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악대금, 풍류대금, 산조대금, 저, 적, 젓대, 시나위젓대, 횡적, 횡취, 저대, 대함
대나무로 만든 가로로 부는 관악기[橫笛]
한국 전통악기 중 가로로 부는 대표적인 목관악기이다. 고구려ㆍ백제의 횡적, 신라의 삼죽(三竹)을 기원으로 계승되어 온 고유의 관악기로, 고려시대부터 한 가지 제도로 정착되어 전승되다가, 기존의 정악대금보다 길이 및 지공 간 거리가 짧은 대금이 사용되면서 이를 산조대금이라 하였다. 두 대금은 길이와 칠성공 등에서 일부 차이를 보일 뿐 구조는 서로 같아서, 취구(吹口) 한 개, 청공(淸孔) 한 개, 지공(指孔) 여섯 개, 음고 조절을 위한 칠성공(七星孔) 한두 개를 지닌다.
대금은 한국 고유의 가로로 부는 목관악기이다. 『수서』ㆍ『통전』ㆍ『북사』ㆍ『책부원귀』 등에 고구려와 백제에 ‘적’(笛), ‘횡적’(橫笛), ‘횡취’(橫吹)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후기』 기록에서도 일본에 파견된 고구려와 백제의 악사(樂師)에 ‘횡적’ 연주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어 대금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유적이나 유물에서 대금은 주로 천장고임 속 천인들이 연주하는 악기로 표현되어 상서로운 악기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 오회분 제4호묘 천정벽화에 보이는 가로로 부는 악기가 대금의 구조와 유사한 형상으로 확인된다.
백제의 유물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국보 제106호)〉에도 가로로 부는 관악기를 연주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대금에 관한 기록이 처음으로 보이는 우리나라 문헌은 『삼국사기』로, 「잡지」 신라악(新羅樂)에 삼죽(三竹) 즉, 대금ㆍ중금ㆍ소금이 언급되었다. 여기서는 대금이 당적(唐笛)을 모방하여 신라 때 만들어진 악기로 소개되었으나, 신라 유물에는 가로로 부는 관악기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라보다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연주되었던 횡적이 삼국통일 후에 통일신라로 흡수되어 삼죽을 형성한 것이라 짐작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경주 감은사 유적지 동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용기의 주악상이나 상원사 범종 하단부에 부조된 주악상,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주악상, 안압지에서 출토된 동판불(銅板佛)의 주악상에서도 고구려와 백제의 유물ㆍ유적에 나타난 횡적 형태와 연주 모습이 거의 동일하게 확인된다.
신라의 유물로 추정되는 일본의 〈화문횡적(花紋橫笛): 일본 국립동경박물관 및 일본 천리대학이 각 한 점씩 소장〉과 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옥적(玉笛)〉 또한 현재 대금의 원형이 되는 신라시대 횡적류 악기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의 삼죽(三竹) 이래 조선시대까지 대금이 여러 문헌에서 중금ㆍ소금과 함께 언급된 것으로 보아 7세기 무렵부터 횡적, 즉 가로로 부는 관악기를 크기에 따라 세분해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 「기이」에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 때 대나무로 만든 적(笛)을 불면 적병(賊兵)이 물러가고 자연재해도 막아준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설화가 있는데, 이 적(笛)이 대금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려사』에는 최초로 악기의 구조와 형태까지 기록되어, 대금과 중금의 구멍은 열세 개이고, 소금의 구멍은 일곱 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성종대 편찬된 『악학궤범』에서도 대금이 취공 한 개, 청공 한 개, 지공 여섯 개, 칠성공 다섯 개의 총 13공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므로, 대금의 제도가 늦어도 고려시대부터 정착되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금 연주에 관하여는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익재난고』에서 