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제, 위도띠배굿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大里) 마을에서 정월 초사흘에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굿
위도띠뱃놀이는 남해안ㆍ동해안ㆍ서해안 별신굿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풍어제의 하나이다. 전북 부안군 위도면 대리에서 마을신앙의례로 《당굿》이 진행되는 것이다. 대리의 마을수호신인 원당마누라와 본당마누라를 모신 원당에서 진행하는 《원당굿》과 마을 해변가에서 진행되는 《용왕굿》, 띠배를 띄워보내는 과정으로 크게 나뉜다. 특히 제의의 마지막의 《용왕굿》을 마친 후 바다로 띠배를 띄워 보내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띠배는 서해안 지역과 제주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조기잡이어업으로 살아가는 마을주민들과 칠산어장을 찾는 외지의 어선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우리나라의 삼면에 바다가 위치 해 있어서 해안지역의 특색을 가진 공동체 의례가 내륙지역에 비해 발달되어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볼 때 위도띠뱃놀이는 위도가 섬지역인 만큼 지역적 특성에 맞게 형성된 마을신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해안의 어업 중심지인 섬마을에서 해양안전과 풍어를 기하기 위해서 시작된 의례라고 하겠다. 위도띠뱃놀이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한 시작과 유래를 알 수 없으나 위도 지역의 입도조(入島祖)의 역사가 오래지 않고, 구전자료와 더불어 서해안의 조기어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를 연관 지어서 볼 때 그 역사가 300여 년 이전으로 올라가긴 어려울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조기잡이어업이 크게 활성화되는데, 위도 지역 역시 같은 어업권에 속해 있으면서 조기어업의 흥성과 쇠퇴에 따라 마을신앙의례의 성행에 영향을 받았다. 위도띠뱃놀이의 본래 명칭은 위도면 대리 마을에서 행해지는 굿이라 하여 《대리 원당제(願堂祭)》ㆍ《원당굿》 등으로 불렀다. 원당의 당집에는 원당마누라와 본당마누라가 모셔져 있다. 원당제는 제당의 명칭이 원당인 데에서 불린 것으로, 띠뱃놀이로도 불리는 것은 원당에서의 《당굿》에 이어 바닷가의 《용왕굿》의 후반 부에 띠배를 바다로 띄워보내기 때문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위도 대리의 마을신앙은 조기어업의 쇠퇴로 인해서 큰굿의 형태보다는 《당제》를 통해서 유지되었다가 그마저도 시들해지기도 했었다. 조선 후기에 《당제》마저 시들해졌던 때에 배를 타고 침입하는 도둑들의 해적질에 대한 대처하기 위한 방편을 찾던 마을 이장이 주민들의 단합과 마을의 안녕을 꾀할 목적으로 위도띠뱃놀이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이후 현재와 같은 형태로 이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위도띠뱃놀이는 대리의 마을신앙으로 《대리원당제》로 불리던 것으로, 위도띠뱃놀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데는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출전과 관련해서 말이 전한다. 당시 마을신앙이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굿이 아닌 놀이적 성격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외부에 처음 위도띠뱃놀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고착된 것으로 본다. 현재는 그 전승기량이 약화되어 있으나, 여전히 매년 《당굿》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 연행 시기와 장소
위도띠뱃놀이는 정월 마을신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제일(祭日)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이다. 부안군 위도면의 면 소재지에 위치한 진리 마을이 정월 초이튿날에, 대리와 인근의 식도 마을은 초사흗날에 마을굿을 한다.
위도띠뱃놀이는 한 장소에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산과 바닷가까지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진행된다. 마을의 주산의 정상에 있는 당집에서 원당제를 지내며, 《깃굿》이 끝나면 산을 내려와서 마을을 도는 〈주산(主山)돌기〉, 바다로 내려와 《용왕굿》을 진행하고, 띠배를 띄운 후에 마을에서 뒤풀이로 〈대동마당〉을 논다. 따라서 대리마을 전체가 연행장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리의 마을제의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원당이다. 원당의 당집은 마을 왼편 당제(젯)봉 정상에 자리한다. 어업이 주업인 마을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마을주민들 외에도 조기잡이를 하던 어선의 선원들에게도 중요한 신앙처로 인식되었던 곳이다.
