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杖鼓/長鼓), 장구(獐狗)
모래시계형 몸통의 양쪽 북면을 손과 채로 쳐서 연주하는 타악기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로부터 들어온 악기로, 허리가 잘록한 나무 몸통 양쪽 끝에 가죽을 대어 만든 두 개의 북면을 가진 타악기이다. 앉은 자세에서 오른쪽 발로 조임줄을 눌러 고정시키고 왼손과 채를 든 오른손으로 양쪽 북면을 쳐서 연주한다.
장구 명칭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1114년(고려 예종 9)에 중국 송나라는 당시 새롭게 제작한 여러 악기를 보내왔는데, 여기에 장구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한반도에 장구와 비슷한 악기가 존재했었다. 허리가 잘록하며, 양쪽 울림통에 가죽을 씌운 형태의 타악기가 고구려 《오회분 4호묘》의 ‘주악 비천상’과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등 삼국시대 유적과 유물에서부터 보인다. 이는 ‘요고’(腰鼓) 또는 ‘세요고’(細腰鼓)로 불리던 악기로, 장구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다. 요고는 동아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에서도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예컨대 감숙성 돈황 막고굴 《제17굴 불고자명도(莫高窟第172窟不鼓自鸣图)》와 《제220굴 악무도(莫高窟第220窟乐舞图)》의 벽화에서 세요고 타악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악서』에 따르면, 요고는 지금의 중국 신강성(新疆省) 고차(庫車) 지방인 고대 구자국(龜玆國)에서 사용된 이래 한나라와 위나라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요고는 중국을 거쳐 6세기경 고구려에 들어왔다. 근래에 이성산성(二聖山城)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는 발굴과정에서 고구려의 관직명이 표기된 ‘자’(尺)와 함께 출토됨에 따라, 이를 고구려시대에 사용했던 요고로 보고 있다. 고구려 이후 요고는 60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사용되다가 고려시대에 송나라로부터 유입된 장구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온 장구는 조선시대를 거치며 형태가 약간 변화하였다. 즉, 고려시대의 도자기 장구와 조선시대 『악학궤범』의 장구 도설(圖說) 등을 비교해보면, 장구는 고려시대 이후 채편의 배면이 사라지고 북면의 지름이 점점 커졌다.
민속음악에서는 각 지역 농악의 장단구성에 따른 진법 및 연행 동작에 맞추어 악기의 쓰임과 연주법 등이 다채롭게 전승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악기 중 하나가 바로 농악(풍물) 장구이다.
조선시대 이후 장구의 형태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명칭이 조금 달라졌다. 즉,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채(杖)를 사용해 연주하는 북(鼓)’이라는 뜻의 ‘장고’(杖鼓)로 불렸으나, 오늘날은 양성모음 ‘ㅗ’가 음성모음 ‘ㅜ’로 바뀌어 장구라 불리고 있다.
○ 구조와 형태
장구는 몸체와 채로 구성되고, 몸체는 다시 울림통ㆍ두 북면ㆍ양 북면을 연결해주는 조임줄(숙바)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울림통은 가운데가 잘록한 모래시계형인데, 가운데 오목한 부분을 조롱목(지역에 따라 울음통 혹은 상사목)이라고 한다. 울림통은 전체가 빈 공간으로 되어있으며, 특히 조롱목이 일시적으로 소리를 잡아주는 기능을 하여 북처럼 소리가 바로 나가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장구는 보다 깊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멀리 전달할 수 있다. 북면은 울림통 양쪽으로 두 개가 있어서, 한쪽은 ‘북편(궁편)’, 다른 한편은 ‘채편’이라고 한다. 북편은 채편에 비해서 지름이 약 1cm~2cm까지 더 큰데, 그 이유는 채편보다 북편이 더 낮은 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북편의 가죽 또한 대체로 채편의 가죽보다 상대적으로 두꺼운 가죽을 사용하여, 채편보다 더 저음을 내기에 적합하게 한다. 또한 각각의 북면은 복판과 변죽의 두 영역으로 구분된다. 복판은 둥근 가죽이 울림통의 테두리 안에 포함되는 부분이고, 변죽은 울림통의 테두리로부터 벗어난 바깥쪽 가죽면을 말한다. 복판은 울림통을 통하여 진동을 증폭하므로 음량이 큰 반면, 변죽에서는 작고 높은 소리가 난다. 조임줄은 실을 꼬아서 만든 끈으로, 북편과 채편의 양쪽 북면을 울림통에 고정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임줄의 끝에는 북면의 테두리에 걸 수 있도록 쇠고리(가막쇠)가 달려있다. 조임줄에는 북면과 채편의 음고 및 음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조이개(축수)라고 한다. 조이개를 오른쪽으로 밀어 놓으면 채편에서는 보다 높은 음고와 팽팽한 음색을 낼 수 있다. 장구의 채는 기본적으로 오른쪽의 채편을 두드리는 ‘열채’를 사용하는데, 보통 대나무를 평평하게 깎아 손잡이 부분은 넓게, 윗부분은 좁고 얇게 만든다.
