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東萊)들놀음, 동래(東萊)들놀이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전승되는 탈놀이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세시민속놀이로 연행하는 탈놀이이다. 야류(野遊)는 들놀음 또는 들놀이의 한자어이다.
동래야류는 수영에서 전승하는 《수영야류(水營野遊)》를 보고 시작한 것으로 1870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영야류》는 약 200년 전 좌수영수사(左水營水使)가 초계(草溪) 밤마리(지금의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竹廣大]패를 데려다가 탈놀이를 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는 수영 사람이 큰 장터인 밤마리에 가서 보고 온 뒤 시작되어 그 뒤 동래와 부산진에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동래야류는 1937년 중일전쟁이 난 해까지 전승되다가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1946년도에 몇몇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삼일절 기념행사로 공연되었다. 1946년 정월에 지신밟기를 통해 기금을 모아, 원래 일제시대에 동래야류를 놀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놀이를 복원했다. 그러나 이것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중단되었다가, 1965년도에 열렸던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영회(耆英會, 이속 출신들의 친목단체)의 지원으로 동래야류를 복원했다. 이후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 연행 시기 및 무대
동래야류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세시민속놀이로 연행하는 탈놀이이다. 야류 계원들이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마을 각 집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야류를 위한 비용을 마련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의 주관으로 이튿날 밤에 동래 중앙통 광장 패문리(牌門里)에 가설무대를 만들고 야류를 연행한다. 동래야류를 공연하기에 앞서 삼백여 명이 참가하는 길놀이를 거행했다. 길놀이는 세병교에서 출발하거나 안락동 쪽에서 출발해 시장터까지 행진했다. 놀이패가 놀이마당인 시장에 도착하면, 놀이꾼뿐만 아니라 구경꾼도 함께 음악반주에 맞추어 군무를 추며 놀았다. 놀이 장소는 주로 동래시장 앞 네거리인 패문리(牌門里), 일명 미곡시장에서 놀았으나, 지금은 동래 금강공원 내 전수회관 놀이마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놀이판은 별다른 무대장치는 없고 마당 한 가운데에 7-8m 정도 되는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는 대나무ㆍ소나무가지 혹은 깃발을 꽂았다. 장대에는 길놀이 때 사용했던 용등ㆍ봉등ㆍ거북등 같은 큰 등을 달고, 사방으로 새끼줄을 여러 가닥 늘어뜨려 원추형을 만든다. 그 새끼줄에는 길놀이 때 사용했던 작은 초롱등 500여 개를 달았다.
○ 야류 편성
동래야류는 마을 남성들이 연행한다. 등장인물은 원양반, 차양반, 셋째 양반, 넷째 양반, 종가집 도령, 말뚝이, 문둥이, 할미, 제대각시, 영노 등이 있다.
○ 탈
탈의 재료는 대개 바가지로 만들고, 셋째 양반처럼 털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다. 탈의 좌우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굵은 노끈을 꿰어서 탈을 붙잡아 맨다. 원양반, 차양반, 넷째 양반, 종가집 도령의 탈은 입술과 턱부분이 윗부분과 분리되어 노끈으로 연결되어서 탈꾼이 재담을 할 때마다 턱이 움직인다. 놀이가 끝난 뒤에는 탈을 마을의 동사(洞舍)나 공청(公廳)에 보관했는데, 이는 탈에 악귀가 붙는다고 생각하여 집에 보관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 악기 편성과 복색
동래야류의 음악은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사물로 연주한다. 예전에는 피리, 젓대(대금), 해금의 삼현육각 편성이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풍물패의 복색은 흰 바지와 저고리에 하늘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는 붉은색 또는 노란색의 조화가 달린 고깔을 쓴다. 설쇠, 설장수, 설북은 삼송이 꽃을 고깔에 달기도 한다. 풍물패는 길놀이를 인도하고 놀이마당에서는 군무를 반주한다. 또한 여러 과장에서도 놀이의 반주음악을 담당하여 흥을 돋우고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풍물패의 우두머리는 설쇠라고 한다.
○ 음악
춤을 추는 장단은 ‘덧보기장단’이라고 하는데, 이는 3소박 4박자의 굿거리장단이다.
상황이 급박하거나 고조된 분위기를 묘사할 때는 자진모리장단을 연주한다. 그밖에 《양반과장》의 〈갈까부다타령〉에서는 3소박 3박자의 세마치장단, 《할미ㆍ영감과장》의 〈봉사 독경소리〉와 《사자무과장》의 〈사자가 잡아먹는 대목〉에서는 빠른 3소박 4박자의 휘모리장단을 연주한다.
탈놀이에서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른다. 길놀이에는 난봉가패, 양산도소리패가 노래를 하고, 길군악패는 풍물을 치고 〈길군악〉을 부르면서 행진한다. 탈놀이에서 부르는 노래로는 〈백구타령〉, 〈오독독이타령〉, 〈해산타령〉, 〈갈까부다타령〉, 〈독경〉과 상여소리인 〈향도가〉 등이 있다.
○ 춤
춤은 덧보기장단에 맞춰 추는 덧배기춤이 대부분이다.
동래야류는 앞놀이와 뒷놀이로 구분한다.
○ 앞놀이
앞놀이는 길놀이, 군무, 잡희로 이루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해지기를 기다리다가 놀이판까지 풍물패를 앞세우고 길놀이를 한다. 놀이판에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와 함께 춤을 추면서 즐긴다.
○ 뒷놀이
뒷놀이는 탈놀이이다. 탈놀이는 모두 4과장(科場)으로 구성된다.
1) 첫째 과장
문둥이가 나와 미쳐 날뛰다가 뒹굴면서 춤을 춘다. 이것은 문둥이의 원한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반들에게 하인 말뚝이가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 양반을 모욕하는가 하면 때로는 곁말로 조롱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샌님의 대부인과 간통하였다고 폭로하며 양반의 체면을 여지없이 손상시킨다.
무엇이든 잡아먹는 무서운 상상의 동물인 영노라는 괴물이 등장하여 양반을 한층 신랄하게 모욕한다. 양반은 자신을 양반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아가서는 사람이 아닌 짐승, 똥 등 온갖 것이라고 한다.
영감이 첩을 얻자 본처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본처와 첩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영감은 화병으로 죽는다.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에 따르는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여 처첩의 관계로 인한 가정비극과 곤궁상을 나타낸 것이다.
동래야류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연행하는 세시민속놀이로서의 가치가 있다. 동래야류는 《수영야류》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야류》에는 없는 〈문둥이과장〉이 있고, 《수영야류》에는 있는 〈사자춤과장〉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동래야류: 국가무형문화재(1967)
강용권 외, 『동래들놀음』,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동래야류보존회, 1989. 김경남ㆍ이봉선, 『동래야류』, 화산문화, 2000. 임혜정, 『한국 가면극의 음악』, 민속원, 2019.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전』, 민속원, 2014. 최상수, 『야류ㆍ오광대 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74.
이용식(李庸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