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굿, 당제굿, 당산제굿, 당산제만굿, 당산매구, 서낭굿, 성황굿, 제굿, 제 모시는 굿
마을신에게 인사하거나 축원을 하며 치는 농악
마을신에 제의를 행하는 농악을 당산굿이라고 한다. 충청도ㆍ전라도ㆍ경상도 일대는 마을제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농악을 연행하는 전통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여러 날에 걸쳐 농악을 치며 마을축제를 행하는데, 가장 먼저 들러서 인사하는 곳이 당산이다. 그래서 당산굿이 전승되는 곳은 농악을 연행하기 전에 당산에 들어 당산굿을 친 후 〈마당밟이〉와 〈판굿〉 등을 한다. 마을농악의 전통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전라도의 경우 들당산과 날당산 등의 격식이 전승되고, 당산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락이나 행위가 존재한다.
신에게 제의를 행하는 방식으로서 농악은 오래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민간의 제의전통은 농악형, 무당굿형, 유교식제사형, 복합형이 있는데, 그중에서 농악과 〈무당굿〉의 제의방식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성립ㆍ지속된 전통이다. 그리고 동제에서 농악으로 의례를 행하는 당산굿은 충청ㆍ전라ㆍ경상지역에 집중적으로 전승되고 있어서 지역적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의 제의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산굿의 시원은 고대의 농경의례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마한 기록에서 “해마다 5월에 씨뿌리기가 끝나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무리가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밤낮으로 술을 마신다. 그 춤은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일어나 따라가면서 땅을 밟는데, 손과 발이 서로 응한다. 마디마다 아뢰는 사람이 있어 탁무와 비슷함이 있다. 10월 농사가 끝나면 다시 이처럼 한다.”라고 하여 농경의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모습을 기술하였다. 고대의 제의전통에서 마한의 5월과 10월 계절제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달리 농경의례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전승되는 당산굿도 마을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더불어 풍농을 기원하는 점에서 농경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농악의 연행이 마을제사의 중요한 수행방식이라는 점에서 고대 농경의례와 당산굿은 유사한 점이 많다.
당산굿은 마을신이 좌정한 공간의 이름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마을신이 좌정한 곳을 당이라고 하면 당굿이나 당제굿이 되고, 서낭당이나 성황당이라고 하면 서낭굿이나 성황굿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당산굿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마을에서 농악은 당산굿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을에서 농악을 연행할 때 당산굿만을 연행하는 형태는 많지 않고, 당산굿으로 시작하여 마을 곳곳의 성소와 가정집 〈마당밟이〉로 이어져 〈판굿〉으로 마무리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마을을 대표하는 신에 대한 의례로서 당산굿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여타의 연행보다 가장 먼저 행하는 것이다. 마을에 당이나 당산이 여러 곳 있는 경우 가장 중요한 당부터 곳곳의 성소를 돌며 당산굿을 연행한다. 대개 마을의 당이 1곳 이상일 경우 상당(上堂)과 하당(下堂)으로 구성된 곳이 많은데, 우물이나 입석, 장승, 솟대, 선창 등까지 당 또는 당산으로 인식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당산굿을 여러 곳에서 연행하는 경우 ‘12’라는 숫자의 상징성을 결합시켜 ‘열두당산굿’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산굿은 전통적으로 제의를 수행하는 방식이지만, 유교식 제사나 무당굿과 결합하여 기능을 나누거나 중복하여 연행하기도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먼저 유교식 제사나 무당굿으로 의례를 한 후 농악으로 당산굿을 연행하는 사례가 많다. 지역에 따라 유교식 제사의 반주음악처럼 동시에 연행하기도 하고, 농악대의 당산굿 절차에 유교식 제사가 결합되는 사례도 있다. 당산굿과 관련하여 들당산과 날당산의 구분도 존재한다. 당산에 입장할 때 〈들당산굿〉을 치고, 퇴장하면서 〈날당산굿〉을 치는 곳이 더러 있다. 일반적으로 들당산과 날당산은 걸궁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걸궁이 발달한 전라도의 경우 걸궁패가 마을로 입장할 때 〈들당산굿〉을 치고, 마을에서 퇴장할 때 〈날당산굿〉을 친다. ○ 연행시기와 장소 당산굿의 연행시기는 정월대보름에 집중된다. 일반적으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동제를 지내는 곳이 많고, 이때 농악으로 당산굿과 더불어 〈마당밟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동제 이외에도 두레패가 활성화되는 여름철 〈호미씻이〉나 〈풍장굿〉 등을 연행할 때 으레 당산굿을 먼저 친다. 연행장소는 마을신이 좌정한 곳으로 당이 한 곳인 경우 마을 입구나 중앙에 위치한 곳이 많다. 당이 상당과 하당으로 구분된 곳은 천부지모(天父地母) 관념에 따라 상당은 남성신이 좌정하고, 하당은 여성신이 좌정하는데, 당산굿은 하당에서 연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은 마을 뒤나 산에 위치하고 있고 비교적 엄숙하게 의례를 행하는 데 반해, 하당은 마을 가운데나 입구에 위치해 있고 축제적 의례를 행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장승, 솟대, 입석, 우물, 선창 등으로 당이 확장되는 경우 각각의 장소를 찾아가서 당산굿을 연행한다.
