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놀음, 굿, 연행, 연행예술, 공연예술, 전통연행예술, 전통공연예술, 전통연극, 민속극
인간이 자기 몸과 말을 통해서 혹은 악기나 기구 및 가장을 통해서 어떤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근대 이전 한국적 연행 양식의 총칭
연희는 실제 존재하는 특정한 장르나 종목을 일컬었던 역사적 장르라기보다는 이론적 장르의 성격이 강하다. 연희라는 용어 자체가 19C 말에서 20C 초반에 등장했고, 공연하다 혹은 연행하다와 상통하는 술어로도 많이 사용되기도 한 탓에 그 개념이 모호하다. 연희를 시청중을 대상으로 공연되는 모든 행위로 정의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공연예술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근대 이전 전통사회에서 직업적 연희자들이 특정한 시기와 관계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관중을 위해 연행하는 공연물로 전통연희를 정의하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연희의 개념 정의는 그 주체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연희를 근대 이전에 형성된 연행물과 관련짓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연희의 개념 속에 옛것 혹은 전통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주로 전통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하거나, 연희라는 표현 속에 전통을 함축하여 연희와 전통연희를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연희에 대한 여러 정의를 보면 사실상 연행예술, 공연예술, 넓은 의미의 연극 등과 같지만, 굳이 연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희가 갖는 역사성을 중시하려는 의도에서인 것이다. 연희라는 개념이 갖는 다양성과 모호함에도, 옛것 혹은 전통과 깊은 연관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되고 있다. 이상의 연희 개념에 대한 여러 의견을 바탕으로, 인간이 자기 몸과 말을 통해서 혹은 악기나 기구 및 가장을 통해서 어떤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근대 이전 한국적 연행 양식의 총칭으로 연희 개념을 설정할 수 있다. 여기서 근대 이전 한국적 연행 양식이라는 것은 이야기, 음악, 노래, 춤, 놀이가 중심이 되는 악(樂)·가(歌)·무(舞)·희(戱)의 양상으로 구체화 되는 양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 정의는 넓은 의미의 연극 개념, 연행예술이나 공연예술의 개념 등과 유사하지만, 근대 이전의 한국적 연행 양식이라 한정함으로써 그 변별성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연희의 경계나 범주의 모호함을 넘어설 수도 있다.
연희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등장한다. 1826년에 나온 신위(申緯, 1769~1847)의 『관극절구(觀劇絶句)』에서 ‘흥보가를 연희하다(演戲燕子匏)’라고 하여 판소리를 연행하는 행위를 연희라 표현하였다. 1843년에 저술된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도 ‘영산을 부르고 나면 연희가 벌어지니(歌罷靈山呈演戲)’라고 하여 판소리 연행과 관련하여 연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판소리 연행에 한정된 용례와는 달리 서구의 연극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1895년 간행된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는 서구의 연극을 연희라 하여 조선의 야희(野戲)와 구분하여 소개한다. 그리고 1900년을 전후하여 무동연희장(舞童演戲場)이라 불리던 가설 실내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기예와 희(戱)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연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연희라는 용어는 이후 근대 계몽기(1894~1910)에 무동연희장은 물론이고, 협률사, 원각사, 광무대, 장안사 등의 실내 공연장에서 연행된 전통적 연행물에 한정해서 사용되었다. 실내 공연장에서 공연된 《잡희(雜戲)》, 희, 기예 등으로 언급했던 전통적 연행물을 일컫는 명칭이 연희였다. 이후 연희라는 용어는 1980년대까지 그 개념이나 범주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다. 때로는 공연하다 또는 연행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술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개념과 범주를 설정하여 사용해왔다. 1990년대에 이르러 보다 체계적인 연희의 개념 정의와 범주 설정이 시도된다. 서연호(1941~)는 시청중을 대상으로 해서 공연되는 모든 행위라고 연희를 정의한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경계 역시 모호하다. 