젓대를 잘 부는 무외국사(無畏國師)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고려속요 〈한림별곡(翰林別曲)〉의 ‘문탁적(文卓笛)’ 즉, 문탁의 젓대라는 표현에서도 고려의 승려나 선비가 대금을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우의정을 지낸 맹사성(孟思誠, 1360~1438), 문신 박연(朴堧, 1378~1458)과 성현(成俔, 1439~1504) 역시 젓대를 즐겨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궁중 의례에 향악이 사용되며 향악기 대금이 길례(吉禮)와 가례(嘉禮) 악대에 사용되었고, 민간에도 널리 사용되어 조선시대 풍속화에도 대금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무동 그림에 등장하는 악사들은 삼현육각 편성으로 좌고ㆍ장구ㆍ피리ㆍ대금ㆍ해금을 연주하고, 신윤복의 〈주유청강(舟遊淸江)〉이나 〈상춘야흥(賞春野興)〉에서도 대금 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금은 한 가지 제도로 전승되다가, 민간에서 새로운 대금이 등장한 이후 기존 대금을 정악대금이라 하고 새로운 대금을 산조대금이라 구분하게 되었다. 다만 산조대금의 정확한 출현 시점은 알려진 바가 없고,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박종기(朴鐘基)만 해도 산조나 시나위 연주에 정악대금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조대금은 민간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악기마다 크기가 달라 음고도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정악대금보다 관의 길이가 짧고, 관의 지름과 취구가 넓다. 지공의 간격이 좁아 손가락을 더 민첩하게 움직여 빠른 음악을 연주하기에 편리하고, 취구가 넓어 농음(弄音) 및 다양한 연주법을 표현하기에 유리하다. 취구, 청공, 지공, 칠성공의 제도는 정악대금과 같지만 규격이 다르며, 전체적으로 음고가 2~3도 더 높다. 대금은 젓대ㆍ저대ㆍ저ㆍ적ㆍ횡적ㆍ횡취 등으로 불리며, 북한에서는 대함이라고도 한다. 산조대금은 시나위와 같은 민속음악에 사용되어 시나위젓대라고 불리며, 정악대금은 풍류대금이라고도 한다. 현재 정악대금은 궁중음악, 정악 등에 사용되며 산조대금은 산조뿐 아니라 굿판의 기악합주인 〈시나위〉, 노래와 춤 반주 등 민속악 전반에 사용된다.
○ 구조와 형태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의 구조와 형태는 동일하나 규격에 차이가 있다. 기다란 대나무 관에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吹口), 얇은 갈대 막으로 덮어 떨림음을 발생시키는 청공(淸孔), 손가락으로 여닫는 여섯 지공을 차례로 뚫고, 관의 끝부분에는 대금의 전체적인 음정 간격과 미세한 음높이 조절을 위해 한두 개의 칠성공(七星孔)을 뚫어 만든다. 자연 재료인 대나무를 사용하므로 관대의 치수를 규격화할 수는 없으나 현행 정악대금의 길이는 80cm, 산조대금은 65~70cm 정도이고, 두 대금의 관의 지름은 약 3~4cm 정도이다. 산조대금의 취구 크기가 정악대금보다 1.5배 정도 크다.
○ 음역과 조율법 대금의 음역은, 모든 지공을 막아 내는 최저음 탁임종(亻林 )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인 중청황종(㶂)까지 두 옥타브 반에 이르는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입김의 세기에 따라 옥타브 윗소리와 아랫소리가 구분된다. 낮은음일수록 취구에 아랫입술을 바짝 밀착시키고 김을 약하게 불어 넣으며, 높은음일수록 세게 분다. 낮은 음역에서 부는 것을 ‘저취(低吹)’라 하고, 중간 음역에서 부는 것을 ‘평취(平吹)’, 높은 음역에서 부는 것을 ‘역취(力吹)’라고 한다.
정악대금의 전폐음은 B♭에 맞추고, 산조대금의 전폐음은 C, C# 정도이며, 연주 악곡에 따라 반음 간격씩 올려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 구음과 표기법 대금의 구음법은 일반화된 것이 없고, 단소와 같은 죽부 계통의 관악기 구음법 ‘나누너노느’를 혼용한다. 현재로서는 한자로 된 율명을 우리말로 부르는 것이 정확한 음높이를 지시하는 방법이다. 오선보에서는 실음 그대로를 표기하고, 정간보에서는 전폐음을 ‘㑣’으로 하여 십이율명으로 음고를 나타낸다. 국립국악원에서 2016년 발행한 『대금정악보』에 관용적인 선율 진행이나 시김새(장식음)에 대한 구음 삼십 종이 소개되어 있다. 시김새 등을 기보할 때는 기호를 율명 옆에 써서 표현한다.
