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당굿
경기도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행하는 무속 의례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정월이나 시월에 당주 또는 화주를 정하고 무당패를 초청하여 당을 중심으로 행하는 마을 단위의 굿이다. 연행 내용에 따라 한강을 기준으로 북부와 남부로 구분되며, 북부는 구리시 갈매동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남부는 수원, 화성, 인천, 부천 등의 지역에서 나타난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백성들이 호환(虎患)을 피하기 위하여 진산에서 올린 제를 도당굿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1930년대 실제 도당굿을 조사하여 기록한 문헌이 등장한 이후, 1970~80년대 음원 및 영상기록과 함께 인천과 부천의 도당굿이 재개되었고, 199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기 북부의 도당굿은 구리시 갈매동 도당굿이 1995년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30년대의 도당굿은 아키바 다카시(赤松智城)의 『조선무속의 연구』을 통해 개성 덕물산 등의 현장과 굿의 핵심인 굿거리와 무가, 재인청이라는 무속 단체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면모를 알 수 있다. 이혜구(李惠求, 1909~2010)의 「무악연구」는 1944년 광주 청수골에서 연행된 도당굿의 현장과 굿판의 배치구성ㆍ손님굿 및 구농[군웅굿]의 세부적인 연행면모, 제보자 면담을 통한 전체 굿거리 구성 및 춤과 장단을 담고 있다. 1970년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는 시흥, 수원, 안양, 김포, 안산, 양평, 화성, 인천 등지의 도당굿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도당굿이 다양한 지역에서 연행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보고서 내용의 상당 부분은 과거에 대한 증언이었다는 점에서 굿판이 점차 소멸되어 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에는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도당굿 예능보유자들의 무가와 악기 연주 등 음향과 동영상 자료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6월 도봉산장에서의 경기도당굿 ‘공연’을 시작으로 부천 중동 장말도당굿이 20년 만에 재개되고, 인천 동춘동의 동막마을 도당축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동막은 1990년까지 이어지다 도시개발로 마을이 사라지면서 굿도 중단되었으나. 장말은 개발 속에서도 당을 보존하여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군포 영당, 화성 신외리 등에 대한 복원이 시도되었고, 현재는 부천 장말, 수원 평동ㆍ고색동ㆍ영동시장 거북산당, 시흥 군자봉에서 도당굿이 거행된다. 의례의 주요 연행자는 무녀인 미지와 악사 산이이며, 굿거리 및 역할을 분담이나 협력의 방식으로 담당한다. 악기편성은 장구ㆍ징ㆍ피리ㆍ대금ㆍ해금이며, 절차에 따라 장구나 북만으로 반주하거나, 꽹과리를 포함하기도 한다. 무가 반주로 도살풀이ㆍ가래조ㆍ오늬섭채와 춤 반주에는 올림채ㆍ반설음ㆍ진쇠ㆍ겹마치기 등 지역 고유의 장단을 사용한다. 춤에는 굿거리 초입에 부채와 방울을 들고 부정놀이장단에 추는 춤, 흰고깔장삼을 입고 장삼자락과 바라로 춤사위를 펼치는 〈장삼춤〉과 〈바라춤〉, 반설음장단에 꽹과리를 들고 혼자 추는 〈터벌림춤〉, 신칼잽이와 나란히 추는 〈손님춤〉, 홍철릭을 입은 미지와 대각으로 마주 선 〈쌍군웅춤〉, 〈활놀음〉과 〈쇠춤〉이 있다. 주요 무가로는 〈청배〉, 〈거리노랫가락〉, 〈만수받이〉, 〈수비풀이〉, 〈고사축원〉, 〈노정기〉, 〈뒷전〉 등이 있다.
○ 연행 시기와 장소 매년 혹은 해를 걸러 정월, 10월, 3월 등 정해진 시기에 개최한다. 굿은 도당신과 관련된 당가리, 바위, 당집, 당나무의 앞이나 근처에 별도로 마련한 굿청에서 열린다. 인천 동막은 음력 3월 초에 소나무 숲 안에 짚으로 엮은 당가리 앞에 굿청을 차렸고, 부천 장말은 음력 10월 10일(현재는 10일 이전 일요일)에 웃당인 돌팡구지에서 신을 모시고 아랫당인 당집에서 굿을 한다. 수원의 평동은 음력 정월 11일 당집에서, 고색동은 양력 10월에 날을 잡아 당집에서, 거북산당은 음력 10월 7일에 영동시장 패션일번가에 위치한 당집에서 행한다. 군자봉성황제는 음력 10월 3일에 군자봉 정상의 느티나무 앞에서 거행한다.
