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노, 비비, 영노과장, 비비과장
경상남도와 부산 지역 가면극인 오광대(五廣大)와 야류(野流)에만 등장해 양반을 벌하는 상상의 동물인 영노가 추는 춤
가면극에 영노나 비비가 등장한 시기는 확실치 않다. 영노과장을 포함하는 오광대나 야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상황과 연희자의 구술, 놀이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경주, 개성, 서울 등 중앙집권적인 도읍지가 있었던 곳을 중심으로 탈놀이가 형성되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낙동강 영역을 배경으로 발달한 신라에는 탈과 관련된 경주 호우총의 〈목심칠면木心漆面〉, 『삼국사기』 「악지」의 〈사자기獅子伎〉, 최치원(崔致遠, 857년~?)의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의 〈대면大面〉 등의 기록을 통해 흔적이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낙동강 동쪽의 경상좌도에는 야류가, 서쪽의 경상우도에는 오광대가 각각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야류는 들놀음이라고도 부르는데, 동래·수영·부산진 등지에서 전승되었다. 오광대는 다섯 방위(오방)를 상징하는 다섯 광대가 나오기 때문에 또는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광대라고 하는데, 초계·신반·통영·고성·가산·마산·진동·가락·거제·진주·산청·학산·도동·서구·남구 등지에서 전승되었다.1930년대 송석하(宋錫夏, 1904~1948)의 현지조사보고에 따르면, 수영(水營)야류는 1933년으로부터 약 60년 전(1870년 무렵)에 초계(草溪)에 가서 있던 수영사람이 보고 와서 창설한 것이고, 동래(東萊)야류는 수영야류를 본떠서 역시 1870년 무렵 시작되었으며, 김해(金海)오광대는 1890년 무렵 동래야류를 참고하여 시작했다고 한다. 창원(昌原)오광대는 1890년 무렵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의 가면극을 배워 온 것이고, 통영(統營)오광대는 1900년 무렵 창원오광대를 본떠 만든 것이다. 진주(晋州)오광대는 1880년 무렵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新反里) 대광대패의 가면극을 배워 온 것이라고 한다. 고성(固城)오광대는 창원과 통영오광대의 영향 아래 1920년대에 생겨난 듯하고, 가산(駕山)오광대는 진주오광대를 배워 온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현재 연행되는 오광대와 야류는 17~18세기부터 형성되어 19세기에 이르러 발전하고 전승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착된 시기는 대략 19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영노와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여 민중을 괴롭히는 양반을 심판하는 내용도 이 무렵에 정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영노춤(비비춤)이 연행되는 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동래야류·수영야류·가산오광대가 60년대부터 복원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2015년 복원된 김해오광대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 연행내용 영노춤(비비춤)은 오광대⋅야류에만 연행되는 과장으로 통영오광대 제3과장 영노탈마당, 고성오광대 제3과장 비비과장, 동래야류 제3과장 영노과장, 수영야류 제2과장 영노놀이, 가산오광대 제2과장 영노과장, 김해오광대 제4과장 영노과장에서 연행된다. 영노과장(비비과장)에서 영노와 양반은 벌 하는 자(영노)와 벌 받는 자(양반)의 역할로 등장하는데,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먹고 한 명만 더 잡아먹으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영노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거짓말하는 양반을 희화화하고, 조선 후기 사회 지배층인 양반의 위선과 모순을 영노를 통해 풍자하고 심판하는 내용이다. ○ 구성 가면극에서 영노 관련마당의 서사구조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 양반이 영노를 만나 정체를 묻자 영노는 양반을 잡아먹은 후 득천(승천, 등천)하겠다고 말하며 위협한다. (나) 양반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 동물 또는 먹지 못할 물건이라고 말하며 자기신분을 속인다. (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나중에는 신분을 밝히고 양반으로서의 허세를 부리며 저항한다. (라) 양반은 영노에게 쫓기다가 잡아먹히거나 먹힐 위기에 몰린다. 