이렇게 개념 정의를 한다면, 공연 혹은 연행되는 거의 모든 것을 연희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전경욱(田耕旭, 1959~)은 근현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직업적 연희자들이 특정한 시기와 관계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관중을 위해 연행하는 공연물로 전통연희를 정의한다. 여기에는 〈줄타기〉·〈솟대타기〉·〈땅재주〉·〈환술〉 등 《산악》·《백희(散樂百戲)》의 종목들과 《가면극》·판소리·창극·꼭두각시놀이 등 연극적 양식의 종목들이 포함된다. 이 견해를 통해 연희의 범주가 그 윤곽을 드러내지만, 그것들을 범주화할만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사진실은 넓은 의미의 연극 개념을 차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공연예술로 사실상 연희를 정의하고, 극(劇)·악(樂)·희(戱)의 장르로 범주화한다. 그리고 극 장르의 대표 종목으로 판소리, 악 장르의 대표 종목으로 정재, 희 장르의 대표 종목으로 탈춤을 예로 든다. 이를 통해 연희 나름의 경계와 범주는 분명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연희는 연극과 동의어가 되어버린다. 1990년대부터 이루어진 개념과 범주 설정 시도를 바탕으로 연희를 정의해본다면, 인간이 자기 몸과 말을 통해서 혹은 악기나 기구 및 가장을 통해서 어떤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근대 이전 한국적 연행 양식의 총칭이라 정리할 수 있다. 이야기, 음악, 노래, 춤, 놀이가 중심이 되어 악, 가, 무, 희의 장르를 통해 구체화 된 한국의 전통적 연행 양식을 연희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가무백희(歌舞百戱)》·《잡희(雜戱)》·《산대잡극(山臺雜劇)》·《산대희(山臺戱)》·《나례(儺禮)》·《나희(儺戱)》·《나(儺)》 등 여러 장르가 공존하는 것들에서부터, 농악·굿·《가면극》·《인형극》·재담과 《우희(優戲)》·판소리·궁중정재 등과 같은 개별적 장르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포괄적인 연희 개념 정의와 범주 설정과는 달리, 연희를 민간에서 벌어진 전통적 연행물로 제한하거나 민속극·농악·굿 등을 중심으로 그 범주를 한정하기도 한다. 1980년대에 시작되어 1990년대에 일반화된 이러한 양상은 나름의 기준이나 체계에 의한 범주 설정이라기보다는 전통예술과 관련한 기존의 체계와 제도를 염두에 둔 결과이다. 이미 공고화된 기존 전통예술 체계나 학문 체계, 그리고 학과 체계와 제도를 감안한 현실적인 범주 설정인 것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기원 전후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거주했던 우리 민족은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과 종교적인 제천의식에서 가무희를 연행했다. 정월에 제천행사를 지내기 위해 모여서 연일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부여의 영고(迎鼓)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에서도 나타난다. 마한(馬韓)에서 역시 5월에 씨를 뿌리고 난 후와 10월 농사가 끝난 후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농경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상고시대의 의식에서 연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제천의식은 나라굿 곧, 국중대회라고도 했다. 온나라 사람들이 모여 크게 행사를 벌였다는 의미이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국중대회 때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연희가 벌어졌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집단적인 춤과 노래, 나름의 복잡하고 장엄한 의식, 그리고 각종 악기연주가 이루어졌음을 추론할 수 있다. 고대의 연희는 이러한 제의와 오락적 연행을 통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천의식과 농경의식에서 제의와 오락, 굿과 놀이, 악·가·무·희·극의 복합체인 원시 종합예술을 향유한 것이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연희는 서역(西域)과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부르는 공연예술이 서역과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고구려 고분 벽화이다. 특히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안악 3호 고분」에서는 서역과 중국의 영향이 나타나는 〈칼재주 부리기〉, 〈수박희〉, 〈가면희〉 등의 연희가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의 연희는 서역과 중국으로부터 영향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연희 역시 중국이나 일본으로 영향을 주기도 했다. 상호 간에 활발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다. 이웃 나라에 영향을 끼친 우리 연희의 대표적 사례가 기악(伎樂)이다. 