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의 정포마을과 대정마을에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격년제로 진행하는 마을굿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은 외포리의 정포마을과 대정마을의 상당(上堂)에서 주신인 득제장군께 마을의 안녕함과 생업의 번창을 위해서 2~3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마을굿이다. 당에서 본격적인 굿을 하고 이어서 뱃기를 내리는 기내림을 하여 바다에 있는 배로 기를 되돌리는 것으로 굿이 끝난다. 《수살굿》, 〈돌돌이〉, 《선주굿》(기내림), 〈뱃고사〉 등의 거리들이 《곶창굿》의 특성을 나타내 준다. 마을굿을 진행하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강화도의 지리적 위치가 반영되어서 경기도 서부지역의 독자적인 문화적 특색을 담고 있다. 서울굿과 황해도굿이 일정하게 혼합된 형태의 굿거리 구성과 음악적 특징이 확인된다.
우리나라 마을굿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외포리곶창굿의 명칭에 사용하는 ‘《곶창굿》’이라는 명칭은 특별한 지역적 역사를 담고 있다. 《곶창굿》이라는 말이 경기도 광주 인근에서도 마을굿으로 《고창굿》이 쓰이고 있는데, 《곶창굿》 또는 《고창굿》이 바다에 인접한 지역, 곶(串)과 당(堂)이 합쳐진 《곶당굿》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곡창(穀倉)과의 관계성 속에서 해명된다고 보인다. 또한 강화도에 일찍이 신라 시대 문성왕 대 이후 군사시설이 설치되었으며, 목포에서 조류를 타고 물자를 싣고 이동해 온 배들이 외포리 항구에 정박한 것은 물론 수많은 새우젓, 황석어(조기)를 실은 어선들이 모이는 집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외포리에 큰우물이 세 곳이 있고, 봉수대가 있는 망산 아래에 토제 어망추가 발견되고, 부근에 고인돌이 출토된 것들로 볼 때 마을의 역사는 매우 오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들을 살펴볼 때 외포리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군사시설과 물자의 유통이 많은 지역으로서 다양한 문화가 발달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인해서 마을의 번영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례의 발달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강화도에서는 외포리 외에도 철산리, 인화리, 황청리, 선수에서도 《곶창굿》을 했다고 전한다. 현재 외포리에서는 《곶창굿》에 관해서는 관련된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데, 1943년 이래로 삼년두리로 진행된 당굿의 소임 명단이 전해지고 있다. 확인된 년도는 1943, 1946, 1949, 1952, 1956, 1963, 1966, 1977, 1985, 1988, 1992, 1995, 1998 이후 2~3년 단위로 진행된 당굿의 소임명단이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외포리곶창굿의 당주의 계보가 확인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볼 때 그 연원은 약 160여 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한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외포리곶창굿은 전통적인 마을신앙으례로서 지속적으로 그 형태를 유지해왔으며, 1997년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3~4년 단위로 연행 시기가 일정하지 않았으나, 지정 이후에는 대개 2년 단위로 일정하게 연행하고 있다.
○ 연행 시기와 장소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은 외포리의 정포마을과 대정마을의 상당(上堂)에서 진행한다. 정포(井浦)마을은 주로 어업을 하며, 대정(大井)마을은 농업이 주산이다. 외포리 상산당(上山堂)의 주신은 득제장군이며, 득대장군(得大將軍) 또는 득태장군(得太將軍)이라고도 한다. 당의 내부에 득제장군과 장군마누라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제석ㆍ칠성ㆍ산신ㆍ용왕ㆍ별상ㆍ군웅할아버지ㆍ군웅(도당)할머니ㆍ신장ㆍ대감ㆍ대신할머니ㆍ창부의 화분이 모셔져 있다. 마을굿을 주로 진행하는 장소는 상산당이지만 굿의 초반부에 진행하는 〈수살맞이〉ㆍ〈돌돌이〉, 굿의 후반부에 진행하는 〈뱃고사〉 등을 진행할 때는 마을의 큰우물이 있던 세 곳과 바닷가, 어포리항 등의 장소에서 의례를 진행한다.
외포리곶창굿은 격년제로 진행되며, 현재 2~3년 단위로 짝수해의 음력 2월 중순~3월 초로 날을 잡아서 3일간 진행한다. 날짜는 매 년 다른데 마을 사정에 따라 자주하거나 늦춰지기도 한다. 마을굿을 하기 위해서 마을회의의 구성원이 이장, 당주, 노인회장, 개발위원장, 새마을지도자, 어촌계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외포리곶창굿보존회장 그 외 관심있는 마을주민이 참석한다.