○ 연주방법과 기법 대금의 취구 쪽 끝을 왼쪽 어깨에 얹은 다음 악기를 수평이 되게 잡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살짝 숙여 취구에 입술을 대고, 왼팔은 수평이 되게 들고 취구는 아랫입술로 2/3 또는 3/4 정도를 가려서 대고, 깊은 호흡으로 김을 넣는다. 동일 음을 반복할 때는 혀치기와 같은 주법을 하고, 서양음악의 비브라토(vibrato)에 해당하는 요성(搖聲)을 할 때는 입김의 세기나 방향에 변화를 주어 표현한다. 제1~3공은 왼손 식지, 장지, 무명지로, 제4~6공은 오른손 식지, 장지, 무명지로 짚는다. 구멍을 막는 부위는 손가락 끝마디인데, 제4~5공은 손가락 둘째 마디를 사용한다. ○ 연주악곡 정악대금은 《종묘제례악》ㆍ〈여민락〉ㆍ〈여민락만〉ㆍ〈본령〉ㆍ〈해령〉ㆍ《도드리》ㆍ《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관악영산회상》ㆍ《천년만세》ㆍ〈취타〉ㆍ〈수제천〉ㆍ〈동동〉ㆍ〈보허자〉ㆍ〈낙양춘〉ㆍ〈가곡〉ㆍ〈자진한입〉 등에 편성되며, 독주곡으로 〈청성곡〉이나 《평조회상》 중 〈상령산〉과 〈헌천수〉ㆍ〈경풍년〉 등을 연주한다. 산조대금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독주곡은 대금산조이고, 《시나위》 합주, 《취타풍류》ㆍ《서도풍류》ㆍ《염불풍류》 등에도 편성된다.
○ 제작 및 관리방법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을 불에 그을려 진을 뺀 후 그늘에서 건조시킨다. 대나무의 속을 파내어 안쪽 벽인 내경을 일정한 굵기로 다듬고 악기 길이에 맞추어 절단한다. 취구와 청공 각 한 개와 지공 여섯, 그리고 칠성공을 순서대로 뚫는데, 칠성공을 뚫을 때는 먼저 작은 구멍을 뚫고 넓혀가며 음고를 조정한다. 관대가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일론 실이나 명주실을 일정 간격으로 묶어주고, 내경 부분에 붉은색 페인트, 락카, 니스 등으로 코팅을 하여 악기 안쪽의 부식을 방지한다. 청공에 붙이는 갈대청을 물에 적셨다가 청공 주변에 아교를 바른 뒤 덮듯이 붙인다. 청을 보호하기 위해 금속 청가리개를 덧대고 가죽으로 묶는다. 쌍골죽은 마디와 마디 사이가 짧고, 살이 두텁고 단단하여 습기에 잘 견디며, 황죽보다 고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 선호된다.
대금은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함께한 한국의 대표적인 관악기이다. 대금은 자연 상태 대나무의 마디를 그대로 외관에 지니며, 취구 쪽에도 대나무 뿌리 잔가지를 자른 흔적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갈대청을 붙이는 청공이 있어, 역취로 불면 청공에 붙인 청의 떨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이는 대금의 음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취구가 넓어서 음높이를 미세하게 조정하여 선율을 장식할 수 있다. 정확하고 깨끗한 음색을 내는 현대의 관악기에 비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특색있다.
합주시 고정음을 가진 다른 악기가 편성되지 않은 경우, 정악대금 또는 산조대금이 임종(林鍾) 음을 내, 악기들이 일정하게 음을 맞추어 조율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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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욱(洪淳旭),오지혜(吳智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