강원도 고성읍 교동리에서는 정월 14일 밤에 성황굿을 한다. 성황기를 앞세워 성황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진설하여 절을 하고, 농악으로 성황굿을 연행한다. 《청도 차산농악》에서는 농악을 연행할 때 가장 먼저 당에 올라가서 당산굿을 치며 농악을 하겠다고 고한다. 《김천 빗내농악》에서는 농악대가 당산으로 가서 농악을 하겠다고 고하며 농악을 치고 절을 한다. 《대구 고산농악》에서는 당산굿을 당산제굿이라 하는데, 〈중당산제굿〉과 〈하당산제굿〉이 있다. 먼저 중당산에 가서 제관이 제물을 차려 당산제를 지내면 농악대는 덧배기, 천왕가락, 우장작꽹이 등의 가락을 친다. 이후 거리굿을 하며 하당산으로 이동하여 똑같은 방식으로 당산굿을 친다. 《경북 통명농악》에서는 골맥이 마을신을 이열 반원으로 둘러서서 비는 굿으로 〈골맥이굿〉을 한다. 골맥이에 흰 종이와 솔잎을 끼운 왼새끼줄을 감아놓고 〈골맥이굿〉을 치는데, 절을 할 때는 반드시 외마치로 한다. 마을에는 좌ㆍ우 2위(位)의 골맥이가 있는데, 먼저 좌측 골맥이에서 먼저 〈골맥이굿〉을 친다. 《부산 아미농악》에서는 농악을 시작할 때 당산굿을 먼저 연행한다. 모듬굿을 쳐서 잽이들을 모으고, 가운데에 기를 세워 기제를 지낸다. 이후 〈길굿〉을 치며 당산으로 이동한다. 당에서는 이열횡대로 정렬하여 당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서 동서남북으로 절을 한 후 ‘오늘부터 지신밟기를 한다’는 사실을 고한다. 《진주삼천포농악》에서는 길군악을 치면서 당산으로 이동하고, 당산을 한 바퀴 돈 다음 절을 한다. 이어 〈삼채굿〉과 축문 고축을 하고, 다시 삼채굿을 치면서 당산을 세 번 돈 후 절을 한다. 마지막으로 마을이 재수대통하라는 뜻에서 종이로 만든 돈전(가짜 돈)을 태운다. 《김제농악》에서는 정월 보름날 새벽에 마을 좌상이 농악대를 대동하여 축문을 읽고 고사를 지낸다. 이후 좌상, 상쇠, 설장구, 수법고 순으로 술잔을 올리고 당산굿을 친다. 《익산 이리농악》에서는 벙어리일채를 치며 뛰어 들어가 당산을 돌고, 일렬횡대로 정렬하여 된삼채를 친 후 절을 한다. 이후 이중 원진을 만들어서 안바탕, 미지기굿, 개인놀이 등으로 한바탕 흥겹게 흥을 돋운 후 마지막 인사굿을 한다. 당산에서 나올 때는 벙어리삼채를 치면서 당산 주변을 돌며 빠져나간다. 《고창농악》에서는 당산굿으로 〈들당산굿〉, 〈당산놀리기〉, 〈날당산굿〉을 한다. 〈들당산굿〉에서는 당산신이 놀라지 않도록 벙어리일채를 치고 뒷치배부터 들어간다. 당산에 정렬한 후에 절을 하고 본격적으로 ‘당산놀리기’ 절차를 시작하는데, 이때 당산굿가락으로 불리는 짝드름으로 시작하여 흥을 돋우며 가락을 치다가 인사굿으로 다시 절을 한다. 마지막으로 〈날당산굿〉에 해당하는 질굿을 치며 당산을 빠져나온다. 《영광 우도농악》에서는 당산이 놀라지 않도록 벙어리일채를 치며 뛰어 들어가 당산을 열두 번 도는 〈진굿〉을 한다. 당산 앞에 정렬하면 인사굿을 치고 절을 한다. 이후 각각의 치배들이 개인놀이로 흥을 돋우고 일채덩덕궁을 짝드름으로 친 후 당산을 돌다가 빠져나온다. 마지막 당산을 빠져나올 때는 귀신이 못 따라오도록 벙어리삼채를 친다. 《진도 소포걸군농악》에서는 당산을 세 번 돈 다음 정렬하면 집사가 “당할머니 오늘부터 〈소포리 매굿〉을 치게 되오니 끝나는 날까지 당할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문을 읊는다. 그리고 일체부터 삼채까지 치며 당에서 내려온다. 《임실 필봉농악》에서는 정월 9일에 당산제와 당산굿을 하였으나 최근에는 정월 보름날 진행한다. 길굿을 치며 윗당산으로 이동해서 할머니당산께 〈당산제〉를 지내고 지신밥을 묻은 후 당산굿을 친다. 이어서 할아버지당산이 있는 아랫당산으로 이동하는데 당산 앞에 다다르면 행진 순서를 바꿔 뒷치배부터 들어간다. 제관이 당산 앞에 제물을 차려 〈당산제〉를 지내고 지신밥을 묻으면 농악대는 판굿의 앞굿에 해당하는 절차를 연행하며 흥겹게 논다. 《남원농악》은 걸궁농악으로 걸궁패가 마을에 들어갈 때 〈들당산굿〉을 치고, 연행을 마친 후 마을을 벗어날 때 〈날당산굿〉을 친다. 마을 어귀에서 먼저 〈문굿〉을 친 후 〈들당산굿〉을 치는데, 이때 잡색부터 당산으로 입장한다. 당산에 도착하면 동, 서, 남, 북, 중앙 다섯 방향에 멍석말이진을 하고 미지기 등을 한 후 절을 한다. 이후 〈우물굿〉과 〈마당밟이〉, 〈판굿〉 등을 진행하고 마을을 나오면서 〈날당산굿〉을 친다. 날당산은 처음 입장한 마을 어귀에서 하는데, 상쇠가 가락을 치지 않은 상태에서 농악을 연행하다가 상쇠와 대포수가 먼저 빠져나가고 나머지 치배들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곡성 죽동농악》에서는 정월 16일에 당산굿을 친다. 죽동마을의 당산은 마을 뒤 철륭(당산할아버지)이라 불리는 윗당산과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아랫당산(당산할머니)이 있다. 