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함
대금보다 작고 청공(淸孔)은 없으며, 가로로 들고 부는 관악기[橫笛]
가로로 부는 대금(大笒)ㆍ중금(中笒)ㆍ소금 중 가장 길이가 짧아 높은 음역대에 해당하는 관악기이다. 대나무(주로 쌍골죽)로 만들며, 취구(吹口, blow hole) 한 개, 지공(指孔, fingerhole) 여섯 개, 음고 조절을 위한 칠성공(七星孔) 한두 개를 갖는 악기이다. 한국 전통음악과 창작음악에 두루 사용된다.
소금은 대금과 같은 가로저[橫笛]들과 기원을 공유한다. 가로저는 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 북부 및 중국의 북쪽과 중동부 지역 등에서 뼈저대[骨製笛]의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재료는 동물의 뼈와 대나무ㆍ나무ㆍ옥ㆍ철ㆍ도기(陶器) 등으로 다양했으며, 대나무로 만든 가로로 부는 악기가 신라의 삼죽인 대금ㆍ중금ㆍ소금으로 정리되었다. 소금은 『삼국사기』(三國史記)(1145) 권32 「잡지」(雜志) 중 ‘신라악(新羅樂)’에서 삼죽의 하나로 처음 등장하며, 삼죽은 당적을 모방한 악기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유물을 통해 한반도 유래 악기임이 증명된 가야금 역시 삼국사기에서는 중국 쟁을 모방한 악기로 설명하였으므로, 이들 기록은 한반도 악기를 중국 악기와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한 시도로 보아야 한다. 오히려 그 말미에, “향삼죽은 신라에서 시작되었으나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鄕三竹 此亦起於新羅 不知何人所作)” 라고 한 것으로 보아, 7세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여러 횡적이 삼죽으로 제도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삼국사기』가 편찬된 고려 시대에 이미 신라의 삼죽(三竹)과 당적(唐笛)이 구분되어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사』 「악지」의 당악(唐樂) 항목에서는 ‘적’(笛: 당적)을, 향악(鄕樂) 항목에는 ‘소금’을 구분하여 소개하였으며, 당적의 구멍이 여덟 개인 반면 소금은 일곱 개임을 밝혀 이 둘의 쓰임과 구조가 달랐음을 드러냈다. 『고려사』 권103 「열전」 중 ‘김경손’ 조에는 고려 1231년(고종 18) 몽골군과의 전투 중 몽고군이 퇴각하자 김경손이 대오를 정비하고 “쌍소금(雙小笒)을 불며 돌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 『국조오례의』(1474)의 전정헌가(殿庭軒架)의 악현 그림에는 당적과 소금이 별개 악기로 적혀 있다. 그리고 『악학궤범』(1493)에도 당적은 당부(唐部)악기로, 소금은 향부(鄕部)악기로 따로 소개하였으며, 소금의 제도 및 악보가 중금과 같다(中笒小笒制及譜同)고 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종묘제례를 제외한 문헌에서 소금이 아닌 당적만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적과 소금의 음역대와 쓰임새가 유사하여 당적과 소금이 혼용되었거나 소금의 쓰임새가 적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예비연주자 교육용으로 편찬한 『아악생 교과철』에도 당적만 있고 소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당시 당적은 지공을 여섯 개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함화진(咸和鎭, 1884~1948)의 악기해설서 『조선악기편』(1933)에서도 당적은 취구 한 개와 지공 여섯을 가져 『악학궤범』의 당적과 차이를 보인다. 소금이라는 이름은 1950년대에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1956년 3월, 김기수(金琪洙, 1917~1986)는 이왕직아악부에서 사용하던 당적을 “7공 관으로 개조하여 소금으로 복원 제작했다” 라는 기록을 남겼다. 즉, 이 소금은 지공 여섯 개와 칠성공 한 개를 지녔으며, 전통음악과 창작음악 등에 두루 쓰기 쉽도록 개량된 것으로 보인다.근래에는 당적보다 소금이라는 명칭을 대체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소금의 구조와 형태
소금을 부는 연주자에 따라 악기 규격이 조금씩 다르다. 취구 한 개, 지공 여섯 개에, 지공과 일직선상으로 한 개의 칠성공을 뚫은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칠성공을 제6공으로부터 사선 위치에 뚫거나, 두 개의 칠성공을 뚫는 등 다른 형태도 있다.
○소금의 구조와 부분명칭 소금의 산형은 문헌에서 따로 찾아볼 수 없다. 『고려사』 악지는 소금을 지공 일곱 개짜리 악기로 소개하였고 『악학궤범』은 대금을 소개하면서 ‘중금과 소금은 그 제도와 악보가 (대금과) 같다’(中笒小笒制及譜同)라고만 하였다. 현재 사용되는 소금의 관대[管]는 대금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의 대나무를 최소한으로 다듬어 거의 그대로 사용해 만들되, 단지 대금에 쓰이는 것보다 굵기가 가는 대나무를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관대의 규격은 일률적이지 않다. 대체로 소금은 길이 40cm 안팎 정도인데 악기에 따라 38cm~45cm로 다양하다. 2012년 실측한 국립국악원 소장(所藏) 소금의 경우 취구 쪽(대나무 뿌리 부분) 끝의 바깥지름은 3.3cm쯤 되는데 이는 채취한 대금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음높이를 얻기 위해서는 제작 마무리 과정에서 취구ㆍ지공ㆍ청공의 위치와 관 내경를 정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가로저(transverse flute)들이 대나무 겉면을 매끈하게 가공해 관대로 사용하는 데 비해 한국의 소금이나 대금은 대나무의 굽은 부분이나 마디까지 그대로 살린 외관이 특징이다.
