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쾌동류 현금산조
신쾌동(申快童, 1910~1977)이 구성한 거문고 가락의 산조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신쾌동이 구성하여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산조이다. 신쾌동은 백낙준(白樂俊, 1876~1930)에게 거문고산조를 사사하였고, 많은 연주 활동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고, 현재는 그의 제자인 김영재(金泳宰, 1947~)가 보유자이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신쾌동이 그의 스승인 백낙준에게 전수받은 가락에 본인의 가락을 더해 구성한 50여 분의 산조이다. 백낙준의 가락에서 휘모리를 추가하고, 엇모리와 중중모리는 새롭게 구성하였다.
신쾌동의 호는 금헌(琴軒)이며 본명은 복동(卜童)이다. 1910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1977년 타계하였다. 박생순에게 양금풍류와 단소 및 대금, 12세 때는 박학순에게 가야고풍류와 산조를 배웠다. 15세에는 정일동에게 거문고풍류를 배웠고 17세 무렵에 백낙준을 찾아가 밤낮없이 거문고산조를 익혔다고 한다. 부안의 줄포 가설무대에서 처음으로 거문고 산조를 연주했고, 1933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 후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발하게 연주했다. 여러 명창들의 영향을 받아 산조뿐 아니라 병창도 개발하였다. 후에 여러 동료와 함께 서울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고 1976년에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보전연수회를 만들어 보전과 계승에 힘썼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현재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와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거문고 산조의 양대류파 중 하나이다. 신쾌동과 한갑득의 산조는 모두 백낙준의 가락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에 비해 독자적인 가락이 좀 더 많이 발견된다. 신쾌동은 그의 스승인 백낙준에게 전수 받은 가락에 본인의 가락을 더해 구성한 50여 분의 산조를 구성했는데, 백낙준의 가락에서 휘모리를 추가하고, 엇모리와 중중모리는 새롭게 구성하였다. 휘모리는 거문고풍류에서 양청도드리를 편곡하였다고 전한다.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의 순서로, 총 여섯 장단이다. 대표음반으로는 아세아레코드의 <거문고 산조>와 수도음반의 <거문고 산조>가 있고, 『현금곡전집』에 산조 및 거문고 병창과 거문고 풍류의 악보를 저술하였다. 신쾌동의 제자로는 김영재, 조위민, 정옥자, 구윤국, 김무길, 이세환, 이창홍 등이 있으며,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는 현재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다른 거문고산조의 유파에 비해, 역동적인 시김새와 탄법이 인상적이다. 굵은 선의 가락, 명쾌한 조의 구분과 화려한 꾸밈이 특징이다.
신쾌동, 『현금곡전집』, 창명사, 1977. 김호성, 명인의 기록, 정효문화재단 공식블로그 성혜경, 명인열전, 거문고와 한 몸같이 산 국악인생 금헌(琴軒) 신쾌동 거문고산조. 문화재청, 2018. 김우진, 『거문고산조』, 민속원, 2013.
고보석(高甫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