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빗내농악, 김천빗내농악, 빗내농악
경상북도 김천시(金泉市) 개령면(開寧面) 광천동(廣川洞)에 전승되어 온 농악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천금릉빗내농악’은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상북도 내륙지역 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김천금릉빗내농악은 양손으로 치는 대(大)북놀음이 웅장하고, 《판굿》(《영풍굿》, 《영산다드래기》)에서 드러나는 《군사진(軍事陣)굿》이 두드러진다.
빗내농악은 옛 감문국의 “나랏제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가 혼합한 동제(洞祭)에서 유래하였다. 빗내농악은 선산군의 《무을농악》과 그 뿌리를 같이하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작은 선산의 《무을농악》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빗내농악이 더 번성하였고, 원래의 《무을농악》은 잠시 쇠퇴하였다. 따라서, 민속학자들은 《무을농악》을 금릉(김천) 일대에서 전승된 빗내농악의 조상격으로 평가한다.
○ 역사 변천 과정 빗내(廣川)마을은 삼한시대 감문국에 속했으며, 넓은 개령들을 앞에 두고 뒤에는 감문산성의 성터가 있으며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로 신호했다는 취적봉이 있다. 빗내마을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장으로, 오늘날 개령면 광천리의 다른 이름이다. 김천금릉빗내농악(이하 빗내농악)의 시작은 대체로 200여년전 절(정재진의 수다사)굿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재진이라고 하는 인물의 전승계보는 대체로 불분명하나 그 이후의 대략 100여년 간은 계보가 비교적 분명하게 전승됨이 확인된다. 빗내농악의 상쇠 전승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쇠의 계보>>
〈표 1〉 빗내농악 상쇠 전승계보
역할 | 성명 | 생몰연대 | 활동시기 | 출신지역 |
1대 상쇠 | 정재진 | - | - | 무을면 삼송리(수다사) 승려 |
2대 상쇠 | 이군선 | - | 1868~ | 무을면 오가리 출신 |
3대 상쇠 | 윤상만(윤성문) | 1879~1942 | -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4대 상쇠 | 우윤조(우동준) | 1890~1961 | 1915~1955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5대 상쇠 | 이남훈(이남문) | 1902~1952 | 1920~1950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6대 상쇠 | 김홍엽 (1984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22~1988 | 1940~1988 | 개령면 광천 출신 |
7대 상쇠 | 한기식 (1990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31~2010 | 1962~2004 | 개령면 광천 출신 |
8대 상쇠 | 손영만 (2012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64~ | 1980~현재 | 김천시 황금동 |
○ 연행 시기 및 장소 김천금릉빗내농악은 마을굿의 전통 속에서 우러난 농악이다. 빗내 지역에서는 마을굿을 흔히 ‘《빗신굿》’이라고 하는데, 《빗신굿》은 마을굿의 계통인 해안가의 별신굿과 견줄 수 있으나, 그것과 다른 즉, 물굿이 아닌 내륙지역 마을굿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농악이다. 빗내의 《빗신굿》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마을의 농악꾼과 이웃하고 있는 마을의 무당이 서로 가락 대결을 하면서 놀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함께 가락을 겨루는 것을 이른 바, “씨순다”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것으로 보아 《빗신굿》은 무당과 농악대가 함께 협화해서 일구어낸 일종의 정월 대보름에 하는, 곧 지신밟기와 같은 형태로 보여진다. 빗내 지역의 《빗신굿》은 해방이후 중단되었다가, 2000년대 초 《빗신굿》 재현 행사를 통해 복원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 기본구성 및 복색 빗내농악의 기본구성은 쇠 4명, 징 4명, 북 8명, 장구 8명, 소고 16명, 영기 2명, 농기 1명, 잡색 3명으로 편성 인원은 46명 정도이다. 빗내농악에서 장구보다 북 치배가 앞에 서는 것은 경북농악의 일반적인 특징과 같지만, 빗내농악만의 특징이라면 다른 지역에 비해 큰 북을 장구처럼 메고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치는 ‘양북’의 형태로 연주를 한다는 점이다. 빗내농악의 기본 복색은 흰색 저고리와 흰색 바지에다 검은색 조끼를 입으며 홍ㆍ황ㆍ녹 (紅ㆍ黃ㆍ錄) 삼색띠와 머리에는 전립과 흰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고깔을 쓴다. 특히, 상쇠는 등판에 장군을 상징하는 지름 10cm 정도의 원형 청동거울(홍박씨, 함박씨)을 달고, 앞이마에 꽃을 달며, 채에 오색천을 달아 지휘자임을 상징한다. ○ 연행절차 및 내용 금릉빗내농악의 판굿 구성은 모두 12마당이며, ⒈문굿, ⒉골매기굿, ⒊마당굿, ⒋영풍굿, ⒌판안다드래기(소리굿), ⒍기러기굿/소쩍굿, ⒎허허굿, ⒏쌍둥이굿/오방진굿, ⒐판굿, ⒑영산다드래기, ⒒진굿, ⒓상사굿 순으로 진행된다.