○ 절차와 구성 도당굿을 구성하는 굿거리는 지역이나 무당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당주굿-돌돌이-장문잡기-부정굿-도당모시기-시루굿-제석굿-터벌림-손굿-군웅굿-도당모셔다드리기-뒷전으로 구성된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마을을 대표해 굿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당주와 당주의 가정을 위한 당주굿, 마을의 공동 우물 등 주요한 곳과 각 가정을 다니며 고사하는 돌돌이, 굿이 거행됨을 알리고 굿패의 재주를 보여주는 장문잡기를 하고, 굿청과 모인 사람들의 나쁜 기운을 맑혀주기 위하여 부정청배를 구송한 뒤 이어서 물과 불로 정화하는 부정굿, 마을의 수호신인 도당신을 굿청으로 모시는 도당모시기, 전물로 마련한 시루 앞에서 천지창조 무가, 비손으로 축원하는 시루굿, 자손의 명과 복을 기원하며 바라춤 및 장삼춤과 제석노랫가락 등을 올리는 제석굿, 굿청의 터를 넓히고 액을 물리치며 산이들의 재주를 펼치는 터벌림, 홍역마마와 같은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깨낌춤을 추고 손님노정기를 부르는 손굿, 군웅님을 모셔서 마을의 액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방수밟이와 활놀이하는 군웅굿, 굿을 마친 도당신을 원래의 좌정처로 모시는 도당모셔다드리기, 굿판에 따라온 잡귀잡신을 풀어먹여 달래서 보내는 뒷전 순으로 진행된다. 이 외에 부천 장말에는 꽃반세우기가 있다. 꽃반은 쌀을 담은 그릇을 가리키며 각 집에서 준비한다. 마을에서 대대로 도당할아버지 역할을 수행해 온 덕수 장씨 일원의 도당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고 외다리 춤을 추고는 부채를 꽃반에 세우는 의식이다.
도당굿의 첫 번째 특징은 산이와 미지가 함께 연행하는 겹굿이라는 점이다. 부정ㆍ시루ㆍ제석ㆍ군웅청배에서는 산이의 앉은청배 뒤에 미지의 선청배가 이어진다. 손굿과 군웅굿에서는 미지의 선굿 다음에 산이가 〈노정기〉를 담당한다. 둘의 무가 내용은 거의 동일하지만, 연행방식은 서로 다르다. 동일한 신격에 관한 무가를 연행자와 방식을 달리하여 거듭함으로써 겹치는 형태가 된다. 두 번째는 산이의 역할이다. 음악을 연주하며 무녀의 굿을 보조하는 악사로서의 역할 이외에 신을 청하는 무가인 〈청배〉ㆍ〈노정기〉를 부르고, 신을 맞이하는 춤인 〈깨낌〉ㆍ〈쌍군웅〉을 추며, 독립된 굿거리인 돌돌이ㆍ뒷전을 온전히 연행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녀가 하는 역할을 산이가 담당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연행 종류의 다양성이다. 돌돌이의 행진곡인 〈낙궁〉, 장문잡기의 〈취타〉, 판소리와 흡사한 〈노정기〉 및 〈뒷전〉 등 연행 내용이 풍부하며, 굿과는 다른 예술적 면모를 보여준다. 경기도도당굿은 민속예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개별 장단ㆍ선율ㆍ무가와 굿거리 속의 음악 구성방식은 새로운 춤과 음악을 만드는 데 소재로 활용되었다. 춤으로는 〈태평무〉ㆍ〈도살풀이〉ㆍ〈진쇠춤〉이 대표적이며, 음악으로는 〈경기시나위〉ㆍ〈사물놀이〉 외에도 경기도도당굿을 활용한 다양한 창작곡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을의 화합을 도모하는 공동체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의도 있다. 도당굿은 마을이 주체가 되는 기원 의례이다. 안녕과 풍요라는 공통의 소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굿날을 잡고 전물을 준비하며 밤을 새워 굿판에 참여한다. 사회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도시주민들의 소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도시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화합을 이루는 역할을 도당굿이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경기도도당굿: 국가무형문화재(1990) 갈매동도당굿: 경기도 무형문화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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