○ 절차 및 주요 내용
마을굿의 시작은 굿날 정하기와 당주와 소임 선출하기이다. 당주무당은 대개 별도로 선발하지 않고 신어머니에서 신딸로 이어지는 승계체제에 따라 이어오고 있다.
마을굿을 주관하는 당주는 매년 추대하는 것이 원칙이나 대과가 없으면 종식으로 하며, 후계자 승계 또는 이장에게 위임 등으로 한다. 소임은 상소임 3인, 중소임 2인, 하소임 6인으로 구성한다. 상소임을 재정관리, 중소임은 제비 추렴과 제물 준비 및 제반 진행, 하소임은 음식준비 등 각각의 역할을 분담한다.
굿날이 잡히면 본격적인 굿의 준비로 마을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대동기ㆍ농기ㆍ뱃기와 농악기들을 손질하고 굿에 쓰일 봉죽ㆍ서리화 등을 만드는 꽃피우기를 한다. 굿날이 다가오면 마을주민들이 마을입구, 당주집, 아랫당 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치며, 당주와 소임은 금기를 지키고 부정한 것을 물리면서 몸을 조심한다. 굿하기 3일 전에 하소임들은 상산당에 올라가 목욕재계를 하고 옥수를 올리고, 중소임은 굿 전날 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수삼목을 준비한다.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은 경기도 마을굿의 독자적인 변이형으로 외포리 《곶창굿》은 바다에서 시작하여 마을을 거쳐서 당이 있는 산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인 굿을 진행된다. 실제 진행된 사례를 통해서 굿을 절차를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3월 28일~3월 30일, 외포리 곶창굿〉 1. 수살맥이 2. 돌돌이 : 우물고사-대동우물, 가운데우물, 성안정 3. 기맞이 4. 앉은부정(초부정) 5. 초가망거리 6. 칠성제석거리 7. 장군거리, 작두거리 8. 성주대잡기 9. 별상, 신장, 대감거리 10. 무감 11. 창부거리 12. 걸립 13. 대신말명거리 14. 선주굿/ 뱃고사 15. 군웅굿, 막둥이놀이 16. 뒷전
강화도 외포리곶창굿 2~3일 동안 진행되면서 여전히 마을굿의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형태 중의 하나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서울경기 지역과 황해도 지역의 형식이 복합되어 있어서 외포리곶창굿만의 특징이 확인된다. 외포리곶창굿에서는 특정한 굿거리의 목적에 따라서 여러 신격들은 다양하게 모시며, 그 의례적 형식에 있어서도 지역적 다면성 만큼의 다양한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고 할만하다. 외포리곶창굿의 시작은 1. 〈수살맥이〉, 2. 〈돌돌이〉, 3. 〈기맞이〉 등이다. 본격적인 굿을 시작하기 전에 마을의 여러 곳을 돌아서 부정한 것을 막고, 굿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때 3. 기맞이는 마을굿을 모두 돌아서 온 무당 및 여러 일행들의 선두에 서낭기를 모시고 들어가면서 이를 맞이하는 형태이다.
이어지는 굿의 절차들은 서울경기지역의 마을굿과 황해도의 굿의 형식이 복합적으로 혼용된 형태이다. 이어지는 4. 〈앉은부정(초부정)〉. 9. 〈별상〉, 〈신장〉, 〈대감거리〉, 11. 〈창부거리〉 등은 서울경기지역 강신무권의 형식으로 굿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5. 〈초가망거리〉, 6. 〈칠성제석거리〉, 7. 〈장군거리(작두거리)〉, 16. 〈군웅굿〉, 〈막둥이놀이〉는 황해도굿의 형식과 연관성을 갖는다. 특히 〈장군거리〉는 일명 〈작두거리〉로 서울굿과 황해도굿이 혼재된 형식적 특별함을 확인할 수 있다. 〈군웅굿〉에서 〈막둥이놀이〉를 하는 것은 서울지역의 〈삼각산도당굿〉과 황해도굿에서 유사한 형식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굿놀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외포리곶창굿은 해안지역 마을굿으로서의 특징은 14. 《선주굿》/〈뱃고사〉에서 확인된다. 14. 《선주굿》은 어선 즉 배에 다는 뱃기에 신의 영험함을 내리는 과정이다. 선주들이 굿을 시작하기 전부터 상산당 앞에 세워둔 뱃기는 봉기를 함께 마련해 둔다. 굿이 거의 마무리 되는 절차에서 《선주굿》은 진행된다. 이때 무당은 봉기와 뱃기에 굿을 통해 명복을 내리는 《선주굿》을 진행하는데 이를 ‘기내림’이라고도 한다. 선주들은 각자의 뱃기와 봉기에 복을 내리는 것을 마치면 곧 바로 부둣가에 정박한 배로 달려가서 가서 뱃기를 달고 〈뱃고사〉를 지낸다. 뱃기와 봉기를 들고 선주들이 상당에서 부둣가로 달려가는 장면을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은 《곶창굿》의 풍어제적 특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악곡 구성 굿을 할 때 서울경기지역 무가에서 사용하는 음악적 형식이 높은 비중으로 사용된다. 