○ 절차 및 주요 내용
위도띠뱃놀이는 산 정상의 원당과 마을의 곳곳에서 절차에 따라 의례를 진행하며, 《당굿》은 사제무(司祭巫)의 주관으로 진행된다. 위도띠뱃놀이의 절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도띠뱃놀이는 정월 초사흗날 진행되지만 준비는 전년도 섣달부터 시작한다. 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마을에서는 회의를 통해 제의 규모, 제의에 사용될 비용의 추렴 범위와 액수 등을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제를 주관할 제만과 원화장, 부화장 등을 선정한다. 과거에 제비마련은 선주(船主)와 부락민들이 추렴을 통해서 진행했다. 제수(祭需) 준비는 과거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장배(장을 보러 다니는 배)를 타고 곰소ㆍ줄포ㆍ격포 등지에서 사와서 진행했다. 이제는 보존회장과 총무 등이 트럭을 몰고 부안(扶安)에 가서 장을 본다. 장만한 제수는 제만과 화장 등이 보존회관에 준비해 둔다.
위도띠뱃놀이에 사용되는 제물은 돼지 한 마리, 북어, 떡(절편), 삼색과일, 나물 외에 여러 종류의 생선 등이다. 《당굿》에 쓰는 제주(祭酒)는 과거엔 직접 담가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막걸리와 청주를 구매해서 쓴다. 제물 중에서 돼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과거에는 돼지를 위도 지역에서 기른 것으로 샀으나, 지금은 부안이나 격포 등지에서 구입한다.
위도띠뱃놀이는 1) 원당제, 2) 〈띠배 제작〉, 3) 〈주산돌기〉, 4) 《용왕굿》, 5) 〈띠배 띄우기〉, 6) 〈대동마당〉(뒤풀이) 순서로 진행한다.
1) 원당제는 《당굿》 당일인 초사흗날 아침에 뱃기를 든 선주와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 무녀와 축관 등이 영기를 앞세우고 원당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원당에 도착한 후 제물을 차리면 제만이 유가식 제를 올리고, 본격적인 굿이 진행된다. 《당굿》은 무녀가 무가를 장구와 징 장단에 맞춰서 진행한다. 《당굿》의 절차는 《성주굿》-《산신굿》-《손님굿》-《지신굿》-〈서낭굿〉-《깃굿》-《문지기굿》의 순이다. 어선의 선주들은 일 년 동안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림받는 《깃굿》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당굿》이 마무리되면 《당굿》에 차려놓은 제물을 챙겨 마을로 내려와 곧장 마을의 동쪽 바닷가로 가서 한지에 싼 용왕밥을 용왕바위에서 바다로 던지면서 절을 한다. 용왕바위는 대리 마을의 용왕당이 된다.
주민들이 용왕바위에서 용왕밥을 던지고 나면 마을 한 바퀴를 도는 3) 〈주산돌기〉를 진행한다. 〈주산돌기〉는 제관과 풍물패, 뱃기를 든 일행이 마을의 경계인 산을 따라 마을을 도는 것이다. 과거 정월대보름에는 줄다리기를 위해서 만든 암ㆍ숫줄을 주민들이 어깨에 메고 돌았다고 한다. 〈주산돌기〉를 할 때 한지에 싼 당밥을 땅에 묻고 무녀와 제관이 절을 하고 나서 풍물을 친다. 〈주산돌기〉는 대리와 전막리 마을의 뒤편 해변과 우물가까지 포함해서 진행한다.