이처럼 오광대와 야류에서 연행되는 영노과장의 서사구조는 몰염치한 양반을 풍자하고 벌을 내리는 내용이 대체로 같으나, 탈과 복식, 연행내용의 차이가 있다. 고성오광대⋅동래야류⋅김해오광대에서는 영노와 양반 사이에 갈등이 진행되다가 양반이 잡아먹히지는 않고 영노(비비)와 함께 춤추며 퇴장하지만 통영오광대⋅수영야류⋅가산오광대에서 영노는 끝내 양반을 잡아먹으며 끝난다. 오광대와 야류에서 연행되는 영노(비비)과장의 구성을 각 종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통영오광대의 영노춤은 제3과장 영노탈과장에 연행된다. "하늘 사는 영노사(蛇)가 지하에 내려왔다"라고 하고, "지하에 사는 양반들의 행사(실)가 나빠서 양반을 잡아먹으러 내려왔는데, 양반을 아흔아홉 명을 잡아먹고, 이제 하나를 잡아먹어 백을 채우면 하늘 끝을 사룡해 올라간다"라고 했다. 영노는 양반을 상대로 지혜와 재치를 겨루고, 무엇이든지 잡아먹고 누구에게나 이길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초인적인 존재라고 한다. 비비양반이 춤을 추며 등장하면, 영노가 입으로 호드기를 불어 '비비' 소리를 내면서 등장한다. 영노가 양반의 말을 흉내 내며 양반을 잡아먹으려 하자, 양반은 자기가 양반이 아니라고 하면서 도포를 벗겠다고 하나 영노는 도포를 벗어도 역시 양반이라고 한다. 양반은 다급하여 영노에게 맛있는 것을 주겠다면서 구렁이, 올챙이, 개구리 등을 먹을 줄 아느냐고 물어도 다 먹는다고 하면서 영노가 기어이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위협하여 양반이 영노에게 달려 들어서고 대결하다가 양반이 영노에게 잡아먹히며 퇴장한다.
고성오광대에서 영노를 비비라고 부르고, 제3과장 비비과장에서 비비춤이 연행된다. 2과장에서 여러 양반들이 한창 흥겹게 놀고 있을 때 이 세상 무엇이든지 다 잡아먹는 비비가 나타나자 양반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친다. 그 중 한 양반을 붙들고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먹고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승천)한다고 말한다. 비비에게 쫓기는 양반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비비와 주고받는 재담을 연행하다 결국 자신이 비비의 고조부(高祖父)라는 계략을 펴 함께 자진모리장단에 춤추며 퇴장한다.
동래야류에서 영노춤은 제3과장 영노과장에서 연행된다. 영노가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먹고 양반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한다고 하자, 겁을 먹은 비비양반은 자기가 양반이 아니라고 한다. 양반은 자기를 똥·개·돼지·소·풀쐐기·구렁이 등으로 둘러댄다. 영노가 그것들을 더 잘 먹는다고 하자, 겁에 질린 양반이 부채를 떨어뜨린 뒤 간신히 부채를 다시 집어들고 나서 영노와 함께 굿거리장단에 맞춰 덧배기춤을 한바탕 추다가 퇴장한다.
수영야류에서 영노춤은 제2과장 영노놀이에 연행된다. 제1과장 양반과장에서 말뚝이에게 모욕을 당한 양반들이 퇴장하고, 수양반만 남아 있는 놀이판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영노가 등장한다. 영노가 양반을 위협하자 양반이 정체를 묻게 되는데, 영노는 천상에서 내려와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먹었고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한다고 한다. 수양반이 영노에게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고 하여도 잡아먹는다고 하니까, 수양반은 자기가 쇠뭉치나 그림자라고 둘러댄다. 그러면 영노는 그런 것도 잘 먹는다고 한다. 양반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영노에게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영노는 참양반이라고 한다. 수양반은 조상의 내력을 대고 자신이 참양반이라고 하자, 영노가 그런 양반을 잡아먹어야 득천(得天)한다고 하면서 잡아먹는다.