기악은 백제의 미마지가 중국 남조의 오나라에서 배워 612년 일본에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의 〈환술(幻術)〉이었던 〈입호무(入壺舞)〉 역시 중국으로 전해진 우리의 연희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사자춤〉이었던 〈신라박〉(新羅狛) 역시 이웃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진 신라의 연희이다. 이렇게 삼국시대에서 10세기까지는 상호교류를 통해 연희가 성장할 수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 《연등회》, 《나례》 등이 국가적인 행사로 확고하게 제도화된다. 《팔관회》는 불교의 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자는 의도로 신라시대에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신라의 관행을 이어 고려에 들어와서는 고유한 민속신앙까지 아우르며 크게 성행했는데, 이때 《백희가무(百戱歌舞)》, 《사선악부(四仙樂部)》, 《용봉상마거선(龍鳳象馬車船)》 등과 같은 연희가 연행되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신라에 들어온 《연등회》 역시 고려에 들어와서 성행했다. 불교적인 연행만이 아니라 《산대잡극(山臺雜劇)》으로 통칭되는 여러 공연을 했다. 산대는 산과 같이 꾸민 가설물로서 여러 가지 잡상(雜像)을 장식하여 사람들에게 관람시키거나, 하단(下壇)의 일부를 무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 산대를 중심으로 바다에서 온 선인(仙人)이 과일을 드리는 춤, 북과 징소리에 맞춘 〈처용무〉, 긴 장대 위에서의 〈솟대타기〉, 〈폭죽놀이〉 등의 연행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 《나례》도 전해진다. 원래 귀신을 쫓는 구나의식(驅儺儀式)이었던 《나례》에 유흥을 위한 여러 가지 연희가 덧붙여지면서 《나희(儺戱)》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귀신을 쫓는 〈12지신춤〉 이외에도 〈오방귀무(五方鬼舞)〉, 〈사자무〉, 〈불 토하기〉, 〈칼 삼키기〉, 서역의 〈호인희(胡人戱)〉, 〈줄타기〉, 〈처용무〉, 각종 동물로 분장한 〈가면희〉 등이 연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위에서 살핀 《팔관회》, 《연등회》, 《나례》 이외에도 여러 행사에서 연희가 벌어졌다. 우란분재와 과거급제자 축하 행사가 대표적이며, 그 밖에도 여러 축하 환영 행사에서 다양한 종목의 연행이 자리를 잡았다. 이 행사 속에서 벌어진 연희들은 주로 〈곡예적 연희〉, 〈환술〉, 궁중정재, 〈가면희〉, 〈골계적 우희〉 등이었다. 〈곡예적 연희〉와 〈환술〉은 여러 기록에서 《잡희》, 《백희》, 《가무백희》, 《산대잡극》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궁중정재는 고려시대에 새롭게 생긴 공연예술 종목이다. 중국 송대의 가무희를 도입하여 《팔관회》와 《연등회》는 물론이고 여러 행사에 공연되었다. 〈가면희〉의 경우 고려시대에 전문적으로 가면을 쓰고 노는 〈가면희〉가 있었고, 그 공연 역시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처용무〉인 경우 고려시대에 이르러 《나례》, 중국 사신을 위한 연회, 궁중연회, 개인적 연회 등 다양한 행사에서 연행되었다.
조선의 건국은 연희가 벌어지는 행사의 변화를 가져왔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에서의 연희가 더욱 성대해졌고, 불교의 성행으로 《연등회》·《수륙재》·《우란분재》등 불교 행사에 각종 연희가 벌어졌다. 그리고 중국의 《궁중나례》를 도입하여 《궁중나례》에서의 공연예술도 시작되었고, 왕을 위한 대규모 행사나 궁중연회가 벌어져서 각종 연희가 연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유학의 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이 건국되자, 《팔관회》와 《연등회》는 자취를 감추었다. 〈수륙재》나 〈우란분재》같은 불교 행사 역시 약화되었고 왕을 위한 대규모 행사나 궁중연회 역시 어렵게 되었다. 대신 등장한 것이 중국 사신 영접 행사이다. 《궁중나례》 역시 고려시대와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과거 급제자 축하 잔치인 〈삼일《유가》》(三日遊街)와 《문희연》(聞喜宴)이 성대하게 벌어졌다. 조선 전기 중국 사신 영접 행사는 매우 성대하게 벌어졌다. 〈땅재주〉 혹은 〈솟대타기〉, 〈줄타기〉, 〈방울받기〉, 《인형극》 등의 연희가 벌어졌으며, 그 수준 역시 높았다. 성종(成宗) 19년(1488)에 사신으로 왔던 명(明)나라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에 의하면,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 평양(平壤)과 황주(黃州) 및 서울의 광화문에서 산대를 가설하고 《백희(百戱)》를 공연했다고 한다. 그 《백희》의 내용은 〈만연어룡지희(曼衍魚龍之戱)〉, 〈무동(舞童)〉, 〈땅재주[筋斗]〉, 〈솟대타기[躡獨趫]〉, 각종 동물춤 등이었다. 조선시대 《궁중나례》인 경우 방상시와 십이지신 이외에 판관(判官), 조왕신(竈王神), 소매(小梅)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오락적 성격의 〈방울받기[弄丸]〉, 〈줄타기[步索]〉, 《인형극[傀儡]》, 〈솟대타기[長竿戱]〉 등이 《나례》때 함께 공연되기도 했다. 