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을 풍자하기 위해 신체장애를 흉내 내는 춤
병신춤은 민간에서 지배계층인 양반의 부자유스런 신체 부위를 부각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모방춤이다. 재인, 광대, 창우(倡優), 민중들까지 보편적으로 연행하던 춤으로 극중 효과를 높이고 계급사회의 불합리를 폭로하고 평등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중엽 임진왜란 이후 탈춤, 농악, 대동놀이 등 민중예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탈춤은 양반 풍자와 파계한 승려를 조롱하는 등 사회풍자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병신춤은 전통시대에 서민들의 놀이판, 마을의 회갑 잔치, 명절 등 크고 작은 놀이판과 춤판에서 행해졌다. 특히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백중날 머슴들이 농신제를 지내고 양반들을 흉내 내는 〈양반춤〉과 병신춤, 〈북춤〉 등을 즐겼다.
근대 이후 병신춤을 널리 알린 사람은 일인창무극을 창안한 공옥진(孔玉振, 1931~2012)이다. 그녀는 익살스런 표현의 봉사춤, 곱사춤과 동물을 모방한 춤을 무대에 올렸고, 한국예술의 서민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을 모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강해졌다. 결국 공옥진은 병신춤 연행을 중단하고 주로 동물모방춤을 중심으로 춤을 공연하게 되었다.
병신춤은 모방춤(흉내춤)의 한 갈래로 사람모방춤과 동물모방춤으로 나뉜다. 사람모방춤은 신체 부자유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을 흉내 내는 춤이다. 이에 비해 동물모방춤은 동물들의 정상적인 움직임의 특징을 실증적인 춤동작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병신춤은 장애 동작을 흉내 내는 자체가 장애인을 모독하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괴롭혀 온 양반 풍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구경꾼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笑劇)적인 춤으로서 효과가 컸다. ○ 구성 병신춤의 종류로는 뼈다귀춤, 난쟁이춤, 중풍쟁이춤, 배불뚝이춤, 꼬부랑할미춤, 떨떨이춤, 문둥이춤, 곱사춤, 히줄대기춤, 봉사춤, 절름발이춤, 해골병신춤, 얼굴병신춤, 곰배팔이춤, 오리발춤, 뻗정다리춤, 안짱다리춤, 엉치춤(엉덩이춤)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다양한 표현 방식을 한 가지 또는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웃음을 유발한다. 영남 지방의 탈춤판에서 〈문둥북춤〉과 〈병신양반춤〉은 극중 인물로서 유형화된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서울ㆍ경기 지역 송파와 양주의 산대놀이 가운데 〈옴중춤〉과 〈언청샌님춤〉, 〈취발이춤〉에서도 병신춤을 춘다. 또한 황해도 《봉산탈춤》ㆍ《강령탈춤》ㆍ《은율탈춤》에는 째보양반들과 입비뚤이 도령춤 등이 있고, 함경도 북청사자놀음에 나오는 〈곱사춤〉도 병신춤의 일종이다.
정해진 반주 형태가 없고, 농악이나 삼현육각에 맞춰 연행된다. 주로 자진모리장단, 타령장단 등에 맞춰 추며, 혼자 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추기도 한다.
주로 평상복인 민복차림으로 추지만, 탈춤에서는 배역에 따라 의복과 소품을 갖춰 입고 추기도 한다.
병신춤은 현대 사회에서는 비도덕과 인권문제로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어 소멸되고 있는 춤이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는 병신 흉내를 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양반들의 행동을 풍자적으로 나타내는 춤이기에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적 해학이라 할 수 있고, 서민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는 기능이 있다. 또한, 장애를 흉내내어 장애인을 모멸하기 위해서 추는 춤이 아니라 불구일지라도 정상인 못지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지의 보여주는 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지원, 「공옥진 1인 창무극에서 무의 한국적 정서와 예술적 가치 분석」, 『공연문화연구』 20집,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이병옥, 『한국무용민속학개론』, 노리, 2000. 정병호, 『한국의 전통춤』, 집문당, 1999.
이병옥(李炳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