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영산작법
망자를 위해 영취산의 붓다를 청해 설법 듣고 재공(齋供) 올리는 불교의례
법화경 법회라는 개념에서 보면 영산재는 법화경이 등장해 망자를 위해 염송 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으나, 대각국사 의천이 창안하였다는 17세기 중엽 『오종범음집』의 주장이 있지만 영산재 의례 자료의 성립 시기 등으로 보면 법화법석이 영산작법으로 나타나는 위 의례서의 등장 무렵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고, 그 이후 현재의 영산재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산재의 핵심은 영산의 붓다를 모셔와서 법화경을 설법하거나 염송하여 들려줌으로써 그 경전을 듣고 망자와 살아 있는 존재들이 일체 존재의 이치를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며, 아울러 명부 시왕을 청하여 공양을 올려 망자의 저승 공덕을 지어주며, 저승에 가서 전생에 지은 빚을 갚아 주기 위해 금산 은산을 도량의 정면 좌우에 걸어두었다가 마지막 망자를 떠나보낼 때 저승돈[명부전]으로 변하게 하는 의례를 하며 봉송을 하여 마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의 실제 행해지는 모습은 현실의 사정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는데, 불교의 범패와 작법무로 의례가 진행된다. 영산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청하기 이전에 삼보에 귀의하면 지옥 아귀 축생의 업보를 면하게 된다고 삼귀의라는 의식이 행해지는데, 이때 불보와 법보와 승보에 지극한 마음으로 경례하는 전후에 찬탄의 구문이 불교의 전통 범패로 설해지며 아울러 삼귀의작법이라는 작법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의 다양한 재회 가운데 영산재가 가장 큰 형식의 재라고 할 때는 〈삼지심〉이나 〈거영산 짓소리〉 등으로 붓다를 맞이하며 원을 그리는 모습 등이 장엄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재가 설행 되는 도량은 각종 지화와 화만으로 각단이 장엄되고, 도량을 결계하기 위한 천수경 등이 걸리고, 또 불보살과 외호 신중을 상징하는 번(幡)들이 걸려서 도량을 장엄한다. 또 공양을 변화시킬 때나 공양을 올릴 때는 올릴 때는 바라춤 향화게 작법무 등이 행해지는데 이를 통해 공양이 감로의 공양으로 바껴 여러 불보살에 공양 올리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신업(身業) 공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영산재 제50호에서는 영산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만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식당작법이 행해지는데, 이는 상단의 부처님, 중위의 스님, 중위의 명부시왕과 그 권속과 당일 청한 혼령들에게 시식을 올리는 관음시식과 전시승 등도 행해진다. 이렇게 재회를 올려 공덕을 지어 망자의 저승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 연행 시기와 장소 49재의 날짜에 따라 행해지므로 정해진 시기는 없으나 현재 영산재를 49재의 의례 형식으로 행해지는 것보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의 경우 6월 6일 서울 신촌 봉원사 대웅전 앞의 가설 도량과 시련 터를 중심으로 설행이 된다.
영산재는 다음의 절차로 구성된다. 시련의식, 재대령의식, 관욕의식, 조전점안, 신중작법, 괘불이운, 영산작법, 식당작법, 중위단 권공, 관음시식, 봉송의식 등으로 진행된다. 그 절차와 내용 및 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영산재에 참석할 성현이나 혼령 등을 연으로 재장으로 모셔오는 의식인 시련의식이다. 시련의식에 모셔 올 대상은 법당 안에서 연(輦)에 모시고 나오거나 대문 밖에서 모셔오는 형식으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 대문 밖에서 모셔오는 시련의식을 하고 있다. 영산재 제50호의 양상을 중심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마당 앞 무대에서, 악사와 어산 및 위의를 갖춘 연을 가지고 일주문 조금 지나 부도전에 마련된 시련소로 나아간다. 부처와 신중을 모셔올 수도 있고, 당일 재장에서 법문을 듣고 천도할 대상을 모실 수도 있다. 그 방식을 보면 시련을 옹호할 성중(聖衆)을 청하는데 요잡바라로 모신다. 차를 권해 올리며 착복하고 춤으로 공양을 찬탄한다. 시련으로 모셔오는 주 대상은 천도를 받는 혼령인데 옹호성현과 혼령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모셔온 혼령들에게 불전 앞에 이르면 불전을 향해 삼배를 올리게 한다. 이때 기경작법이라는 의식무가 행해진다. 다음은 혼령들을 맞이하는 대령의식이 이어진다. 혼령을 청하고 청해 모시는 연유를 아뢴다. 다음은 혼령들에게 관욕이라는 목욕의식을 행한다. 목욕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정화의식이다. 번뇌라는 업의 식으로 인해 맑은 마음이 되지 못하면 부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욕실은 대문 밖에 설해지는 것이 원칙이나 도량 마당에 설치되기도 한다. 제왕과 장상과 고혼의 남녀를 위한 여섯 칸의 욕실이 마련된다. 