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독무(홀춤)의 하나로, 장삼 차림에 고깔을 쓰고 장삼춤과 북놀음을 하는 춤
승무는 ‘승려의 춤’이란 용어적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승무의 복색(장삼, 고깔, 가사)과 춤 형식 속의 북놀음 등에서 일부 불교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을 뿐 불교의례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권번 및 기생조합 출신의 예인들에 의해 연행되며 서울·경기지역과 호남지역, 영남지역 등에서 각기 특색있게 전승되었다. 승무는 긴 장삼을 활용한 〈장삼춤〉과 북 리듬 구성인 북놀음이 합쳐진 이중 구성 속에 〈장삼춤〉-〈북놀이〉-〈장삼춤〉의 전개를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을 함축적이고 정제된 미의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주음악은 피리 2대, 대금, 해금, 장구, 북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경기대풍류〉 음악을 연주한다.
승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시대적 상황 및 춤 형식의 연관성 등을 배경으로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불교 교리와 연관된 불교 기원설이다. 삼국시대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행해졌던 불교의례로부터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할 때 천사색(天四色)의 채화(綵花)를 내리시니, 가섭(迦葉)이 이를 알아차리고 춤을 추었다고 하여 후세 에 이를 모방하여 춤을 추었다는 설이 전한다. 두 번째는 민간무용 유래설로 황진이와 지족선사의 설화에서 파생되었다는 설, 탈춤의 〈노장춤〉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소설인 「구운몽(九雲夢)」(1687)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설과 파계승의 번뇌를 표현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세 번째는 ‘기방무용 유래설’로, 조선시대 관아 기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기방무용 유래설은 무용학자인 정병호(鄭昞浩, 1927~2011)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조선 말 사찰의 불교의례춤, 남도 좌무, 궁중춤과 탈춤의 한삼 활용 등에 영향을 받아 기방예술로 재창조된 것으로 보았다. 종합해 볼 때, 승무의 역사는 승무라는 용어와 복식 및 춤의 형식 등에 내포된 불교와의 연관성에 따라 불교의 유입시기인 삼국시대를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왕족과 귀족계층 중심의 불교가 이어졌지만,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인해 불교의 포교대상이 일반 서민계층으로 이동되는 변화를 보인다. 포교의 방식 또한 어려운 불교 교리나 선(禪)사상 중심에서 벗어나 〈범패〉, 〈작법〉, 〈염불〉, 〈화청〉 등과 같이 일상적이고 행동 실천적인 포교로 바뀌면서, 일반 대중들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하게 되었다. 불교가 서민들의 삶에 뿌리내리게 되면서 토착신앙인 무속과의 습합현상이 일어나고, 민속예술의 양식과 다양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에 속칭 〈중춤〉 즉 승무의 용어는 불교의례춤 뿐만 아니라 탈춤의 〈노장춤〉, 〈상좌춤〉, 〈목중춤〉과 〈법고춤〉, 〈한량무〉의 승무, 《농악》의 〈조리중춤〉등 다양한 춤들을 포괄하는 용어가 되었다. 승무라는 용어는 1819년의 『경도잡지』와 1866년 홍순학(洪淳學, 1842∼1892)의 『연행가』, 그리고 1872년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 나타나는 승무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배역을 나누어 연행하고 탈춤의 〈노장과장〉과 유사하다. 오늘날과 같은 승무의 틀이 갖추어진 것은 20세기 이후이다. 교방청과 재인청 소속의 광대, 악사, 기녀들이 기생조합과 권번 등 새로운 조직들을 설립하면서 서구 극장형 무대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갔다. 전국의 각 권번이나 기생조합 등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승무를 교육하기 시작하였고, 전통춤의 주요한 공연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시기 활동했던 명인으로는 신갑두, 백설채, 한성준, 정자선, 이대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승무의 지역적 차별성과 예술적 형식미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승무에 대한 기록은 러시아 민속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1903년에 쓴 짧은 공연 리뷰 기사에 나타난다. 이후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1914년 광무대 공연, 1915년 경복궁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협찬회 공연 등에 승무가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성준은 1930년대 승무를 체계화하고 주요한 공연 종목으로 정착시키고, 극장 무대에 적합한 예술적 형식미를 갖춘 춤으로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면서 승무부를 따로 두었고, 부민관에서 승무를 공연한 내용이 『매일신보』에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승무는 계통에 따라 재인청류, 기방계열류, 무속류로 구분되고, 지역적으로는 서울·경기와 호남, 중부, 영남, 이북으로 나뉜다. 서울ㆍ경기지역은 한영숙류, 이동안류, 김숙자류, 김천흥류 승무가 있으며, 호남지역은 이매방류, 조갑녀류, 한진옥류, 전라삼현승무가 있다. 중부지역은 심화영류와 송재섭류 승무가 있다. 영남지역의 승무는 강태홍류, 박지홍류, 장월중선류, 이매방류, 김수악류로 분류된다. 이중 강태홍, 박지홍, 장월중선, 이매방은 호남출신으로 영남권에서 활동한 명인이라는 점에서 영남지역 승무는 독특한 전승 내력을 지니고 있다. 승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1969년에 한영숙의 승무가 최초 지정되었고, 이어서 1987년에 이매방의 승무가 지정되었다.