《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희 종목이 〈처용무〉이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처용무〉가 신라의 헌강왕 때부터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한 사람이 추는 것이었는데, 후대에 5명이 추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오방처용무〉는 이후 연산군 대 이후 《나례》의 문맥을 벗어나 각종 연향(宴享)에서 공연이 되었고, 궁중은 물론이고 민간에서까지 퍼지게 된다. 사대부 집안의 축하잔치, 과거 급제 축하잔치 등에서 〈오방처용무〉가 공연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과거 급제 축하 잔치로는 《은영연(恩榮宴)》, 《유가(遊街)》, 〈문희연(聞喜宴)》 등이 있었다. 이들 행사에서 역시 여러 연희가 벌어졌다. 《은영연》에서는 〈접시돌리기〉, 〈방울받기〉, 〈땅재주〉 등의 연희가 벌어졌고, 《유가》에서는 《삼현육각》과 무동, 광대 등이 참여하여 벌이는 거리 연행이 볼만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연희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 후기에는 각종 국가 행사들이 크게 위축된다. 이에 따라 각종 국가 행사에 동원되던 연희자들이 민간에 퍼져 연행 활동을 벌이게 된다. 또한 민간 경제력의 발전과 연희 연행에 대한 수요 증가는 조선 후기 연희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본산대놀이 가면극〉, 《인형극》, 판소리 등이 독립적인 연희로 연행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이다. 그리고 민간을 떠돌며 공연하는 떠돌이 광대집단이 많이 생겨나 다양한 연희 양상을 보여주었다. 조선 후기에 두드러지는 연희 양상 가운데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이 본산대놀이 계열 《가면극》의 등장이다. 물론 이전에도 가면을 쓰고 연행하는 연희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인 「안악 3호분」에 그려진 〈가면희〉,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하는 백제의 기악, 〈사자춤〉인 신라의 〈신라박〉, 통일신라의 〈대면〉(大面)·〈사자춤〉[狻猊]·〈속독〉(束毒) 등이 그 사례가 된다. 통일신라의 〈처용무〉 역시 가면연희에 해당한다. 고려시대 《나례》에서 역시 방상씨, 창사, 십이신, 처용 등의 가면을 쓴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가면연행의 전통 속에서 독립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연희로서의 《가면극》이 조선 후기에 형성된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가면극》이 이때 형성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면극》은 크게 ‘마을《굿놀이》 계통’과 ‘본산대놀이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은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토착적·자생적 《가면극》을 말한다. 현전하는 것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이 있다.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본산대놀이로부터 전파된 《가면극》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유입된 《산악》 또는 《백희》라고 불리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본산대놀이 가면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이다. 본산대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근교의 《가면극》은 애오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이러한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서울과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황해도의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경상남도의 《수영야류》·《동래야류》·《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 그리고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가면극》의 변화 못지않게 《인형극》 역시 전환이라 일컬을 만한 양상이 조선 후기에 나타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민간 오락적 《인형극》의 흥성이다. 물론 인형을 활용하는 연행이 조선 후기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신격화된 인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의적 인형연행과 즐거운 잔치에서 벌어지는 오락적 인형연행이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민간 오락적 《인형극》이 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인형극》 무대의 구조나 인형 조종술의 수준 역시 높았다. 민간오락적 《인형극》의 흥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현전하는 대표적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이가 이때 형성된다.
