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가면극(鳳山假面劇), 봉산탈놀이(鳳山탈놀이)
황해도 봉산과 사리원 일대에서 단오(端午)놀이로 전승되어온 탈춤
송석하(宋錫夏, 1904~1948)는 1937. 5. 16. 조선일보 3면에 게재한 「봉산민속무용고」에서 “고려에서는 진작부터 중국의 고대의식인 나의(儺儀)가 수입되어 그것이 가진 독자적인 도화적(道化的) 행위가 점차로 무용화하고 연극화하여 고려 말에는 특수한 가면무용극으로 완전한 발달을 하였다. 이것이 즉 소대극(小臺劇)과 봉산가면무용극 급 남선의 오광대극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 역사적 변천과정
18세기 중엽 봉산탈의 재질은 나무탈이었으나, 봉산 이속 안초목이 귀양을 갔다가 돌아와 종이탈로 바꾼 후에 여러 이속들이 봉산탈춤에 관여하게 되었다. 19세기에는 주요배역의 명단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봉산탈춤의 양식이 이때 이미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1920년대에는 상좌ㆍ사당ㆍ소무ㆍ미얄 등 여성 배역을 기생조합 여성들이 담당하면서 1936년 경암산에서 개최된 백중절공연에 여성이 참가하였고, 1937년 조선일보사 주최 ′봉산탈춤 간담회’에도 여성이 참석하였다. 당시에 여성들은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 탈을 쓰지 않고 맨얼굴로 공연에 참가하였다. 1958년 황해도청 후원으로 한국봉산가면극연구회가 조직되었고, 1960년 비원에서 문화공부부 주관 봉산탈춤 기록영화를 촬영하였으며, 1961년 제2회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65년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문화재관리국의 기록영화 촬영과 이두현(李杜鉉, 1924~2013)의 〈봉산탈춤대본〉 저술에 이어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1967년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김진옥(金辰玉 1894~1969)을 비롯한 13명의 예능보유자가 있었으며, 현재는 1989년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김애선(金愛仙, 1937~)을 비롯하여 장용일(張鏞逸, 1946~), 김종엽(金鍾燁, 1947~), 최창주(崔昌柱, 1950~), 박상운(朴商運, 1948~), 김호석(金浩錫, 1957~), 박용호(朴龍浩, 1947~) 등 여섯 명의 전승교육사가 전승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 연행시기 및 장소와 기능
세시풍속의 하나로 조선시대 말엽부터 5월 단오에 봉산 경수대 앞산 강변과 사리원 경암루 가설무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새벽까지 연행되었으나, 그 이전에는 고려 연등행사의 전통으로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연행되었다. 고을 수령의 부임과 생일 등 관아의 행사와 중국사신의 환영행사에서도 연행되었으며, 농산물과 수공업의 교역지인 주요 읍이나 장터의 5일장이 서는 곳에서도 연행되었다. 현재에는 문화재청의 후원으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매년 개최되는 정기발표회 외에 기획공연, 초청공연 및 해외공연을 실시하고 있다.
○ 연행가요의 음악적 특징
봉산탈춤의 음악에는 연희자들이 재담 중에 부르는 연행가요와 춤의 반주음악이 있다. 연행가요에는 1965년 문화재 지정을 위해 채록한 25곡이 있으며, 서도입창ㆍ경기민요ㆍ판소리조ㆍ독서성ㆍ시조 등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음계는 솔(sol)-라(la)-도(do)-레(re)-미(mi), 라(la)-도(do)-레(re)-미(mi)-솔(sol), 미(mi)-라(la)-시(si)-도(do)-레(re)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는 미(mi)-솔(sol)-라(la)-도(do)-레(re)의 음계로 구성된 곡이 제4과장 에 삽입되어 연행되고 있다. 선법상으로는 솔(sol)-도(do)-미(mi), 솔(sol)-도(do)-레(re), 라(la)-레(re)-미(mi), 미(mi)-라(la)-시(si) 등을 주요음으로 하여 4도진행과 3도진행 또는 4도진행과 2도진행이 주를 이루며, 4도진행시 밑음을 떨어주고 시나위가락이 불려지는 제7과장에서는 시(si)를 꺽는음으로 표현한다. 장단에는 중중모리ㆍ자진모리ㆍ굿거리ㆍ세마치ㆍ시조장단 등이 있다. 대표적인 연행가요로는 사당춤에서 사당이 멕이고 거사들이 받아 부르는 〈놀량〉, 노장춤에서 취발이가 아기를 얼르며 부르는 〈언문뒤풀이〉, 미얄할미가 영감을 찾으러 나서서 부르는 〈절절절씨구〉 등이 있으며, 그 밖의 악보는 김호석, 「해서탈춤의 연행가요 및 반주음악 연구」, 44~63쪽 및 172~185쪽 참조.