욕실 안에서 목욕이 이뤄지며 밖에서는 수인법사[대체로 증명법사]는 각 의식의 진언을 수인으로 표하고 법주스님은 범패로 진행한다. 또 목욕을 할 때 관욕바라를 밖에서 울린다. 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관상하는 바라라고 할 수 있다. 망자의 저승길과 전생 빚을 갚기 위해 저승돈을 만드는 조전의식을 하지만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영산재도량의 옹호를 청하는 신중작법이 행해지고, 영산회상의 괘불을 모시는 괘불이운의식이 행해지는데, 실제 괘불을 옮기는 경우는 드물고 사전에 이운하여 설치해 놓고 의문 곧 대사만 하고 요잡바라를 한다. 영산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영산작법을 하는데, 대개의 재장은 오전 10시에 시작한 의식이 12시에 접어들자 사실상 영산작법 다음의 의례인 식당작법이 먼저 행해진다. 식당작법은 재자가 스님들에게 올린 재공을 스님들이 공양하는 의식이다. 식당작법이 행해지는 영산재를 보기는 어려운 편인데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보존회에서는 설행하고 있다. 영산재의 식당작법은 한 시간 이상 소요되며, 공양을 나누기 이전과 이후의 긴 의식이 소리와 창 춤 등으로 그 의미가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불가에서 행하는 발우공양의식과 같지만 각각의 소리와 몸짓은 봉원사 영산재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영산작법을 하고 재승(齋僧)의 식당작법이 더해져서 영산재로 온전히 성립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산작법은 일체에 두루 계시는 변재삼보를 찬탄하며 절하고 삼보에 귀의하면 지옥ㆍ아귀ㆍ방생(축생)의 삼악도가 소멸될 수 있다고 하는 삼귀의 삼지식의식인데, 범패소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찬탄과 귀의의 대상을 밝히는 의식을 마치고 나면 도량을 깨끗이 하고자 관세음보살을 청해 천수대비주로 감로수에 가지하여 달라고 청한 다음 그 감로수를 도량에 뿌려 도량을 정화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삼보와 사부의 신중을 청하며 별도로 영산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청해 모시고 법화경 설법과 법문을 듣게 된다. 이때 법문을 하는 설주이운 의식이 별도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현재는 여건상 생략되고, 법화경 염송 또한 설행되는 곳이 별로 없다. 설법이 끝나고 나면 영산회상의 불보살님께 육법공양을 올린다. 식당작법이 이때 행해야 하지만 사실상 영산작법보다 먼저 영산재보존회는 하고 있다. 다음은 운수상단의식이 행해지는데, 운수상단이란 운수라는 표현처럼 일체에 물과 구름처럼 두루 계시는 상단의 부처님께 먼저 증명을 해달라는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야 망자를 위해 명부의 시왕권공이 이뤄지는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는 칠칠재ㆍ백일재ㆍ소상재ㆍ대상재를 거치면서 명부시왕의 심판을 받게 되고 끝나면 왕생극락을 위해 영산재를 설하는 것이므로 명부시왕에 대한 권공의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영산재보존회 영산재에서는 시간 형편상 시왕권공의식은 대체로 생략되고 명부 중단 화청 염불로만 진행된다. 이어서 당일 설판재자와 동참재자에게 진수(珍羞)를 올리는데, 진수는 천신(薦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하위 시식을 마치고 나면 하위의 혼령이나 중위의 시왕권속과 상위의 불보살님들이 본래 계신 곳으로 돌려보내는 봉송의식을 행한다. 소대로 나아가 재회에 사용된 번이나 지화 등을 불태움으로써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불교 영산재는 49재의 대형 재회였으나 오늘날은 영산재를 특정 망자의 49재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보존회의 경우 6월 6일 현충일 행해지며 순국선열을 중심으로 당일 설판재자를 위한 재 의례로 행해지는 국가적인 의례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재회 가운데 가장 성대한 영산재는 재회에 초청하는 영산의 붓다와 명부시왕중, 당해 혼령과 법계고혼을 초청하여 재회를 베푼다. 진수성찬과 법식을 사성과 영산의 성현과 당해 망령을 위시하여 일체 고혼들에게 재를 올림으로써 그 공덕으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재의례인 영산재는 범패와 작법무 등으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한국불교 제일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73) 범패 국가무형문화재(1987)
학조 역(1495), 『작법절차』(『한국불교의례자료총서』 제1집) 용복사 刊, 『영산대회작법절차』(『한국불교의례자료총서』 제2집), 1634. 智禪 撰, 『오종범음집』(『한국불교의례자료총서』 제2집), 1661. 심상현, 『영산재』, 불교문화재연구소, 2003. 이성운, 「영산재의 구조와 설행 및 사상과 인식」, 『불교문예연구』 17, 동방대 불교문예연구소, 2021 심상현, 「영산재 성립과 작법의례에 관한 연구」, 위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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