한영숙류 승무는 이애주, 정재만 으로 그 계보가 이어졌고, 이매방류 승무는 채상묵이 계승하고 있다.
지방무형문화재로는 이동안류 승무와 전라삼현승무, 심화영류 승무, 송재섭 승무가 있다. 이동안류 승무는 정경파를 거쳐 김복련에게 계승되었으며, 1991년에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자선에서 정형인과 박금술을 거쳐 문정근으로 이어지는 전라삼현승무는 2014년에 전라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매방류 승무와 동일한 송재섭 승무는 2004년에 대전광역시무형문화재 지정되었다. 심화영류 승무는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7호로 2000년에 지정되었으나, 심화영이 작고한 후 현재는 보유자가 없는 상황이다.
○ 구성과 구조 승무는 장삼을 활용한 장삼춤과 법고를 치는 북놀음, 다시 장삼춤으로 이어지는 3단계로 구성된다. 유파에 따라 과장별 장단 구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시작-전개-전환-절정-끝맺음의 구조로 되어 있다. 아주 느린 6박인 염불장단으로 시작하여 점차 타령→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장단의 빠른 장단으로 진행되고, 절정에 해당되는 북놀음 과장에서는 자진모리와 휘모리(당악)장단으로 몰아간다. 단, 한영숙류 승무의 경우, 북놀음에서 자진모리로 북놀음을 마무리하고 휘모리장단에 장삼춤을 추면서 승무의 절정을 표현한다. 북놀음 후에는 다시 느린 4박의 굿거리장단으로 전환되어 춤이 마무리된다. 또한 승무의 춤사위는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각 과장마다 북을 대상으로 어르고 치면서 접촉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북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상좌승이 내면에 대한 갈등과 번민 그리고 극복을 이루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살풀이 과장에서는 춤보다는 절을 떠나는 상좌승의 마음을 나타내는 극적 움직임 표현이 주가 된다. 특히 이동안류 승무는 불교에 대한 설화를 춤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노승이 병환을 얻자 그 제자인 상좌승이 스승의 쾌유를 위해 백일기도를 드렸다. 상좌승의 꿈속에 도승이 나타나 음악에 맞춰 북을 치고 춤을 추었는데, 본인의 춤을 따라 해 보고 노승의 병이 낫게 되면 그 절을 떠나라고 일러주고는 사라졌다. 꿈에서 깬 상좌승은 도승이 일러준 대로 춤을 추었고, 과연 스승의 병이 낫자 상좌승은 절을 떠났다. 그 후 남은 상좌승들이 떠난 상좌승을 기려 춤을 추게 되었고, 이것이 승무의 유래가 되었다. 이동안류 승무는 마지막 살풀이과장에서 장삼과 고깔을 벗어 북에 걸어두고 합장을 하는 표현을 통해 배경설화에 대한 극적 내용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문정근의 전라삼현승무는 명확하게 과장별로 내용을 담지는 않으나 첫 염불과장의 경우 극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각 과장별로 파계승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를 담아 표현하고 있다. 