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윤석이 한일섭에게 배운 가락을 자신의 가락과 구성하여 만든 아쟁산조
윤윤석은 아쟁산조 짜임을 갖추게 공헌한 한일섭(韓一燮, 1927~1973)과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생활을 같이하며 구음으로 먼저 아쟁산조 한바탕을 배우고 연주 기량 연습을 통해 아쟁산조를 익혔다. 이후 한일섭에게 배운 우조가락을 바탕으로 자신의 창작가락을 첨가하여 〈윤윤석류 아쟁산조〉를 만들었다.
윤윤석(尹允錫, 1938~2006)은 임춘앵 여성 국극단에서 장구, 꽹과리, 가야금, 거문고 등 여러 악기를 다루며 연주 생활을 하던 청년기에 한일섭을 만나 아쟁을 배웠다. 한일섭은 아쟁, 새납, 북, 장구, 가야금, 소리, 작곡 등 다양한 재능을 갖은 명인이었고 윤윤석과 함께 여성국극단 생활을 하던 시기여서 윤윤석은 자연스럽게 한일섭을 만나 아쟁을 학습한다. 국극단의 휴식기에 윤윤석은 서울 종로구 권농동에 살던 한일섭을 찾아가 심도 있는 아쟁산조를 배우고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에 자신의 창작가락을 첨가하여 윤윤석류 아쟁산조를 완성했다.
○ 시대적 배경
남녀 혼합 국극단체와 여성국극단 생활을 하며 많은 전통극과 무용 반주 음악을 맡은 윤윤석은 단체의 휴식 기간에 한일섭 선생을 찾아가 아쟁산조 가락을 배웠다. 아쟁산조 중 우조를 일주일 정도 공부하였을 당시 스승인 한일섭은 윤윤석을 불러 ‘이제 되었다. 좋은 가락이 많고 너는 가락이 충분히 그러하니까 스스로 산조를 마음껏 폭넓게 짜 보아라’란 의견을 전하였고 스승의 가락과 함께 자신의 가락을 첨가한 독자적인 아쟁산조 가락을 구성하게 된다.
윤윤석은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에서 윤영덕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야금 명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 12세의 나이에 이리국악원을 찾아가 새납(호적), 설장구, 꽹과리, 판소리고법 등을 공부하고 이창선에게 단가와 흥보가를 배웠다. 이후 19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임춘앵 여성국극단, 박후성의 화랑국극단, 김진경 여성단체 등 여러 단체의 악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전통의 장단인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임춘앵 여성국극단 시절에는 한일섭을 처음 만나 종로구 권농동에 살던 그의 집에서 아쟁산조를 체계적으로 전승받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윤윤석은 독자적인 아쟁연주 활동으로 살풀이춤을 반주하며 전통무용계에 명실상부한 아쟁 반주의 일인자로 인정받는다. 이후 많은 독주 및 반주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영역을 넓혔으며 1980년대 초반 자신의 이름을 건 아쟁산조의 유파를 구성하게 된다. 1984년 전주대사습놀이대회 기악부 장원을 차지했으며 1990년에는 신라문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자신의 독자적인 아쟁산조 음반에 가야금 주법을 토대로 연주한 철아쟁산조를 발표하여 탄현(彈絃) 주법의 창의적 아쟁산조를 알리는 계기를 만든다. 2000년 웅진미디어의 음반 ‘비상’과 ‘공명’을 마지막으로 아쟁산조, 아쟁시나위, 민요반주, 산조합주, 무용반주, 철아쟁산조 등 많은 작품을 음반으로 남겼다.
윤윤석은 활발한 연주 활동과 달리 자신의 음악을 전수하고 계승하려는 제자가 적었다. 그는 전승과 교육보다는 많은 시간을 음악회 연주에 할애하였고 언제나 즉흥적인 기교와 창조적인 가락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아쟁 연주가로의 명성을 높게 생각했다. 이렇듯 윤윤석은 전통 현악, 관악, 타악기 연주를 겸비한 명인으로 특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아쟁산조를 구성한 전통예인이다.
○ 장단 구성과 조의 구분
윤윤석류 아쟁산조에 사용되는 장단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총 4가지이다. 가장 느린 진양조의 시작으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점차 빠르게 진행되다가 마지막 자진모리 끝부분에 푸는 가락을 더하여 느리게 종지하는 형식을 갖는다. 현재 전승하고 있는 아쟁산조 중 진양조는 40각, 중모리는 31장단, 중중모리는 35장단, 자진모리는 무장단의 푸는 가락을 제외하고 80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윤석류 아쟁산조 악장별 조의 구분>
악 장 | 조 의 구 분 |
진양조 | 계면조-우조-계면조 |
중모리 | 계면조 |
중중모리 | 계면조 |
자진모리 | 계면조 |
윤윤석은 스승인 한일섭의 아쟁산조 중 진양조 우조 부분만을 올곧게 전승하여 자신의 산조에 이입하였다. 또한, 장단별 스승과 유사한 가락을 만들어 변화를 주었으며 창작을 시도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가락을 만들었다. 윤윤석류 아쟁산조 첫 도입 진양조는 한일섭 가락과 35% 동일하며 이후 유사한 가락을 만들어 진행하다가 창작된 자신의 가락으로 전체를 구성하였다. 윤윤석의 아쟁산조 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는 진양조와 달리 스승과 공통된 가락이 없으며 유사한 가락과 창작된 가락으로 산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로 윤윤석류 아쟁산조를 한일섭의 계승 구도로 논하기보다는 한일섭과 가락이나 짜임새에 관한 학습을 교류한 독자적인 한 유파로 인정하고자 하는 논의의 경우도 있다.
윤윤석은 또한 자신의 아쟁연주 음원에 철아쟁산조를 만들어 삽입하였는데 약 17분 49초로 구성된 창작물이다. 활대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탄현 주법으로 산조를 구성하였다. 이는 윤윤석이 아쟁산조를 자신의 음악적인 재량에서 확장하고 변화시킨 큰 특징이라 논의할 수 있는데 그러한 다양한 창의성을 통한 독자적인 아쟁연주법은 전문 아쟁 연주자에 의해 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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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金容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