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애산조
○ 역사적 변천 과정 퉁소는 주로 민속기악합주 및 독주에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퉁소 연주가 줄어들면서 퉁소산조 역시 근래 들어서는 그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송천근(宋千根), 유동초(柳東初, 1887~1946), 편재준(片在俊, 1914~1976), 한범수(韓範洙, 1911~1984) 등이 퉁소연주에 빼어났다고 전하지만 그 음악의 전승은 단절된 실정이다. 음반에 남아있는 퉁소음악은 빅터 (Victor Star KS-2007 洞簫獨奏 散調 柳東初 鼓 韓成俊)에 유동초의 산조 중모리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유동초의 퉁소산조는 1957년 한범수에 의해 재현된 바 있으며, 이생강 등 몇몇 예인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 음악적 특징 퉁소산조는 단소 및 대금산조와 비슷하게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으로 짜있다. 퉁소산조의 연주법은 단소산조 연주법과 동일한 제1공에서 제4공까지만 사용해서 연주하는 ‘세가락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악기 구경이 크므로 격렬한 농음을 할 때는 머리를 위아래 또는 좌우로 흔들어 연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00년 초 퉁소는 관악기의 총칭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악기였다. 박종기. 전용선, 정해시, 편재준, 유동초와 같은 산조의 명인들에 의해 부흥기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퉁소를 잘 연주한 이로 유동초와 편재준을 꼽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이후 퉁소는 사양길을 걸었으며, 지금은 겨우 명맥을 이어나갈 뿐이다. 퉁소의 명인으로서 명성에도 불구하고 편재준은 음원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며, 유동초는 녹음 음반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다.( Victor Star KS-2007 洞簫獨奏 散調 柳東初 鼓 韓成俊) 이왕직아악부 사람들은 유동초의 기량을 높이 사 ‘동방에서 처음’이라는 뜻으로 ‘동초’라 불렸고 이후 ‘유봉(鳳)’이라는 본명보다 ‘유동초(東初)’라는 아명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후 유동초의 음원은 한범수에 의해 복원연주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상규, 「단소와퉁소」, 『음악학논총』, 2000. 이진원, 「종취관악기의 전통적 주법 연구-퉁소와 단소를 중심으로」, 『국악교육』 15, 1997. 이보형, 「퉁소산조의 명인에 대한 고찰」, 『한국악기학』 6. 2009. 조석연, 「유동초 생애 재검토」, 『한국음악사학보』, 2010. 조석연, 「한국 퉁소의 기원에 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2014.
조석연(趙石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