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우도이리농악, 이리굿
전라북도 익산시(옛 이리시)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농악
이리농악은 익산시에 소재한 ‘새실’ 마을이 보유해 온 문화 전통 위에 《호남우도농악》의 공연 양식이 융합되어 세월을 거치면서 지역 토착 농악으로 거듭난 경우이다. 이리농악은 농악의 예술 요소 중에 음악을 중시하는 농악으로, 오채질굿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가락과 삼채 유형의 가락을 다양하게 변주시켜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설장구놀음이 발달하였고, 뚜렷한 장구잽이 계보가 주축이 되어 전승해 온 농악이다.
이리농악은 한국 농악의 지역 분류에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호남우도농악》은 전라북도 서부 평야지대 및 일부 해안 지역의 문화전통이 농악 공연양식의 내용과 성격에 반영되어 상호 보편적 특성을 보유한 농악 중심의 문화권역을 지칭한다. 대표적인 《우도농악》 전승지는 익산을 비롯하여 김제, 정읍, 고창, 부안을 들 수 있으며, 이 지역의 농악은 공연 형태와 내용, 전승 배경에서 상호 공통 요소가 많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문 연예농악이 발달한 호남 우도 지역의 농악 전승 맥락은 이리농악 형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호남우도농악》은 1900년대 들어와서 정읍의 김도삼(金道三, 1876-1942), 부안의 김바우(金판암, 1896~), 장성의 최화집(崔化集, 1870대~)과 같은 걸출한 상쇠들에 의해 수준 높은 공연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정읍과 김제, 부안, 고창, 영광, 장성 등지의 기량이 뛰어난 농악인들이 이합집산 형태로 단체를 꾸려가며 전문적인 연예농악 활동을 전개한 결과, 해방 이전에 이미 꽤 광범위한 범위에서 보편적인 공연양식을 공유하는 경향이 형성되었다. 해방 이후로도 얼마간은 ‘정읍농악단’, 김제 ‘백구농악단’ 등의 걸립농악 단체가 맹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여성국극의 높은 인기에 이어 ‘여성농악단’이 등장하여 크게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와는 반대로 활발히 활동해 오던 이전 남성 위주의 우도농악 공연단체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남성 농악인 상당수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부안 출신이면서 걸립패에 속하여 연예농악을 연행해 오던 김형순(金炯淳, 1933-2017)년 출생이 익산시에 정착하게 되고, 1953년 ‘새실마을’에서 풍물계(風物契)를 조직하여 농악 활동을 지속해 가는 과정에서 1959년 농악단을 결성하였다. 이후 김제, 정읍 등지에서 활동하던 전문 농악인들을 받아들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익산에 뿌리를 내린 호남 우도 이리농악이 형성되게 되었다. 김형순은 본래 부안 출신으로 김도삼, 최화집과 함께 1900년대 초반 우도농악 권역에서 폭넓게 활동한 김바우 상쇠의 문도(門徒)로 농악을 시작하였고, 젊은 시절 김바우가 이끄는 걸립농악을 경험한 인물이다. 익산에 정착한 김형순은 익산 시내에 위치한 ‘배산’이란 곳과 ‘새실마을’ 두 곳을 계모임과 농악단 연습 장소로 이용하였다. 차츰 기반이 잡히면서 김제ㆍ정읍ㆍ부안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농악인들을 규합하고, 제대로 구성을 갖춘 ‘이리농악단’을 출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수남(쇠)ㆍ김형순(장구)ㆍ백원기(징)ㆍ김방현(법고)ㆍ김갑동(장구)ㆍ강수병(장구)ㆍ전막동(대포수) 등이 풍물계부터 이후 ‘이리농악단’에서 함께 활동한 비교적 초창기 인물들에 해당한다. 또, 초창기에 결합한 타지 출신 전문 농악인 중에는 김제 출신의 김문달(쇠)ㆍ현판쇠(쇠)ㆍ양병권(채상소고)ㆍ이준용(장구) 등이 있었고, 정읍 출신 농악인으로는 전사섭(장구)이 함께 했으며, 부안 출신 농악인에는 이동원(장구)과 박남석(쇠)이 있었다.
