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얏고 산조
1890년 경 가야금에 제일 처음 만들어진 기악독주곡 형식을 갖춘 음악
가야금산조는 음계(音階), 장단(長短), 조(調) 등을 갖춘 기악독주곡으로 장고나 북 등의 타악기 반주가 함께 연주되며, 판소리와 음악어법이 공통된다. 다스름을 비롯해서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 느린 데서 빠른 데로 이어지는 장단 틀에 우조(길), 평조(길), 계면조(길) 등의 음 구조(음계)로 짜인 선율이 얹혀서 연주되며, 우조(羽調), 평조(平調), 계면조(界面調), 경드름(京調) 등의 조로 큰 단락이 구분된다.
1890년경 전라남도 영암(靈岩) 출신의 세습음악인 김창조(金昌祖, 1856-1919)에 의해서 가야금산조가 제일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한다. 가야금산조가 만들어진 이후에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등 독주가 가능한 여러 악기에 산조음악양식이 확대되면서 악기별 산조가 만들어졌다. 고로(古老)들은 ‘노랫말 없는 판소리가 곧 산조’라고 말할 만큼 가야금산조의 형성에 끼친 판소리의 음악적 영향은 직접적이다. 그밖에 시나위에 연주되는 ‘진계면’의 악상이나 경기 지방 음악스타일 ‘경드름’(경조) 또 가곡을 노래하듯 하라는 ‘가곡성 우조’ 등 당시 연주되던 민간음악의 영향 그리고 ‘말 뛰는 대목의 묘사’, ‘가랑비 오는 소리’ 등, 생활 속의 소리 등도 산조의 선율표현으로 활용되어 있다.
현존 가야금산조는 김창조를 1세대로 해서 2, 3세대를 거치면서 선율이 증가되었고 선율의 정형화를 이루게 되어 즉흥연주에서 악곡 형식을 갖추어가는 음악으로 정착되어 있다. 스승의 가락에 본인의 창작 가락을 덧붙이거나, 다른 사람이나 악기의 가락을 모방, 표절, 답습, 변용하여 20여 분에서 40여 분의 음악으로 가락이 늘어나 있다. 전승 계보에 따라 여러 유파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가락이나 조의 짜임, 연주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 오늘날 가야금산조의 유파로는 강태홍(姜太弘, 1893~1957)류, 최옥삼(崔玉三, 1905~1956 )또는 함동정월(咸洞庭月, 1917~1994)류, 김병호(金炳昊, 1910~1968)류, 김죽파(金竹波, 1911~1989)류, 서공철(徐公哲, 1911~1982)류, 김윤덕(金允德, 1918~1978)류, 성금연(成錦蓮, 1923~1986)류 등으로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 또는 3세대 연주자의 이름이 붙어 활발하게 연주된다. 그 밖에 심상건(沈相建, 1889~1965), 안기옥(安基玉, 1894~1974), 한성기(韓成基, 1896~1950), 김종기(金宗基, 1904~1945) 정남희(丁南希, 1905~1984), 신관용(申寬龍, 1912~1961), 유대봉(劉大奉, 1927~1974?)등이 남긴 산조가락이 채보 연구되어 종종 연주되기도 한다. 한때 성금련의 스승으로 알려지기도 한 박상근(朴相根, 1905~1949)은 서울에서 가야금산조 연주자로 짧게 활동했으며, 그의 부친인 박팔괘(朴八掛, 1882~1946)로부터 배운 것으로 전한다. 정남희는 월북연주가로 김윤덕의 스승이며, 김윤덕에게 사사한 황병기(黃秉冀, 1936~2019)는 말년에 본인가락을 작곡해 넣어서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를 만들기도 하였다. ○ 역사적 변천 과정 가야금산조의 창시와 관련해서 함화진(咸和鎭, 1884~1949)은 『조선음악통론』에 “김창조는 심방곡을 변작하여 산조를 변작할 새 우조 계면조로 분류하여 각종 악기에 탄주하기 시작하였고” 라고 하여 초기 가야금산조를 만든 사람으로 언급하였다. 또 김창조의 제자 안기옥과 정남희 공동저서로 1958년에 출판된 『가야금교측본』 서문 중에 “김창조는 대연주가이며 탁월한 작곡가였다”는 내용과 함께 “그가 작곡한 가야금산조는 우리 인민음악유산분야에서 불멸의 공적으로 되었으며 산조는 비단 가야금에 국한되지 않고 각 기악곡 장르를 형식상에 다대한 공헌을 하였다.” 