조선 시대 오락적 《인형극》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양상은 〈산대잡상놀이〉의 성행이다. 〈산대잡상놀이〉는 정교하게 꾸며진 인형들이 이미 널리 공유된 전형적 상황을 정지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볼거리 중심의 연행이다. 널리 공유된 내용을 입체적 시각화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그 연행 방식이다. 〈산대잡상놀이〉는 세밀하게 만들어진 인형들의 진열을 통해 전형적 상황의 전형적 장면을 표현한다. 〈산대잡상놀이〉의 사례로는 연산군 때 궁중에서의 연행, 1725년 중국 사신 아극돈(阿克敦)을 위해 벌어진 연행이 꼽힌다. 그리고 1865년 경복궁 중건과 관련해서 벌어진 연행을 묘사한 『기완별록(奇玩別錄)』의 〈금강산놀이〉, 〈팔선녀놀이〉, 〈신선놀이〉, 〈상산사호놀이〉 등도 대표적인 〈산대잡상놀이〉이다. 여기에서는 인형이 정적인 상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인형들이 자리한 산대가 움직이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조선 후기에는 《인형극》과 《가면극》이 독자적인 연희로 자리잡는다. 판소리 역시 이러한 흐름을 함께 한다. 이러한 전환과 더불어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양상이 다양한 떠돌이 광대집단의 등장과 활약이다. 남사당패, 사당패, 대광대패, 솟대쟁이패, 초라니패, 풍각쟁이패, 광대패, 걸립패, 중매구, 굿중패 등 다양한 명칭의 떠돌이 연희집단이 등장하여 나름의 연행 활동을 한다.
이들은 각 패거리의 특성에 따라 고유한 연희 종목들을 연행했다. 떠돌이 광대집단이 연행한 종목들을 보면 〈풍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인형극), 〈얼른〉(요술), 〈사당버꾸춤〉, 잡가, 〈죽방울돌리기〉, 〈나무공던지기〉, 〈초라니굿〉(가면극), 악기연주, 〈검무〉, 〈한량굿〉, 〈오광대가면극〉, 〈비나리〉(덕담) 등에 걸쳐 있다.
조선이 패망의 길로 향하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연희는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통적 연행물 대부분이 실내 극장에서 공연을 시도하게 되었고, 이러한 공연을 일컫는 명칭으로 연희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그러나 실내 공간으로 들어간 대부분의 연희는 주변으로 밀려난다. 오직 판소리만이 창극으로 변모하여 20세기 전반기 연희의 근대화 요구에 조응했다.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1970년대를 전후하여 전통에의 관심 증대와 이에 따른 주요 연희 종목의 복원과 전승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재는 무용으로, 판소리는 음악으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가면극》, 《인형극》, 떠돌이광대패의 연희, 농악, 〈줄타기〉, 굿 등이 다시 주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고유의 속성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대의 요구에 조응하려 애쓰고 있다.
○ 연행 시기와 장소
연희는 특정 장르나 종목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연행되는 시기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연행 시기를 기준으로 연희를 분류해 보면 먼저 농경 세시에 따라 대보름연희, 단오연희, 추석연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보름연희로는 야류와 오광대 계통의 《가면극》, 마을《굿놀이》 계통의 《가면극》, 그리고 마을 공동의 제의적 성격이 강한 굿으로 연행하는 농악이 있다. 《동래야류》, 《수영야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 《북청사자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 《임실필봉농악》, 《구례잔수농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단오연희에는 탈춤 계통의 《가면극》이 있다.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강릉관노가면극〉 역시 강릉단오제 문맥에서 벌어지기에 단오연희라 할 수 있다. 추석연희로는 위에서 단오연희에서 언급했던 탈춤 계통의 《가면극》을 예로 들 수 있다. 단오 때와 더불어 추석 때 연행되곤 했던 것이 탈춤 계통의 《가면극》이었다. 불교적 기념일에 연행하던 연희도 있다. 석가탄신일인 사월 초파일에 연행하던 초파일연희와 7월 15일 백중에 연희하던 백중연희가 그것이다. 초파일연희로는 탈춤 계통의 《가면극》이 해당되며, 백중연희로는 〈밀양백중놀이〉가 대표적이다. 굿을 연행하는 무당들의 경우 자신이 믿는 주신에 대하여 봄과 가을에 굿을 하는데, 이를 〈꽃맞이놀이〉와 〈단풍맞이놀이〉라 한다. 연희가 벌어지는 장소 역시 다양하다. 연희가 서양식 실내 극장에서 연행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일반 건물의 실내를 임시 연행 장소로 활용하거나 가설무대를 만들어서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야외 마당이나 계곡을 이용했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연희를 마당놀이라 불렀는데, 대부분의 《가면극》이나 농악이 이에 해당한다. 야희 역시 마당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계곡의 굿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희는 굿당놀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는 무당이 주도하는 굿이 해당한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거리에서도 연희가 벌어졌다. 그래서 길놀이 혹은 거리굿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거리에 벌어지는 연희의 예로는 《나례》, 《산대희》, 농악 등이 있다. 실내 연행은 그 장소에 따라서 〈궁중놀이〉, 〈정자(亭子)놀이〉, 〈사랑방놀이〉, 〈대청(大廳)놀이〉 등으로 불렀다. 정자나 재각이나 누내나 사랑방 같은 곳에서 노는 놀이를 풍류방놀이라고도 하였다. 가설무대는 산처럼 높은 무대라 하여 산대놀이라 하였다.
