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齋)의식이 펼쳐지는 청정한 도량에 본격적으로 법식이 시작됨을 알리는 곡
개계는 재(齋)의식에서 부르는 범패로, 재의 종류나 청(請)하는 대상에 따라 〈영산개계(靈山開啓)〉·〈원부개계(原夫開啓)〉·〈상부개계(詳夫開啓)〉·〈중단개계(中壇開啓)〉처럼 용어를 달리 사용한다. 통칭 네 종의 개계는 모두 홑소리로 부르고 산문체로 되어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며 가사와 내용은 모두 다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수륙재문을 추려 모은 조선시대 불교의례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에는 ‘영산작법(靈山作法)절차’에 〈영산개계〉가 실려 있으며, ‘대례왕공양문(大禮王供養文)’편에는 〈원부개계〉가, ‘중위권공(中位勸供)’에는 〈중단개계〉가 기록되어 있다. 〈상부개계〉는 상주권공재에서 부르며 『작법귀감』 ‘삼보통청(三寶通淸)’ 등에 기술되어 있다.
개계는 결계의식에 속한다.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에 수록된 〈영산개계〉를 살펴보면, 세부적으로 결계의식 중에서도 ‘쇄수(灑水)’를 하기 전 단계인 관세음보살을 청하는 절차 앞에 봉행한다. 결계의식의 절차가 향을 사르고 부처님을 찬탄한 다음 〈합장게〉-〈고향게〉-〈영산개계〉-〈관음찬〉-〈관음청〉-〈향화청〉-〈가영〉순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관음찬〉을 하기 전에 부른다. 이후 쇄수가 이루어지고 〈걸수게〉-〈쇄수게〉-〈복청게〉-〈천수바라〉-〈사방찬〉-〈도량게〉-〈참회게〉순으로 마친다. ‘대례왕공양문’의 〈원부개계〉 역시 〈합장게〉-〈고향게〉-〈원부개계〉-〈쇄향수게〉 순이며, 쇄수 전 단계에서 봉행한다. 〈중단개계〉는 중단에서 설행하는 개계를 가리키는데 상단의 축원화청을 마친 후 시작되며, 절차는 중위권공에서 〈중단개계〉를 시작으로 〈중단개계〉-〈사다라니〉-〈오공양〉-〈가지게〉로 이어진다. 한편 〈상부개계〉는 상주권공재에서 부르는 범패이다. 〈영산개계〉나 〈원부개계〉처럼 ‘쇄수’를 하기 전 단계에 봉행된다는 점이 동일하지만 〈고향게〉-〈상부개계〉-〈쇄수게〉순으로 악곡과 절차가 조금 축소된다.
현행 재(齋)의식에서 부르는 통칭 개계는 한 명의 독창자가 반주 없이 홑소리로 부른다. 재의식에서 ‘징’은 대부분의 절차에서 사용되는 필수 악기로 작법이 설행될 때 주로 반주악기로 활용된다. 그런데 개계는 연행시간이 짧게는 약 10분 내외에서 길게는 약 20분 정도의 시간을 오롯이 독창으로 부르는 악곡이고, 노래가 끝나는 지점에서 징을 세 번 치기 때문에 반주의 의미 보다는 신호 체계로써 징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상부개계〉는 가사의 첫 어절 ‘상부(詳夫)’을 본 떠 이름 붙여졌고, 〈원부개계〉는 가사의 첫 어절 ‘원부(原夫)’를 본 떠 이름 붙여졌다. 그러나 〈영산개계〉는 가사의 첫 어절과는 무관하며, 〈대개계〉 또는 〈대가계〉라고도 부른다. 생각건대 영산작법에서 부르는 소리이므로 〈영산개계〉라고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개계는 재(齋)의 종류 또는 예의 대상과 위치 그리고 절차에 따라 네 종의 개계중 하나를 봉행하는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상주권공재에서 부르는 ‘개계’는 〈상부개계〉이다. 시왕각배재에서 부르는 ‘개계’는 〈원부개계〉이며, 영산작법 절차에서 부르는 ‘개계’는 〈영산개계〉이다. 또 소청중위 절차 시에 부르는 ‘개계’는 〈중단개계〉이다. 이처럼 재(齋)의식 또는 소청하는 대상 그리고 절차 등에 따라 각각의 악곡이 재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 음악적 특징
개계의 박자와 빠르기는 1박 기준 약 40 내외의 혼소박 불규칙 박자로 느리게 부른다. 노랫말인 가사는 모두 한문으로 된 산문체이며, 네 종의 개계 중 가장 짧은 가사는 7句로 된 〈상부개계〉이다. 가사붙임새와 선율은 간혹 일자일음형 또는 일자수음형이 보이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멜리스마틱 스타일(melismatic style)인 일자다음(一字多音)형의 선율이다.
송암스님이 가창한 개계의 음역은 레(re)~솔(sol′)로 완전11도의 넓은 음역을 활용하여 부른다. 가창자에 따라 음역의 활용 양상은 조금씩 다른데 유창렬 가창의 〈상부개계〉음역을 보면, 미(mi)~솔(sol′)의 단10도의 음역을 활용하고, 최고음 솔(sol′)은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송암스님이 유창렬의 소리보다 음역을 조금 더 넓게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계의 음계는 미(mi)-솔(sol)-라(la)-도(do)-레(re)-미(mi)이고 종지음은 미(mi)이다. 요성은 미(mi), 라(la), 도(do), 레(re) 대부분의 음에서 모두 보이나 주된 요성은 미(mi)와 라(la)를 굵게 떤다. 선율은 하행시 라(la)-솔(sol)-미(mi)로 솔(sol)을 거쳐 순차하행 하는 특징이 민요의 메나리토리와 다르지 않다. 선율의 특징적인 점은 ‘자출이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출이는 소리’의 가창방법은 ‘라(la)’에 강세(accent) 주어 ‘헤’라고 짧게 끊어 부른 후,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도(do)-라(la)를 반복하는데, 도(do)-라(la)를 반복하여 부를 때 마다 음과 음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속도는 점차적으로 빨라지는 방식으로 부른다. 또 개계에서 활용되는 ‘자출이는 소리’는 단독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자출이는 소리’와 안채비소리의 선율이 동반하여 연결되므로, ‘자출이는 소리’ 선율의 음악적 구조는 ‘자출이는 소리’에 안채비소리 중 유치성의 선율 즉, 두 개의 선율군이 결합한 긴 선율이다. 한편 ‘자출이는 소리’는 비교적 가사가 짧은 〈상부개계〉보다 가사가 긴 개계에서 많이 활용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부개계〉 詳夫 水含淸淨之功 香有普熏之德 故將法水 特熏妙香 灑斯法筵 成于淨土 〈원부개계〉 原夫 凡峙法筵 先使方隅嚴淨 恭依科敎 全杖加持 所以 水含淸淨之功 法有神通之用 將法備水 用水潔心 灑斯法筵 成于淨土 〈영산개계〉 切以 法筵廣啓 誠意精虔 欲迎諸聖以來臨 須假八方之淸淨... 이하하략 〈중단개계〉 切以 香燈耿耿 玉漏沈沈 今當上供 大聖之尊 亦可次獻 冥王之衆...이하생략
노랫말의 원문 참고. 안진호 편, 『석문의범』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1721). 『작법귀감(作法龜鑑)』(1827). 안진호 편, 『석문의범』, 법륜사, 1931. 차형석, 「짓는소리 부호의 음악적 특징과 의미-개계(開啓)를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32, 2015. 한만영, 『한국불교음악연구』, 1984.
차형석(車炯錫)