윗당산의 경우 당산굿을 생략하거나 간단히 인사하는 방식으로 연행하고, 아랫당산은 온전히 짜여진 당산굿을 연행한다. 당산굿을 시작하면 당산할머니가 놀라지 않도록 잡색부터 입장하여 농악을 연행한다. 《화순 한천농악》은 농악의 시작을 〈영제(令祭)〉와 〈들당산굿〉으로 하고, 끝맺음을 〈날당산굿〉으로 한다. 〈들당산굿〉은 당산 앞에서 연행하는 것으로 영기로 문을 세워놓고 “쥔쥔 문 열어”라는 정문삼채를 친 후 당산에 세 번 절한다. 이어서 영산다드래기, 28수, 열두머리 등의 가락을 연주하고 문안인사를 한다. 이후 〈철륭굿〉과 〈우물굿〉, 〈마당밟이〉, 〈판굿〉까지 여러 날에 걸쳐 연행하고, 농악을 끝내면서 〈날당산굿〉을 한다. 〈날당산굿〉은 〈들당산굿〉과 달리 잡귀를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완도 장좌리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당이 있는 마을 건너편 장도 섬에서 〈들당산굿〉과 〈제굿〉, 〈날당산굿〉을 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당산굿과 〈샘굿〉, 〈마당밟이〉, 〈판굿〉, 〈갯제〉 등을 한다. 새벽 5시 경 바닷물이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나면 〈들당산굿〉을 치면서 장도의 당으로 이동하고, 제관들이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면 밖에서 〈제굿〉을 친다. 이후 당집을 세 번 돌고 〈날당산굿〉을 치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도 당산굿을 친다.
당산굿은 마을의 제의 전통을 지닌 살아있는 유산이다. 흔히 마을신에 대한 의례로서 동제를 유교식 제사와 관련짓지만, 농악으로 의례를 행하는 당산굿은 조선시대 유교 전통이 정착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고대의 제천의식이나 국중대회는 한결같이 음주가무를 행하는 축제적 행위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산굿은 가무악으로 행하는 제의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다. 농악을 음악이나 예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데, 당산굿을 통해 농악의 가락과 행위가 기호와 상징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산신이 놀라지 않도록 벙어리일채나 벙어리삼채 가락을 연주하고, 일반적인 행진 순서와 달리 잡색부터 입장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진주삼천포농악: 국가무형문화재(1966) 이리농악: 국가무형문화재(1985) 임실필봉농악: 국가무형문화재(1988) 김천금릉빗내농악: 국가무형문화재(2019) 남원농악: 국가무형문화재(2019) 화순한천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1979) 청도차산농악: 경상북도 무형문화재(1980) 대구고산농악: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4) 부산농악: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1980) 우도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1987) 김제농악: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1996) 고창농악: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2000) 곡성죽동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2002) 진도소포걸군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2006)
김익두ㆍ김정헌, 『남원농악』, 한국농악보존협회 남원시지회, 2006. 김택규 외, 『한국의 농악(호남편)』,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4. 송기태 외, 『곡성 죽동농악』, 민속원, 2016. 양진성 외, 『임실필봉농악』, 민속원, 2016. 이경엽, 『화순 한천농악』, 전라남도ㆍ국립민속박물관, 2011. 정병호, 『농악』, 열화당, 1986.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한국의 농악(영남편)』, 수서원, 1997.
송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