연희의 특징은 악가무가 함께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백희》, 《가무백희》, 《잡희》, 《산대잡극》, 《산대희》, 《나례》, 《나희》, 《나》 등을 총괄하는 개념인 《산악》ㆍ《백희》를 우리 연희의 모태 혹은 초기 형태로 인식하는 시각은 곧, 무용ㆍ음악ㆍ 연극ㆍ체육ㆍ무술이 세분화하지 않은 채 연행되던 고대의 총체예술인 《산악》ㆍ《백희》를 우리 연희의 모태 혹은 초기 형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악가무가 미분화된 총체예술로서의 연희 속성 혹은 특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마을굿을 그 근원으로 하여 무당굿ㆍ풍물굿ㆍ탈춤ㆍ판소리ㆍ창극 등이 분화된 것이며, 이 분화는 모두 마을굿의 어떤 특정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집중 강화하여 변형한 것이라는 시각의 밑바탕에도 악가무 일체 혹은 총체예술로서의 연희라는 본성이 전제되고 있다. 연희는 흔히 음악과 노래와 춤이 뒤섞여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종합예술의 성격이라는 언급이나, 고대 제천의식의 악(樂)ㆍ희(戱)ㆍ극(劇)이 어우러진 특성을 바탕으로 우리 연극사 기술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시각 역시 연희의 시원이 갖는 종합예술성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 문명권,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힌두 문명권을 포괄하여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전 지역에 있어서 음악과 무용과 연극은 분화되지 않는 것이 전통이며 또 보편적 특질이라는 언급이나, 음악과 무용과 연극이 분화되지 않은 형태로 양식화된 것은 아시아 문명 전체의 인류학적 환경의 보편성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또 우리 문명의 특수성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시각, 그리고 판소리는 음악과 춤과 연극이 미분화된 상태에서의 본질적 융합이 이루어 놓은 예술의 심화 형태등의 시각 등은 아시아 차원에서 우리 연희의 악가무 일체성, 종합예술성, 총체예술성 등을 미분화와 그 심화라는 용어로 재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학자가 언급한 우리 연희의 특성 혹은 속성에 대한 시각은 총체예술성, 종합예술성, 종합예술성과 특정 요소의 집중과 그 강화, 미분화와 그 심화 등으로 그 표현을 달리하고 있지만, 악가무 혹은 악가무희가 함께 어우러지고, 그 심화 과정을 통해 특정 연희 유형이 형성된다는 시각은 동일하다. 악가무 혹은 악가무희의 어우러짐은 우리 연희의 핵심적 특성이자 이후 우리가 창조적으로 이어 나가야 할 전형인 것이다.