심화영류 승무는 다른 유파의 승무가 처음에 엎드린 자세로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합장한 채 서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이매방류과 한영숙류 승무는 서사적인 내용은 없지만 5단계로 구성된 형식은 동일하고, 내면의 감정표현을 극적인 형태보다는 심미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 주요 춤사위 승무는 긴 장삼소매를 활용하여 허공으로 뻗어나는 소매 끝 연장선의 궤적과 직선적이면서도 원형을 그리는 움직임으로 공간의 미학과 역동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춤이다. 승무의 춤사위는 뿌리는 사위와 던지는 사위가 중심이 되며 장삼소매를 어깨위에 얹어 어르는 사위, 퍼올리는 사위, 장삼자락을 치거나 들어서 펼치는 사위감아 빼기, 양팔모으기, 여미기 등의 팔사위와 다리들기, 뛰기, 돌기, 비정비팔, 돋음새, 완자걸이, 까치걸음 등의 발디딤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춤사위들은 유파에 따라 달리 표현되기도 하고, 유파만의 특정한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한영숙류 승무의 춤사위에는 합장, 먹음사위, 꺾음사위, 겨드랑사위, 몸 비틀기, 뿌림사위, 꼬리치기, 꼬리펴기, 활개치기, 맴체, 학 걸음(까치걸음), 연풍대, 지숫기 등이 있다. 이매방류 승무는 대삼·소삼, 뿌림사위, 학사위, 꼬리치기, 팔사위, 활개펴기, 머릿사위(퍼넘기기), 몸통 비틀기, 몸 돌리기사위, 무동작, 나비체, 연풍대, 지숫기, 비디딤, 완자걸이, 안가랑, 좌우걸이, 비정비팔 등의 춤사위로 구성된다. 이동안류 승무의 춤사위로는 엎드림, 번갈아 뿌리기, 비스듬히펴기, 팔모으기, 물레방아 돌기, 활개치기, 학체, 구름사위, 합장하기등의 특징적 춤사위가 있으며, 심화영류 승무에는 엎는다, 먹는다, 둥글게 먹는다, 허리감기, 발놀림, 고개짓, 후리치기, 놀린다, 어깨춤, 꾸리감기 등과 같은 춤사위가 사용된다.
○ 악기 편성 승무 반주음악은 피리 두 대, 대금, 해금 , 장구, 북 각 한 대의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된다. 한영숙류 승무, 이동안류 승무, 이매방류 승무의 편성은 모두 삼현육각 편성이다.
중부 지역의 심화영류 승무는 초기에는 퉁소, 해금, 거문고, 장구로 반주하였으나, 지금은 삼현육각으로 반주하고 있다. ○ 음악 구성 승무 반주음악인 〈삼현육각〉은 경기제와 호남제 등 지역에 따라 다른 선율로 되어 있었으나, 근래에는 경기제 〈삼현육각〉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염불장단(1과장)→타령장단(2과장)→굿거리장단(3과장)→북놀음(자진모리, 휘모리:4과장)→굿거리장단(5과장)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느린 속도에서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제3과장에서 연주되는 굿거리장단은 느린 굿거리장단 후 빠른 굿거리장단으로 넘어가는데, 모든 유파에서 가장 길게 연주되는 승무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전라삼현승무는 전주를 중심으로 전승된 〈삼현육각〉인 〈농삼현〉에 맞춰 추어진다. 〈농삼현〉은 1과장에서는 속도의 변화 없이 염불장단만으로 구성되며, 2과장에서는 다른 유파에서 사용되는 타령장단 대신 빠른 6박인 도드리가 연주된다. 3과장의 굿거리장단은 느린 부분 없이 중간속도로 곧바로 이어지고, 4과장은 다른 지역 반주음악과 동일하다. 마지막 5과장에서는 타령으로 마무리한다.
