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장추(鳳將雛), 봉작취(鳳雀吹), 봉황곡(鳳凰曲), 봉구황(鳳求凰)
봉황 혹은 기러기 등 새소리를 묘사하는 부분이 삽입된 민속 기악곡
봉장취는 새소리를 묘사하는 기악 선율이나 아니리를 넣어 독주 또는 합주로 연주하는 기악곡이다. 재인·광대·악공놀음에서 고인(樂工)이 연주했던 연희음악으로, 연주 중간에 재담 소리가 들어가기도 한다. 독주일 경우에는 퉁소 또는 대금으로 연주하며, 합주일 경우에는 퉁소나 대금에 해금, 가야금, 피리 가운데 1~3개씩 편성하여 장구 장단에 맞추어 연주한다. 봉장취는 1930년대 활발히 연주되면서 산조와 함께 공존하였던 민속 기악곡이었으나 차차 산조의 영역으로 흡수되고 1970년대 이후로는 전승되지 않는다.
봉장취는 ‘봉이 오래 취한다’, ‘봉작이 노래한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어원이 봉장추(鳳將雛)에서 나와 그 뜻은 ‘봉이 새끼를 거느렸다’, ‘봉이 새끼를 기르다’로 해석하거나, 또는 ‘제왕이 숨은 영웅을 거느렸다’는 의미로도 풀이한다. 떠돌이 예능 집단인 풍각쟁이의 퉁소 독주곡에서 유성기음반에 등장하는 전문음악인 창우 집단에 의해 기악 합주곡 내지는 판놀음 형태로 변모되었다. 기악 연주에 아니리나 서사적인 내용이 있는 재담 소리를 포함된 봉장취는 유명갑이 남긴 <피리기러기타령>, 김초향의 <꾀꼬리>, 박녹주의 <고늬한쌍>에 전한다. 이외에 기악 위주로 연주된 봉장취는 유성기음반(SP)에 <봉황곡>, <봉구황>, <새타령>, <봉장추> 등의 곡명으로 담겨 있다.
<표 1> 유성기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곡명 | 연주자 | 발매처 | 년도 |
피리기러기타령 | 유명갑(피리) | Nipponphone | 1910년대 |
합주 봉황곡 | 정해시(퉁소) 심상건(가야금) 김덕준(해금) 한성준(장구) | VictorJunior KJ-1043(1106) | 1935 |
기악 봉장취(上) | 강태홍(가야금) 박종기(대금) 최계란(장고) | Korai CM809-A | 1936 |
기악 봉장취(下) | 강태홍(가야금) 박종기(대금) 최계란(장고) | Korai CM809-B | 1936 |
퉁소 독주 봉작취 | 유동초(퉁소) 한성준(장고) | VictorStar KS-2007(KRE186) | 1937 |
잡가 꾀꼬리 | 김초향(소리), 코리아악단 반주: 강태홍(가야금) 박종기(대금) | New Korea 1042-A | 1937 |
잡가 고늬한쌍 | 박녹주(소리), 코리아악단 반주: 강태홍(가야금) 박종기(대금) | New Korea 1042-B | 1937 |
해금산조 봉구황 | 지용구(해금) 박종기(대금) 정원섭(장고) | Okeh 12209(K755) | 1937 |
해금산조 굿거리 | 지용구(해금) 박종기(대금) 정원섭(장고) | Okeh 12209(K755) | 1940 |
고악 봉장취 | 콜롬비아고악단: 정해시(퉁소) 김덕준(해금) 한성준(장고) | Columbia C2028(1 22866) | 1940 |
고악 새타령 | 콜롬비아고악단: 정해시(퉁소) 김덕준(해금) 한성준(장고) | Columbia C2028(1 22867) | 1940 |
○ 역사적 변천 과정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변강쇠가》에는 “風角쟁이 한 패가 오난듸… 洞簫 불던 얽은 奉事 송장 낯을 못 본 故로 죽음 次例 모르고서 먼 눈을 뻔득이며 鳳장취를 한창 불제”라고 하여 풍각쟁이 중에 봉장취를 부는 퉁소잽이가 묘사되고 있다. 풍각쟁이는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92) 잡희 부분에 ‘風角-簫笛行乞(풍각쟁이는 소·적을 불며 구걸한다)’는 기록에서 떠돌이 예능인임을 알 수 있다. 이상 문헌에는 풍각쟁이 중에서 봉사 퉁소잽이가 연주하였던 악곡으로 봉장취가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대금 명인 강백천(姜白川, 1898~1982)은 ‘봉장취는 고니이야기를 구성하여 여러 새가 등장할 때마다 중중모리·중모리·진양으로 장단을 바꾸어가며 연주하고 마당에서 장구와 가야금은 앉고 피리·대금·해금은 서서 연행하며 이들 가운데 재담을 잘하는 잽이가 아니리를 맡는다’고도 하였다. 재담과 소리를 포함한 판놀음의 형태로 마당에서 연행한 봉장취가 존재하였음을 알렸는데, 판소리 명창인 공대일(孔大一, 1911~1990)과 박녹주(朴綠珠, 1906~1979)도 같은 내용으로 증언한 바 있다. 이렇듯 유성기음반이 발매되던 시기에 그나마 여러 형태의 봉장취 연주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면 산조의 영향으로 4개의 장단 구성을 갖춰 순수 기악곡으로 연주된 봉장취가 연주되었다.