민속극, 판소리, 농악, 굿 등의 주요 연희 종목을 중심으로 지정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국가무형문화재: 양주별산대놀이(1964), 남사당놀이(1964), 판소리(1964), 통영오광대(1964), 고성오광대(1964), 진주삼천포농악(1966), 평택농악(1985), 이리농악(1985), 강릉농악(1985), 임실필봉농악(1988), 구례잔수농악(2010), 김천금릉빗내농악(2019), 남원농악(2019), 북청사자놀음(1967), 봉산탈춤(1967), 동래야류(1967), 강령탈춤(1970), 처용무(1971), 학연화대합설무(1971),= 수영야류(1971), 송파산대놀이(1973), 영산재(1973), 줄타기(1976), 은율탈춤(1978), 밀양백중놀이(1980), 하회별신굿탈놀이(1980), 양주소놀이굿(1980), 제주칠머리당영등굿(1980), 진도씻김굿(1980), 가산오광대(1980), 발탈(1983), 진도다시래기(1985), 동해안별신굿(1985),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1985), 남해안별신굿(1987), 황해도평산소놀음굿(1988), 경기도도당굿(1990), 서울새남굿(1996), 제주큰굿(2021)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판소리(2003), 남사당놀이(2009),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 줄타기(2011), 농악(2014), 한국의 탈춤(2022)
[범주와 세부 종목] ○ 범주와 내용 인간이 자기 몸과 말을 통해서 혹은 악기나 기구를 통해서 어떤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근대 이전 한국적 연행 양식이 총칭이라 연희를 규정하는 것은 포괄적인 개념 규정이다. 이러한 개념 규정에 따른다면 연희의 범주에는 《산악》ㆍ《백희》, 《가면극》, 《인형극》, 판소리, 농악, 굿과 《굿놀이》, 《우희》, 정재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9개로 나누어진 연희의 범주를 구성하는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범주 | 내용 |
《산악》ㆍ《백희》 | 곡예와 묘기, 〈가면희〉, 동물재주부리기, 괴뢰희, 골계희(《우희》), 〈환술〉, 가무희, 각종 악기연주 |
《가면극》 | 본산대놀이 계통, 마을《굿놀이》 계통 |
《인형극》 | 진열 방식의 《인형극》(산대잡상놀이), 극적 연출의 《인형극》(꼭두각시놀이) |
판소리 | 전승 판소리, 실전 판소리 |
농악 | 경기 북부, 웃다리, 아랫다리, 영서, 영동, 경북, 경남, 호남좌도, 호남우도 |
굿 | 마을굿, 개인 경사굿, 개인 우환굿, 무당을 위한 굿 |
《굿놀이》 | 서울ㆍ경기 지역, 황해ㆍ평안 지역, 동해안 지역, 전라 지역, 남해안 지역, 제주 지역 |
《우희》 | 궁중광대의 《우희》, 민간광대의 《우희》 |
정재 | 당악정재, 향악정재, 민간기원 정재 |
○ 유형과 세부 종목
위에서 9개의 범주로 나눈 것을 대유형이라 할 때, 대유형을 구성하는 내용은 중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유형과 중유형을 설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세부 종목들(소유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유형 | 중유형 | 세부 종목(소유형) |
《산악》ㆍ《백희》 | 곡예와 묘기 | 〈방울받기〉, 〈줄타기〉, 〈솟대타기〉, 나무다리걷기, 곤봉과 방울 엇바꾸어받기, 바퀴돌려올리기, 말타기 재주, 씨름, 〈수박희〉, 칼재주부리기, 금환 |
〈가면희〉 | 고구려 〈가면희〉, 신라 〈처용무〉, 신라 황창무, 〈사자춤〉, 〈신라박〉, 〈대면〉, 〈속독〉, 산예, 〈오방귀무〉, 백택무, 서역 〈호인희〉, 신수무, 백수희 | |
동물 재주 부리기 | 원숭이 재주부리기, 염소 재주부리기 | |
괴뢰희 | 고구려 《인형극》, 고려 가상희, 헌과선인놀이(산대잡상놀이) | |
골계희(《우희》) | 월전, 주유희, 창《우희》, 공물바치기 놀이 | |
〈환술〉 | 신라 〈입호무〉, 불토해내기, 칼삼키기 | |
가무희 | 고구려 호선무, 고구려 광수무, 무애희, 사선악부, 용봉상마거선 | |
각종 악기 연주 | 고구려악 | |