○ 복식 승무의 복식은 공통적으로 머리에는 흰고깔을 쓰고,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착용한다. 그 위에 장삼을 입고 발에는 흰 버선을 신는다. 초기 승무의 장삼은 흑장삼이 기본 차림이었으나, 한영숙이 흰색 장삼을 입으면서 흰색 장삼이 널리 통용되게 되었다 현재 승무에서는 흰색 장삼을 주로 입지만 때로 흑장삼을 입기도 한다. 장삼 왼쪽 어깨 위에 홍띠를 걸치는데, 심화영의 옛날 승무사진을 보면 예전에는 홍가사와 홍띠를 같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지와 치마, 저고리의 색깔은 유파마다 다른데, 한영숙류 승무에서는 남자는 옥색이나 흰색 바지·저고리, 여자는 주로 남색치마에 분홍저고리나 흰색저고리를 입는다. 이매방류 승무의 복식은 장삼의 색깔에 따라 기본 복식을 다르게 입는다. 기본형은 흰색장삼에 홍가사(홍띠)를 두르고, 남녀가 동일하게 옥색의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흑장삼을 착용할 시에는 남녀 모두 흰색의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이동안류 승무의 경우 원래 남·여 구분 없이 바지·저고리차림이 기본이었으나, 현재 여자는 남색치마에 연분홍색 또는 흰색 저고리를 입는다. 남자는 회색 또는 옥색의 바지·저고리차림이다. 심화영류 승무의 복식은 원래 먹색장삼을 착용하고 홍가사에 홍띠를 맸으나, 근래에는 흰색 장삼, 흰고깔, 홍가사에 남색치마와 미색저고리가 기본이다. 이수자의 경우 먹색장삼을 착용하고 홍띠를 맨다. 또 장삼의 전체길이와 소매 길이가 타 승무의 장삼의 길이 보다 짧은 것이 특징이다. 전라삼현승무에서는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흰장삼, 흰고깔에 홍띠를 매고, 정자선으로부터 전승된 버선코에 오색실을 단 흰버선을 신는다. 또한 승무를 군무로 출 때 중앙에 위치한 무용수는 흑장삼을 입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비지정 문화재인 조갑녀 승무에서는 기본 복식인 흰색 치마·저고리에 흑장삼을 착용하지만 홍띠와 청띠를 어깨 중심으로 서로 엇갈리게 내려서 뒤로 묶는다는 점과 흰고깔에 나비나 꽃무늬 그림을 그려넣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같은 이매방이 생전에 착용했던 고깔 윗부분에 나비모양이 있고, 양쪽 옆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 무구 승무의 무구로는 북채와 북, 북틀이 있다.북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틀에 고정시켜 무대 위에 미리 놓아둔다. 승무의 북채는 장삼춤을 출 때 활용되는데, 양손의 북채는 장삼소매를 뿌릴 때 힘을 더하고, 소매의 연장선이 직선으로 뻗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북놀음(또는 법고과장)에서는 소매 안에 있던 북채를 밖으로 꺼내 북을 두드린다. 북틀은 나무나 철재로 만들고, 높이는 140cm, 폭은 61cm 정도이다. 북은 나무와 가죽을 주재료로 하고, 높이 23cm, 직경 38cm 정도로 제작된다. 북채의 재료는 나무이며, 길이 27cm, 직경 2cm 정도이다.
승무는 높은 예술적 형식미와 구조 속에 한국의 전통 미의식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홀춤이다. 특히 긴 장삼소매를 활용한 장삼춤은 허공 속에 그려지는 장삼의 직선미와 곡선미, 승무의 공간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국가무형문화재(1969) 승무ㆍ살풀이춤: 경기도무형문화재(1991) 충청남도 무형문화재(2000)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4) 전라삼현승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4)
승무와 유사하지만 춤의 형태나 성격이 다른 춤으로는 〈바라승무〉와 이북지역의 승무로 분류할 수 있는 양소운류 승무가 있다. 〈바라승무〉는 한성준의 안무 작품으로 기존 승무를 대체하기 위해 북 대신 바라를 활용하여 공연한 것이다. 양소운류 승무는 양소운에 의해 전승된 승무로 탈춤의 노장, 목중과 같은 배역이 등장하여 추는 춤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승무』, 신부사, 1998.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 종합보고서(경남ㆍ북편) 12』, 1989.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 종합보고서(전남ㆍ북편) 13』, 1990.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 종합보고서(서울ㆍ경기ㆍ충청편) 14』, 1991. 성무경, 『교방가요』, 보고사, 1990. 홍종선, 『연행가』, 서울: 신구문화사, 2005. 김나경,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무용종목의 계보연구」, 전북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2021. 김도은, 「조갑녀류 승무의 양식적 특성에 기반한 무용창작」, 국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김라희, 「화성재인청 춤의 전승과 특성연구」,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6. 김청우, 「호남춤 계보와 특성연구」, 한국체육대학 생활체육대학원 석사학위, 2021. 문정근, 「전라삼현승무의 복원의의 및 미학적 특징」, 전북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2010. 백경우, 「이매방 춤의 양식적 특성으로 본 역학적 분석」,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송영선, 「승무의 형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1994. 옥영실, 「승무의 춤사위에 관한 연구(심화영류를 중심으로)」,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이애리, 「심화영류 승무에 관한 연구」, (서울: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석사논문, 2004.)
이애현(李愛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