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가고
민요 가락에 불교의 교리를 담은 사설을 얹어 부르는 불교음악의 한 갈래
회심곡은 사찰 내 불곡(佛曲)의 일종으로, 시주를 권하는 탁발승의 행각 등을 통해 민간으로 점차 전파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행 담당자층이 승려에서 속인으로 확장됨에 따라 무가ㆍ잡가ㆍ민요 등 다양한 장르에 수용되어 현대에 이른다.
조선 중기 불교 승려 서산대사 휴정이 만든 〈회심가고〉가 회심곡의 가사(노랫말)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회심곡의 유래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민요의 가락을 빌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회심곡의 변천 과정은 가사와 음악적 특징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회심곡이라는 이름의 불교 가사는 1776년(영조 52) 해인사에서 펴낸 목판본 『보권염불문(普勸念佛門)』에 〈회심가고〉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가사는 순한글로 되어 있으며, 총 232구로 구성된다.
같은 내용의 가사는 『조선가요집성(朝鮮歌謠集成)』(1934), 『석문의범(釋門儀範)』(1931) 등 근대에 편찬된 가사ㆍ의례집에 국한문혼용체로 실리기도 했다. 특히 『조선가요집성』의 회심곡 해제에는 “淸虛尊者, 卽 西山大師 休靜 作”이라고 쓰여 있어, 조선 중기에 활동한 불교 승려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이 불교가사 회심곡을 지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조선가요집성』에는 ‘回心曲은 坊間에 전하는 者, 四種以上이 있어 모다 出入이었으나 이는 하도 틀리기로 여긔실엇다. 다음에 별회심곡의 일종을 또 실어둔다’라는 주(註)와 함께 서산대사 휴정의 또 다른 작품으로 〈별회심곡(別悔心曲)〉을 수록하기도 했다.
회심곡에서 파생된 여러 종류의 가사를 총칭하여 회심곡류 가사라고 부른다. 현전하는 회심곡류 가사에는 회심곡, 〈속회심곡〉ㆍ〈별회심곡〉ㆍ〈특별회심곡〉의 네 가지가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문헌 외에도 이용기(李用基, ?~?)가 이왕직아악부 소장으로 추정되는 책을 필사해 만든 가집 『악부(樂府)』(연대미상), 작가 미상의 근현대 가집 『자책가』(연대미상) 등에 회심곡류 가사가 수록되어 전한다. 단, 『조선가요집성』ㆍ『석문의범』ㆍ『석문가곡』의 〈별회심곡〉과 『악부』의 〈별회심곡〉은 제목만 같되 내용은 다르고, 내용상 여타 문집의 〈별회심곡〉은 『악부』의 〈특별회심곡〉과 같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보권염불문』 | 『자책가』 | 『조선가요집성』, 『석문의범』, 『석문가곡』 | 『악부』 |
회심가고 | 회심곡 | 회심곡 | 회심곡 |
별회심곡 | 특별회심곡 | ||
별회심곡[관악산요] | |||
속회심곡 |
1920년대 잡가집에는 회심곡이 수록된 예가 보이지 않으며, 1930년대 음반 자료에서도 회심곡이 아닌 〈별회심곡〉 가사가 주로 불리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대를 거치며 불교 가사 회심곡은 연행면에서 효용이 줄어들고 오히려 이것에서 파생한 〈별회심곡〉이 널리 불리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별회심곡〉의 가사는 불교 경전 중 『부모은중경』과 『시왕경』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고, 경전을 비롯한 여타 사설을 더 보태어 넣거나 덜어내는 등 변형을 주어 새로운 사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현재 잡가로 불리는 회심곡의 사설은 주로 “일심으로 정념은 극락 세계라”로 시작하는데, 이는 걸승타령 〈평조염불〉의 서두 부분 사설이 회심곡에 붙은 것이다. 한편, 회심곡은 사찰 내 불교 의식에서 불리는 화청(和請)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불교 포교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 화청은 민요 가락에 불교의 교리를 담은 사설을 얹어 만든 것으로, 그 종류의 하나인 회심곡도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하겠다. 또, 회심곡은 의식 음악이 아닌 승려들의 불가(佛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 예로는 탁발승 또는 걸립패가 부르는 회심곡이 있으며, 이를 승려들이 불교 의식에서 부르는 회심곡과 구분하기 위해 전자를 〈염불 회심곡〉 또는 〈걸립 회심곡〉, 후자를 〈화청 회심곡〉으로 나누어 칭하기도 한다. 둘의 사설은 같을지라도 음악적 내용은 다르기에, 양자는 별개의 곡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탁발승의 행각은 사찰 내에서 주로 불리던 〈화청 회심곡〉을 점차 사찰 밖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그 사설은 민중들에게 널리 퍼져 무가(巫歌)나 장례요(葬禮謠)에 활용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 잡가(雜歌)가 성행하며 회심곡이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잡가로 수용되고 전문 국악인들에 의해 연주되기도 하였다. 즉 전문 국악인이 부르는 회심곡은 탁발승 권명학ㆍ하룡남의 창본을 모본(模本)으로 한 〈염불 회심곡〉을 수용, 발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 음악적 특징 화청 회심곡의 음악적 특징은 〈화청〉과 일맥상통하여, 5박(3+2) 계통 또는 8박(3+2+3) 계통으로 부른다.
