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잽이, 사방치기
터벌림은 ‘터를 벌린다’는 의미를 지닌 굿거리이다. 사방을 다니며 터를 다져 굿판의 질서를 잡는 동시에 흥을 일으켜서 마을이 평안하고 번영하기를 기원한다. 터벌림은 장단의 명칭으로도 사용되며, 손굿과 군웅굿에서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춤이다.
터벌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고대 효(堯)임금이 병들어 백약이 무효하였는데, 아황과 여영 두 딸의 굿으로 낫게 되었다. 그 기쁨에 왕이 춤을 추고 대신들이 장단을 쳤다. 이 춤을 터벌림춤 혹은 설춤이라고 하는데, 후세에 무당들이 이 춤과 장단을 도당굿에서 잡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추었으며, 근대 무용의 거장인 한성준(韓成俊, 1874~1942)에 의하여 태평무라는 민속무용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 내용
악사인 산이가 두루마기를 입고 꽹과리를 들고 사방을 사각형으로 돌면서 발을 앞으로 차는 형태의 춤을 춘다. 터벌림은 장단 및 춤사위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동작과 동선이 정형화되어 있는데, 발을 뒤로 접었다가 펴면서 차는 춤사위로 각각의 방위에서 삼진삼퇴를 한다. 뒷부분은 일정한 형식이 없으며, 꽹과리 및 채를 사용한 윗놀음과 아랫놀음인 발사위를 다양하게 펼친다. 반주음악은 앞부분에 반설음ㆍ조임채, 넘김채로 연결하고, 뒷부분에 겹마치기ㆍ자진굿거리로 구성된다. 반서림에서 겹마치기까지는 장구와 징의 두 타악기만을 사용하고, 자진굿거리에서는 피리ㆍ대금ㆍ해금의 선율악기가 합주한다.
본래 장단 이름은 반설음이지만, 터벌림으로 널리 불린다. 또한 터벌림은 춤 자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꽹과리를 들고 추는 춤은 기능 및 연행자에 따라 터벌림ㆍ깨낌ㆍ쌍군웅의 세 가지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제석굿의 앞이나 뒤의 굿거리에서 혼자 추는 경우는 터벌림춤이라 하고, 손굿에서 다른 산이와 짝을 이루어 추는 것은 깨낌춤, 군웅굿에서 미지와 마주 서서 추는 춤은 쌍군웅춤으로 구분한다. 깨낌춤은 손굿의 처음 절차에 산이 한 사람은 깨낌꾼으로서 대신칼을 들고, 다른 산이는 손굿잽이로서 꽹과리를 들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을 모시는 춤이다. 쌍군웅춤은 쾌자를 입고 꽹과리를 든 산이와 홍철륙을 입고 빗갓을 쓴 미지가 마주 서는 형태로 군웅상을 중심으로 돌면서 신을 맞이하는 춤이다. 꽹과리를 든 산이의 동선과 동작은 세 춤 모두 같다.
○ 연행시기와 장소
터벌림은 《경기도도당굿》이 개최되는 시기에 《경기도도당굿》 가운데 연행된다. 순서는 지역에 따라 시루굿과 제석굿의 사이 혹은 제석굿과 손굿의 사이에 배치한다.
○ 구성
꽹과리로 반설음 한 장단을 먼저 내면 장구와 징이 받아서 연주를 시작한다. 세 장단 앞으로 나아가고 세 장단 뒤로 물러난 뒤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서 방향을 바꾼다. 사각형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꽹과리 연주를 위주로 하되, 한 발을 딛고, 다른 발을 뒤로 접었다가 앞으로 차고, 찬 발을 딛고 다른 발을 내딛는 순서로 정형화된 동작을 박자에 맞추어 반복한다. 이렇게 세 방위를 밟으며 돌아 나온 뒤 마지막 방위에서는 장단을 빠르게 조인 뒤에 넘김채를 친다. 겹마치기에서는 사각의 틀과 방향은 같지만, 정해진 박자나 장단수에 맞추어 진행하지는 않는다. 이때는 연주보다는 꽹과리와 채를 무구로 사용하여 다양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반설음의 장구장단은 3소박 10박이며, 징점은 1ㆍ4ㆍ6ㆍ7ㆍ9박이다. 징점을 기준으로 한 장단은 3+2+3+2박 구성이 된다. 조임채는 반설음의 박자와 박자 사이를 좁히는 방식으로 결국 전체 속도를 점점 빨라지게 하는 장단이다. 넘김채는 3+2+2+3소박과 3소박 4박자가 순서대로 결합한 장단이다. 겹마치기는 12소박이 한 장단으로, 3소박도 사용하지만 2소박을 적극 활용한다. 3+3+2+2+2소박 또는 2+2+2+2+2+2소박 등으로 나타난다. 자진굿거리는 3소박 4박자로 자진모리와 흡사하며, 덩덕궁이라고도 한다.
터벌림은 제의와 놀이가 결합된 굿의 전형적인 구성방식을 따른다는 특징을 지닌다. 정형화된 동작으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네 방위를 사각으로 도는 일정한 연행방식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의적 속성이며, 정해진 틀 없이 춤사위를 자유롭게 구성하는 방식은 놀이적 속성이다. 때문에 모셔지는 특정한 신은 없지만, 별도의 굿거리로 구분한다. 손굿의 깨낌은 신을 청하여 모시는 의식으로 산이들만 수행하고, 쌍군웅에서는 미지와 동등한 위치에서 춤과 음악을 주도해 나간다. 이를 통해 《경기도도당굿》의 산이는 미지의 굿을 보조하는 악사 입장이 아닌 미지와 협업하는 주체임이 확인된다. 터벌림의 특수한 춤사위 및 동선과 짝을 이루는 연행 구성에서 산이들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경기도도당굿: 국가무형문화재(1990) 경기시나위춤: 경기도 무형문화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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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