5) 처음 등장하는 장단명은 ‘진하게’ 표시하여 구분하였다. ‘진하게’가 없는 장단명은 앞에서 등장한 장단명이다. 6) 마소는 말과 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얼씨구’, ‘어허!’, ‘어허허허~’, ‘이히히히~’, ‘이효~’와 같이 마소 모는 소리를 흉내 내며 신명을 내뿜는 소리.
○ 음악적 특징 빗내농악의 가락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가락이 굳세고 힘이 있게 들리는 것은 빗내농악 가락의 소박함이 원초적 야성을 구현하는데 특정한 가락 운용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빗내농악의 장단은 기본적으로 빠른 장단을 구사하는데, 빠르기와 혼소박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빗내농악에 사용된 장단의 박자구조를 혼합박자형, 굿거리형, 자진모리형, 휘모리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빗내농악의 혼합박자 장단형으로는 ‘골매기굿’ 장단이 있으며, 골매기굿은 길을 걸으면서 연주하는 장단으로 ‘질굿’이라고도 한다.
빗내농악의 굿거리형은 ‘상사굿’이 대표적으로, 상사굿 장단은 ‘덧배기’라고도 한다. 덧배기는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춤 장단의 명칭이기도 하며, 지역에 따라 굿거리형을 지칭하기도 하고 자진모리형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빗내농악에서는 주로 굿거리형을 지칭한다. 덧배기는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장단으로 상쇠의 기량에 따라 자유변주가 매우 다채로운 장단이다.
빗내농악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자진모리 장단형은 ‘정저굿’ 장단으로, 정저굿은 연행과정의 분위기와 절차에 따라 빠르기를 다르게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변주형의 장단으로 연주된다.
빗내농악의 휘모리 장단형은 ‘다드래기’와 같이 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역할로 가장 많이 쓰이며, ‘도드래기’, ‘품앗이’와 같이 진풀이의 순서에 따라 짜여진 장단으로 활용되어 연주하기도 한다. 또, 휘모리 두 장단을 한 세트로 반복구를 구성한 ‘행진가락’도 있다.
빗내농악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중앙에 위치하는 중심부 농악으로 경상도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농악이며, 빗내농악의 구성방식을 본다면 군사훈련을 형상화한 진법과 진풀이가 다수 편성되어 군악(軍樂)적인 요소가 강하다. 큰북은 북채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치는데, 특히 왼손의 북채는 북통을 두드리고 소리가 ‘또드락’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에 ‘또드락채’라고 부른다. 또드락채의 사용은 절에서 법고를 칠 때 채를 두 개씩 쓰면서 테두리를 두드리는 연주법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전라남도 진도의 북춤과 대비하여 채를 두 개 쓰는 것은 공통적이나 북의 크기와 그 연행 방식에 있어 기교의 차이가 있으며, 그것 자체로 빗내농악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김천금릉빗내농악: 국가무형문화재(2019)
김헌선, 『금릉빗내농악: 진굿의 전통과 혁신』, 민속원, 2016. 정모희, 「대구ㆍ경북농악의 음악적 연구」,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문화재청(www.cha.go.kr/html). 빗내농악전수관(www.gc.go.kr/bitnae/html).
정모희(鄭牟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