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춤
《남해안별신굿》 중 〈지동굿〉, 《오귀새남굿》 중 〈말미굿〉의 앞머리에 승방(무녀)이 신에게 올리는 춤
《남해안별신굿》과 《오귀새남굿》은 통영 신청(神廳)으로부터 전승되며 시대의 흐름과 변천에 따라 굿거리들이 가감되어 현재의 재차(第次)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올림무관의 역사 및 유래 또한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1786년에 그려진 통도사와 수도사의 감로탱에서 〈사무신녀(師巫神女)〉라는 명칭으로 올림무관을 추는 승방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올림무관은 그 이전부터 민간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해안 굿은 세습무가에 의해 연행되는 굿이므로, 현재 연행되고 있는 올림무관의 전승 계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해안별신굿》은 정씨 무계에 의해 11대째 전승된 것으로, 초대 보유자는 정모연(鄭模連, 1915~1989), 2대 보유자는 고주옥(高珠玉, 1914~1990)을 거쳐 현재 예능보유자 정영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영만은 정모연으로부터 올림무관을 비롯한 굿 의례 전반을 전수받았고, 정모연은 그의 어머니인 유선이(劉先伊, 1881~1952)로부터 전수받았다.
○ 연행되는 굿거리 올림무관은 《남해안별신굿》의 〈지동굿〉과 《오귀새남굿》의 〈말미굿〉에서 연행된다. 《남해안별신굿》과 《오귀새남굿》에서는 다양한 굿거리들이 연행되는데 의례의 목적, 굿의 형식, 모셔지는 신격 등을 고려하여 여러 굿거리들은 크게 잔삭거리와 큰굿으로 구분된다. 그중 《남해안별신굿》의 〈지동굿〉과 《오귀새남굿》의 〈말미굿〉은 큰굿으로 분류되는 굿거리들 가운데 제일 처음 연행되는 굿이다. 〈지동굿〉에서는 동태부(마을에 처음 정착한 조상, 입향조)를 모시고 〈말미굿〉에서는 조상을 모시므로, 이 두 굿은 별신굿과 오귀굿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직결되어 반드시 승방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높은 대모가 연행하며, 올림무관 역시 대모에 의해 연행된다. ○ 무관의 구성과 각 과정의 의미 올림무관은 크게 허배(虛拜), 청신(請神), 오신(娛神)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허배(虛拜)란 지동굿과 말미굿에서 모셔질 신을 향해 정중히 큰절을 올려 예를 갖추는 것이다. 허배를 제외하면 올림무관은 총 3장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1ㆍ2장은 신칼무관, 3장은 부채와 손전을 들고 추는 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칼무관은 청신(請神)을 위한 무관으로서 신칼을 들고 춤을 춘다. 이는 굿청의 부정을 가시고 정화시키는 의식무적 성격을 갖는다. 신칼무관이 끝나면 왼손에는 손전을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시나위 반주에 맞추어 무관을 한다. 이는 승방의 큰머리로 내리신 주신(主神)을 즐겁게 놀리고, 그 무관을 신(神)에게 바치는 오신(娛神)의 의미를 띤다. ○ 주요 춤사위 올림무관 1ㆍ2장의 주요 춤사위로는 첫 번째, 부정을 치는 사위를 들 수 있다. 1장에서는 주로 한 손에 신칼 두 개를 모두 잡고 무관을 시작하여 점차 양손에 신칼을 나누어 쥐고 무관을 한다. 두 번째는 신칼을 어깨에 메는 사위를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오른손에 쥔 신칼을 위로 뿌린 후 어깨에 걸치는데 주로 한 바퀴 회전을 할 때 행한다. 마지막으로는 너슬을 잡는 사위가 있다. 이는 주로 한 단락으로 볼 수 있는 신칼놀림을 마무리할 때, 그리고 한 바퀴 돌거나 방향을 바꾸고자 할 때 행한다. 올림무관 3장의 주요 춤사위로는 첫 번째, 호접사위를 꼽을 수 있다. 호접사위는 올림무관 뿐만 아니라 여러 굿거리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춤사위로서 나비의 날개짓을 표현한 것이다. 승방은 장단과 선율에 맞추어 다양하게 완급을 조절하고 팔의 미세한 높낮이 차이를 두어 호접사위 하나만으로도 다채롭고 풍성해 보이도록 무관을 짓는 것이 특성이다. 두 번째로는 부채를 펴는 사위를 들 수 있다. 부채를 편 승방은 팔을 어깨높이로 들고 몸통을 뒷사선 방향으로 움직인다. 몸통의 움직임은 어깨, 팔꿈치, 손목의 순으로 전달되어 손목놀음으로 표현되고, 이러한 손목놀음에 따라 부채와 손전의 움직임이 다양하게 변화된다. 또 몸통의 움직임은 하체의 중심 이동에도 영향을 주며 발을 딛는 위치와 보폭 등을 결정한다. 이 무관은 장단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느리게 할 수도 있고 빠르게 할 수도 있다. 이 무관을 빠르게 연결하면 어르는 사위가 된다. 어르는 사위 뒤에는 부채로 승방의 얼굴을 가리고 한 바퀴 회전하는 사위가 주로 이어진다. 손전을 든 왼팔은 옆으로 들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 부채와 대칭되는 곡선을 이루기도 한다. 또 손전을 위로 올려 부채의 끝과 맞닿게 하는 방식으로 무관을 지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손전과 부채를 놀리는 사위이다. 이는 승방이 반 바퀴 회전하여 방향을 바꿀 때 주로 사용된다. 승방은 회전과 동시에 손전은 위로 부채는 아래로 원을 그리듯이 돌리는데 손전과 부채가 그리는 곡선의 미가 돋보이는 춤사위이고 이러한 회전 뒤에는 보통 호접사위가 뒤따른다.