가락은 각 지방의 민요 토리와 같아서 서울 봉원사 범패승의 화청 회심곡은 경토리, 팔공산제 화청 회심곡은 메나리토리로 되어있다. 사찰 밖에서 불리던 〈염불 회심곡〉은 일정한 장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설에 따라 악구가 유동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들며, 화청 회심곡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의 토리로 불리는 특징이 있다.
한편, 전문 국악인이 부르는 민요 회심곡은 탁발승의 〈염불 회심곡〉과 가락이 거의 유사지만 민요 회심곡의 음역이 넓고 가락에 기교가 많다.
○ 연행 절차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에서 〈화청 회심곡〉은 영산작법(靈山作法)-상단권공(上壇勸供)에서 불린다. 영산작법은 ①시련 ②재대령 ③관욕 ④조전점안 ⑤신중작법 ⑥괘불이운에 이은 영산재의 일곱 번째 절차로, 불보살과 옹호신중 등 일체 유주무주 고혼을 영산도량에 모셔와 공양으로 권공하는 내용이다. 영산작법은 다시 (1)결계의식 (2)소청의식 (3)설법의식 (4)권공의식 (5)회향의식으로 나뉘는데, 〈화청 회심곡〉은 이 중 마지막 의식인 회향의식(回向儀式)에서 〈축원화청(祝願和請)〉과 함께 불린다.
- 『보권염불문』 〈회심가〉 텬디이의 분ᄒᆞᆫ후에 삼나만샹 닐어나니 유졍무졍 삼긴얼골 텬진면목 졀묘호ᄃᆡ 범부고텨 셩인되ᄆᆞᆫ 오직사ᄅᆞᆷ 최귀ᄒᆞ다 요순우탕 문무쥬공 삼강오샹 팔죠목을 ᄐᆡ평셰에 장엄ᄒᆞ니 금슈샹에 쳠화로다 …(중략)… 년화ᄃᆡ예 올라안자 됴쥬쳥다 부어먹고 ᄇᆡᆨ운거를 멍에메워 녹양쳔변 방초안에 등등임운 임운등등 ᄌᆞᄌᆡ히 노닐면셔 태평곡을 부르리라 나무아미타불 나라리리라라 나무아미타불 - 『조선가요집성』 회심곡 天地二儀 분ᄒᆞᆫ후에 森羅萬象 니러나니 有情無情 삼긴얼골 天眞面目 絶妙호ᄃᆡ 凡夫곳처 聖人됨은 오직사ᄅᆞᆷ 最貴ᄒᆞ다 堯舜禹湯 文武周公 三綱五常 八條目을 太平世예 莊嚴ᄒᆞ니 東西南北 간ᄃᆡ마다 …(중략)… 蓮花臺에 올나안자 趙州茶를 부어먹고 白牛車를 멍에메워 綠楊用邊 芳草岸의 任意로 노닐며셔 太平歌를 부ᄅᆞ세라 - 『조선가요집성』 〈별회심곡〉 世上天地 萬物中에 사람밧게 잇는가 여보시요 施主님네 이내말ᄉᆞᆷ 들어보소 이世上에 나온사ᄅᆞᆷ 뉘德으로 나왓는가 釋迦如來 功德으로 阿父님前 ᄲᅧ를빌고 於母님前 살을빌고 七星님前 命을빌며 …(중략)… 積德을 아니하면 身後事가 慘酷ᄒᆞ니 바라나니 우리兄弟 慈善事業 만히하야 來生길을 잘닥가서 極樂으로 나아가셰 - 하룡남창 회심곡 (Victor Junior KJ-1049-A(JRE1113), 1935.11.15. 녹음) 일심이라 일념이나 들위나한 봉호이 오 아미로다 봉호이에 에헤루어 에헤루어 억조천상은 만민 시주님네 인간 세상을 나온 사람 백자 나한 되몸을고 우의나와 …(중략)… 은중심경은 어머니 법화경은 아버니라 어머님전에다 살을 빌어 열부칠성님 전에 명을 주어 은공지성이 봉요 만줄이 두어다 삼신자 삼신지왕님이 점지 탄생만 허였습니다 나한
회심곡은 불교 가사에서 출발하여 불교음악의 일종으로 일반 대중의 포교를 위해 활용되다가, 사찰 밖 시가에 널리 퍼져 민중 문화로 정착ㆍ향유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향토무형유산 제5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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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鄭美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