○ 구음과 표기법
장구의 연주법은 여러 구음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장구의 연주법을 쌍(雙)ㆍ편(鞭)ㆍ고(鼓)ㆍ요(搖)로 나누었을 때, 각각의 구음은 덩(쌍)ㆍ덕 또는 기덕(편)ㆍ쿵(고)ㆍ더러러러(요)가 된다. 예를 들어, 《영산회상》ㆍ〈보허자〉ㆍ〈동동〉과 같은 악곡에서 구음과 그 표기법은 아래와 같다.
○ 연주방법과 기법
『사용향악보』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쌍(雙)ㆍ편(鞭)ㆍ고(鼓)ㆍ요(搖)의 연주기법이 사용되었다. 쌍(雙)은 양손으로 북편과 채편을 동시에 치기(합장단-궁), 편(鞭)은 채로 채편의 복판이나 변죽을 치기(채편-덕), 고(鼓)는 손바닥으로 북편을 치기(북편-쿵), 요(搖)는 오른손으로 채를 굴려 치기(굴림채-더러러러)이다. 이와 같은 연주법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오른손으로 채편에 장식음을 더하는 겹채(기덕)와 오른손 채편을 약하게 한번 치는 채찍기(더) 주법 등도 사용된다.
궁중음악과 풍류음악에서는 음악의 속도나 악기 편성에 따라 장구의 연주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북편의 경우 느린 음악에서는 왼손을 높게 들어 북편을 강하게 치지만, 속도가 빠른 음악에서는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북편에 놓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복판을 가볍게 친다. 합장단의 경우도 속도가 아주 느린 곡에서는 양손을 동시에 치지 않고 채편의 기덕과 북편의 쿵을 순차적으로 치는 ‘갈라치는 주법’이 사용된다. 이같이 갈라치는 주법이 사용되는 악곡으로는 〈수제천〉ㆍ 〈여민락〉ㆍ《삼현영산회상》 중 〈상령산〉 등이 있다. 채편 역시 악기편성의 규모에 따라 복판치기와 변죽치기의 다른 주법이 사용된다. 음량이 큰 관현합주나 관악합주에서는 채편의 복판을 연주하지만,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관현합주, 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성악곡에서는 변죽을 쳐서 연주한다. 그러나 기악 독주나 여러 민속음악에서는 음악적 변화를 위해 복판과 변죽을 번갈아 치기도 한다.
농악에서 장구는 끈으로 허리와 어깨에 장구를 메고 서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지역의 농악마다 여러 형식의 진법과 연희적인 놀이 및 춤사위를 동반하여 연주한다. 다양한 움직임을 연행하는 동시에 양손에 각각 ‘궁채’와 ‘열채’를 잡고 장단을 친다.
○ 연주악곡 장구는 전통음악 전반에 사용된다. 궁중음악과 풍류음악 중 현재 전승되는 대부분의 악곡, 즉 〈여민락만〉ㆍ〈여민락령〉ㆍ〈해령〉ㆍ〈여민락〉ㆍ〈수제천〉ㆍ〈보허자〉ㆍ〈낙양춘〉ㆍ〈정동방곡〉ㆍ《유황곡》ㆍ《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삼현영산회상》ㆍ《별곡》ㆍ〈밑도드리〉ㆍ〈웃도드리〉ㆍ〈계면가락도드리〉〉ㆍ〈양청도드리〉ㆍ〈우조가락도드리〉 등에 편성되어 악곡의 선율에 따라 절주(節奏)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민속음악에서도 장구는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이다. 민요에서는 노래의 반주를 맡지만, 농악에서는 다른 타악기와 더불어 주가락을 이끌어 간다. 농악은 지역별로 크게 호남농악, 영남농악, 웃다리농악, 영동농악의 다섯 개 권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 각 권역의 대표 농악으로는 호남좌도의 <《임실필봉농악》>, <《구례잔수농악》>, <《남원농악》>, 호남우도의 <《이리농악》>, 영남의 <《진주삼천포농악》>, <《김천금릉빗내농악》>, 경기의 <《평택농악》> 그리고 영동의 <《강릉농악》>등이 있다. ○ 제작 및 관리방법 장구를 만드는 과정은 제작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공정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대체로 장구는 나무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공명통 제작하기ㆍ상처 메꾸기와 다듬기ㆍ겉면 그을리기ㆍ가죽 작업하기ㆍ원테 제작하기ㆍ가죽 메우기ㆍ칠하기ㆍ장구 결합 및 조율 등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공명통을 만드는 데에는 겨울에 자른 오동나무로, 지름이 최소 30cm 이상이 되고, 나이테가 촘촘하며, 해충의 피해가 없고, 겉면에 큰 균열이 없는 통나무를 선택하여 사용한다. 