○ 올림무관의 음악 구성
올림무관의 전체적인 음악 진행은 다음과 같다.
① 청신악: 대금의 독주
② 넋노래: 장구 연주와 장구를 담당하는 산이의 소리
③ 올림채 1장: 사방부정채, 조너리채, 대너리채, 갈모잡이채
④ 올림채 2장: 팔방부정채, 진대너리채, 갈모잡이채
⑤ 올림채 3장: 진푸너리채 장단에 삼현육각 시나위 연주, 맘자심채, 갈모잡이채
올림무관의 길이는 승방의 무관에 따라 조절된다. 올림무관은 다른 무관이나 굿거리에 비해 승방의 묵도(默禱;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비는 것)와 허배의 시간이 길기 때문에 청신악과 넋노래가 길게 연주된다. 또 올림채 1, 2장은 북, 장구, 징의 타악기들로만 편성되고 올림채 3장에서는 피리 두 대ㆍ대금ㆍ해금ㆍ장구ㆍ북의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시나위와 산이의 소리가 더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 복식 올림무관을 행할 때 승방은 일반적인 한복 치마와 저고리 위에 무복을 덧입는다. 이때 안에 입게 되는 치마와 저고리의 색상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위에 덧입는 무복의 색상을 고려하여 근래에는 주로 흰색 치마, 저고리를 입는 경향이 있다. 무복은 치마, 답호(褡穫), 가슴띠, 한삼으로 구성된다. 치마는 빨간색이고 허리에 끈을 묶는 허리치마이며 옷감에 목단무늬가 있다. 치마 위에는 파란색 답호를 입는다. 이 답호의 등판에는 쌍학운문학 문양의 흉배가 달려있다. 가슴띠는 검은색이며 양끝이 삼각형 모양이다. 한삼은 하얀색 명주로 되어 있고, 손에 끼는 형태가 아니라 손목에 거는 형태이다. 손목에 건 한삼은 가슴띠 안쪽으로 끼워 고정한다. 이것은 큰굿을 할 때 착용하며 신(神)을 모실 때 최고(最高)의 격식을 갖추어 습의(襲衣)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무복을 입은 승방은 올림무관을 하기에 앞서 큰머리를 쓴다. 큰머리는 큰굿으로 분류되는 굿거리를 할 때 착용하는 관(冠)이다. 큰머리 윗부분을 장식하는 세 개의 꽂이는 원정이라 부르고 양옆에 꽂은 것은 비녀라 부른다. 비녀는 짧은 비녀 한 쌍, 긴 비녀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원정은 꽃과 나무, 그리고 봉황을 형상화 한 것이고, 네 개의 비녀는 꽃잎을 형상화했다. ○ 무구(巫具) 신칼은 한 쌍(두 개)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 끝에 스물여덟 개의 하얀색 너슬이 달려있다. 신칼은 올림무관 뿐만 아니라 부정을 치는 모든 상황에서 사용된다. 부채는 고리에 노란색 천이 달려있는 합죽선이다. 노란색은 중앙을 상징하며 치마의 빨간색, 답호의 파란색과 함께 오방색의 조화를 이룬다. 부채에는 굿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원이 회화적 상징성을 가지고 표현되어 있다. 손전은 대나무 가지에 하얀색 지화를 오려 단 무구로서 모든 굿거리에서 부채와 함께 사용된다. 손전 또한 대나무의 속성과 연결되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바람을 무구로 형상화한 것이다.
올림무관을 구성하는 춤사위와 각각의 단락은 신에게 예를 갖추는 행위로 시작하여 정화와 청신(請神), 그리고 신을 좌정시켜 즐겁게 놀리는 오신(娛神)의 목적이 매우 분명하다. 무관의 의미, 연행 순서, 음악적 구성, 연행자, 복색, 사용되는 무구, 춤사위의 다양성, 무관의 시간적 길이 등을 모두 고려해 보았을 때, 올림무관은 남해안별신굿과 오귀새남굿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무관이라 할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7)
간혹 신칼무관과 올림무관을 동일한 것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정되어야 한다. 올림무관이 신칼무관을 포함하고 있으나, 두 무관은 연행되는 이유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되어야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다시 태어난 우리 옷) 환생』, 서울역사박물관: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통도사성보박물관, 『감로 : 조선시대 감로탱 (상)』, 통도사 성보박물관, 2005. 송미경,「조선시대 답호 연구 –17세기 전기까지」, 『한국복식학회』59/10, 2009. 염순정, 김은정,「조선시대 답호의 조형특성을 응용한 디자인 연구」,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21/1, 2019. 정은주(2022), “남해안별신굿 전승과정에 대한 연구: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의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인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5-11.
심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