실제 굿을 진행할 때는 각 굿거리별로 청배를 위한 별도의 청배무가를 만수받이장단에 얹어서 부르거나 굿거리별로 노랫가락을 가창해서 신청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청배를 위한 노랫가락을 가창하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외 각 굿거리별로 신을 위해서 가창하는 노래의 형식으로서 노랫가락 형식과 타령조의 형식이 있다. 타령조의 노래는 서울굿의 굿거리 장단형으로 민요의 굿거리와 한 배가 일치하지만, 엑센트와 채의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 서울경기지역 무속의 굿거리 장단은 3소박 4박의 굿거리 장단 중 첫박의 첫 소박과 세 번째 박의 마지막 소박에 무겁게 힘을 주어서 ‘덩-- 덩-- 궁-덕 궁--’의 형태를 반복하면서 치는 방식이다. 이러한 양식에 따라 〈대감타령〉, 〈대신타령〉, 〈제석염불타령〉, 〈바라타령〉, 〈신장타령〉, 〈성주타령〉, 〈창부타령〉, 〈도액타령〉, 〈직성타령〈, 〈말명타령〉 등의 다양한 타령을 가창한다. 이와 달리 《선주굿》을 진행하거나 휴식시간 등에서 풍어를 기원하거나 유흥을 위한 노래로 〈술래소리〉와 〈배치기소리〉가 많이 가창된다. ○ 음악적 특징 외포리곶창굿의 주된 반주는 무속에서 사용하는 악기들로 구성한다. 외포리곶창굿에서는 본래 장구와 징, 제금만을 사용했으나 중간에 태평소 반주가 추가되었다. 이는 황해도 무속의 영향이 더 커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음악적 권역으로 볼 때 강화도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서북권무속음악으로 경서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굿거리의 서두에 해당하는 〈청배무가〉는 대체로 서울경기지역의 굿에서 강신무들이 사용하는 만수받이 형의 장단을 사용해서 청배한다. 그 외 많은 굿거리에서 서울경기지역의 굿에서 사용하는 음악적 형식에 기반한 굿을 한다. 그러나 정정애 만신의 연행의 사례에서 볼 때 〈칠성제석거리〉와 〈장군거리〉의 연행에서 특히 황해도굿적인 음악적 특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장군거리〉의 경우 작두를 타는 과정의 진행은 황해도굿의 형식이 혼재되어 있어서 태평소와 같은 악기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이와 함께 풍어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기능에서 〈술래소리〉와 〈배치기소리〉가 가창되는 점은 서해안 일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황해도 해안가에서 전라도지역까지 〈배치기소리〉는 매우 다양한 기능을 하면서 사용된다. 이와 더불어 농악대가 연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특히 굿의 전반부에서 마을을 돌아오는 과정과 굿하는 과정에서 유흥의 시간, 《선주굿》의 기내림 이후 등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확인된다.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은 인근의 해안이나 섬에서 전승되는 마을굿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이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은 인천광역시에 속하지만 그 생활문화권에 있어서 경기도 김포 및 경기도 개성, 황해도 연안과 직접적인 연관성 속에 있던 지역이다. 이는 강화도 외포리곶창굿이 해양문화권의 특성이 반영되면 형성된 마을굿으로서의 면모와 연관된다. 이에따라 외포리곶창굿은 명칭상의 ‘곶창’이라는 용어의 쓰임새가 지역적 특색을 드러내고, 마을굿의 형식에 있어서 서울굿과 황해도의 무속이 혼재된 경기도 서북부형의 양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외포리곶창굿은 마을신앙의례로서 마을굿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드러낸다. 특히 수살맥이와 〈돌돌이〉에서 진행하는 우물고사는 해안지역 마을굿의 소박한 형식을 잘 드러내는 것이며, 《선주굿》은 풍어제의 극치를 잘 드러내는 거리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7)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9. 글 강영경, 사진 정예채, 『강화도 외포리 곶창굿』, 민속원.인쳔광역시, 2010. 이선주, 『한국의굿 ⅡㆍⅢ』, 민속원, 1996. 홍태한, 『한국의 무가 5-2004년 강화도 외포리 고창굿』, 민속원, 2012. 김용국, 「강화도외포리고창굿의 현지 연구」,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문광영, 「강화도 외포리 고창굿 연구」, 『기전문화연구』 24, 인천교대 기전문화연구소, 1996. 문화재청 (www.cha.go.kr)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www.heritage.go.kr)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