마을의 한 쪽에서 《당굿》과 〈주산돌기〉를 진행하는 동안 대리마을 선착장에서는 마을주민 중 남성일부가 2) 띠배제작을 한다. 띠배는 주재료인 띠와 짚ㆍ싸리나무 등을 함께 사용해서 배 형태로 만든다. 여기에 돛대와 닻을 달아서 배모양으로 완성한다. 성기의 형상을 강조해서 만드는 허수아비 7개를 위치에 따라 놓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무녀가 4) 《용왕굿》을 선착장에서 진행한다. 《용왕굿》은 마을주민 모두가 참여하는데, 과거에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가족이 있는 집은 용왕상을 별도로 차렸다고 한다. 《용왕굿》을 마친 후에 여자들이 용왕상의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큰 함지에 담아서 섞은 다음에 바다에 고수레를 한다. 이때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가래질소리〉와 〈배치기〉, 〈술배소리〉 등을 부르며 한바탕 큰 놀이판을 펼친다.
《용왕굿》을 마치고 바다에 고수레까지 끝나면 5) 〈띠배 띄우기〉가 진행된다. 주민들이 만든 띠배를 바다로 끌고 가는 모선(母船)이 바다 가운데로 나간다. 호위선 서너 척이 함께 뱃기를 달고 바다로 간다. 이때 모선 위에는 풍물패와 소리꾼이 타고 바다로 이동할 때 〈가래질소리〉, 〈술배노래〉, 〈배치기〉를 계속해서 가창한다. 바다 가운데에 띠배를 띄워놓으면 부둣가에서 배를 지켜보던 주민들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면서 마을의 모든 액을 싣고 띠배가 떠나가기를 빈다.
6) 〈대동마당〉은 뒤풀이로 진행되는 것으로, 띠배를 바다에 띄우고 어선들이 마을로 돌아오면 해변에서 펼쳐지는 놀이판을 말한다. 마을주민들이 모두 참여해서 한 해의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며 놀이판을 벌이는 것이다.
모든 놀이판이 끝나면 배를 부리던 남자들은 당집 반대편에 있는 도젯봉에 올라 도깨비불을 관찰한다. 도깨비불이 보이는 어장에 그물을 놓으면 한 해 풍어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마무리는 다음날 오전의 결산으로 끝난다. 결산은 제의를 주관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어서 진행한다.
○ 띠배 만들기 띠배는 모형배로,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배를 만드는 재료는 띠풀이다. 그 외 띠풀과 함께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너비 2m 정도의 배 모양으로 만든다. 배의 형상이 완성되면 띠배 안에는 떡ㆍ밥ㆍ고기ㆍ나물ㆍ과일 등을 넣고 허수아비도 만들어 세운다. 안쪽에 작은 판자로 돗대를 세워서 “소속 : 대리 띠배. 유자망, 낭자망. 대풍어 용왕님 귀하”라고 쓴다.
○ 악곡 구성
무당의 굿이 중심이 되는 《원당굿》과 《용왕굿》은 무가의 가창과 춤을 추는 것으로 진행한다. 주요한 반주 악기는 장구와 징이며 피리가 추가된다. 모든 굿거리에서 무가와 춤의 장단은 흘림, 굿거리, 동살풀이 장단이 혼합되어 사용된다.
무가는 굿거리별로 교술무가와 서사무가를 가창하면서 진행된다. 굿거리에 따라 정격장단을 갖는 반주와 비정격 장단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혼재한다. 징으로만 반주하는 비정격 장단의 형태의 반주와 달리 장구반주의 경우 2소박 4박자, 3소박 4박자 등의 휘모리 형과 굿거리 형의 장단이 다수 사용된다.
《용왕굿》의 경우 무가사설에서 해안가에서 노동요 또는 유희요로 가창하는 〈술배소리〉, 〈가래질소리〉, 〈배치기소리〉와 공유하는 사설을 사용하는 경우가 다수 확인된다. 이때 무녀가 선창을 하면 마을주민들이 받는소리를 하는 것이 특별하다.