○ 반주음악의 음악적 특징
반주음악의 악기편성은 삼현육각인 피리2, 대금, 해금, 장고, 북 등이며, 반주음악의 근간이 되는 해서삼현육각(海西三絃六角)에는 〈염불〉ㆍ〈타령〉ㆍ〈굿거리〉 등의 《해주가락》과 《재령가락》인 〈타령시나위〉가 있다. 《해주가락》은 연주곡명이 각각 장단명이 되며, 〈타령시나위〉는 느린타령으로 연주한다. 음계는 솔(sol)-라(la)-도(do)/도#(do#)-레(re)-미(mi)로 구성되어 있으나, 파(fa′)ㆍ파#(fa#’)ㆍ솔(sol′) 등의 상청음이 출현하며, 〈굿거리〉에는 솔(sol) 아래의 레(re)ㆍ파(fa)와 같은 낮은 음이 출현한다. 선법상으로는 솔(sol)-레(re)-미(mi)의 세 음이 주요음이 되어 5도진행에 이은 2도진행의 연결이 자주 나타나며, 특히 레(re)에서의 목튀김주법과 레(re)를 중심으로 상행4도와 하행4도의 빈번한 진행은 서도소리의 난봉가토리를 느끼게 한다. 악보는 김호석, 「해서탈춤의 연행가요 및 반주음악 연구」, 210~213쪽 참조.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길놀이를 하는데, 길놀이의 구성은 선두에 기수가 서고 뒤에 태평소ㆍ북ㆍ장고ㆍ징ㆍ꽹과리 등 악사가 서며, 사자를 앞세워 잡귀를 쫓아낸다. 이어서 상좌에서 남강노인까지 출연순서로 굿거리장단에 춤을 추며 공연장에 입장한다. 뒤이어 고사상 뒤에 출연자들이 서면, 제주는 비나리 풍으로 고사문을 낭독한다.
탈춤의 구성은 제1과장 〈사상좌춤〉, 제2과장 〈팔목중춤〉(제1경 〈팔목중춤〉 제2경 〈법고놀이〉), 제3과장 〈사당춤〉, 제4과장 〈노장춤〉(제1경 〈노장춤〉, 제2경 〈신장수춤〉, 제3경 〈취발이춤〉),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말뚝이춤〉, 제7과장 〈미얄할미영감춤〉 등으로 되어있으며, 춤사위에는 〈팔목중춤〉 중 외사위ㆍ겹사위ㆍ양사위ㆍ만사위ㆍ뭇동춤, 〈취발이춤〉 중 깨끼춤, 〈말뚝이춤〉 중 두어춤, 〈미얄춤〉 중 궁둥이춤ㆍ까치걸음 등이 있다. 춤을 출 때에는 불림을 청하는데, 타령장단에는 ′낙양동천이화정~’을 비롯해 12가지, 굿거리장단에는 ′덩덩덩더러쿵~’을 비롯해 5가지가 있다.
봉산탈춤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연희자들이 전승해온 오락성과 예술성이 강한 탈춤으로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함께 요철과 굴곡이 심한 귀면형의 탈이 특징이다. 한삼을 사용하는 춤사위의 동작이 크고 역동적이며, 대본도 잘 전승되어 조선시대의 문화와 풍류가 잘 녹아있는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연행가요의 구성이 경서도민요와 판소리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황해도 특유의 서도풍류가락을 반주음악으로 연주하는 등 음악구성에 있어서도 전국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67)
김호석, 『봉산탈춤음악본』, 민속원, 2006. 박전열, 『봉산탈춤』, 화산문화, 2001. 서연호, 『황해도 탈놀이』, 열화당, 1998. 송석하, 『한국민속의 재음미 上下』, 한국민속박물관, 2004. 이두현, 『주석본 한국가면극선』, 교문사, 1997. 김호석, 「해서탈춤의 연행가요 및 반주음악 연구」, 단국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3.
김호석(金浩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