라고 밝히고 있다. 초기에 가야금산조는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구전이어서 연주 때마다 가락이 달랐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여러 연주자와 악기 간에 모방 변주 표절 답습이 이루어져 왔고 정형화와 공통성을 갖추게 되어 오늘날 여러 유파로 전승된다. 이러한 전통의 결과로 유파별 현존 가야금산조는 양식적 차이보다는 ‘대동소이’함으로 『산조연구』에 분석 결과가 정리되어 있다. 김창조의 가락은 그의 제자 안기옥과 정남희 공동저서인 『가야금교측본』에 오선악보로 전해지며, 장영철의 『조선음악명인전』1에는 김창조는 “장별제를 설정하였다”고 하였다. 오늘날 가야금산조 진양조를 보면 유파마다 우조· 돌장 · 평조 · 계면조 등 큰 단락과 선율 틀의 공통성이 있어서 그가 가야금산조의 형식적 틀을 잡는데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가야금산조 진양조의 우조와 돌장은 제 3세대와는 차이가 있어서 그의 가락(1세대)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존 산조가락 진양조의 기틀은 제 2세대 연주자 누군가에 의해 정형화되어 유파별로 공통성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 연주자 중 연배가 비슷한 안기옥, 한성기, 강태홍을 들 수 있다. 안기옥은 1946년 월북하여 그곳에서 활동하며 김창조 가락을 악보로 전하게 하는 한편 스승과는 다른 틀로 본인의 가야금산조를 만들었다. 강태홍은 안기옥에 비해서 일찍 작고한 편인데, 그의 가락은 김춘지(본명 김채운金彩雲, 1919~1980), 원옥화(元玉花, 1928~1971)를 거쳐 구연우(具演祐, 1936~1984), 신명숙(申明淑, 1940~2019?) 등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태홍의 연주음원을 통해서 제2세대의 가야금산조 연주 스타일을 후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한성기는 가야금산조 외에 병창 음원을 많이 남기고 있는 편이고 김죽파를 가르쳐 오늘날 김죽파류 가야금산조가 이어지게 하였다. 한편 즉흥연주에 뛰어난 명인으로 알려져 있는 제2세대 연주자 심상건은 그의 부친 심창래로부터 배웠거나 자득한 것으로 전해지며 여러 음원을 남겼다. 이 중에는 제3세대와 공통된 선율 틀을 따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전자는 당시 정형화를 이룬 2세대 음악의 영향으로 구성된 것이라 하겠으며, 후자는 본인의 가락을 장단에 얹어 즉흥적 형태로 연주된 음악이라 하겠다. 계면조보다 평조 악상이 강조되고 가락의 긴장도가 크지 않은 특징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한숙구(韓淑求, 1865~?)를 들기도 하지만 음악의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워 학설로 굳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의 아들 한수동(1902~1929)이 가야금 연주자였고, 명창 송만갑(宋萬甲, 1865~1939)이나 명고수 김명환(金命煥, 1913~1989)의 구술을 통해서 음악적 천재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요절했다. 한숙구의 조카로 한성기가 있다. 서공철이 한숙구의 문하에서 3년 공부하였다고 하므로 그 유음(遺音)이 서공철류 가야금산조에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 음악적 특징 산조가 기악독주곡 형식을 이루는데 중요한 음악적 요소인 장단 음계 조는 판소리와 공통성이 있으면서 이를 통해 가야금산조의 음악적 특징을 드러내게 된다. 가야금산조에서 각 장단은 곧 개별 악장이 되면서 속도를 나타내며 이에 따라 리듬짜임의 다채로움이 만들어진다. 유파마다 구성이나 명칭에서 작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다스름부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짜인다. 