이리농악의 치배는 기잽이, 호적수, 쇠잽이, 징잽이, 장구잽이, 북잽이, 소고잽이로 구성하고, 잡색은 대포수창부ㆍ조리중ㆍ무동·양반 등으로 구성한다. 기치(旗幟)는 용기 2기, 농기 1기, 영기 2기를 편성함으로써 총 다섯 명의 기잽이를 둔다. 쇠잽이는 상쇠 외 서너명의 쇠잽이를 두는데, 행렬에서 상쇠 뒤에 서는 순서대로 부쇠ㆍ삼쇠ㆍ종쇠[끝쇠] 등으로 구분해 부른다. 징잽이는 2~4명 정도를 전체 판 구성에 비례하여 편성하고, 수징·이징·삼징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장구잽이는 칠팔 명 정도 두고, 수장구ㆍ부장구ㆍ삼장구…끝장구 등으로 구분해 부른다. 북잽이는 3~4명 정도를 편성하고, 수북ㆍ부북…끝북 등으로 구분한다. 소고잽이는 고깔소고를 쓴 소고잽이와 채상모를 쓴 소고잽이를 각각 4~6명 정도 편성하고, 수법고ㆍ부법고…끝법고 등으로 부른다. 이리농악 치배 구성을 보면 다른 우도지역 전문 연예농악 계통과 마찬가지로 잡색의 유형과 역할이 적다. 이것을 통해서 잡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끄는 《판놀음[뒷굿]》 전승이 인접한 호남 좌도농악 권역의 공연양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하겠다. 또, 본래 이리농악 공연 판제에서는 채상소고잽이 없이 고깔소고잽이만 편성되었으나, 2000년 전후로 채상소고잽이를 다수 편성하여 공연의 시각적 미학을 높이는 변천 양상이 발견된다. 이리농악의 음악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가락은 《판굿》 초반부 〈질굿〉 절차에서 연주하는 오채질굿 가락이다. 《판굿》 초반부에 〈입장굿〉에 이어지는 〈질굿〉 절차에서 오채질굿 가락을 치면서 원진(圓陣)을 전개할 때 그 회전 방향에 따라 〈우질굿〉과 〈좌질굿〉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관습적으로는 오채질굿이라고 하면 〈우질굿〉을 지시하는 것이고, 〈좌질굿〉만 명칭을 달리해서 부른다. 또, 이리농악은 삼채가락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고, 여러 리듬 유형의 삼채가락을 목적과 기능에 따라 구분하여 씀으로써 음악적 다양성과 통일성 구현을 삼채가락을 통해 꾀하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리농악의 공연 판제는 크게 그 목적과 연행 장소에 따라 걸립(乞粒) 형태의 《문굿》, 《들당산굿》, 《샘굿》, 《마당밟이굿》 그리고 현재의 공연 환경에서 가장 자주 연행하는 《판굿》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걸립은 전문 농악인이나 마을 농악대가 일정의 목적을 가지고 물질적 수입을 얻기 위한 농악 연행을 말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공연 판제와 절차 구성에서 전국 보편적인 경향을 띤다. 이리농악의 걸립굿은 《문굿》으로 시작해서 《들당산굿》, 《샘굿》, 《집굿》/《마당밟이》의 순서로 진행한다. 이리농악 《판굿》은 ‘마당’으로 큰 절차를 구분하고 총 네 개의 마당[굿거리]을 구성한다. 첫째마당에는 〈입장굿〉과 〈질굿〉 두 부분을 구성한다. 〈입장굿〉은 굿패가 판으로 진입하여 관객을 향해 인사를 올리는 첫 절차다. 질굿은 이리농악의 범주를 넘어서서 우도농악 문화권이 공유하는 상징적인 음악 요소로서의 오채질굿 가락을 주제로 하는데, 기본 리듬형과 변주 리듬형으로 바꿔가며 길게 연주한다. 둘째 마당은 ‘〈오방진굿〉’이라고 하여 동서남북과 중앙, 다섯 방위에 멍석말이진을 쌓고 풀어가며 진행하는 진법놀음을 위주로 절차를 구성한다. 