이 통나무를 장구의 길이에 맞춰 재단하는데, 성인이 사용하는 사물장구가 보통 48~51cm이기 때문에 이보다 6~9cm 정도 길게 재단한다. 넉넉하게 재단된 오동나무를 나이테 쪽이 위가 되도록 세운 다음 30cm인 원형 본(本)을 사용하여 원을 그리고 원 바깥 부분인 외피는 도끼나 끌을 사용해 결을 따라 벗겨낸다. 공명통 제작은 목공용 선반 작업(양 축에 재료의 중앙을 고정시킨 후 고속으로 회전시키면서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물체를 깎는 작업)을 통해 진행된다. 먼저, 목공용 선반에 오동나무를 고정시킨 다음 철 솔이나 끌을 사용해 외피를 한 번 더 제거한다. 그리고 선반을 통해 오동나무를 회전시키면서 칼을 이용해 외형을 깎는데, 공명통의 중앙부는 조롱목을 만들기 위해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다. 그다음 조롱목 부분을 선반에 끼워 회전시키면서 공명통 안쪽을 깎아 파낸다. 북통-조롱목-북통은 내부가 관통되도록 가공하는데, 이때 조롱목은 성인 남성의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하게 한다. 외형이 완성된 공명통은 상처 메꾸기와 다듬기에 들어간다. 상처의 면적이 넓지 않은 경우는 오동나무 가루, 목공용 본드, 물을 각각 2:1:1의 비율로 섞어 상처 난 부분에 발라 메꾼다. 세 시간 정도 말리기를 반복한 후 물에 적신 사포를 이용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이와 달리 상처가 넓은 경우는 오동나무를 잘라 목공용 접착제로 상처 부위에 붙인 다음 목공용 선반에 다시 올려 매끄럽게 깎아 낸다. 상처가 메워진 공명통은 가장자리를 둥그렇게 다듬는데, 이는 북면의 가죽 표면이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듬기가 완료된 울림통은 불로 겉면을 그을리는데, 이로써 울림통의 겉면이 습기로 인해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고, 음영을 주고, 장구의 외형을 더욱 보기 좋게 한다. 울림통이 완성되면 장구 가죽을 가공한다. 도축장에서 구입한 가죽은 염분을 제거하기 위해 흐르는 물에 1~2일 담가 놓는다. 이후 석회를 희석시킨 물에 담가 가죽을 불려 모공을 넓힌 후 염화암모니아나 유화소다 같은 강염기의 화학제품을 희석시킨 용액에 하루 정도 담가 두면 털이 거의 제거된다. 가죽의 안쪽에 붙은 지방질은 대패나 칼로 제거하는데, 이를 무두질이라고 한다. 무두질이 끝난 가죽은 세척기에 넣어 세척한 후 과산화수소를 사용해 소독한다. 다음은 북면의 가죽을 끼우기 위한 원테를 제작한다. 원테는 가죽을 둥글게 고정시켜 주는 철로 된 원형 틀을 말한다. 용접기를 사용해 원테의 양 끝을 붙여서 둥근 모양이 완성되면 원테 주위를 종이나 스펀지 등으로 감싼 후 투명 테이프로 감아준다. 예전에는 볏짚으로 원테를 감쌌지만 최근에는 철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 화학제품을 사용한다. 원테가 제작되면 이제 가죽 메우기에 들어간다. 가죽을 바닥에 놓고 상처 난 부위를 피해 원테를 놓은 다음 가죽 가위를 이용해 원테보다 크게 가죽을 오린다. 원테를 놓고 가죽을 잡아당겨 팽팽하게 한 다음 가로ㆍ세로ㆍ십자 형태로 바느질하고, 이후 원테 가장자리도 나일론 실로 단단히 고정한다. 원테가 완성되면 장구의 울림통에 우레탄칠ㆍ카슈칠ㆍ옻칠 등을 한다. 우레탄칠은 목재의 내구성을 높이고, 울림통 표면을 단단하게 하고, 광을 내는 역할을 한다. 우레탄칠은 장구통을 선반에 고정시켜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면서 스프레이 건으로 우레탄을 분사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초벌칠이 마르면 2~3회 정도 덧칠한 후 상온에서 잘 건조시킨다. 잘 건조된 장구통에는 붓을 사용하여 차례로 카슈칠과 옻칠을 한 다음 온도 25°C, 습도 70~80% 이상인 곳에 두어 건조시킨다. 장구 각 부분의 제작을 마치면 최종적으로 장구 결합 및 조율에 들어간다. 장구의 결합을 위해서는 조이개(일명 축수 또는 부전)ㆍ무명실로 된 조임줄ㆍ조임줄을 거는 가막쇠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먼저 북편(궁편)과 채편에 여덟 개의 구멍을 뚫은 후, 가죽이 잘 늘어나고 부드럽게 되어 공명통이 북면의 정중앙에 쉽게 위치할 수 있도록 물을 뿌려 적셔준다. 그 다음, 조임줄에 매듭을 만들어 가막쇠에 걸고, 조이개를 놓은 후 줄을 반대편 가막쇠에 건다. 