유파에 따라서 굿거리, 엇모리, 늦인 자진모리장단이 구성되기도 하고 또 휘모리를 세산조시로 부르기도 한다. 세 가지 음계 중 우조길과 평조길은 솔-라-도-레-미와 레-미-솔-라-도의 음구조로 반음이 없는 5음 음계이고, 계면길은 미-솔-라-시-도-레-미의 음 구조로 반음 있는 5음 음계이다. 판소리나 산조에서는 종지음 기능이 있는 음계의 가운데 음을 ‘본청’이라 하는데, 가야금산조에는 특히 청(淸, key)을 바꾸어 연주하는 계면길의 선율이 많이 쓰이며, 전조, 변조, 조바꿈 등이 자주 나타난다. 우조, 평조(봉황조), 계면조는 구전된 조명(調名)으로 큰 단락을 나타내면서 꿋꿋하게, 화평하게, 슬프게 등으로 악상 기호적 역할, 또 선율진행 적 특성이 내포되어 있다. 계면조는 진계면, 평계면, 변계면 등으로 세분되어 쓰여 선율 진행상의 차이가 있다. 그밖에 돌장은 우조와 평조대목을 연결하는 기능으로 쓰이며, 경드름은 경기지방 음악스타일로 연주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생삼청은 ‘외갓집목’ 또는 ‘새삼스러운 청’이라는 뜻으로 계면길의 음구조에서 우조길로의 전조가 이루어진다. 석화제는 두 개 본청의 움직임이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조에 따라서 독특한 선율진행이나 농현 기법, 연주스타일 등이 강조되며, 총체적인 표현을 이를 때 ‘성음’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가야금산조의 선율은 주제가 있거나 이의 재현이나 발전 변주가 아니라 작은 단락의 쌓임으로 큰 단락- 조- 한 악장을 이룬다. 이때 시작이나 종지선율은 단락을 이루는 근간이 되며, 자연스러운 가락 연결로 필요한 시간만큼의 선율 구성이 가능하다. 이는 마치 ‘조각보’의 구성 같다는 생각이다.
가야금산조의 등장은 성악곡 판소리의 기악곡 화이면서 당시 민간음악의 폭넓은 수용으로 기존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 양식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이로써 기악독주곡 형식이 여러 악기에 가능하게 됨으로써 한국음악사에 시사되는 바가 크다. 합주나 춤 반주에 주요하게 쓰여 왔던 관악기에 비해 가야금이 독주 악기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가히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주법에도 대혁신이 일어나 명인 기를 겨루는 음악으로 전문음악가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었다. 가야금산조는 오늘날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연주곡목으로 성장하였으며, 백대웅〈18현가야금산조(독주)〉나 박범훈〈25현가야금산조(협주곡)〉, 김희조〈25현 가야금산조(삼중주)〉 등의 새로운 산조가 작곡되기도 하여 기존 산조와 양식적으로 차별화되는 곡을 작곡하고자 하는 작곡가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 작곡가 이해식은 본인 음악의 뿌리를 무속음악과 민속음악에 두고 1968년부터 1984년까지 대금, 가야금(흙담), 해금(상,像), 거문고(술대굿), 피리(호드기) 등 자신의 류(流)로 여러 악기를 위한 산조를 발표하였고, 그밖에 피아노나 첼로 기타산조 등 서양악기에도 산조의 음악 양식이 변용됨으로써 130여 년 전 산조명인들의 예술정신과 창의성이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
함화진, 『한국음악통론』, 을유문화사, 1948. 정남희․안기옥, 『가야금교칙본』, 조선음악출판사, 1958. 장영철, 『조선음악명인전1』, 윤이상음악연구소, 1998. 김해숙, 『산조연구』, 세광출판사, 1987. 양승희, 『김창조가야금산조연구』, 마루, 1999. 이해식, 『창작곡집 흙담』,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6.
김해숙(金海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