 춤을 추며 등장하며, 이어서 나타나는 사자의 비위를 건드린다. 사자와 담비의 실랑이가 이어지다가 사자가 담비를 잡아먹는 것으로 마친다.
○ 등장인물과 탈
등장인물은 종가양반ㆍ터럭양반ㆍ애기양반(일명 도령)ㆍ말뚝이ㆍ포졸ㆍ어딩이(무시르미의 아버지)ㆍ영감ㆍ할미ㆍ작은이ㆍ마을사람ㆍ아기·봉사ㆍ의원ㆍ영노(비비새)ㆍ비비양반ㆍ중ㆍ상좌ㆍ사자와 노름꾼 세 사람, 상도꾼 네 사람으로 모두 28명이다. 이 중 상도꾼ㆍ봉사ㆍ아기는 탈을 쓰지 않고 나온다.
탈은 대체로 실제 인물의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영노 가면만이 추상적인 형상으로 되어있다. 사용되는 탈로는 노장중, 상좌중, 노름꾼 1, 노름꾼 2, 노름꾼 3, 노름꾼 4, 주색탈, 어딩이, 포졸, 종가양반, 모양반, 애기양반, 말뚝이, 상주선산양반, 영노, 영감, 큰이, 작은이, 사자, 담비 등의 스무 개가 있으며, 영감ㆍ비비양반은 종가양반의 탈을 함께 사용한다.
과거 탈의 재료로 나무를 사용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주로 바가지로 만든다. 다만, 사자탈과 담비탈은 대소쿠리로 만든다. 탈의 색상은 적색. 흑색, 백색이 주종을 이룬다. 현재 김해오광대 연행에서 쓰는 탈은 옛 연행자 또는 연행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의 고증과 송석하가 수집한 열두 점을 기반으로 제작한 것이다.
○ 악곡 구성
김해오광대는 춤이 주가 되는 형태의 연희이다. ‘쇳가락’이라고 부르는 덧배기가락을 춤 반주에 주로 사용한다. 덧배기가락은 경상도만의 독특한 가락으로 주로 〈농악놀이〉에 쓰이는데, 김해 지역의 〈농악놀이〉는 〈매구치기〉, 〈건립치기〉, 〈걸궁치기〉, 〈풍물놀이〉 등으로 구성된다. 김해오광대만의 덧배기가락은 정용근 등 연희자들의 노력으로 채보되어 전승에 도움을 주고 있다.
장단은 대체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굿거리장단을 많이 사용하고, 그 밖에 타령장단과 세마치장단도 사용한다. 김해오광대는 주로 태평소, 꽹과리, 징, 북, 장구로 구성된 풍물패가 반주를 담당한다.
김해오광대에 사용되는 악곡은 많지 않은데, 〈중과장〉의 〈중타령〉, 〈할미ㆍ영감 과장〉의 〈사랑타령〉ㆍ〈밀양아리랑〉ㆍ〈독경〉ㆍ〈곡소리〉ㆍ〈상여소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삽입가요들은 본래 악곡의 전형적인 형식과 특징을 반영하여 가창된다.
김해오광대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사용하던 탈이 남아 있고, 과거 연희자들에게 채록한 대본도 존재하여 탈춤 연행의 재현과 전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연행 내용으로는 파격적인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을 특징적이다. 특히, 〈중 과장〉에서는 남성들의 성애를 다루고 있는데, 여타의 탈춤의 일부 대사에서 남성의 성애를 표현하기도 하나 한 과장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연행되는 사례는 김해오광대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인물인 중을 통해 사회적 비판이나 풍자를 하면서 사회적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특이점을 갖는다. 또한, 〈노름꾼 과장〉에서는 특별한 설정을 통해 노름꾼들의 놀이를 고발하고 있어 주목된다. 《진주오광대》와 《가산오광대》에서 노름꾼을 문둥이로 설정해서 일반인들과 별개의 일로 만들어 희화화하는 것과 달리 김해오광대에서는 노름꾼과 어딩이의 역할이 분리되어 나타나므로 다른 오광대와 차이점을 갖는다. 〈사자무과장〉의 경우 사자와 담비의 실랑이가 맹렬한 격투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서 《수영야류》나 《통영오광대》와 다르다. 김해오광대는 비교적 정적이며 인덕의 상징성을 강조된다.
경상남도 지역 오광대놀이의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과장들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2015) 한국의 탈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2022)
『한국전통연희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14. 『한국민속예술사전: 민속극』, 국립민속박물관, 2016. 강용권, 『한국민속극연구』, 제일문화사, 1997. 김재걸, 『김해가락오광대』, 박이정, 2004. 남성진, 『김해의 전승민속놀이』, 김해민속예술보존회, 2013.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최상수, 『야류ㆍ오광대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84. 이상현, 「‘김해오광대’ 경남도 문화재 지정」, 『노컷뉴스』, 2015.03.10. (https://www.nocutnews.co.kr/news/4379938) 김해시청(www.gimhae.go.kr) 문화재청(www.cha.go.kr)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