가산오광대의 영노춤은 제2과장인 영노과장에서 연행된다. 영노가 등장하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오방신장들을 차례로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황제장군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정체확인문답을 주고받은 뒤 황제장군이 "내가 양반인데 니가 양반도 잘 먹나?"라고 자기가 양반임을 밝히자, "흥! 양반은 더 맛이 있지"라는 재담을 주고받은 뒤 황제장군을 잡아먹는다. 이후 영노가 춤을 출 때 포수가 등장하여 영노를 쏘아 죽인다. 가산오광대의 영노는 양반을 잡아먹는다는 점에서는 영노의 성격을 지녔지만, 통영오광대의 사자 과장과 유사하게 포수에게 사살당하는 점에서는 사자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김해오광대의 영노춤은 제4과장인 영노과장에서 연행된다. 굿거리장단에 등장한 양반이 타령장단에 맞춰 춤추고 있을 때 영노가 나타난다. 영노가 호드기(호루라기)로 “비∼비∼” 소리를 내며 “대국서 양반 아흔아홉 명 잡아먹고 조선 양반 너를 잡아먹으러 왔다.”라고 말한다. 놀란 양반은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며 ‘개, 똥, 오줌, 소, 돼지, 갈치, 멸치’ 등이라고 열거하였으나 영노가 다 먹는다고 하는 바람에 당황하여 부채로 영노를 때리려 하다가 부채를 떨어뜨린다. 양반의 신분 상징인 ‘부채’를 둘러싼 다툼을 통하여 양반은 넘어져 상처를 입는 등 온갖 망신을 당하고 곤욕을 치르다 겨우 부채를 집어 들고 안도의 숨을 쉬며 영노와 함께 자진모리장단에 춤추며 퇴장한다.
○ 주요 춤사위
오광대와 야류에서 연행되는 영노춤(영노놀음, 비비춤)의 춤사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통영오광대 제3과장 영노탈마당은 영노가 잦은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호드기(호루라기)를 불며 등장하고, 양반과 대결하다가 양반을 잡아먹기 위해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쫓아가 양반을 잡아먹는다. 통영오광대에서 연행하는 영노춤의 주요 춤사위로는 기본춤이 있고 대부분의 움직임은 양반을 위협하는 동작을 취한다.
고성오광대 제3과장 비비과장은 비비와 비비양반이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등장한다. 비비양반과 비비는 특별한 춤사위 없이 연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동작만을 취하는데, 비비의 동작은 비비양반을 공격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장단에 맞춰 비비양반에게 달려드는 동작을 주로 한다. 이런 동작은 동물의 공격형태를 흉내 낸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동래야류 제 3과장 영노과장에서 비비양반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등장하여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 뒤이어 머리에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 쓴 영노가 나타나 양반의 뒤를 따라다닌다. 영노가 양반 아흔 아홉을 잡아먹고 양반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등천한다고 하자, 겁을 먹은 비비양반이 자기를 똥·개·돼지·소·풀쐐기·구렁이 등으로 둘러댄다. 영노는 양반을 잡아먹는 상상의 반인반수 동물이므로 때로는 사냥하는 보라매처럼 힘차게 역동적으로 춤을 추기도 하고 양반을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서는 몸으로 개·돼지 등 동물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양반을 조롱한 후에는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신명나게 마당을 휘저으며 춤을 춘다. 대결 후 비비양반은 영노와 함께 굿거리장단에 맞춰 덧배기춤을 한바탕 추다가 퇴장한다. 동래야류에서 연행하는 영노춤을 출 때 양반 춤사위보다 손의 위치가 위로 조금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으며 주요 춤사위로는 활갯짓뜀사위, 앉은일자사위, 한손잡는뜀사위가 있다.