셋째 마당은 ‘〈호호굿〉’이라고 하여 느리게 치는 호호굿가락과 빠른 속도의 자진호호굿가락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넷째 마당은 치배의 개별 재능을 뽐내는 ‘개인놀이’ 절차로써, 쇠ㆍ장구ㆍ법고ㆍ열두발상모 잽이들이 각각의 짜여진 개인기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리농악 《판굿》 구성 가락은 인사굿ㆍ일채ㆍ이채ㆍ삼채ㆍ질굿ㆍ오채질굿ㆍ양산도ㆍ오방진ㆍ진오방진ㆍ낸드래미ㆍ호호굿ㆍ달어치기/머리숙임 등이 있고, 장구잽이만 연주하는 숫바다듬 가락이 있다. 이 외, 한 절차굿을 마감하기 위해 연주하는 매도지ㆍ긴매도지ㆍ이리매도지(짧은매도지) 등이 있고, 별도의 머릿가락[도입 신호 가락]을 치는 경우는 질굿에서 양산도로 바뀔 때, 〈호호굿〉 도입부가 있다.
굿 유형 | 굿거리 | 세부 절차 | 음악 및 기타 예술요소 |
《문굿》 | 달어치기 | ||
멍석말이 | |||
《들당산굿》 | 《질굿》 | 벙어리일채가락 | |
고사굿 | 된삼채가락 | ||
안바탕 | 안바탕가락 | ||
미지기굿 | 미지기가락 | ||
개인놀이 | 법고놀이→쇠놀이→장고놀이→열두발상모놀이 | ||
인사굿 | 벙어리삼채가락 | ||
《샘굿》 | 《질굿》가락-내드름가락-《샘굿》가락-된삼채가락-매도지 | ||
《집굿》/집돌이 | 집안《문굿》 | ||
마당굿 | 내드름-휘모리(오방진 놀음) | ||
고사굿/성주굿 | 성주풀이,노적타령,나락타령, 액맥이 등의 노래를 축원가로 부름 | ||
조왕굿/정지굿 | 조왕굿가락-된삼채가락-매도지-인사굿-긴삼채(이동) | ||
철용굿/장독대굿 | 된삼채가락-철용굿가락-인사굿 | ||
마당놀이/구정놀이 | 구정놀이 | ||
인사굿 | |||
《판굿》 | 첫째마당 | 인사굿/《입장굿》 | 청령-일채(어룸굿)-이채(휘모리)-매도지 일부-이채-인사굿 |
《질굿》 | 인사굿-《질굿》가락-양산도가락-매도지 | ||
둘째마당 | 〈오방진굿〉 | 오방진가락-진오방진가락-덩덕궁이가락-연풍대가락-긴삼채가락-매도지 | |
셋째마당 | 호호굿 | 호호굿가락-자진호호굿가락-덩덕궁이가락-긴삼채-매도지 | |
넷째마당 | 개인놀이 | 법고놀이→쇠놀이→장고놀이→열두발상모놀이→기놀이 | |
(도둑잽이굿) |
1950년대 하나의 계조직으로 출발한 이리농악단은 정착 마을의 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우도 지역의 명인들과의 교류와 합류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시켰다. 이리농악단은 1985년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1985년 12월 1일자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이리농악은 농악을 구성하는 여러 예술요소 중 음악을 중심으로 발전한 《호남우도농악》의 예술적 특징을 대표하는 농악이다. 또, 설장구놀음의 계보와 판제를 매우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며 작고한 김형순의 설장구놀음 판제는 이리농악보존회 소속 장구잽이 단원들이 계승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5)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2014)
이소라, 『이리농악』, 화산문화, 2000. 정병호, 『농악』, 열화당, 1986. 양옥경, 「호남 우도농악 판굿의 음악구조와 구성원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4.
양옥경(梁玉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