조임줄을 열여섯 번에 걸쳐 북편과 채편에 번갈아 엮고, 열여섯 개의 가막쇠에 줄이 연결되면 마지막 부분은 매듭을 지어 약하게 고정한다. 줄이 다 엮이면 가막쇠를 하나씩 벗겨 나머지 조임줄들에 조이개를 넣은 다음 줄을 팽팽하게 당긴다. 최근에는 가막쇠의 장식적인 측면보다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나일론 끝으로 매듭을 지어 가막쇠를 대신하기도 한다. 북편(궁편)ㆍ울림통ㆍ채편의 결합이 끝나면 조임줄을 한 쪽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당기면서 장력을 서서히 높여 간다. 두세 차례 같은 작업을 반복하여 북편과 채편의 중앙에 울림통이 정확하게 위치하도록 한다. 공명통을 중앙에 맞추면 장구를 세로로 세우고 올라타 무릎을 이용해 눌러서 가죽을 늘리고 다시 조임줄을 당겨 장력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조이개를 채편 쪽으로 당긴 다음 채편을 두드려가며 조율하고, 남는 조임줄은 감아서 매듭지음으로써 마무리한다. 장구를 관리할 때는 장구의 재료가 지닌 속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로 장구의 몸통과 북면 가죽의 수명을 높이기 위해서는 습도가 높은 곳이나 지나치게 건조한 곳을 피해 보관해야 한다. 장구를 사용한 후에는 잠깐이라도 그늘에 말렸다가 가방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장구의 북면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가급적 세우지 않고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셋째로 사용 후 조이개를 내려서 가죽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 밖에 장구를 사용하다 보면 북면 가죽이 늘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가죽면만 따로 분리하여 20~40분 정도 물에 담근 다음 햇볕에 말려주면 다시 탄성이 회복된다.
장구는 고려시대에 이 땅에 수용된 이래 궁중음악과 민간음악 등 거의 모든 갈래 음악에 사용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타악기로 자리매김하였다. 여러 갈래 음악에 사용되는 만큼 그 형태도 다양해져서 현재는 정악장구ㆍ장단장구ㆍ풍물장구ㆍ무속장구ㆍ무용장구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장구의 종류에 따라 울림통의 크기와 장구의 가죽(말가죽ㆍ소가죽ㆍ개가죽ㆍ노루가죽 등)은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정악장구는 여러 장구 중에서도 울림통의 크기가 가장 크고, 가죽도 가장 두꺼운 소가죽을 북편(궁편)에 사용함으로써 깊고 힘 있는 울림을 낸다. 이는 국가 의례 음악으로서 궁중음악이 갖는 음향 미학적 지향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농악(풍물)에서 사용하는 장구는 각 지역 농악의 특색에 따라 진법에 따른 장단과 동작이 함께 동반된다. 동작은 때로 춤사위가 되어 농악의 신명을 끌어올리며 연희자의 예술적 기량을 돋보이게 한다. 농악장구의 으뜸은 바로 설장고인데, ‘설장고’는 농악(풍물)에서 장구 개인놀이를 의미하기도 하며, 장구잽이 중 가장 뛰어난 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설장고는 농악(풍물) 장구의 음악적 예술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고려사』 『악서』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창작을 위한 국악기 이해와 활용 2』, 국립국악원, 2020. 국립국악원, 『한국음악자료총서』, 국립국악원, 1982. 국립국악원, 『한국의 악기 1』, 돌베개, 2014. 국립국악원, 『2012 국악기 연구보고서』, 국립국악원, 2012. 김영운, 『국악개론』, 음악세계, 2015. 김원하ㆍ유진, 「인문, 사회과학편: 설장고춤과 구정놀이의 어원적 고찰」, 『한국체육학회지』 30, 2013. 박은정, 「중국 장고류 타악기에 관한 실제」, 『국악교육』 41, 2016. 송혜진, 「이성산성 출토 목제 요고에 대한 연구」, 『이화음악논집』 10, 2006. 전인평, 「실크로드 음악의 전래와 변천-장구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8, 2002.
문봉석(文奉錫),조종훈(趙鍾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