수영야류 제2과장 영노놀이에서 영노와 양반은 굿거리장단에 등장한다. 이후 영노가 퇴장할 때 자진모리장단이 나온다. 수영야류에서 연행하는 영노춤의 주요 춤사위로는 번쾌춤(번케춤)이 있고, 대부분의 움직임은 양반을 위협하는 동작을 취한다.
가산오광대 제2과장에서 영노가 자진모리장단에 등장하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사방신장들을 차례로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황제장군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특별한 춤사위 없이 재담과 움직임으로 양반에 대한 위협을 표현한다. 다른 지역의 영노(비비)와 달리 사자의 형태를 하고 있는 가산오광대의 영노는 움직임 또한 다른 지역의 사자의 움직임과 비슷하고, 가산오광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춤사위 용어는 없다.
김해오광대 제4과장에서 영노는 타령장단에 맞추어 등장한다. 김해오광대 영노는 고성오광대 비비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춤사위 없이 연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동작만을 취한다, 영노의 동작은 양반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동작과 구르는 동작을 주로 한다.
현재 오광대와 야류의 영노춤(영노, 비비과장) 반주악기편성은 징, 장구, 꽹과리, 북의 타악기와 선율악기인 태평소가 함께 연주되고 있다. 태평소의 경우 시나위가락을 연주한다.
통영오광대 영노춤 반주음악은 양반과 영노가 등장할 때 자진굿거리장단, 양반과 영노의 대결과 퇴장할 때 자진모리장단이 연주된다.
고성오광대 비비춤 반주음악은 비비와 양반이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 자진모리장단이 연주된다.
동래야류 영노춤 반주음악은 굿거리장단에 양반과 영노가 등장하고, 양반과 영노가 대결할 때 굿거리 장단, 퇴장할 때 자진모리장단으로 연주된다.
수영야류 영노춤 반주음악 역시 굿거리 장단에 영노와 양반이 등장하고, 영노와 양반이 퇴장할 때 자진모리 장단이 연주된다.
가산오광대 영노춤 반주음악은 타령장단에 영노가 등장, 퇴장한다.
김해오광대 영노춤 반주음악은 영노가 등장할 때와 타령장단, 양반과 퇴장할 때 굿거리장단이 연주된다.
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동래야류⋅수영야류⋅가산오광대⋅김해오광대의 영노춤 반주음악 출현부분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또한 오광대와 야류의 영노과장(비비과장)에서 영노(비비)가 양반을 위협하거나 대결할 때 특정 장단이 아닌 풍물악기만으로 효과음악을 연주할 때가 많다.
상상의 동물인 영노와 비비는 오광대와 야류에만 등장하는 동물이다. 야류의 영노는 생김새가 비교적 유사한데 비해 통영오광대의 영노(비비)는 각각 판이하게 다르다. 영노(비비)의 탈과 복식, 소도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통영오광대의 영노탈은 종이로 만들어졌다. 새와 같은 긴 부리를 가졌고 그 끝에 두 눈이 있다. 눈 위로 귀와 두 개의 뿔이 있다. 푸른색의 용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었고, 푸른 바탕색에 홍백청(紅白靑)의 비늘무늬가 그려져 있는 긴 보자기로 몸을 감싼다. 역할을 맡은 탈꾼은 호드기(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삐삐-” 소리를 낸다. 고성오광대의 비비탈도 종이로 만들어진 탈이다. 탈의 전체 형상은 둥근 편으로 붉은 바탕에 작은 흰 점이 얼굴 전체 찍혀있고 양볼과 이마에 문양이 있으며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두 개 솟아 있으며 입은 약간 벌린 상태다. 송곳니 두 개가 아래로 삐죽하게 늘어져 있다. 복식은 상하의가 붙어있는 형태로 탈과 비슷한 색상의 무늬가 있다. 비비 에는 꼬리가 있으며 하의는 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와 발을 완전히 덮는다. 현재는 탈과 의상의 색상, 무늬와 비슷한 장갑을 제작해 연행시 착용한다
동래야류의 영노탈은 바가지로 만들어진 탈이다. 탈의 붉고 둥그런 바탕에 검은 점이 이마, 코, 양볼에 찍혀있고 검고 긴 탈보가 달려있다. 복식은 흰 바지저고리에 검은 조끼를 입고 가슴에 검은 앞두름을 한다. 다리에는 검은색 행전을 차고 짚신을 신는다.