《가면극》 | 본산대놀이 계통 |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수영야류》, 《동래야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남사당 〈덧뵈기〉 |
마을《굿놀이》 계통 |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릉관노가면극〉, 《북청사자놀이》 | |
《인형극》 | 진열 방식의 《인형극》 | 봉사도의 〈산대잡상놀이〉, 금강산놀이, 팔선녀놀이, 신선놀이, 상산사호놀이 |
극적 연출의 《인형극》 | 〈괴뢰희〉에서 묘사된 《인형극》, 〈괴뢰붕〉에서 묘사된 《인형극》, 〈남성관희자〉에서 묘사된 《인형극》, 꼭두각시놀이, 서산박첨지놀이 | |
판소리 | 전승 판소리 |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
실전 판소리 | 변강쇠가,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전, 장끼전, 왈짜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 |
농악 | 경기 북부 | 양주 등의 농악 |
웃다리 | 안성, 평택, 대전, 화성 등의 농악 | |
아랫다리 | 충청도 서남부 지역의 농악 | |
영서 | 원주, 횡성, 춘천, 철원 등의 농악 | |
영동 | 강릉, 삼척, 고성 등의 농악 | |
경북 | 예천 통명, 안동, 김천 빗내, 대구 고산, 청도 차산, 포항, 영덕 등의 농악 | |
경남 | 밀양, 함안 칠북, 진주ㆍ삼천포, 김해, 부산 아미 등의 농악 | |
호남좌도 | 금산, 무주, 임실, 남원, 곡성, 화순, 여수 등의 농악 | |
호남우도 | 익산, 정읍, 김제, 나주, 함평, 장흥, 목포 등의 농악 | |
굿 | 마을굿 | 경기도 도당굿, 남해안 별신굿, 동해안 별신굿, 제주도 본향당굿, 제주도 영등굿, 대동굿, 서해안 배연신굿, 은산별신제, 서울당굿 |
개인 경사굿 | 함경도 성주굿, 함경도 센굿, 황해도 소놀이굿, 충청도 안태굿, 충청도 삼신굿, 전라도 도신 | |
개인 우환굿 | 치병굿(함경도 횡수맥이, 함경도 간지풀이, 황해도 퇴송굿, 황해도 호살량굿, 전라도 제왕맞이굿, 전라도 삼설양굿, 충청도 병굿), 저승천도굿(진오귀굿, 동해안 오구굿, 새남굿, 평안도 다리굿, 시왕굿, 황해도 수왕굿, 수망굿, 함경도 망묵굿, 전라도 씻김굿, 충청도 넋굿, 남해안 오구새남굿 등) | |
무당을 위한 굿 | 내림굿(황해도 내림굿, 제주도 신굿, 충청도 신명굿), 진적굿(황해도 만구대택굿, 황해도 꽃맞이굿, 서울 햇곡맞이굿) | |
《굿놀이》 | 서울ㆍ경기 지역 | 서울굿 뒷전놀이, 경기도 양주굿 뒷전놀이, 양주소놀이굿, 경기도 도당굿 뒷전 |
황해ㆍ평안 지역 | 영산할멈 할아범거리, 도산말명에 방아놀이, 사냥굿, 사또놀이, 소당애기씨놀이, 소놀이굿, 마당굿, 중놀이, 자리곰방놀이, 방아놀이 | |
동해안 지역 | 거리굿, 도리강관원놀이, 탈굿, 중도둑잡이놀이, 호탈굿, 광인굿, 막동이놀이 | |
전라 지역 | 중천맥이, 삼설양굿 | |
남해안 지역 | 망석놀음(탈광대), 비비각시 적덕이놀이 | |
제주 지역 | 전상놀이, 영감놀이, 세경놀이, 악심꽃꺾기, 강태공서목시놀이, 구삼싱냄, 불찍앗음, 칠성새남, 산신놀이, 입춘《굿놀이》 | |
《우희》 | 궁중광대의 《우희》 | 맹인취인지상(盲人醉人之狀), 형조낭청(刑曹郎廳)놀이 , 당상관놀이, 송민농시(誦憫農詩) 등, 노유희(老儒戱), 진상(進上)놀이, 종실양반놀이, 무포세(巫布稅)놀이, 탐관오리놀이, 도목정사놀이 |
민간광대의 《우희》 | 배뱅이굿, 장대장네굿, 발탈, 〈줄타기〉, 창무굿, 다시래기 | |
정재 | 당악정재 | 헌선도, 수연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 몽금척, 하황은, 육화대, 수보록, 근천정, 수명명, 하성명, 성택,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재수창, 최화무 |
향악정재 | 무고, 아박무, 무애무, 봉래의, 향발무, 학무, 〈처용무〉, 가인전목단, 검기무, 고구려무, 공막무, 관동무, 관동무, 만수, 망선문, 무산향, 박접무, 보상무, 사선무, 선유락, 침향춘, 영지무, 첨수무, 첩승무, 춘광호, 춘대옥촉, 춘앵전, 향령무, 경풍도, 헌천화 | |
민간기원 정재 | 〈검무〉, 항장무, 선유락, 〈사자무〉, 관동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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