한편, 대리마을의 풍물패는 《당굿》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나발, 호적,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과 함께 기수들이 구성원을 이룬다. 위도띠뱃놀이의 기는 영기와 뱃기 또는 오색기가 다수 추가된다. 위도띠뱃놀이의 진행과정 중 풍물패는 섣달그믐의 띠풀걸립ㆍ〈주산돌기〉ㆍ뱃고사, 초사핟날의 때뱃놀이에 《원당굿》ㆍ〈주산돌기〉ㆍ띠배띄우기ㆍ대동판굿, 열나흗날까지 이어지는 마당밟이, 대보름날의 줄꼬기ㆍ줄놀이ㆍ판굿 등에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는 모든 절차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어서 주된 역할을 《원당굿》 당일에 참여하고 있다.
위도띠뱃놀이에 사용하는 풍물굿가락은 오방굿, 풍년굿, 지신굿이다.
오방굿은 오방굿-자진오방굿-빠른가락-맺이가락으로 구성된다. 오방굿은 2소박 4박자가 한 장단이며, 자진오방굿과 빠른가락은 3소박 4박이다. 오방굿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살풀이가락과 같으며, 자진오방굿가락은 삼채가락과 유사하며, 빠른가락은 육지부의 휘모리 또는 이채와 같은 형태이다. 오방굿은 〈지신밟기〉에서 사용한다.
《지신굿》은 오방굿과 전개 방식이 비슷한데, 오방굿-빠른가락-맺이가락으로 구성된다. 이는 일종의 《마당굿》으로 마당밟이를 할 때 또는 굿의 초두에 마당과 같은 넓은 공간에서 굿의 시작을 알리고 사람들을 모을 목적으로 연주한다.
풍년굿은 위도 지역 전체에서 확인되는 가락으로 쓰임새가 다양한다. 풍년굿은 길굿(질굿)으로도 쓰이며, 굿의 절차인 ‘풍년굿’에서 춤반주 가락으로도 쓰인다. 풍년굿은 풍년굿-삼채-자진삼채-빠른가락-맺이가락으로 전개된다. 질굿으로 치는 풍년굿으로 연주한 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삼채굿-자진삼채굿-빠른가락-맺이가락으로 진행한다.
오방굿은 〈지신밟기〉에서 사용하는 가락으로 대리풍물의 특색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신굿》은 마당밟이나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용으로 사용되지만, 가락의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신을 위하거나 달래는 주술적 기능도 갖춘 것이 특색이다. 오방굿과 《지신굿》에 오방굿가락이 모두 사용되지만 오방굿에서의 오방굿가락은 변주가 많으나, 《지신굿》의 오방굿가락은 단순하게 연주하는 차이가 있다. 대체적으로 육지의 우도가락과 일정한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차별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위도 띠뱃놀이에서는 〈술배소리〉, 〈가래질소리〉, 〈배치기소리〉 등의 소리가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특히 이 노래는 어업에서 사용하는 노동요이며 풍어 때에 가창하는 노래로, 《당굿》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노래로서 기능한다. 특히 〈띠배 띄우기〉 및 〈대동마당〉 등에서 반복해서 가창되면서 주술적 기능을 수행한다.
위도띠뱃놀이는 서해안 지역에서 보이는 풍어제의 형식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뱃기내림인 《깃굿》과 제의 마지막에 띠배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을 보면 제주도를 포함해서 서해안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여타의 마을 풍어제 형식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위도띠뱃놀이에서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위도띠뱃놀이가 행해지면 대리 지역의 어업민 이외에 타 지역의 어선들도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과거 조기어업을 위해 칠산어장을 찾았던 어선들이 대리 마을에 원당제가 있을 때면 참여하여 제비를 부담하기도 하였으며, 배를 타고 항해하는 과정에서 대리의 원당이 보이면 선상에 음식을 간단히 차려 고사를 지냈다는 사례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5)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9. 글 임석재, 사진 김수남, 『한국의 굿 18-위도 띠배굿』, 열화당, 1993. 하효길, 『한국의 풍어제』, 대원사, 1998. 이영금, 김세인, 「위도 띠뱃놀이의 연행 구조와 제의적 특징」, 『한국무속학』 18, 한국무속학회, 2009. 이영배, 「“위도 띠뱃놀이”에서 풍물굿의 공연적 특징과 위상」, 『남도민속연구』 19, 남도민속학회, 2009.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