종류 | 악기명 | 길이(cm) | 바깥지름(취구 쪽, cm) |
소금 | 국립국악원 소장 소금 | 45.1 | 3.3 |
○소금의 음역과 조율법 소금도 대금과 마찬가지로, 운지가 같더라도 에서 여리게 부느냐 세게 부느냐에 따라 음높이가 옥타브나 완전5도씩 차이가 난다. 보통 입김으로 부는 평취(平吹) 때는 임종(林, Bb4)에서 청중려(㳞, Ab5)정도의 음을 낼 수 있고 세게 부는 역취(力吹)는 평취보다 옥타브 위 소리를 낸다. 대금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역취음으로 가장 높은 음을 내면 중청남려(㵜, C6)까지 음을 낼 수 있다. 즉, 국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의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소금의 구음과 표기법 소금의 구음은 대금과 대부분 동일한 구음을 사용한다. 따라서 그 구음이 일정한 음고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으나, 관용적인 선율 진행이나 장식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는 전문 연주가도 구음을 사용하기보다는 율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소금 악보 역시 대금과 마찬가지로 정간보에 율명을 넣은 것을 사용하고 꾸밈음이나 관용 선율 기호도 거의 동일하게 사용한다. ○소금의 연주 방법과 기법 소금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전통악기처럼 바닥에 앉아 책상다리로 연주하는 좌식(坐式) 연주가 기본이지만 서서 연주하기도 하고, 현대에는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좌식 연주에서는 책상다리로 앉아 허리를 곧게 편 자세가 기본이다. 이는 관악기 연주에 중요한 안정적인 입김을 복식호흡을 통해 얻기 위한 것이다. 대금과 마찬가지로 소금 역시 바닥과 평행을 유지하도록 들고,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려서 취구에 입술을 대고 연주한다. 대금을 연주할 때와 달리 취구 부분을 왼쪽 어깨에 걸치지 않고 오직 두 손으로 받쳐서 연주한다. 대금 운지법과 마찬가지로 왼손 엄지가 1공 아래에 오도록하고, 제1~3공을 왼손 검지ㆍ중지ㆍ약지로 막고, 오른손 엄지로 제4공 아래를 받치고 제4~6공을 오른손 검지ㆍ중지ㆍ약지로 막는다. 다만 대금과 달리 팔꿈치를 과하게 벌리지 않고 편안하게 연주하며, 대금 연주에서 오른손이 지공을 막을 때 손가락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양손 모두 첫째 마디 부분을 사용한다.
소금은 거의 모든 면에서 대금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된다. 다만 악기 크기가 다르므로 취구에서 입술이 차지하는 면적이나 팔꿈치의 자세, 지공을 막는 손가락 위치 등이 다를 뿐이다. 소리를 내는 기본 방식이 평취, 역취인 점, 혀 치는 주법이나 요성, 장식음 역시 정악대금의 방식과 거의 일치하며, 운지를 통해 내는 음도 옥타브 차이가 있을 뿐 대금과 거의 동일하다.
○소금의 연주악곡 〈여민락〉ㆍ〈도드리〉ㆍ〈취타(만파정식지곡)〉ㆍ〈관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수제천〉 등 합주 음악에 사용된다. 현재는 소금과 당적의 구분이 사라졌으므로 당적을 편성하는 당악곡 또는 당악계열 악곡 〈여민락만〉ㆍ〈여민락령(본령)〉ㆍ〈해령〉ㆍ〈낙양춘〉ㆍ〈보허자〉 등도 소금으로 연주한다.
○소금의 제작 및 관리 방법 소금은 대금보다 가는 굵기의 쌍골죽(雙骨竹)을 최소한으로 다듬어 자연상태 거의 그대로를 사용해 만든다. 삼 년 정도 성장한 쌍골죽 중 직경이 3cm 정도 되는 개체를 뿌리째 적당한 길이로 잘라 채취한다. 이후 제작과정은 대금에서 청공을 뚫는 단계를 제외하면 대금 제작과정 과 거의 동일하다.
소금은 대금과 함께 신라 삼죽의 하나로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연주된 관악기 중 하나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중음악에서 당적이 그 쓰임을 대신하였다가 1956년 이후 소금이 복원되어 한국 전통음악의 주요 관악기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정악과 창작 음악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송방송, 『동양음악개론』, 세광음악출판사, 1989.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1. 이진원, 「악학궤범의 대금과 당적에 관한 소고」, 『한국음악연구』 25, 1997. 이혜구 역, 『역주 악학궤범』, 민족문화추진회, 1989. 임진옥, 「당적과 소금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한영숙, 「소금과 당적에 관한 재고」, 『한국음악연구』 제56집, 2014.
홍순욱(洪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