수영야류의 영노탈은 머리에 고리모양의 뿔이 2개 달려 있고, 미간에 검은 말총을 붙어있고, 붉은 얼굴에 크고 작은 혹이 12개 달렸다. 눈은 동그랗게 움푹 파였고, 안쪽부터 흰색, 붉은색, 노란색 순으로 원을 그리며 칠했다. 입은 귀밑까지 크게 째어졌고, 입의 가장자리는 붉게 칠했다. 복식은 붉은색의 바지에 검은 덧저고리를 입고 연두색 허리띠를 했다. 짚신을 신고 양쪽 무릎 아래 노란색 윗대님을 맸으며, 두 손에는 검은 보자기를 들고 연행시 사용한다.
가산오광대의 영노탈은 사자 모양과 흡사하다. 눈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테두리는 얼굴보다 돌출되어 있으며 흰색이다. 코는 삼각형으로 돌출한 형태에 검붉은색이다. 입은 벌리고 있으며, 흰 삼각형의 날카로운 이빨이 위아래로 다섯 개씩 나 있다. 입 위에는 진한 갈색과 흑갈색의 콧수염, 아래는 연한 갈색 수염이 나 있다. 아랫수염은 약 50㎝ 정도의 길이인데 삼을 꼬아서 만들었다. 얼굴에도 눈 밑, 눈썹 사이, 얼굴 표면에 연한 갈색으로 털을 붙였다. 귀는 이마 양옆에 회색 천을 붙여 눈 근처까지 늘어지게 했다. 몸은 갈기 같은 밤색의 굵은 실이 덮여 있고, 등 한가운데에는 붉은색ㆍ검은색ㆍ살구색ㆍ노란색의 실을 섞어 엮어서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게 한 줄을 만들었다. 꼬리는 길이 50㎝가량인데,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빳빳하게 서 있다. 다리는 바지에 몸의 색깔과 같은 연한 밤색의 털을 붙여서 입는다.
김해오광대의 영노탈은 바가지로 만들어진 탈이다. 탈의 검고 둥그런 바탕에 빨간 혹이 이마와 코에 6개 찍혀있고 검고 긴 머리털이 달려있다. 복식은 고성오광대의 비비와 같이 상하의가 붙어있는 형태의 적갈색옷을 입고 있다.
영노는 경상남도와 부산 지역의 가면극인 오광대와 야류에만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자연적인 잡귀를 쫓는 사자와는 달리 사회지배층인 양반을 쫓고 벌한다. 영노는 지역에 따라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 지배층인 양반의 위선과 허세를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노출시키며 풍자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다른 지역 가면극에는 보이지 않는 영노는 양반·말뚝이 과장의 양반 비판을 넘어서 양반을 직접 응징까지 한다는 부분이 경상남도와 부산 지역의 계급 갈등과 비판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더욱 극화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된다. 고성오광대⋅동래야류⋅김해오광대에서 연행되는 영노춤은 영노와 양반 사이에 갈등이 진행되다 주거니 받는 재담과 춤을 통해 극단적 대립을 완화하고 일시적인 화해를 시도하며 놀이성을 부각시킨다. 반면 통영오광대수영야류⋅가산오광대에서 영노는 끝내 양반을 잡아먹으며 벌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노춤은 실제 연행할 때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도 즉흥성이 많이 가미되어 연희자의 재담이나 움직임에 의해 자유롭게 변화하는 탈놀이의 즉흥성과 놀이성이 드러나는 춤이다.
통영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1964) 고성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1964) 동래야류 국가무형문화재(1967) 수영야류 국가무형문화재(1977) 가산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1980) 김해오광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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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열(許昌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