○ 음악적 특징 봉장취의 선율은 떠는 미(mi)-평으로 내는 라(la)-꺾는 시(si)의 전형적인 계면조로 되어있다. 중심음인 청은 독주로 연주되는 경우에만 라(la), 미(mi'), 레(re')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하여 연주되고 합주의 경우에는 대부분 라(la)에 고정되어 있다. 새소리 묘사는 앞 꾸밈음으로 추켜 올리거나 내리면서 스타카토로 처리하고, 두 악기로 묘사할 때는 주고받듯이 교대로 표현한다. 그리고 여러 악기의 합주에서 중심 선율은 퉁소나 대금 같은 관악기가 주로 잡아가며 연주한다. 한편 봉장취의 장단은 중모리, 자진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자진굿거리 등이 사용되는데, 새소리 묘사는 자진중중모리나 자진모리에서 주로 등장한다. 이외에 강태홍·박종기의 봉장취는 엇모리-자진모리, 지용구·박종기의 봉장취는 중모리-자진굿거리로 두 장단을 엮어서 연주한다. 하지만 1960년대의 봉장취는 유성기음반의 장단과는 다르게 점차 빨라지는 진양-중모리-굿거리-자진굿거리의 장단 구성으로 산조와 같은 구조적 틀을 갖춰 연주되기도 하였다.
○ 악기편성 풍각쟁이가 연주하던 봉장취는 퉁소를 주요 독주 악기로 사용하였으나 창우 집단이 연주하면서부터는 여러 악기가 추가되는 합주의 형태가 많아졌다. 봉장취의 악기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퉁소나 대금을 중심으로 해금, 가야금, 피리 등이 자유롭게 편성되었다. 1960년대가 되면 유성기음반에서 합주로 편성되지 않았던 피리나 아쟁이 들어간 봉장취가 장시간음반(LP)에 전하고 있다.
<표 2>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곡명 | 연주자 | 발매처 | 년도 |
봉장취 굿거리 | 해경악회: 이충선(피리) 김광식(대금) 성금연(가야금) 지영희(해금) 지갑성(장구) | SLN-10635, 민1217(1LP) | 1960년대 |
아쟁과 해금의 봉장취 | 지영희(해금) 성금연(가야금) 신유경(장구) | KSM-1105(10인치 1LP) | 1960년대 |
본래 풍각쟁이에 의해 연주된 퉁소 봉장취는 창우 집단의 음악으로 수용되면서 즉흥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기악 합주곡 형태로 연주되었고, 서사적인 내용이 있는 재담과 소리가 포함된 판놀음 형태로도 연주되며 음악적인 확장을 이루었다. 특히 유성기음반에 봉장취를 남긴 박종기, 지용구, 김덕진, 심상건, 강태홍 등은 모두 초기 산조 형성에 기여가 큰 명인들이기도 하여 당시에는 산조와 봉장취가 서로 동등한 음악적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장단의 틀을 갖추어 정형화되어간 산조와는 다르게 즉흥성을 유지하였던 봉장취는 공연물로 연주되는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현재 봉장취 계열의 음악은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만 남아있고 1970년대 이후로는 연주되지 않다가 최근에 복원 형태로 연주가 시도되곤 한다.
강한영 교주, 『신재효 판소리사설 여섯마당집』 , 형설출판사, 1982. 반혜성,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전하는 봉장취 연구」, 『국악원논문집』 24, 2011. 이보형, 「풍각쟁이 음악고」, 『한국민속학』 11, 1979. 이보형, 「봉장취의 연원과 변천고」, 『한국음반학』 10, 2000. 이진원,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성」, 『한국음반학』 11, 2001. 장휘주, 「봉장취 연구;유성기음반에 취입된 봉장취를 대상으로」, 『한국음반학』 4, 1994.
반혜성(潘惠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